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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오전 05:21

solpee 2016. 10. 26. 05:22

翠娥[cuì é]

指美女。

☞.唐李白《忆旧游寄谯郡元参军》诗:“翠娥婵娟初月晖,美人更唱舞罗衣。”

 

憶昔洛陽董糟丘,為余天津橋南造酒樓。

①옛날 자네가 낙양에서 糟丘를 감독할 때가 생각나는데, 나를 위해 천진교 남쪽에 酒店을 차리고.

註; 董- 监督;督察

註; 糟丘-積糟成丘。(술지게미가 쌓여서 된 언덕, 즉 술집이 많다는 뜻임)

 

黃金白璧買歌笑,一醉累月輕王侯。

②황금과 백옥으로 노래와 웃음을 사고, 한번 취하면 여러 달 걸쳐 보내면서 高官大爵들을 우습게 여겼지.

 

海內賢豪青雲客,就中與君心莫逆。

③나라 안의 賢者 豪傑들과 高官들이 몰려들었고, 그런 중에 자네하고는 애써 허물없이 지내려 하였으니.

註; 就中-其中

 

回山轉海不作難,傾情倒意無所惜。

④그 힘의 거대함은 장난이 아니라서, 정을 쏟고 뜻을 뒤엎어도 아쉬운바가 없었네.

註; 回山轉海-轉動山海。比喻力量巨大。

註解; ①~④행 까지는742年 李白이 당 현종의 부름을 받고 장안으로 들어가, 東宮의 賓客으로 있을 때의 일로서, 당시에는 사람들이 그를 하늘의 神仙이 人間世上으로 귀양살이를 온 사람이라고 칭할 정도로 대단한 威勢를 보일 때인데, 이때에 元 參軍은 洛陽에서 天津橋 근처의 遊興街에서 監督을 하고 있으면서 李白을 接待한 것을 읊은 것.

 

我向淮南攀桂枝,君留洛北愁夢思

⑤나는 淮南으로 가서 조정의 부름을 기다리려고 하였고, 자네는 洛陽북쪽 天津橋에 머물고 있으면서 꿈결같이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며 아쉬워하다가.

註; 桂枝-“桂林一枝”的省言。喻登科及第。

註; 夢思-夢中的思念。

 

不忍別,相隨。

⑥이별을 참지 못해, 돌아서서 서로 쫓아왔었지.

 

相隨迢迢訪仙城,三十六曲水回縈。

⑦쫓아오고 쫓아와 仙城山을 찾아갔고, 서른여섯 번이나 굽이굽이 물길을 돌고 돌아야 했는데.

 

一溪初入千花明,萬壑度盡松風聲。

⑧첫 번째 계곡 들어서니 온갖 꽃이 반겨주었고, 많고 많은 골짜기 모두 건너고 나서야 비로서 솔바람 소리 시원하게 들렸었네.

 

銀鞍金絡倒平地,漢東太守來相迎。

⑨銀鞍裝과 말머리에 씌운 금락은 땅바닥에 내려놓고, 漢東 太守 오는 것을 맞이할 때.

註; 金絡-即金絡頭。(말머리에 씌우는 頭巾)

註解; 前句 ‘銀鞍金絡倒平地’는 玄宗呼之不朝를 말한 것으로, 현종이 들어오라는 것도 응하지 않았다는 뜻임.

註解; 漢東-洛陽을 말한 것임, 즉 長安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李白이 이를 ‘漢東’이라 한 것으로 추측됨. 漢東太守라고 한 것은 誇張法을 써서 元 參軍에게 과잉 尊待를 한 것임.

 

紫陽之真人,邀我吹玉笙。

⑩紫陽의 神仙 중에 神仙이여!, 멀리서부터 나는 옥피리를 불고 생황을 연주하였지.

註; 紫陽-傳說中古代神仙常以紫陽為稱​​號。(傳說에서는 中國의 古代 神仙들은 항상 紫陽이란 칭호로 불렀다.)

 

餐霞樓上動樂,嘈然宛似鸞鳳鳴。

⑪저녁놀이 깃든 樓閣에서 神仙들이 가락을 뽑기 시작하니, 목을 꾸벅거려 주절대던 난새와 봉황도 울기 시작하였고.

註解; 여기서 神仙들이라고 한 것은 李白이 데리고 간 ‘酒中人仙’을 말함.

 

袖長管催欲輕舉,漢東太守醉起舞

⑫긴 소매 끝에서 옥피리는 흥을 재촉하면서 손가락 가볍게 들썩거리니, 한동태수 취하여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하였네.

 

手持錦袍覆我身,我醉橫眠枕其股。

⑬손에 든 비단 道袍로 내 몸을 덮어주니, 나는 취하여 그의 허벅지 베고 가로누어 잠들기도 하였고.

 

當筵意氣凌九霄,星離雨散不終朝,分飛楚關山水遙。

⑭당찬 자리의 意氣는 하늘을 넘나들고, 별들이 반짝거리다 비가 뿌려졌지만 아침이 되어도 그치지를 않았으며, 헤어지는 楚 關門까지는 山과 江이 아직도 멀리까지 남았었지.

註; 星離-如天星布散。形容分散。

註; 分飛-離別 語本《藝文類聚》卷四三《古東飛伯勞歌》:“東飛伯勞西飛燕, 黃姑(견우) 織女時相見.” 後因稱離別為分飛。

  “견우와 직녀가 만날 때는, 동쪽에서 백로가 날고 서쪽에서 제비가 날았다.” 훗날 이로 인하여 이별을 칭할 때는 分飛로 하였다.

註解; ⑤~⑭행은 743年 李白이 翰林院 奉公으로 있으면서 겨우 玄宗의 春色놀음에 獻詩나 쓰는 御用文人 생활에 厭症을 느낀 나머지 賀知章 등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玄宗의 부름에 入闕하지 않고 지낼 때로서, 이때에 李白이 元 參軍을 招請하여 城仙山에서 賀知章 등 ‘酒中人仙’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行樂을 베풀었던 일을 읊은 것이다.

 

余既還山尋故巢,君亦歸家渡渭橋。

⑮나는 이미 還山하였으니 옛집으로 찾아갈 것이고, 자네역시 집으로 간다며 渭水 다리를 건너갔었지.

 

君家嚴君勇貔虎,作尹並州遏戎虜。

⑯자네 椿府丈께서는 용맹스런 장수셨으니, 並州에서 留守를 지내실 때에는 오랑캐들의 침입을 막아내셨지.

註; 貔虎-喻 勇士 或 勇猛的 軍隊。

註; 尹-地方長官의 官名.

註; 並州-泛指 今 山西省 太原一带.

註解; ⑮~⑯행은 繼辭로서, ⑭행까지의 前 文段과 ⑰행 이후의 文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⑭행까지는 742年과 743年의 일이고, ⑰행 이후는 735年의 일로서 時間的으로 先後가 뒤 바뀌기 때문에 이러한 繼辭를 揷入시켜 全體의 構圖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五月相呼太行,摧輪不道羊腸苦。

⑰오월의 푸른 숲속에서 태행산을 지날 때는 서로 불러가면서 길을 잃지 않게 하였고, 길이 험하고 때로는 길도 아닌 九曲羊腸 구불구불한 곳에서 갖은 고생했으며.

註; 度- 過,由此到彼

註; 太行-太行山, 山西省 太原에 있는 山.

註; 摧輪-折毀車輪。謂路有艱險。(수레바퀴가 망가지다, 길이 험난한 곳에 있음을 일컫는 말)

 

行來北涼歲月,感君貴義輕黃金。

⑱오다가다 하다보니 북쪽 찬바람에 세월이 지나 가을이 깊었는데도, 義理를 귀히 여기고 黃金을 가벼이 하는 자네에게 感服하였네. 

註; 行來-往來;出入。(가며오며)

               語出《逸​​周書·大聚》:“市有五均,早莫如一,送行逆來,振乏救窮。”

註解; 李白이 이때 五月 초여름에서부터 그 해 가을까지 太原 元演의 집에서 오래 머물고 있는데도 732년에 만나 親交를 맺은 義理를 중히 여겨 결코 싫어하는 기색을 나타내지 않고 융숭히 접대를 받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말임.

瓊杯綺食青玉,使我醉飽無歸心。

⑲옥 술잔에 화려한 그림 무늬 그릇에다가 靑玉 밥상에서 밥을 먹으니, 나로 하여금 배불리 먹고 취하여 돌아갈 마음을 없게 하였고.

註; 案- 长方形的桌子

 

時時出向城西曲,晉祠流水如碧玉。

⑳때때로 나아가 城 서쪽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면, 周代에 晉나라를 開國한 穆王의 祠堂에는 백옥 같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데.

註; 晉祠-周代 晉國 開國君主 唐叔虞的 祠廟。

 

浮舟弄水簫鼓鳴,微波龍鱗莎草綠。

㉑배를 띠워 물을 희롱하면서 퉁소불고 북소리가 울리니, 잔잔한 파도가 용 비늘처럼 일어 향 부자 푸른 잎을 흔들었고.

 

興來攜妓恣經過,其若楊花似雪何。

㉒흥이 돌아와 妓女를 시켜 歌女舞姬들을 불러 모으니, 마치 백설같이 날리는 버들 솜처럼 몰려들었지.

 

紅妝欲醉宜斜日,百尺清潭寫翠娥。

㉓곱게 화장한 妓女들은 醉興을 돋게 하려는 듯 기울어진 햇빛을 받아 더욱 예뻐 보이고, 百 尺이나 되는 긴 맑은 호수에 물총새 같은 미녀들의 아리따운 그림자를 그려놓았고.

 

翠娥嬋娟初月輝,美人更唱舞羅衣。

㉔미녀들은 초승 달 밝은 빛을 받아 더욱 예뻤고, 그들이 춤옷으로 갈아입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지.

註; 更唱-輪流唱(돌아가면서 부르는 노래.)

 

清風吹歌入空去,歌曲自繞行雲飛。

㉕맑은 바람에 부르는 노래는 허공으로 퍼져나갔고, 歌辭에 맞춰 그들 스스로 곡을 부치고는 흘러가는 구름 속으로 날려 보냈네.

 

此時行樂難再遇,西游因獻<長楊賦>。

㉖이렇게 때에 맞춘 行樂은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서쪽을 유람하면서 자네에게 드리는 <長楊賦>일세.

 

 北闕青雲不可期,東山白首歸去。

㉗나는 長安 大闕에 出仕할 꿈은 기약할 수 없으니, 東山의 無官白首로 다시 돌아갔었네.

註; 還- 再,又:锻炼身体,~要注意休息。

註解; 735年 李白 나이 35세 되는 해에, 唐 玄宗은 天下의 선비, 재주가 으뜸인자, 哲學 思想家, 또는 將帥와 地方官을 맡을 수 있는 能力 있는 사람을, 中央에서는 五品以上의 官員이나 全國 各 地方刺史들은 한 사람씩 推薦할 수 있게 하였는데. 李白은 이러한 推薦을 받지 못하여 出仕할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을 말한 것임.

註解; ⑰~㉗행은 735年 李白 나이 35세 되는 해에 그 해 5월에 元演이 李白을 自身의 집으로 招請하여 가을까지 머물게 하면서 行樂과 太原을 遊覽을 하고는 헤어진 것을 읊은 것이다.

 

渭橋南頭一遇君,臺之北又離群。

㉘渭水의 다리 남쪽입구에서 자네를 처음 만났고, 지금은 酇臺의 북쪽에서 급하게도 고을을 또 떠나야만 한다네.

註; 前句는, 姜太公 呂望이 渭水가에서 文王의 隆崇한 招待를 받은 故事를 빌어 말한 것으로, 元演이 李白을 招待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음을 말한 것임.

註; 酇-漢 나라 때 沛郡에 속했던 곳으로, ‘沛’ 즉 물 흐름이 얕고 급하게 흐르고, 행동이 민첩함을 뜻한 것으로, 李白이 750年에 다시 元演을 만나서는 바로 떠나야 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註解; 여기서 ‘渭橋南頭’와 ‘臺之北’의 地名은 實際場所를 뜻한 것이 아니라 故事를 말하기 위한 借名을 한 것이다.

 

問余別恨知多少,落花春暮紛紛。

㉙이별의 恨으로 가슴 아픈 것을 조금이라고 아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늦은 봄날에 떨어지는 꽃잎이 무엇 하러 흩어져 날리겠는가? 라고 대답하겠네.

註; 多少-指数量大小, 或多或少, 稍微,(아주 조금)

註; 爭-奪取, 較量﹑競爭, 辯論, 相差﹑差別, 規勸(諫하다), 如何,(어찌, 무엇) 同“怎”.

註解; 이는 李白이 夫人 宗氏와 再婚하여 新接살림을 차린 직후라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 것임.

註解-㉘~㉙행은 735年 처음 만났을 때는 歡待를 받아 오래 머물렀으나, 750年 가을에 다시 元演을 만나서는 바로 떠나게 되어 마안하다는 것을 말한 것임.

 

言亦不可盡,情亦不可極。

㉚말을 하자면 역시 끝이 없고, 오고가는 情도 역시 마지막 끝까지 이루지는 못하는 것이니.

 

呼兒長跪緘此辭,寄君千里遙相憶。

㉛자식들을 불러 무릎 꿇고 똑바로 앉게 하고는 이 辭賦에 대하여 말해주고는 잘 封緘케 하여, 천리 밖 멀리서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자네에게 보내네.


宋梅尧臣《谢永叔答述旧之作和禹玉》:“金带繫袍迴禁署,翠娥持烛侍吟窗。”


清孙枝蔚《采莲歌》:“多少游人看翠娥,船归羞和采莲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