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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人成事 [yīn rén chéng shì]

solpee 2016. 10. 25. 05:16

因人成事 [yīn rén chéng shì]

사람으로 인해 일을 이루다.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성취한다는 뜻이다.

출전秦나라가 趙나라의 邯鄲을 공격하자 조나라 왕은 平原君을 楚나라에 보내 합종의 맹약을 맺도록 했다. 평원군은 식객들 중에서 문무를 겸비한 20명을 골라 함께 가기로 했는데, 19명을 고른 뒤에는 더 이상 고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때 毛遂가 자청하고 나섰다. “한 사람이 모자란다니 저를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평원군이 물었다. “선생께서는 내 집에 오신 지 몇 해나 되었소?” “3년입니다.” “현사가 세상에 처해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 그 끝이 튀어나온다고 하는데, 지금 선생은 내 문하에 3년이나 있었다지만 주변 사람들이 칭찬하는 소리도 없었으며 나도 듣지 못했소. 이는 선생이 아무런 재주도 없는 까닭이오. 선생은 할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그러자 모수가 말했다. “신은 지금 주머니 속에 넣어 주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만약 일찍이 주머니 속에 넣었더라면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왔을 것입니다. 어찌 그 끝만 보였겠습니까?”(▶ 囊中之錐 참조) 평원군은 모수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다른 19명은 서로 눈짓으로 모수를 비웃기를 그치지 않았다. 모수는 초나라에 도달하는 동안 19명과 이야기를 하면서 모두 굴복시켜 버렸다.

평원군은 초나라와 합종의 이해관계를 말하면서 해가 뜨면서부터 협상하기 시작했는데 해가 중천에 걸리도록 결정이 나지 않았다. 19명이 모수에게 올라가라고 말하자 모수는 장검을 비껴들고 계단으로 뛰어올라 가 평원군에게 말했다. “합종의 이해관계는 두 마디면 결정되는 건데 오늘 해가 뜰 때부터 협상을 시작해서 해가 중천에 걸리도록 결정이 안 나는 것은 왜입니까?” 초왕이 평원군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무엇 하는 사람이오?” “저의 사인입니다.” 초왕이 꾸짖었다. “어서 내려가지 못할까! 나는 너의 주인과 협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모수가 칼에 손을 대고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왕이 저를 꾸짖는 것은 초나라가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열 발짝 안에서 왕은 초나라의 많은 사람들을 의지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왕의 목숨은 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주인이 앞에 있는데 왜 꾸짖는 겁니까. 湯임금은 70리의 땅으로 천하의 왕 노릇을 했고, 文王은 100리의 땅으로 제후들을 신하로 만들었는데, 그들이 군사가 많았습니까? 모두 그 세력에 의하고 위엄을 떨쳤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초나라는 땅이 사방 5,000리에 군사가 백만으로, 패자의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나라의 강함을 천하는 당할 수가 없습니다. 白起는 새파란 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만의 병사를 이끌고 초나라와 전쟁을 하여 한 번 싸움에 鄢郢을 함락시키고, 두 번 싸움에 夷陵을 불태웠으며, 세 번 싸움에 왕의 조상을 욕되게 했습니다. 이는 백세의 원한이자 조나라도 수치로 여기는 일인데 왕은 어찌 수치로 여기지 않습니까.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것이지 조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주인의 앞에서 꾸짖는 것은 웬일입니까!” 초왕은 모수의 말에 사직을 받들어 합종에 따르겠다고 약속을 했다.

모수는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게 하여 초왕, 평원군의 순서로 마시게 한 다음 자신도 피를 마시고, 왼손으로는 쟁반을 들고 오른손으로 19명을 불러 말했다. “그대들은 당하에서 피를 마시도록 하시오. 그대들은 한 일도 없이 다른 사람에 붙어서 일을 성사시켰을 뿐이니까요.”(毛遂左手持槃血, 而右手招十九人曰, 公相與歃此血於堂下. 公等碌碌, 所謂因人成事者也.)

평원군은 합종을 성사시키고 조나라에 돌아온 후 말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선비들의 상을 보지 않겠다. 내가 많게는 수천 명, 적게는 수백 명의 상을 보면서, 천하의 선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했는데, 오늘 모선생을 보지 못했구나. 모선생은 초나라에 가자마자 조나라를 九鼎과 大呂보다 더 무겁게 만들었다. 모선생은 세 치의 혀로 백만의 군대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감히 선비의 상을 보지 않겠다.” 그러고는 모수를 상객으로 대우했다.

이 이야기는 《史記 〈平原君虞卿列傳〉》에 나오는데, 모수가 다른 식객들에게 다른 사람에 붙어서 일을 성사시켰다고 한 말에서 ‘인인성사’가 유래했다. 구정은 夏나라의 禹임금 때 九州에서 바친 구리를 모아 만든 솥으로, 하나라 이래로 천자에게 전해지던 보물이다.(▶ 問鼎之大小輕重 참조) 이 솥은 주나라가 망하고 천하의 새로운 주인이 된 秦나라로 옮기는 과정에서 泗水에 빠져 버렸다고 전해진다. 대려는 周나라 왕실의 종묘에 있던 큰 종이다.

史记·平原君虞卿列传成语典故】秦之圍邯鄲,趙使平原君求救,合從於楚,約與食客門下有勇力文武備具者二十人偕。平原君曰:「使文能取勝,則善矣。文不能取勝,則歃血於華屋之下,必得定從而還。士不外索,取於食客門下足矣。」得十九人,餘無可取者,無以滿二十人。門下有毛遂者,前,自贊於平原君曰:「遂聞君將合從於楚,約與食客門下二十人偕,不外索。今少一人,原君即以遂備員而行矣。」平原君曰:「先生處勝之門下幾年於此矣?」毛遂曰:「三年於此矣。」平原君曰:「夫賢士之處世也,譬若錐之處囊中,其末立見。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左右未有所稱誦,勝未有所聞,是先生無所有也。先生不能,先生留。」毛遂曰:「臣乃今日請處囊中耳。使遂蚤得處囊中,乃穎脫而出,非特其末見而已。」平原君竟與毛遂偕。十九人相與目笑之而未廢也。

毛遂比至楚,與十九人論議,十九人皆服。平原君與楚合從,言其利害,日出而言之,日中不決。十九人謂毛遂曰:「先生上。」毛遂按劍曆階而上,謂平原君曰:「從之利害,兩言而決耳。今日出而言從,日中不決,何也?」楚王謂平原君曰:「客何為者也?」平原君曰:「是勝之舍人也。」楚王叱曰:「胡不下!吾乃與而君言,汝何為者也!」毛遂按劍而前曰:「王之所以叱遂者,以楚國之眾也。今十步之內,王不得恃楚國之眾也,王之命縣於遂手。吾君在前,叱者何也?且遂聞湯以七十裏之地王天下,文王以百里之壤而臣諸侯,豈其士卒眾多哉,誠能據其勢而奮其威。今楚地方五千里,持戟百萬,此霸王之資也。以楚之彊,天下弗能當。白起,小豎子耳,率數萬之眾,興師以與楚戰,一戰而舉鄢郢,再戰而燒夷陵,三戰而辱王之先人。此百世之怨而趙之所羞,而王弗知惡焉。合從者為楚,非為趙也。吾君在前,叱者何也?」楚王曰:「唯唯,誠若先生之言,謹奉社稷而以從。」毛遂曰:「從定乎?」楚王曰:「定矣。」毛遂謂楚王之左右曰:「取雞狗馬之血來。」毛遂奉銅槃而跪進之楚王曰:「王當歃血而定從,次者吾君,次者遂。」遂定從於殿上。毛遂左手持槃血而右手招十九人曰:「公相與歃此血於堂下。公等錄錄,所謂因人成事者也。」

平原君已定從而歸,歸至於趙,曰:「勝不敢複相士。勝相士多者千人,寡者百數,自以為不失天下之士,今乃於毛先生而失之也。毛先生一至楚,而使趙重於九鼎大呂。毛先生以三寸之舌,彊於百萬之師。勝不敢複相士。」遂以為上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