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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7일 오전 04:35

solpee 2016. 7. 17. 04:35

 

 

憎蚊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내면서
어둠 틈타 부리 놀리며 주렴 뚫고 들어오네
세상의 많은 식객들 끊임없이 웽웽대며
권세가에 들락거리는 것은 또 무슨 마음인가

 

不現其形但遺音
乘昏游嘴透簾深
世間多少營營客
鑽刺朱門亦底心

- 正祖,( 1752~1800),『弘齋全書』 권1 「春邸錄」

 

복을 아껴야 한다.

일은 완벽하게 끝을 보려 하지 말고,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며,
말은 끝까지 다하지 말고,
복은 끝까지 다 누리지 말라.

 

事不可使盡, 勢不可倚盡,
言不可道盡, 福不可享盡.

- 許筠 (1569~1618), 『惺所覆瓿藁』 「閑情錄」 11권 「名訓」

 「명훈」은 『近思錄』『朱子全書』『四字粹言』『公餘日錄』『文選』 등 15종의 자료를 바탕으로 古人의 말이나 시구에서 훈계가 될 만한 것을 채록하여 총 68칙을 실은 것이다.

   윗글은 허균이 명나라 湯沐이 지은『공여일록』에서 張無盡의 ‘惜福의 說’을 정리한 것이다. ‘석복’이란 복을 아낀다는 뜻으로,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소중히 여겨 더욱 낮추고 검소하게 생활하여 복을 오래 누리도록 함을 말한다. 예로부터 수행자들에게 필수적인 교훈이어서 惜福修行이라고도 했다. 이 교훈은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惠訓이다. 때문에 많은 賢者가 ‘석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고이래로 聖賢이 ‘석복’에 관한 교훈을 많이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멈춤의 미학’, '절제의 미학‘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허나 이를 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思惟가 깊어 자기 성찰과 함께 중용, 균형, 멈춤의 미학을 깨달아야만 가능한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끝장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이다. 사상, 이념, 정치, 역사, 권력, 명예, 심지어 사랑까지 끝장을 보려고 한다. 결코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법이 없다. 이제는 먹는 것까지 끝장을 보려 한다. TV에선 ‘먹방’에 관한 방송이 온종일 끊이질 않고, 막장 드라마와 인터넷 방송에선 말초적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갖 잔혹한 방법과 패륜이 총동원되고 있다.

    수양과 達觀을 통한 영적 발전을 이루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止’이다. 멈출 때 멈출 수 있어야 하고, 또 적당한 선에서 그칠 줄 알아야 한다. 혼탁한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게 바로 멈춤의 미학이다. 멈춤이 제대로 작동 되지 않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다. 이는 쇠함과 성함이 돌고 돌아 순환하는 게 우주의 법칙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 무엇이든 盛이 있으면 반드시 衰가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한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하지가 지나면 동지를 향해 조금씩 가고, 동지가 지나는 순간 하지를 향해 나아간다. 초승달은 반달을 거쳐 보름달이 되고, 보름달은 다시 초승달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계속 순환 반복한다. 이 순환의 법칙은 우주에서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인간은 무엇이든 끝까지 누리면, 쇠할 때 그만큼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많이 가졌던 만큼, 끝까지 향유했던 만큼, 절정으로 즐거워했던 만큼, 상실의 폭 또한 깊고 넓다. 이는 우주의 엄혹한 법칙이다. 人間世엔 결코 영원불변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행복할수록, 일이 순조롭게 풀릴수록, 더욱 근신하고 몸을 낮춰야 한다. 선한 일을 많이 행하고, 복을 아껴야만 한다.

 

글쓴이김시연
작가, 인하대학교 한국학과 역사전공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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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청에서의 노역이 머리 세게 하였네
天祿之役 令人頭白

- 安鼎福(1712~1791)의 『順菴集』 권13 「雜著 橡軒隨筆 下」에 실린 「前輩著述」 중에서


 順菴 安鼎福은 장년에 星湖 李瀷의 문인이 되어 수많은 서책을 더욱 섭렵하면서 『東史綱目』이라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史書를 남겼다. 그 외에도 평생을 학문에 정진하며 수십여 종의 저작을 남겼으니, 하나의 저술을 완성하기 위해 백발이 될 정도로 공들였던 선배들의 노력을 아마도 남다르게 경외하였을 것이다. 또한 그런 노력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이 구절은 宣祖 18년(1585)부터 설치된 校正廳에서 經書의 현토를 확정하고 출간하는데 참여했던 洪{耆+見}기의 말로 이와 관련한 일화를 안정복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홍기와 친분이 있었던 어떤 재상이 자기를 능가하는 그의 명성을 시기하였는데, 지금 통행되고 있는 경서의 인본에 오류가 많다는 것을 빌미삼아 그가 교정을 담당하도록 임금에게 추천하여 윤허를 받았다. 이로 인해 홍기가 명을 받들어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한 덕분에 잘못된 어구나 글자들이 모두 바로잡히게 되었으며, 자획의 편방까지도 조금도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없게 되었다. 지금 성균관의 그 四書三經 판본을 善本이라고 한다.
   내가 일찍이 홍기가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본 일이 있는데, ‘교정청에서의 노역이 사람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天祿之役 令人頭白]’하였으니, 그가 기울인 노력이 또한 매우 대단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건강을 잃어서 미처 승진도 하기 전에 죽고 말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을 지금까지 사람들이 읽으면서도 아무도 그것이 홍기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글쓴이김형욱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