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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7일 오후 09:09

solpee 2016. 5. 7. 21:10

久而敬之[jiǔérjìngzhī]

오래 사귀었지만 차음처럼 존경하다.

 

論語  第5-16章

子曰 "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

공자가 말했다. " 齊나라 晏平仲 같은 분은 주위 사람들과 참으로 잘 사귀었다. 사람과 오래 사귈수록 서로 존경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사기]의 열전 중 두 번째에 나오는 ‘’을 살펴보면

안평중은 춘추시대에 제나라의 재상이었지만 국제적으로 명망이 높았다. 이러한 명망은 약육강식의 시대 상황에서 다른 나라가 제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안평중이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상 제나라의 지도력이 갑자기 나빠져 혼란으로 빠져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안평중의 영향력이 국내외적으로 무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晏平仲(婴)은 공자보다 먼저 태어났다. 공자는 세상을 구할 기회를 찾던 사람이었고, 晏婴은 제나라 재상이었다. 공자가 제나라를 찾았을 때 경공이 등용하려고 하자 안영이 반대한 적이 있다. 공자는 이러한 악연에도 불구하고 안영의 사람 사귀는 교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마천은 [사기] ‘관안열전’에서 안평중의 이러한 사람 됨됨이를 보여주기 위해 무척 고심했을 것이다. 그는 안평중의 사람됨을 나타내기 위해 서두에 절약하고 절제하는 삶을 간단하게 언급하고서 말미에 일화 하나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안평중은 재상이 된 뒤에 마부가 딸린 마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오늘날 같으면 기사가 모는 관용차를 제공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마부가 집으로 퇴근을 하니 아내가 갑자기 ‘이혼’을 요구했다. 마부는 아내로부터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는 꼴이었다. 마부는 이혼을 하든 말든 일단 이유라도 들어 보자고 말했다.

아내는 마부가 재상 안평중을 수행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안영은 6척의 단신이고 남편은 8척의 장신으로 키 차이가 많이 났다.(당시 나라의 일척이 22.3cm이므로 안영은 키가 140cm 남짓 된다) 남편은 의기양양하게 수레에 올라 채찍을 힘차게 휘두르며 말을 몰았다. 안영은 말하는 태도며 움직이는 자세며 어느 하나 가볍지 굴지 않았다. 즉 마부는 재상의 수레를 몬다는 역할에 도취해서 재상보다도 더 우쭐거렸다.

아내는 두 사람의 차이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안평중은 늘 “스스로 낮추는()” 반면 남편은 “스스로 뽐내며 만족했다.()” 아내는 우쭐대는 남편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어느 날 과부가 될 수 있으니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마부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몽둥이에 맞은 양 정신이 뻔쩍 들었다. 그 이후로 마부의 행동이 극도로 달라졌다. 안평중이 달라진 마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마부가 사실대로 아뢰자 안평중은 그를 고위 공직자인 로 천거했다. 이렇게 보면 괜히 안평중이 장기간 재상으로 있었고, 또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안평중이 으로 삶을 일관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敬은 일관성과 진실성을 나타내는 과 함께 동아시아 사상 문화의 자아 수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는 ‘내’가 ‘상대’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고 일정한 절차를 지키는 것이다. 은 ‘내’가 ‘상대’가 성취한 것에 대해 인정을 하는 것이다. 은 ‘내’가 나의 요구대로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의지를 더 우선시하는 것이다. 자가 들어가는 낱말들을 살펴보면 모두 ‘나’와 ‘상대’ 사이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거리가 있다.

 

안평중은 한 사람의 제후를 모시기도 어려울 터인데 40여 년에 걸쳐 오랫동안 세 제후를 모셨다. 그는 평소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고 재상이 되고 난 뒤에 고기 반찬을 한 가지 이상 하지 않았으며 부인이 비단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조정에서 나가서 임금이 물으면 올바른 말로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나서지 않고 올바르게 처신했다.

안평중은 재상이 되었지만 재물을 마구 쓰지도 권력을 맘대로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는 어떻게 재물을 아끼고 권력을 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까? 그는 재물과 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에 재물을 쓰는 쾌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또 권력을 영역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휘두르는 도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경은 ‘나’를 어떤 것(재물, 게임 등)으로부터 떼어놓아 중독을 막을 수 있는 힘이다. 이것이 바로 안평중이 사람들과 오래 사귈 수 있었던 길이었다. -신정근 교수

 

☞.자공이 친구 사귀는 법을 물었다. ()
공자가 일러주었다. “진실하게 권해주고 착실하게 이끌어준다. 친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 요구하여 스스로 모욕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 , ).

 

☞.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毋自辱焉

자공이 벗에 관하여 여쭈어 보았다. 충심으로 일러 주어서 잘 인도 하여 주되 그 것이 잘 안될 것 같으면 그만두고 자기 스스로 욕을 되도록 까지는 하지 말 것이다.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是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공자님께서 말씀하시었다.

"문 밖에 나서거든 귀한 손님을 뵙는 듯이 하며, 백성을 대하기를 큰 제사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이렇게 하면 나라에도 집에서도 원망이 없을 것이다." 

 

 

 

晏子为齐相出,其御之妻从门间而窥其夫。其夫为相御,拥大盖,策驷马,意气扬扬,甚自得也。既而归,其妻请去。夫问其故。妻曰:“晏子长不满六尺,身相齐国,名显诸侯。今者妾观其出,志念深矣,常有以自下者。今子长八尺,乃为人仆御,然子之意自以为足,妾是以求去也。”其后夫自抑损。晏子怪而问之,御以实对。晏子荐以为大夫。

 

史记》称其“以节俭力行重于齐。既相齐,食不重肉,妾不衣帛。其在朝,君语及之,即危言;语不及之,即危行。国有道,即顺命:无道,则衡命。以此,三世显名于诸侯。”

景公之时,雨雪三日而不霁,公被狐白之裘,坐于堂侧阶。晏子入见,立有间,公曰:“怪哉!雨雪三日而天不寒。”晏子对曰:“天不寒乎?”公笑。晏子曰:“婴闻古之贤君,饱而知人之饥,温而知人之寒,逸而知人之劳。今君不知也。”公曰:“善!寡人闻命矣。”乃令出裘发粟以与饥寒。令所睹于途者,无问其乡;所睹于里者,无问其家;循国计数,无言其名。士既事者兼月,疾者兼岁。孔子闻之曰:“晏子能明其所欲,景公能行其所善也。

景公见晏子妻“老且恶”,欲以爱女嫁他,他坚辞不纳。他说;“去老者,为之乱;纳少者,为之淫,且夫见色而忘义,处富贵而失伦,谓之逆道”。

为国主分忧,而二桃杀三士。

晏子真有善德!

再录几则孔子和司马迁对他的颂扬:

孔子赞他是“不以已之是,驳人之非,逊辞以避咎,义也夫!”

孔丘曾赞曰:“救民百姓而不夸,行补三君而不有,晏子果君子也!”

司马迁为晏婴立传,对他极为推崇,说:“方晏子伏庄公尸哭之,成礼然后去,岂所谓‘见义不为无勇者’耶?至其谏说,犯君之颜,此所谓‘进思尽忠,退思补过’者哉!假令晏子而在,余虽为之执鞭,所忻慕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