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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3일 오후 02:20

solpee 2016. 4. 3. 14:20

一匡天下[yì kuāng tiān xià]

천하를 바로잡다

 

論語·憲問편에 출전한다. "자공이 말했다. '관중은 인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환공이 공자규를 죽였는데, 죽지도 못하고, 또 그를 도왔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맹주가 되어 천하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은혜를 받고 있다.

子貢曰: 管仲非仁者與. 桓公殺公子糾, 不能死, 又相之.
子曰: 管仲相桓公霸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受其賜. 

相은 여기서 돕다, 보좌하다는 뜻이다. 정약용은 '한 사람의 卿이 집정하는 것을 相이라고 한다.'고 했다. 之는 제환공을 가리킨다. 覇를 주자는 伯과 같은 뜻으로 우두머리라고 풀었다.

춘추시대 제후들의 우두머리를 覇라고 불렀다. 盟主라는 의미다. 匡은 匡正으로 바로잡아 고친다는 뜻이다. 주자는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 일을 가리킨다고 본다. 于는 於와 같은 뜻의 어조사로 ∼에, ∼에서로 해석한다.

賜는 은혜, 恩澤
이다. 民到于今을 정약용은 은혜가 먼 후세까지 이르렀다는 뜻으로 그 사이가 거의 200년이라고 풀었다. 춘추전국시대에서 한나라 초까지의 여러 인물들의 전기와 일화를 모은 설화집 說苑에서는 공자께서 이 질문에 대해, "召忽은 신하의 재목으로, 죽지 않으면 三軍의 포로가 되고, 죽으면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는 것이다.

管仲은 천자를 보필하거나 제후의 재상으로 죽으면 도랑에 죽는 것을 면할 수 없고, 죽지 않으면 공이 천하에 다시 쓰이는 것이니 어찌 죽어야 하겠는가?" 라고 대답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子曰 管仲이 相桓公覇諸侯하여 一匡天下하니 民到于今에 受其賜하나니 微管仲이면 吾其被髮左衽矣리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의 覇者가 되어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관중이 없었다면 나(우리)는 그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覇는 伯과 같으니 우두머리이다. 匡은 바로잡는 것이니,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 夷狄을 물리침은 모두 천하를 바로잡는 것이다. 微는 없는 것이다. 袵은, 上衣의 옷깃이니,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 것은 夷狄의 풍속이다.(覇는 與伯同이니 長也라 匡은 正也라 尊周室, 攘夷狄은 皆所以正天下也라 微는 無也라 衽은 衣衿也니 被髮左衽은 夷狄之俗也라)

 

一:副词,一概,一切;匡:匡正,改正;天下:原指周天子统治所及的地方,即整个中国。纠正混乱局势,使天下安定下来。[1]  出自《论语·宪问》,意指使天下的一切事情都得到纠正。

 

 

出處

论语·宪问》:“管仲相桓公,霸诸侯,一匡天下,民到于今受其赐。微管仲,吾其被发左祍矣。”
《史记·齐太公世家》:“寡人兵车之会三,乘车之会六,九合诸侯,一匡天下。”
《南齐书·高帝纪下》:“贤能悉心,士民致力,用获拯溺龕暴,一匡天下。”
陆贽 《平朱泚后车驾还京大赦制》:“再定皇都,一匡天下。”

 

辨析

匡 读kuāng。
钱穆《论语新解》:“匡本饭器,转言器之四界。《史记》:‘涕满匡而横流。’今俗犹言匡当。此处匡字作动字用,谓匡天下于一,亦犹谓纳天下于一匡之内。” 

 

典故

公元前686年,齐国发生了内乱,齐襄公被害。
齐襄公有两个兄弟,一个叫公子纠,一个叫公子小白。他们两人的身边都有师傅辅佐。公子小白的师傅叫鲍叔牙;公子纠的师傅叫管仲
两位公子听到齐襄公被杀的消息,都心急火燎地赶回齐国争夺国君的位子。管仲对公子纠说:“公子小白在离齐国很近的地方,万一让他先进了齐国,事情也就麻烦了,请公子允许我先带一支人马去截住他。”果然不出管仲所料,公子小白正匆匆忙忙往齐国赶。路上,遇到管仲的阻扰。管仲张弓搭箭,瞄准公子小白射去只见公子小白大叫一声,倒在车里。就不慌不忙地护送公子纠返回齐国,他哪里知道他射中的不过是公子小白的钩带罢了。待到公子纠等人兴冲冲进入齐国国境的时候,公子小白早已当上了齐国君,这就是齐桓公
齐桓公即位后,下令杀死了公子纠。管仲鲍叔牙的举荐,加之齐桓公宽大为怀,不计前嫌,竟委以他掌管国政的重责大任。
管仲尽心尽职地辅佐齐桓公治理国家,齐国变得越来越富强了。
这时候,管仲又替齐桓公出主意,让他借周天子的名义,向各诸侯国发号施令,代替周天子召开诸侯国的会议;若有不听从的,就打着周天子的旗号去讨伐。这样一来,齐桓公就成了霸主,各诸侯国纷纷向齐国进贡,齐国就成了当时最强大的国家。
有一次,孔子与他的弟子子路子贡谈起了管仲,师生双方各抒己见
子路说:“齐桓公杀死了他的哥哥公子纠,公子纠的师傅管仲却活下来了,如此看来,管仲怕不能算有仁德吧?”孔子说:“不能这么看,管仲还是有仁德的,是他使齐国强大起来的。”子贡提出异议:“管仲怎么能算仁人呢?公子纠都被齐桓公杀了,作为师傅的管仲按礼节按情理都应该以身殉难,可他非但不死,反而去辅佐仇人,对齐桓公忠心耿耿,这能叫‘仁’吗?”孔子说:“看一个人,仅仅盯住他的小节是不行的呀。你们好好想一想,假如没有管仲,齐国会强盛起来吗?管仲辅佐齐桓公,使他称霸于诸侯,一匡天下,老百姓不是因此也受益了吗?” 

 

☞.管仲(公元前725-前645年),姬姓,管氏,名夷吾,字仲,谥敬,被称为管子、管夷吾、管敬仲,汉族,颍上(今安徽省颍上县)人,东周春秋时代齐国的政治家,哲学家,周穆王的后代。春秋时期齐国着名政治家、军事家,周穆王之后代。

  管仲少时丧父,老母在堂,生活贫苦,不得不过早地挑起家庭重担,为维持生计,与鲍叔牙合伙经商;后从军,到齐国,几经曲折,经鲍叔牙力荐,为齐国上卿(即丞相),有“春秋第一相”之誉,对内政外交政策进行全面的改革,制定了一系列富国强兵的方针策略,被齐恒公任为上卿,尊称“仲父”.

 

※.孔子 당시 夷면 공자나 같은 東夷일 터 왜 그런말을 했을까? 서융 희씨가 반역으로 東夷族 殷을 멸한 지 얼마되지도 않던 시대였는데 말이다. 조맹부가 元에 부역을 하자 많은 사람들이 변절자라 욕했지만 조맹부는 "송의 백성은 그대로 있는데 내가 할일이 분명히 있다"면서 흔들리지 않고 망국의 유민들을 보살피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정권에서 배신자니 변절자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