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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悔不追

solpee 2016. 3. 24. 16:27

 

 六悔不追(人生有六悔)

在明人宋[熏] 的《古今药石》中,载有寇莱公的《六悔铭》,教人要及早觉悟悔改。

 

官行私曲失時 悔/관직에 있을 때 나쁜 짓 하면 실세해서 후회하고
富不儉用貧時悔/부자가 검소하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 후회한다
藝不少学過时悔/젊어 부지런히 안 배우면 때 넘겨서 후회하고
见事不学用时悔/일을 보고 안 배우면 필요할 때 후회한다
醉发狂言醒时悔/취한 뒤의 미친 말은 술 깬 뒤에 후회하고
安不将息病时悔/편안할 때 안 쉬다가 병든 뒤에 후회한다


성호 이익 선생이 여기에 다시 자신의 여섯 가지 후회를 덧붙였다.

 

"行不及時後時悔/행동이 때에 못 미치면 지난 뒤에 후회하고,

見利忘義覺時悔/이익 앞에서 의를 잊으면 깨달은 뒤 후회한다.

背人論短面時悔/등 뒤에서 남의 단점 말하면 마주해서 후회하고,

事不始審僨時悔/애초에 일을 안 살피면 실패한 후 후회한다.

因憤忘身難時悔/분을 못 참아 몸을 잊으면 어려울 때 후회하고,

農不務勤穡時悔/농사에 힘쓰지 않으면 추수할 때 후회한다." 

 

 

다산은 '每心齋記'에서 

"有小過焉, 苟改之, 雖忘之可也. 有大過焉, 雖改之, 不可一日而忘其悔也. 悔之養心, 如糞之壅苗. 糞以腐穢, 而壅之爲嘉穀. 悔由罪過, 而養之爲德性. 其理一也"

"작은 허물은 고치고 나서 잊어버려도 괜찮다. 하지만 큰 허물은 고친 뒤에 하루도 뉘우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뉘우침이 마음을 길러주는 것은 똥이 싹을 북돋우는 것과 같다. 똥은 썩고 더러운 것인데 싹을 북돋아 좋은 곡식으로 만든다. 뉘우침은 허물에서 나왔지만 이를 길러 덕성으로 삼는다. 그 이치가 같다."

“官行私曲,失时悔”。做官的,心要如秤,不能为谁而任意轻重;心要如水,不能为谁而任意倚侧。一心为民服务,不因个人的利益或喜怒而有所偏失、曲护,至于受贿、包庇、冤狱,东窗事发时,后悔就晚了。

“富不俭用,贫时悔”。凡是装门面、讲排场、骄纵挥霍的人,很快就会匮乏贫困。富时和你在一起的朋友,在你贫穷时,早已不见,谁愿代你填补往日浪费亏空的大窟窿呢?“千金散尽还复来”,这句话靠不住。

“艺不少学,过时悔”。年少学艺,事半功倍。年少时懒惰荒嬉,直到“一头白发催将去,万两黄金买不回”,少年的时光真的很宝贵,年少时不知努力,等老迈时,徒留伤悲,追悔莫及。

“见事不学,用时悔”。经一事,长一智,社会是活到老学到老的终生大学,逢事就留心,随时学习。储备实际经验,会使人更成熟。人只有在拒绝学习的时候,才是真的老朽了。临到用时懂得少的人,难事就多,没有不后悔的。

“醉发狂言,醒时悔”。狂饮猛拼,好像豪爽,等到醉时,胡言乱语,呕吐遍地,无理冒犯,失态献丑,醒来不胜懊悔。

“安不将息,病时悔”。人在生病之时,都有很好的悔悟,只可惜病一好转,就全忘了。名利的计较,琐屑的操劳,不加节制,不稍安息,必须等到生病,才开始后悔。如果没有病时就想想生病之苦,许多尘心焦思,就减去了一大半。

 

 亡羊牢可補 失馬廐可築

 

感事-西涯文集2券

 

지난날 나라가 간난하여 / 社稷昔艱危
뛰는 고래 큰 바다를 뒤엎었네 / 奔鯨蕩溟渤
관문의 방비 잘못으로 / 關門失鎖鑰
대 쪼개듯 여러 고을 당했네 / 列郡如破竹
연추문에 흰 까마귀 부르니 / 延秋呼白烏
궁궐에 연기와 티끌 일었네 / 宮闕烟塵勃
임금 수레 여러 번 옮겨져 / 玉輦累遷次
유월에 모래밭을 헤맸네 / 六月巡沙磧
어찌
태사를 모신 사당 / 寧知太師宅
놈들의 소굴될 줄 알았으리 / 化作傖人窟

6월에 평양이 함락되어 왜적이 들어가 웅거하였다.

 

압록강 물 질펀하게 맑아 / 鴨水淸瀰瀰
요동 산이 눈에 뚜렷하였네 / 遼山明刮目
그때 낭패가 심하여 / 當時狼狽甚
일을 차마 말할 수 없었네 / 事有不忍說

그때에는 내부(內附)하기 위해 요동으로 건너가자고 청했다.

 

하늘은 마침내 순리를 돕고 / 天道竟助順
우리 임금은 성덕이 있었네 / 吾王有聖德
백성의 마음이 중국을 잊지 못해 / 民心不忘漢
지극한 정성 황제에게 밝혀졌네 / 至誠昭皇極
사신이 천자의 뜰에 울어 / 使臣哭天庭
황제의 군사 세모에 출동했네 / 王師歲暮出
흰 말 탄 이 장군은 / 白馬李將軍
의기가 산과 바다 삼키도다 / 意氣呑海岳
정신은 천지를 움직이고 / 精神動天地
긴 무지개는 해를 꿰었네 / 長虹貫白日


 

계사년 1월 1일에 황제의 군사가 숙천에 당도했다. 흰 무지개가 해를 꿰었는데, 군중에서는 적을 이길 조짐이라고 했다.

 

한 번 북 울려 평양을 회복하고 / 一鼓下箕城
두 번 진격하여 개성을 되찾았네 / 再進麗京復
길게 몰아가다가 잘못도 하고 / 長駈或不戒
이긴 것만 믿다가 잠시 차질이 났네 / 恃勝暫蹉跌
궁지에 몰린 짐승은 치지 않는 법 / 窮獸法勿搏
조금 늦춤이 잘못된 계책 아니로다 / 少緩非計失
모든 계책으로 경영을 다하고 / 衆策極經營
유세하느라 혀끝을 의뢰했네 / 遊說資談舌

심유경을 보내어 적이 성에서 나오도록 달랬다.

 

그리하여 4월 말에 / 迺於四月末
서울이 판도에 들어왔네 / 神京歸版籍
한강 남쪽에 길이 트이고 / 漢南道路通
북악산 북쪽에 요기가 걷혔네 / 嵩北妖氛豁
천지가 다시 정돈되고 / 乾坤再整頓
일월이 거듭 빛나도다 / 日月重煥赫
이해 시월에 / 是歲月臨陽
임금 수레가 서쪽 끝에서 돌아왔네 / 六轡回西極


 
10월에 거가가 도성으로 돌아왔음.

 

도성 사람들이 취화를 맞이함에 / 都人迎翠華
상서로운 기운이 궁궐을 둘렀네 / 佳氣還金闕
초라한 한관의 모습 / 草草漢官儀
고로들이 많은 눈물 흘렸네 / 故老多垂泣
양궁은 여염집에 머물고 / 兩宮寄閭閻
백관은 담벼락에 의지했네 / 百僚倚墻壁
공사의 것이 다 없어지고 / 公私一塗地
거리마다 비린 바람 휩쓸었네 / 九街腥風拂
종을 단 곳 다시 뉘에게 물을꼬 / 鍾簴誰復問
종묘에는 가시만 우거졌네 / 淸廟生荊棘
남은 백성 적의 형벌 벗어난 자 / 遺民脫黥劓
백이나 천에 겨우 한둘일세 / 百千纔二一
주리고 여윈 자는 일어나질 못한 채 / 饑羸不能起
입을 가리키며 먹을 것 찾네 / 指口求饘粥
꽃은 궁궐 구석에 피었고 / 花明紫殿陰
풀은 성 남쪽 굽이에 푸르렀네 / 草綠城南曲
보이는 건 이전과 다름이 없지만 / 所見無異物
널린 것은 백골뿐이로다 / 縱橫惟白骨
고신이 아주 보잘것없어 / 孤臣極無似
나랏일이 따라서 뒤집혔네 / 國事從顚覆
외람되이
삼접의 총애를 받고 / 濫荷三接寵
쓸데없이
오정식만 차지했네 / 虛叨五鼎食
받은 은혜 갚지 못했으니 / 承恩不能報
만번 죽어도 책임은 남으리 / 萬死有餘責
군마 사이에 쏘다니며 / 驅馳戎馬間
힘써 근력을 바쳤었지 / 黽勉輸筋力
살수 연안에서 바람 맞으며 / 風餐薩水岸
파주 눈 속에서 들잠 잤네 / 野宿坡州雪
허물 쌓여 산처럼 겹쳤지만 / 釁積丘山重
효력 있는 계책 조금도 없었네 / 效計絲毫蔑
치란은 정해진 것이 없으나 / 治亂無定形
사람의 일로 점칠 수 있다네 / 人爲可以卜
곰곰 생각하니 난리 초기에 / 永念陰雨初
단속이 혹 주밀하게 못했네 / 綢繆或未密
조정에는
인원만 앉아 있고 / 廟堂坐麟楦
변방에는 썩은 사람 많았네 / 邊鄙多朽木
인정이란 만 가지여서 / 人情有萬般
세상 의논 번복이 많네 / 世議多翻覆
기강이 이미 풀렸으니 / 維綱旣解紐
만 가지 계책이 허사로다 / 萬計歸虛擲
많은 병사가 시급한 것이 아니라 / 千兵非所急
장수 하나 얻기가 참으로 어려워라 / 一將眞難得
그림의 떡 먹을 수 없으니 / 畫餠不可食
금항아리 이로부터 이지러졌네 / 金甌從此缺
염소를 잃었으니 우리를 보수하고 / 亡羊牢可補
말을 잃었으니 마구를 고칠지로다 / 失馬廐可築
지난 것은 비록 그만이지만 / 往者雖已矣
오는 일은 그래도 해갈 수 있도다 / 來者猶可及
누가 능히 이런 뜻을 진술하여 / 誰能陳此義
하나하나 임금께 들려주리오 / 一一聞閶闔

☞.太師를 모신 사당 : 殷의 태사였던 기자를 모시는 사당이 평양에 있었다.
☞.翠華 : 翡翠의 깃으로 만든 깃대로 즉 임금의 日傘을 말한다.
☞.三接 : 하루에 임금이 신하를 세 번 접하는 것. 《周易》 晉卦에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임금은 신하에게 말[馬]을 주는 것이 많고 낮에 세 번 신하를 만난다.[康侯周錫馬蕃庶晝日三接]” 했다.
☞.五鼎食 : 옛날에 대부는 五鼎의 肉類로 제사했다. 《孟子 梁惠王下》
☞.麟楦 : 麒麟楦과 같은 말. 겉만 그럴듯하고 속은 별것이 아니라는 뜻. 楊炯이 매양 朝士들을 기린원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지금 가짜 기린을 놀리는 자들은 반드시 나귀에다 탈을 씌워서, 그 가죽을 벗겨 버리면 다시 나귀가 된다.” 했다. 《朝野僉載》
☞.금항아리 : 강토의 완고함을 비유한 말. 《南史》에 “무제가 말하기를, ‘우리 국가는 금항아리와 같아서 한곳도 손상되지 않았다.’ 하였다.” 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