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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1일 오후 08:04

solpee 2016. 2. 21. 20:04

 

☞.無下竹葉

 

 

 

 

 

 

 

槿堂 샘의 자문을 받아 眞如가 적다.

 

『瓊筵具子秊製』

경연에 쓸 이 그릇을 子年 해에 만든다.

 

※.瓊(琼)筵[ qióngyán ]화려한 宴席, (아름다운 구슬로 치장한 돗자리라는 으로) 연회 또는 시문 짓고 읊는 자리 미칭.

※. 子秊: 地支인 해

 

☞.공자가 흠모한 周나라 때는 더욱 天의 인격성이 부각되던 시대였다. 주나라는 자기들의 시조인 后稷이 하느님의 성령으로 잉태한 사생아라는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史記에 의하면 漢族의 시조는 黃帝인데 그 황제의 증손 帝嚳이 帝堯와 契(殷 始祖)과 后稷(周 始祖) 등 3형제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詩經에 의하면 후직은 高辛氏의 妃 姜嫄이 아들이 없어 天帝에게 祭祀를 올리니 感應하여 하느님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했으며, 사생아이므로 핍박을 받아 길가에 버렸더니 소와 양이 젖을 먹이고, 숲 속에 버렸더니 목동이 돌봐주고, 얼음 위에 버렸더니 새들이 날개로 덮어주었다고 한다. (大雅/生民).
詩經/大雅/生民


厥初生民 時有姜嫄. 주: 民=周人. 時=是.
맨 처음 주나라 시조를 낳으신 분은 바로 ‘강원’님이라네!
生民如何 克禋克祀 以弗無子. 주: 弗=祓
어떻게 낳으셨던가? 정성껏 치성을 드려 자식을 빌었더니
履帝武敏 歆攸介攸止 載震載夙. 주: 武=迹. 敏=挴. 歆=動也. 震=娠. 夙=肅
하느님 발자국을 중 엄지발가락을 밟고 큰 은총을 받아 잉태하시고, 載生載育 時維后稷.
몰래 낳아 기르신 분이 바로 후직 님이라네!
誕隬厥月. 先生如達. 주: 誕=發語詞.수=首. 達=小羊.
이윽고 달이 차서, 어린양처럼 머리부터 나오니,
不坼不副 無菑無害.
어미 몸을 찢지 않고 태를 끊지 않고 고통도 아픔도 없이
以赫厥靈 上帝不寧 주: 赫=顯. 不寧=寧也.
성령으로 태어나셨으니/ 상제님의 보살핌인가?/
不康禋祀 居然生子. 주:不康=康也
치성을 흠향하심인가?/ 아들을 순산하셨다네

沈默의 螺線理論

 The spiral of silence theory

여론을 '劃一化의 壓力'으로 보는 이론으로, 독일의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Elizabeth Noelle-Neumann)이 1974년에 제시했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주위 환경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고 존경과 인기를 잃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을 관찰한다. 또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의견과 행동 양식이 우세한가를 판단하여 그에 따라 의견을 갖고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남의 눈치를 보느라 침묵하는 양상이 螺旋을 만들며 증폭된다는 의미에서 '침묵의 나선'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그런 나선의 모습이 소용돌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침묵의 소용돌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승자에 속하고 싶은 생각에서 대세에 순응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실제보다 많은 사람이 선거에 이긴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하는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사회적 낙인을 피하기 위한 방어 전략인 셈이다. 대중문화 영역에선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되면 대화에 끼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별로 내키지 않더라도 그 영화나 드라마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영화계에는 '1,000만 신드롬'이라는 게 있다. 1,000만 관객을 목표로 하는 대형 영화 제일주의(blockbuster mentality)가 한국 영화계를 지배하는 현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관객의 쏠림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박상우는 "<왕의 남자>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1,000만 관객 행렬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좋은 영화인지 나쁜 영화인지 보지 않았으니 아직 언급할 수 없지만, 1,000만 관객 행렬이 이렇게 자주 출몰하는 대한민국이 왠지 의심스럽고 미심쩍어진다. 혹시 1,000만 중독증?"이라고 물으면서 "1,000만 관객의 국민적 행렬은 내적으로 문화 결핍을 반영하고, 외적으로 기획 자본의 문화 왜곡과 조작을 심화시킨다. 관례화된 '1,000만 관객 동원력'은 언뜻 기획 부동산과 '떴다방'이 조작하던 부동산 광풍을 떠올리게 한다"고 꼬집었다.

 

장은교는 "오늘의 한국 사회는 늘 양극단만 존재한다. 일등인 것과 일등 아닌 것들, 돈 되는 것과 돈 안 되는 것들, 유명한 것과 유명하지 않은 것들, 대박인 것과 쪽박인 것들……. 영원히 합치될 수 없는 양극단에서 사람들은 피로에 절어 산다. 한쪽은 쟁취하기 위해 또 한쪽은 수성하기 위해 싸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제활동 인구 세 명 중 한 명이 같은 영화를 보러가고, 1년에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드는 영화가 한두 편씩 양산되는 나라. 겉보기엔 이만한 문화적 소양을 가진 국민들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가면 문화적 빈곤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한편으로는 해석 자체가 불가능하다."

 

안정효는 "한국 영화가 엄청난 관객을 동원했다는 숫자적 성취는 얼마 전부터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기준으로 당당하게 동원되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사실이 우리 영상 문화의 이상적이고 질적인 발전을 과연 논리적으로 증빙하는가"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큰 숫자로 성공한 소수가 힘없는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라면, 그것은 예술적 다양성을 고사시키는 풍토다.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한다면서 기계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는 단순화 작업은 소수의 지배자가 다수를 우민화하여 사회를 전체적으로 퇴화시키는 현상이다. 군중심리와 집단사고의 계수를 놓고 발전의 척도로 삼는 행위란 그래서 위험한 짓이다. 생각하는 소수가 귀족화하는 한편 다수가 우민이 되기 때문이다. 1,000만이 1년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사회보다는 10만씩 골고루 분포한 관객이 저마다 100편의 영화를 보는 사회가 훨씬 예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