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下 선생 체본(2016.1.27)
無下선생 체본
초장왕은 기원전 608년에서 595년에 이르는 동안 거의 매년 중원의 제후국들을 공격하여 패자의 지위를 다졌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장왕은 직접 군대를 지휘하였다. 그는 608년에 손수 군대를 이끌고 주나라 수도 부근의 洛水에서 열병식을 거행하였다.
장왕의 의도는 주왕실에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자는 것이었다. 주왕실은 황망히 대부 王孫滿을 파견하여 장왕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주왕이 보낸 사자를 장왕은 오만하게 물었다.
“주왕실이 가지고 있는 솥(鼎)은 얼마나 크고 무게는 얼마나 되오?”
주왕실이 보유하고 있는 솥은 예사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왕위 계승을 상징하는 것으로 주왕조의 寶器였던 것이다. 왕손만이 대답하였다.
“솥의 무게는 솥을 소유하는 사람의 덕망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 그렇소? 말하지 않아도 괜찮소. 우리 초나라에 있는 창끝만 끌어모아도 주나라 왕이 소유하고 있는 솥 9개는 족히 만들 수 있을 것이오.”
이에 왕손만이 말을 이었다.
“왕실이 보유하고 있는 솥은 舜禹 임금의 치세를 천하 백성이 기리고 그 덕망을 칭송하여 천하의 제후들이 자진하여 헌상한 각지의 銅을 모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솥을 만들 때 온갖 상서로운 짐승을 새겨 넣고 이것을 만백성에 알리어 그들을 교도하고 또한 그들이 두려움을 알아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왕실의 솥은 王道의 산물임을 장왕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夏나라의 桀임금이 무도해지자 솥은 은나라에 이전되었고, 6백 년이 지난 후 은나라의 紂王이 다시 포악무도 하여 솥은 우리 주나라로 옮겨졌지요. 소유자가 덕을 잃게 되면 솥은 무게에 관계없이 바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주나라 30대 7백 년 동안 솥은 주왕이 소유하였고 비록 지금은 쇠퇴하였지만 천명이 아직 주나라에 있으므로 초나라 군주는 솥의 무게를 물어볼 자격이 없소이다.
이것이 유명한 ‘問鼎中原’ 고사이다. 초장왕은 주나라왕실을 얕보아 일부러 주왕이 보유하고 있던 주왕실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의도였다. 사실 장왕의 안중에 주왕실의 권위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같은 패자이면서도 앞선 제환공이나 진문공이 주왕실을 드높이 받들었던 것과는 퍽이나 대조적이라 하겠다. 왕실을 받드는 것이 바로 尊王이고, 왕실에 도전적인 오랑캐 이민족을 물리쳐 중원의 정치 질서를 지키는 것이 攘夷이다. 춘추 시대 정치에서 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이 제후들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였다. 공자도 이를 적극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랑캐 민족인 초나라는 애초부터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