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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설림하

solpee 2015. 12. 16. 05:53

 

鼻大目小-정민의 世說新語

우우(翢翢)라는 주새는 머리가 무겁고 꽁지는 굽어 있다. 냇가에서 물을 마시려 고개를 숙이면 무게를 못 이겨 앞으로 고꾸라진다. 다른 놈이 뒤에서 그 꽁지를 물어주어야 물을 마신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하(下)에 나온다. 다음 말이 덧붙어 있다. "사람도 제힘으로 마시기 힘든 사람은 그 깃털을 물어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人之所有飮不足者, 不可不索其羽也)."

백락(伯樂)은 말 감별에 능했다. 척 보고 천리마를 알아보았다. 미워하는 자가 말에 대해 물으면 천리마 감별법을 가르쳐주었다. 아끼는 자에게는 노둔한 말을 구별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일생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한 천리마 감별법은 알아봤자 써먹을 기회가 거의 없다. 노둔한 말은 날마다 거래되는지라 간단한 요령 몇 가지만 알아도 잠깐 만에 큰돈을 벌 수가 있다. 한비자는 이야기 끝에 다시 이렇게 보탰다. "말은 천하나 쓰임새가 높은 것은 헷갈린다(下言而上用者惑也)." 표현이 천근(淺近)해 보여도 알찬 말이니 새겨들으란 얘기다.

다시 이어지는 한 단락. 환혁(桓赫)은 조각을 잘했다. 그가 말했다. "새기고 깎는 방법은 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해야 한다. 코가 크면 작게 할 수가 있지만 작게 해놓고 크게 만들 수는 없다. 눈이 작으면 키울 수 있지만, 크게 새긴 것을 작게 고칠 방법은 없다(刻削之道, 莫如大, 目莫如小. 鼻大可小, 小不可大也. 目小可大, 大不可小也)." 일단 나무에 새기고 돌에 깎으면 다시 붙일 방법이 없다. 코는 애초에 조금 크게 해놓고 조금씩 깎아서 알맞게 고친다. 눈은 반대로 작은 듯이 파서 조금씩 키우는 것이 맞다. 코를 납작하게 깎아 시작하면 균형이 깨질 때 수정할 방도가 없다. 눈을 애초에 퉁방울로 새겨 놓으면 줄이려 해도 도리가 없다. 그는 또 설명을 보탠다. "일 처리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고칠 수 있게 해야 일에 실패하는 일이 적다(擧事亦然, 爲其後可復者也, 則事寡敗矣)."

단순 명쾌한 것이 시원하다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상황을 내몰면 물 마시려다 머리 박고 고꾸라지는 수가 있다.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1]- 

 

伯樂敎二人相踶馬, 相與之簡子廐觀馬。 一人擧踶馬。 其一人擧踶馬。其一人從後而循之, 三撫其尻而馬不踶。此自以爲失相。 其一人曰: ' 子非失相也。 此其爲馬也, 踒肩而腫膝。 夫踶馬也者, 擧後而任前, 腫膝不可任也, 故後不擧。子巧於相踶馬而拙於任腫膝。' 夫事有所必歸, 而以

有所腫膝而不任, 智者之所獨知也。 惠子曰: ' 置猿於柙中, 則與豚同。'  故勢不便, 非所以逞能也。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1]-  

 

백락에게서 뒷발질하는 버릇이 있는 말 감정법을 배운 두 사람이 함께 외양간에 가서 말을 살피게 되었다. 한 사람이 먼저 뒷발질하는 버릇이 있는 말을 지목했다. 다른 한 사람이 그 말의 뒤로 돌아가서 세 번이나 말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는데도 그 말은 뒷발질을 하지 않았다. 뒷발질하는 버릇이 있는 말이라고 감정한 사람이 자기의 감정이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하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의 감정이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어깨가 굽었고, 앞 무릎은 부어 있습니다. 원래 뒷발질 잘하는 말은 그 체중을 앞발에 싣고 뒷발을 드는 법인데, 이 말은 앞발이 부어 뒷발을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뒷발질 잘하는 말 감정에는 뛰어난 것 같으나 무릎을 살필 줄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매사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어 가는 도리가 있는 법이고, 정세에는 불리한 경우가 있는 법이다. 말의 앞 무릎이 부어 있으면 무거운 체중을 지탱할 수가 없다. 그것은 지혜로운 자만이 알고 있다. 혜자의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이나 우리에 가두어 두면 돼지가 되고 만다.」 능력이 있는 사람도 불리한 정세에 놓이게 되면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용기는 이익에서 나온다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2]-

 

衛將軍文子見曾子, 曾子不起而延於坐席, 正身見於奧。文子謂其御曰:‘ 曾子,愚人也哉!以我爲君子也,君子安可毋敬也? 以我爲暴人也,暴人安可侮也? 曾子不僇命也。’

鳥有翢翢者,重首而屈尾,將欲飮於河則必顛,乃銜其羽而飮之。人之所有飮不足者,不可不索其羽也。

鱣似蛇,蠶似蠋。人見蛇則驚駭,見蠋則毛起。漁者持鱣,婦人拾蠶,利之所在,皆爲賁ㆍ諸。

伯樂敎其所憎者相千里之馬,敎其所愛者相駑馬。 里之馬時一有,其利緩,駑馬日售,其利急。 此周書所謂 ‘ 下言而上用者惑也。’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2]-  

 

위나라 장군 문자가 증자를 만나러 갔는데, 증자는 일어서서 맞이하기는커녕 태연히 상석에 앉아 있기만 했다. 증자를 만나고 나온 문자는 불쾌하여 마부에게 말했다. “증자는 부족한 인간이다. 나를 군자로 생각했다면 존경했어야 할 것이고, 나를 불한당으로 여겼더라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증자가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았던 것이다.”

주주라는 새가 있는데 그 머리는 무겁고 꼬리는 굽어 있다. 그 때문에 냇물을 마시려고 하면 반드시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래서 다른 한 마리가 그 날개를 입으로 물어주어야 고꾸라지지 않고 물을 마실 수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혼자서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도와 주는 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뱀장어는 뱀과 같고 누에는 벌레와 같다. 사람은 뱀을 보면 놀라고, 벌레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어부는 태연하게 뱀장어를 잡고 여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누에를 만진다.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누구나 맹분이나 전제와 같은 용사가 되는 것이다.

백락은 미운 자에게는 하루 동안 천리를 달리는 명마의 감정법을 가르쳤고, 자기가 사랑하는 자에게는 둔한 말의 감정법을 가르쳤다. 그 이유는 명마는 드물게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 감정법을 알고 있어도 별로 이익이 되지 않지만 둔한 말은 매일 거래가 많으니 그 감정법을 알고 있으면 수지가 맞기 때문이었다. 주서에도「통속적인 이야기가 오히려 요긴하다」는 구절이 있다.   

 

 

대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3]-

 

桓赫曰:‘ 刻削之道,鼻莫如大,目莫如小。 鼻大可小,小不可大也。 目小可大,大不可小也。’  擧事亦然,爲其不可復者也,則事寡敗矣。'

崇侯ㆍ惡來知不適紂之誅也,而不見武王之滅之也。 比干ㆍ子胥知其君之必亡也,而不知身之死也。故曰:‘ 崇侯ㆍ惡來知心而不知事,比干ㆍ子胥知事而不知心。’  聖人其備矣。

宋太宰貴而主斷。 季子將見宋君,梁子聞之曰:‘ 語必可與太宰三坐乎,不然,將不免。’  季子因說以貴主而輕國。

楊朱之弟楊布衣素衣而出,天雨,解素衣,衣緇衣而反,其狗不知而吠之。 楊布怒,將擊之. 楊朱曰:‘ 子毋擊也,子亦猶是。曩者使女狗白而往,黑而來,子豈能毋怪哉! ’

惠子曰:‘ 羿執鞅持扞,操弓關機,越人爭爲持的。 弱子扞弓,慈母入室閉戶。 故曰:可必,則越人不疑羿;不可必,則慈母逃弱子。’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3]-

 

환혁의 말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인형을 조각하는 법은 우선 코를 크게 만들어 두는 것이 좋고, 눈은 되도록 작게 만들어야 한다. 코를 크게 하는 것은 언제든지 깎아서 작게 할 수 있지만 작은 코를 나중에 크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며, 눈을 작게 하는 것은 언제든지 도려내어 크게 할 수는 있지만 나중에 작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하는 데도 다시 손을 쓸 수 있도록 해두면 실패하지 않는다.」

승후나 오래는 주나라의 간신으로 주왕에게 벌을 받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나라가 무왕에게 멸망당할 것은 모르고 있었다. 비간과 자서는 그들의 군주가 반드시 멸망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 자신이 그 군주에게 죽음을 당하리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승후나 오래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있었지만 사태의 변화는 모르고 있었고, 비간과 자서는 사태의 변화는 알고 있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고, 그러나 성인은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송(宋)나라 태재(관직)가 득세하여 나라를 전단했다. 계자가 장차 송나라 왕을 뵈려고 하니, 양자가 그에게 ‘왕과 말할 때엔 반드시 태재와 더불어 셋이 합석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장차 화를 면하지 못하리오.‘라고 말해 주었다. 계자가 그 말에 의하여, 임금을 귀중히 여기고 나랏일을 가벼이 여겼다.

양주의 아우 양포가 흰 옷을 입고 외출했다가 비를 만나게 되자 더럽혀질까 염려되어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귀가했는데 개가 옷을 갈아입은 것을 모르고 짖어대는 것이었다. 양포는 성을 내며 개를 때리려고 했다. 형인 양주가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네 자신도 개처럼 잘못 짖는 짓을 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저 개가 나갈 때는 흰색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검은 색이 되었다고 하면 너도 이상스럽게 여기지 않겠느냐.”

혜자는 이렇게 말했다. 「활의 명수인 예가 활을 잘 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월나라 사람들도 예를 위하여 과녁을 들고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활을 쏠 때에는 화살이 어느 쪽으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도 도망칠 것이다. 반드시 과녁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면 월나라 사람들도 예를 의심하지 않지만, 화살이 어딜 맞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면 어머니도 자식을 피하는 법이다.」

 

 

욕심으로 망하는 것이 부의 한계다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4]-

 

桓公問管仲‘富有涯乎’?  答曰:‘ 水之以涯,其無水者也。 富之以涯,其富已足者也。 人不能自止於足,而亡其富之涯乎。’

宋之富賈有監止子者,與人爭買百金之璞玉,因佯失而毀之,負其百金,而理其毀瑕,得千溢焉。事有擧之而有敗而賢其毋擧之者,負之時也。

有欲以御見荊王者,衆騶妒之,因曰:‘ 臣能撽鹿。’  見王,王爲御,不及鹿,自御及之。王善其御也,乃言衆騶妒之。

荊令公子將伐陳, 丈人送之曰︰‘ 晉强,不可不愼也。’  公子曰:‘ 丈人奚憂,吾爲丈人破晉。’  丈人曰:‘ 可。吾方廬陳南門之外。’  公子曰:‘ 何也? ’  曰:‘ 我笑句踐也,爲人之如是其易也,己獨何爲密密十年難乎? ’

堯以天下讓許由,許由逃之,舍於家人,家人藏其皮冠。夫棄天下而家人藏其皮冠,是不知許由者也。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4]-

 

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부에 한계가 있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물의 한계는 우물에서 물이 마를 때이고, 부의 한계는 부가 충분했을 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에 대해서는 충분하다고 느낄 때가 없기 때문에 더욱 욕심을 부리다 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부의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송나라 호상(豪商)에 감지자라는 자가 있었다. 어떤 옥을 100금에 구입하기로 작정하고 일부러 땅에 떨어뜨려 옥에 티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생색을 내면서 100금을 다 주고 옥을 사들여 그 파손된 곳을 수리하여 천일을 벌었다 한다. 일이 실패하더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보상을 잘 했을 때의 일이다.

말을 잘 다룬다는 사람이 초나라 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를 투기하여 방해를 할까 두려워서 사슴을 잘 다룬다고 선전을 하여 왕과 만나게 되었다. 왕과 만나게 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투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슴을 잘 다룬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왕에게 실토했다고 한다.

초나라가 한 공자에게 명하여 진나라를 치려고 했다. 한 장로가 공자에게 말했다. “진(陳)나라의 편이 되어 있는 진(晉)나라는 강대국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노인장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나는 노인장을 위하여 진(晉)나라를 격파할 것입니다.” 장로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진(陳)나라 서울의 남대문 밖에 상여집을 지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공자는 이상히 여기며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그러자 장로가 말했다. “월왕 구천은 참 우습습니다. 남을 위해서 적을 격파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인데 어찌 구천만은 남모르게 10년 동안이나 벼르고 벼르며 그 고생을 했을까요.”

요가 천하를 허유에게 넘겨주려 했는데 허유는 그것이 더럽다는 이유로 도망하여 어느 민가에 숨게 되었다. 집 주인은 허유를 수상히 여겨 가죽으로 만든 자기의 관을 숨겼다. 허유는 천하도 싫다는 사람이었는데 도둑으로 알고 물건을 숨기다니 그 사람됨을 몰랐던 것이다.

 

 

이익을 다투다 함께 죽는다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5]-

 

三蝨食彘相與訟,一蝨過之,曰:‘ 訟者奚說? ’  三蝨曰:‘ 爭肥饒之地。’ 一蝨曰:‘ 若亦不患臘之至而茅之燥耳,若又奚患? ’  於是乃相與聚嘬

其母而食之。 彘臞,人乃弗殺。

蟲有就者,一身兩口,爭食相齕也。 遂相殺也,人臣之爭事而亡其國者,皆蚘類也。宮有堊,  器有滌,  則潔矣。行身亦然,無滌堊之地,  則寡非矣。公子糾將爲亂,桓公使使者視之,使者報曰:‘ 笑不樂,視不見,必爲亂。’ 乃使魯人殺之。公孫弘斷髮而爲越王騎,公孫喜使人絶之曰:‘ 吾不與子爲昆弟矣。’  公孫弘曰:‘ 我斷髮,子斷頸而爲人用兵,我將謂子何? ’  周南之戰,公孫喜死焉。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5]-

 

이 세 마리가 다투고 하고 있었는데 다른 한 마리의 이가 나타나서 말했다. “무엇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 것인가?” 세 마리의 이가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는 살 찐 돼지의 어느 부분이 더 맛있는지 따지고 있다.” 그러자 뒤에 나타난 이가 말했다. “너희는 머지않아 제사 때가 되면 불을 피워 돼지를 구울 것을 모르는가? 그렇게 되면 돼지는 물론 우리도 모두 불에 타 죽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세 마리의 이는 다툼을 멈추고 힘을 모아 돼지의 피를 빨기 시작했다. 그래서 돼지는 비쩍 마르게 되었고 사람들은 마른 돼지로는 제사를 올릴 수 없다 하여 잡지 않았다.

회라는 벌레가 있다. 몸뚱이는 하나인데 입이 둘이다. 먹이를 서로 다투다가 서로 물어뜯고 드디어 서로 죽여 마침내는 자멸하게 된다. 신하가 두 파로 나뉘어 권력다툼을 하다가 마침내 그 나라를 망치는 미욱한 소행은 회라는 벌레와 다를 것이 없다.

가옥은 백악으로 칠하고, 생활도구는 씻어야만 깨끗해진다. 사람의 행실은 그렇지가 않다. 백악을 칠하거나 씻지 않아야만 과실이 적은 것이다.

공자 규가 노나라로 망명하여 제나라에 대한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환공이 사자를 보내어 그를 감시하게 했다. 사자가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했다. “규는 웃어도 즐거운 것 같지 않고, 사물을 보아도 정말로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 말은 들은 환공은 노나라 사람에게 부탁하여 그를 죽이게 했다.

공손홍이 월나라 풍속에 따라 머리를 자르고 월왕의 기병이 되었다. 공손희가 사람을 보내어 절교를 선언했다. “그 따위 야만스런 풍속에 따르고 있는 너와는 이젠 형제가 될 수 없다.” 공손홍이 대답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삭발을 했다. 그러나 너는 모가지가 잘린다는 것도 모르고 남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런 너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딱하구나.” 그 후 공손희는 주나라 남계의 전투에서 진나라에 패해 전사했다.

 

 

징조가 보이면 결단을 내려라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6]-

 

有與悍者鄰,欲賣宅而避之。 人曰:‘ 是其貫將滿矣,子姑待之。’  答曰:‘ 吾恐其以我滿貫也。’  遂去之。 故曰:‘ 物之幾者,非所靡也。’孔子謂弟子曰:‘ 孰能導子西之釣名也? ’  子貢曰:‘ 賜也能。’  乃導之,不復疑也。 孔子曰:‘ 寬哉,不被於利;絜哉,民性有恆。 曲爲曲,直爲直。孔子曰子西不免。’  白公之難,子西死焉。 故曰:‘ 直於行者曲於欲。晉中行文子出亡,過於縣邑,從者曰:‘ 此嗇夫,公之故人,公奚不休舍? 且待後車。’  文子曰:‘ 嘗好音,此人遺我鳴琴;吾好珮,此人遺我環;是振我過者也。 以求容於我者,吾恐其以我求容於人也。’  乃去之。 果收文子後車二乘而獻之其君矣。

옥환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6]-

 

불한당의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견디다 못해 집을 팔고 이사를 하려 하자 어떤 사람이 말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자는 죄가 쌓이고 쌓여 스스로 망하고 말 것이니 잠시 기다려 보시오.” 그 사람은 대답했다. “그런데 나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마지막이 될까 싶어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이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옛부터 전해오는 말에「위험한 징조가 보이면 주저하지 말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한 것이다.

공자가 그 제자에게 물었다. “초나라 윤자서가 헛된 이름을 몹시 탐내고 있는데 누가 가서 타이르겠느냐.” 그러자 자공이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자신 있게 설득했는데도 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성질이 관대하다. 이익에도 관심이 없고 결백하다. 원래 사람의 성질은 일정한 것으로서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졌다고 말해야 되며, 곧은 것은 곧다고 말해야 되는 것으로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을 듣고 공자가 말했다. “자서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과연 백공의 난이 나자 자서는 죽었다. 그러므로 바른 행위를 하려는 자는 제 욕망에 배신당하는 법이다.

진나라의 문자가 조정에서 물러나 어느 지방의 고을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시종이 말했다. “이 마을의 주재관은 공자와 친분이 있으니 휴식을 하시다가 다음 수레를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문자가 말했다. “옛날에 나는 음악을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명금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또 내가 옥띠를 좋아했을 때는 그가 그것을 선물했었다. 그것은 내 잘못을 더욱 키워주었을 뿐이며 결국 내 비위를 맞추기 위한 수법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또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그것이 염려된다.” 이렇게 말하며 그대로 통과했는데 과연 그 주재관은 그 뒤에 오는 수레 두 대를 압수하여 자기 상관에게 바쳤다.

 

 

세력을 이용하라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7]-

 

周趮謂宮他曰:‘ 爲我謂齊王曰:以齊資我於魏,請以魏事王。’  宮他曰:‘ 不可,是示之無魏也,齊王必不資於無魏者,而以怨有魏者。公不如 曰:以王之所欲,臣請以魏聽王。齊王必以公爲有魏也,必因公。 是公有齊也,因以有齊ㆍ魏矣。’白圭謂宋令尹曰:‘ 君長自知政,公無事矣。今君少主也而務名,不如令荊賀君之孝也,則君不奪公位,而大敬重公,則公常用宋矣。’  

管仲ㆍ鮑叔相謂曰:‘ 君亂甚矣,必失國。 齊國之諸公子其可輔者,非公子糾則小白也,與子人事一人焉,先達者相收。’  管仲乃從公子糾,鮑叔從小白。 國人果弑君, 小白先入爲君, 魯人拘管仲而效之,鮑叔言而相之。 故諺曰:‘ 巫咸雖善祝,不能自祓也;秦醫雖善除,不能自彈也。’  

以管仲之聖而待鮑叔之助,此鄙諺所謂 ‘ 虜自賣裘而不售,士自譽辯而不信 ’ 者也。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7]-

 

주조가 궁타에게 말했다. “네가 나를 위해 제나라 왕에게 왕의 힘으로 나를 구제하여 위나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면 나는 위나라를 움직여서 위나라를 왕의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을 해다오.” 궁타가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네가 위나라에 세력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게 되는 것이다. 제나라 왕으로서는 위나라에 세력이 없는 사람을 도와 위나라에 세력이 있는 자로부터 원한을 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제나라 왕에게「왕께서는 원하시는 바를 말씀하시면 소생은 위나라로 하여금 왕께서 하시고자 하는 바대로 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제나라 왕은 너를 위나라의 유력자라고 믿고 반드시 너에게 부탁을 할 것이다. 따라서 너는 제나라에서도 세력을 얻을 것이니 결국은 제와 위 두 나라에서 중용되게 될 것이다.”

백규가 송나라 대윤에게 말했다. “주군이 성장하시어 스스로 국정을 다스리게 되시면, 당신은 쓸모 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주군은 나이가 어리며, 불효자란 말을 듣지 않으려 노력하고 계시니, 초나라에 부탁해서 주군의 효도를 칭찬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렇게 하면 주군께서 더욱 모후에게 효도를 극진하게 할 것이며, 그리되면 모후의 총애를 받고 있는 당신은 관직을 빼앗기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께서는 언제까지나 송나라를 뜻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중과 포숙이 이렇게 상의를 했다. “주군이신 양공의 품행이 너무 어지럽다. 이래서는 제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다. 제나라의 여러 공자 가운데서 우리가 보좌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은 규가 아니면 소백뿐이다. 그러니 서로 작별하여 한 공자씩 맡아 섬기기로 하자. 그리고 먼저 성공한 자가 다른 한 사람을 떠맡기로 하자.” 그래서 관중은 공자 규를 섬겼고, 포숙은 소백을 모셨다. 두 사람이 생각한 바와 같이 반란 때문에 양공은 죽음을 당했고, 소백이 먼저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한편 노나라 사람들은 관중을 체포하여 제나라에 인계하게 되었는데, 포숙은 소백에게 진언하여 관중을 재상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옛말에「무당은 남을 위해서 굿을 잘하지만 자기에게 엄습해 오는 화를 물리치지는 못한다. 진나라의 명의 편작은 남의 병을 잘 고쳤으나 자기 병은 고치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누구나 자기 일을 혼자서 처리하기는 어렵다. 관중과 같은 현인도 포숙의 협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 속담에「야만인은 자기가 만든 가죽옷을 팔지 못하며, 선비는 웅변이 좋아 아무리 자화자찬을 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

 

 

과분한 이익을 조심하라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8]-

 

荊王伐吳,吳使沮衛蹙融犒於荊師而將軍曰 : ‘ 縛之,殺以釁鼓。’  問之曰:‘ 汝來卜乎? ’  答曰:‘卜。’ ‘卜吉乎? ’  曰:‘ 吉。’  荊人曰:‘ 今荊將與女釁鼓其何也? ’  答曰:‘ 是故其所以吉也。 吳使人來也,固視將軍怒。將軍怒,將深溝高壘;將軍不怒,將懈怠。今也將軍殺臣,則吳必警守矣。 且國之卜,非爲一臣卜。 夫殺一臣而存一國,其不言吉何也? 且死者無知,則以臣釁鼓無益也;死者有知也,臣將當戰之時,臣使鼓不鳴。’  荊人因不殺也。

知伯將伐仇由,而道難不通。乃鑄大鐘遺仇由之君,仇由之君大說,除道將內之。赤章曼枝曰:‘ 不可。 此小之所以事大也,而今也大以來,卒必隨之,不可內也。’  仇由之君不聽,遂內之。 赤章曼枝因斷轂而驅,至於齊七月,而仇由亡矣。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8]-

 

초나라 왕이 오나라를 공격했다. 오나라에서는 궐융이라는 자를 초나라의 진영에 보내어 잔치를 베풀고 군대를 위문했다. 초나라 장군은 부하에게 이렇게 명했다. “이 자를 묶어라. 죽여서 그 피를 북에 바르고 축제를 벌이자.” 궐융이 끌려나오자 그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에 올 때 점을 치고 왔느냐.” 궐융이 대답했다. “예, 길흉을 보고 왔습니다.” “길(吉)이었느냐.” “길이었습니다.” 초나라 장군이 다시 말했다. “우리는 너를 죽여 그 피를 북에 바르려고 한다. 그런데 길이라니 무슨 말이냐.” “그래서 길이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나라가 나를 여기에 보낸 것은 장군의 의향을 떠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장군께서 사기가 충천하시면 오나라에서는 호를 깊이 파고 성을 높이 축조하여 수비를 견고히 할 계획이었습니다. 또 장군의 사기가 별로 대단치 않으면 수비를 늦출 것입니다. 장군께서 나를 죽이신다면 오나라에서는 반드시 수비를 엄중하게 할 것입니다. 더욱이 국가로서 점을 치는 데 한 신하를 위하여 할 턱이 없습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한 신하를 죽게 하여 결과적으로 한 나라가 존속할 수 있다고 하면 어찌 길이 아니겠습니까. 또 한번 죽으면 지각이 없어지는 법입니다. 따라서 내가 죽은 다음에 그 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알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죽어서도 지각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죽어서 전쟁이 벌어지면 그 북소리가 나지 않도록 안간힘을 다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초나라 장군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진나라의 지백은 구유의 나라를 치려고 했었는데 길이 험악하여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적의 손으로 길을 탄탄하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지백은 거대한 종을 주조하여 구유에 기증하기로 했다. 구유는 크게 즐거워하며 그 종의 운반에 지장이 없도록 길을 넓히기로 했는데 만지라는 신하가 옆에서 이렇게 간언을 했다. “그건 안 됩니다. 그처럼 거대한 종을 보내온다는 것은 소국이 대국에게 표시하는 예의가 되는데, 대국이 소국에 보내온다는 것은 심상치 않습니다. 적병은 반드시 그 뒤를 밟아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구유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그 종을 받기로 했다. 만지는 수레바퀴의 축을 잘라내 작게 한 다음 좁은 길을 빠져나가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 뒤에 과연 7개월 만에 구유는 공격을 받고 멸망하고 말았다.

 

 

지쳤을 때 공격하라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9]-

 

越已勝吳,又索卒於荊而攻晉,左史倚相謂荊王曰:‘ 夫越破吳,豪士死,銳卒盡,大甲傷,今又索卒以攻晉,示我不病也,不如起師與分吳。’荊王曰:‘ 善。’  因起師而從越,越王怒,將擊之,大夫種曰:‘ 不可。吾豪士盡,大甲傷,我與戰必不剋,不如賂之。’ 乃割露山之陰五百里以賂之。

 荊伐陳,吳救之,軍閒三十里,雨十日夜,星。 左史倚相謂子期曰:‘ 雨十日,甲輯而兵聚,吳人必至,不如備之。’ 乃爲陳,陳未成也而吳人至,見荊陳而反。 左史曰:‘ 吳反覆六十里,其君子必休,小人必食,我行三十里擊之,必可敗也。’  乃從之,遂破吳軍。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9]-

 

월나라가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초나라에서 병력을 원조 받아 진나라를 공략하기로 했다. 초나라의 기상이 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월나라는 오나라를 격파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용감한 장군은 죽고, 정예한 병사들은 전멸했으며, 중갑을 입은 장사는 상처를 입어 재기불능 상태에 있는데도 또다시 우리편에 병력의 원조를 구하여 진나라를 공략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단지 그들이 아직 지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친 것은 사실이므로 우리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월나라와 갈라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초왕도 옳은 말이라 생각하여 군사를 일으켜 월을 추격했다. 월나라 왕은 노하여 초나라에 대해 반격을 하려 했으나 대부인 종이라는 자가 이렇게 간언을 했다. “그만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군대는 용감한 군사는 거의 전사를 했고, 중갑을 입은 장사는 부상을 당했으니 초나라와 싸워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뇌물을 보내어 화해를 하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그래서 노산의 북쪽 5백리 사방을 잘라 초나라에 뇌물로 주었다.

초나라가 진나라를 치자 오나라는 그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출병을 하게 되었다. 초나라와 오나라의 양군은 30리를 사이로 두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10일 간이나 비가 계속 되다가 겨우 밤이 되어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상은 초나라의 장군 자기에게 말했다. “10일 간이나 비가 내렸기 때문에 우리 군대는 벗은 갑주나 버린 무기를 한 장소에 방치해둔 형편입니다. 이와 같이 방심하고 있으면 오늘 밤 쯤 오나라에서 반드시 기습을 해 올 것입니다.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준비가 다 끝나기도 전에 오나라 군대가 밤중에 기습을 했다. 그러나 초나라가 포진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되돌아갔다. 그러자 기상이 이렇게 말했다. “오나라 군사는 왕복 60리나 행군을 했기 때문에 지금쯤 상관들은 휴식을 취하고 병사들은 식사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곧 공격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나라 군대를 추격하여 격파했다. 

 

 

신의가 보배다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10]-

 

韓ㆍ趙相與爲難。韓子索兵於魏,曰:‘ 願借師以伐趙。’  魏文侯曰:‘ 寡人與趙兄弟,不可以從。’  趙又索兵以攻韓,文侯曰:‘ 寡人與韓兄弟,不敢從。’ 二國不得兵,怒而反。 已乃知文侯以搆於己,乃皆朝魏。齊伐魯,索讒鼎,魯以其鴈往,齊人曰:‘ 鴈也。’ 魯人曰:‘ 眞也。’  齊曰:‘ 使樂正子春來,吾將聽子。’  魯君請樂正子春,樂正子春曰:‘ 胡不以其眞往也? ’  君曰:‘ 我愛之。’ 答曰:‘ 臣亦愛臣之信。’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10]-

 

한나라와 조나라가 싸움을 했다. 먼저 한나라가 위나라에 원병을 청하러 갔다. “군대를 빌려 주십시오. 조나라를 섬멸하겠습니다.” 위나라의 문후가 대답을 했다. “우리는 조나라와 형제의 의가 있으므로 요구에 응할 수 없다.” 조나라도 위나라에 군대를 청했으나 문후가 말했다. “우리는 한나라와 형제의 의가 있으므로 요구에 응할 수 없다.” 두 나라 사신은 각기 원병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노하여 돌아갔다. 얼마 뒤에 두 나라는 문후가 자기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란 것을 알고 함께 위왕에게 가서 치사했다고 한다.

제나라는 노나라를 치고 승리한 기세를 타서 노나라 보물인 솥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노나라는 사자에게 가짜를 주어 보냈다. 제나라는 이것을 가짜라고 주장했고, 노나라 사자는 진짜라고 우겼다. 제나라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악정자춘을 보내라. 그 사람에게 물어보겠다.” 노나라 군주는 악정자춘에게 제나라에 가서 그 솥이 진짜라는 것을 말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악정자춘은 노나라 군주에게 말했다. “왜 진짜를 내주지 않았습니까.” 군주가 대답했다. “진짜는 소중한 보배가 아닌가.” 그러자 악정자춘이 말했다. “군주께서 진짜 보물을 소중히 여기듯 저도 제 신의를 보배처럼 여기겠습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는 살 수 없다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11]-

 

韓咎立爲君,未定也。 弟在周,周欲重之,而恐韓咎不立也。 綦毋恢曰:‘ 不若以車百乘送之。 得立,因曰爲戒;不立,則曰來效賊也。’  郭君將城薛,客多以諫者。 靖郭君謂謁者曰:‘ 毋爲客通。’  齊人有請見者曰:‘ 臣請三言而已,過三言,臣請烹。’  靖郭君因見之,客趨進曰 : ‘ 海大魚。’  因反走。 靖郭君曰:‘ 請聞其說。’  客曰:‘ 臣不敢以死爲戲。’  靖郭君曰:‘ 願爲寡人言之。’  答曰:‘ 君聞大魚乎? 網不能止,繳不能絓也,蕩而失水,螻蟻得意焉。今夫齊亦君之海也,君長有齊,奚以薛爲? 君失齊,雖隆薛城至於天猶無益也。’  靖郭君曰:‘ 善。’  乃輟, 不城薛。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11]-

 

한나라의 태자 구는 군주가 되었지만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아우는 주나라에 있었는데 주나라에서는 그 아우를 한왕의 지위에 올려놓으려고 하였지만 한나라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한 신하가 말했다. “전차 백대를 거느리게 하여 그 아우를 한나라로 보내 주십시오. 군주로 옹립되면 경호를 했다고 하시고, 그렇게 안되면 한나라를 치겠다는 도둑놈을 잡아왔다고 말씀하십시오. 어느 쪽이 되든지 한나라에 대해서는 생색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정곽군이 설에 성을 쌓으려고 했다. 그러나 식객들 중에 말리는 자가 많았으므로 정곽군은 귀찮게 생각하고 비서에게 식객 중에 면회를 요청하는 자가 있어도 안내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제나라 사람으로 면회를 청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세 마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만일 세 마디 이상이 되거든 끓는 물에 쳐넣어도 좋습니다.” 정곽군이 그를 들어오게 하였더니 식객은 느닷없이 「해대어(海大漁)」라고 하고는 도망치는 것이었다. 정곽군이 그를 불러 세워놓고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이오.” 식객이 말했다. “저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정곽군이 말했다. “나를 위해 말을 해주시오.” 식객은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군주께서는 큰 물고기를 아실 것입니다. 큰 물고기가 물 속에 있을 때는 망으로 잡을 수 없으며, 창으로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기가 뛰어 올라 물을 떠나면 개미에게도 꼼짝을 못합니다. 제나라는 군주에게 있어서는 바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군주께서 영원히 제나라의 실권을 장악하시겠다면 설 따위는 어떻게 되든 좋을 것입니다. 또 만약에 제나라에서 떠나신다고 하면 설의 성을 하늘에 닿도록 높이 축조한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정곽군은 무릎을 치며 설의 축성을 중지했다.

 

 

죽이려면 확실히 죽여라

 

- 韓非子 第23篇 說林(下)[12]-

 

荊王弟在秦,秦不出也。中射之士曰:‘ 資臣百金,臣能出之。’  因載百金之晉,見叔向,曰:‘ 荊王弟在秦,秦不出也,請以百金委叔向。’  叔向受金,而以見之晉平公曰:‘ 可以城壺丘矣。’  平公曰:‘  何也? ’  對曰:‘ 荊王弟在秦,秦不出也,是秦惡荊也,必不敢禁我城壺丘。若禁之, 我曰:爲我出荊王之弟,吾不城也。 彼如出之,可以德荊。 彼不出,是卒惡也,必不敢禁我城壺丘矣。’  公曰:‘ 善。’  乃城壺丘,謂秦公曰 : ‘ 爲我出荊王之弟,吾不城也。’  秦因出之,荊王大說,以鍊金百鎰遺晉。闔廬攻郢,戰三勝,問子胥曰:‘ 可以退乎? ’  子胥對曰:‘ 溺人者一飮而止則無逆者,以其不休也,不如乘之以沈之。’鄭人有一子,將宦,謂其家曰:‘ 必築壞牆,是不善人將竊。’  其巷人亦云。 不時築,而人果竊之。 以其子爲智,以巷人告者爲盜。

 

- 한비자 제23편 설림(하)[12]-

 

초왕의 아우 오가 진(秦)나라에 가 있었는데 진나라에서는 그를 억류해 두고 보내주지 않았다. 한 시종이 초왕에게 이렇게 진언을 했다. “소생에게 100금을 주신다면 진나라에서 아우님을 구출해 오겠습니다.” 그리하여 100금을 받아 수레에 싣고 진(晉)나라로 가서 숙향을 만나보고 말했다. “초왕의 아우를 찾으러 왔는데 죄송합니다만 이 100금을 받으시고 협력해 주십시오.” 숙향은 돈을 받고 그 사자를 군주인 평공에게 면회시켜 주었다. 사자가 말했다. “호구에 성을 쌓으시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평공이 이상히 여기며 물었다. “어째서 그런가.” 사자가 말했다. “초왕의 아우가 진(秦)나라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진나라가 초나라를 미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호구에 축성을 하셔도 진나라에서는 뭐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금지시킨다면「초왕의 아우를 돌려보내라. 돌려보내면 성을 쌓지 않겠다」고 말하시면 됩니다. 진(秦)나라가 초왕의 아우를 돌려보내면 진(晉)나라로서는 초나라에 생색을 내는 것이 됩니다. 또 진나라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것은 초나라를 미워하며 적대관계를 계속하려는 것으로 초나라에서는 호구에 축성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되든 성을 축조하는 것이 손해가 될 것은 없지 않습니까.” 평공은 납득을 하고 호구에 축성을 하며 진(秦)나라에게 말했다. “초왕의 아우를 돌려보내라. 그렇게 하면 축성을 중지하겠다.” 정말로 진(秦)나라는 진(晉)나라에게까지 배반을 당하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을 하고 초왕의 아우를 돌려 보내주었다. 초왕은 기뻐서 금 백일을 진(晉)나라에 선물로 보냈다.

오왕은 초나라의 서울을 공격하여 세 번을 승리하자 자서에게 물었다. “이 정도로 해두고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자서가 대답했다.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할 때, 그 자가 물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꺼내주면 안됩니다. 그치지 말고 확실히 물을 켜도록 해야 죽을 것입니다. 기세를 타서 아주 푹 가라앉히는 것이 상책입니다.”

정나라 사람의 한 자제가 다른 나라에 관리가 되기 위해서 집을 떠나려고 할 때에, 모친에게 이렇게 주의를 주었다. “부서진 울타리는 꼭 수리해 놓으십시오. 도둑이 들까 염려됩니다.” 이웃 사람도 같은 충고를 했다. 그러나 곧 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런데 집 주인은 자기 아들에게는 선견지명이 있다고 생각을 했으나, 같은 충고를 한 이웃사람은 도둑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