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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9일 오후 04:08

solpee 2015. 11. 29. 16:08

淸邃[qīng suì]

淸邃는 淸幽深遠이라는 뜻이다. 淸幽는 속세와 멀리 떨어져 깨끗하고 아담한 곳이다.

清幽深远。多形容景物或诗文等。 宋·陈亮 《重建紫霄观记》:“大较清邃窈深,与人异趣,非可骤至而卒究。” 《元史·赵孟頫传》:“﹝赵孟頫﹞诗文清邃奇逸,读之,使人有飘飘出尘之想。” 《林则徐日记·嘉庆二十四年六月二十七日》:“寅刻行,巳刻至沅州府城,行馆在城内,甚清邃。”

冥行擿埴[míng xíng zhì zhí]冥墑

명상(冥墒)은 명적(冥擿)으로 명행적식(冥行擿埴)을 줄인 말이다. 그 뜻은 캄캄한 밤에 어둠 속을 더듬거리면서 간다는 말로 맹인이 지팡이를 짚고 더듬어서 간다는 것을 말한다. 학문을 하면서도 그 방법을 몰라 암중모색한다는 의미다. 

楊雄의 法言 修身에 나온다.

 

 释义 冥:昏暗;冥行:夜间行路;擿:点;埴:地。夜间摸黑走路,如同盲人拿着手杖点地而行。比喻研求学问,不识门径,暗中探索。
出处 汉·扬雄《法言·修身》:“擿埴索涂,冥行而已矣。”

白纷[bái fēn]

漢나라 楊雄의 法言 吾子에 나오는 말로 어린아이 때부터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공부하였으나 성취한 것이 없음을 형용한다.

 

谓幼时学艺,到白头还纷乱不清。形容到老无所成就。 汉 扬雄 《法言·吾子》:“童而习之,白纷如也。” 李轨 注:“言皓首而乱。” 清 雪樵居士 《秦淮闻见录》卷十二:“八十衰翁已白纷,惜花心在老逾殷。”

童習白紛.

 

無何有之鄕 , 无何有之乡 , wú hé yǒu zhī xiāng


 

아무것도 없는 곳. 어디에도 있지 않은 곳. 장자가 말하는 이상향(Utopia )을 말한다. 無何有는 ‘어떤 것도 없는 것’을 말하고, 鄕은 ‘곳’을 가리킨다.

无何有之乡,成语,出自战国·庄周《庄子・逍遥游》。其释义指空无所有的地方;多用以指空洞而虚幻的境界或梦境,也用于逍遥自得的状态。

 

【解释】无何有:什么东西都没有。乡:处所,地方。
(1).指空无所有的地方。《庄子·逍遥游》:“今子有大树,患其无用,何不树之於无何有之乡,广莫之野。” 成玄英 疏:“无何有,犹无有也。莫,无也。谓宽旷无人之处,不问何物,悉皆无有,故曰无何有之乡也。”
(2).多用以指空洞而虚幻的境界或梦境。 宋 苏轼 《叙》:“公今年八十一,杜门却扫,终日危坐,将与造物者游於无何有之乡。” 明 何景明 《赠萧文彧号古峰序》:“凌太虚,入广漠,而求之无何有之乡,奚俟吾言?” 郁达夫 《文学上的阶级斗争》:“古今来这些艺术家所以要建设这无何有之乡,追寻那梦里的青花的原因,究竟在什么地方呢?”

출전

「天根이 은산의 남쪽에서 놀다가 요수의 강가에 이르러 無名人을 만나 물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무명인이 말하였다. “물러가거라. 너는 비천한 사람이로구나. 어찌 그따위 유쾌하지 못한 일을 묻는가? 나는 지금 조물주와 더불어 벗하고 있지만, 싫증이 나면 저 하늘을 나는 새를 타고 천지의 밖으로 나아가 그 어디에도 있지 않은 곳에서 노닐다가 광야에 살고자 한다. 너는 어찌 천하를 다스리는 일 따위로 내 마음을 어지럽히려 드는가?”(天根遊於殷陽, 至蓼水之上, 適遭無名人而問焉. 曰, 請問爲天下. 無名氏曰, 去. 汝鄙人也. 何問之不豫也. 予方將與造物者爲人厭, 則又乘夫莽之鳥, 以出六極之外, 而遊無何有之鄕, 以處壙垠之野. 汝又何以治天下感予之心爲.)」

이 이야기는 《莊子 〈應帝王〉》에 나온다. ‘무하유지향’이란 이른바 무위자연의 도가 행해질 때 도래하는, 생사도 없고 시비도 없으며 인위적인 것도 없는 참으로 행복한 곳, 또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무하유지향’은 ‘현실적으로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인 유토피아(Utopia)와 동일한 개념을 가진 말이다. Utopia는 그리스 어의 ‘없는(ou-)’과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로,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의 공상 소설 제목이다. ‘무하유지향’은 《장자》의 〈逍遙遊〉와 〈知北遊〉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战国·庄周《庄子・逍遥游》:“今子有大树,患其无用,何不树之于无何有之乡,广莫之野。”
出自庄子名言,在文中的意思,没有生长这种树的地方。

 

庄子·逍遥游》:今子有大树,患其无用,何不树之於无何有之乡,广莫之野,彷徨乎无为其侧, 逍遥乎寝卧其下。”

成玄英疏:“莫,无也。谓宽旷无人之处,不问何物,悉皆无有,故曰无何有之乡也。”


陆德明对“无何有之乡,广莫之野”的释文是:“谓寂绝无为之地也。简文(503--551)云:莫,大也。”


 

友人惠子告诉庄子:“吾有大树,人谓之樗。其大本臃肿而不中绳墨,
其小枝卷曲而不中规矩。立之涂,匠者不顾。”惠子的意思是说他家
有株大臭椿,主干疙里疙瘩,枝干曲曲弯弯,不合木工需要,啥用也
没有,长在路旁,过往木匠谁也不愿看一眼。庄子劝他,“何不树之
于无何有之乡,广漠之野,彷徨乎无为其侧,逍遥乎寝卧其下?”
(《庄子·逍遥游》)在庄子看来,大臭椿之材,不能用于建筑和做
器具,看似无用,但若将其树之于广袤的旷野,不加伤害,任其蓬
勃,那么,它既可改善和美化环境,让人们得以在美好的环境中逍
遥无为;它还可供人们审美,让人们获得精神上的愉悦,诗意地栖
居,看似无用,实有更大用处,是一般看似“有用”而实为小用的树
木所无法比拟的,只是庸常之人看不到、不会用罢了。“大林丘山之
善于人也,亦神者不胜。”(《庄子·外物》)树木繁茂的广阔山林
对人的好处,就是因为人们平时处于狭窄空间久了精神受不住,需
要到广大天地让精神游,而大山和森林正是人们精神畅游的最佳
生态、审美活动的广阔平台。

 

三宿[sān xiǔ]

 

三宿이란 한 곳에 오래 머무름을 뜻한다. 

'승려는 뽕나무 아래에서 寄宿하더라도 삼일 이상을 지내지 아니하고 떠나 세속에 연연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後漢書 襄楷傳에 기록되어 있다.

"浮屠不三宿桑下, 不欲久生恩愛, 精之至也."


三宿之戀이란 世俗에 戀戀하여 삼일 이상 기거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公孫丑(공손추) 下편

孟子去齊, 尹士 語人曰不識王之不可以爲湯武則是 不明也 識其不可, 然且至則是 干澤也 千里而見王 不遇故 三宿而後出晝 是何濡滯也 士則玆不悅

맹자 제나라를 떠나실 때, 윤사가 어떤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대, “왕이 탕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밝지 못함이오. 그 불가함을 알고, 그런데 또 이른다면 이는 은택을 구함이니, 천 리하여 왕을 보았으나 뜻을 얻지 못한 까닭으로 떠났으되 사흘을 묵은 뒤에 주를 나가니, 이 어찌 머뭇거리는고. 사인즉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进爵三次

《书·顾命》:“王三宿,三祭三咤。” 孔 传:“礼成於三,故酌者实三爵於王,王三进爵,三祭酒。三奠爵。” 孔颖达 疏:“三宿,谓三进爵,从立处三进至神所也。”
《陈书·沉文阿传》:“三宿三咤,上宗曰飨,斯盖祭傧受福,宁谓贺酒邪!”

(2).犹言三日;三夜。

谓时间较久。《孟子·公孙丑下》:“三宿而后出 昼 ,是何濡滞也?” 赵岐 注:“留於 昼 三日,怪其淹久。”
白居易 《答微之咏怀见寄》诗:“分袂二年劳梦寐,并牀三宿话平生。”

(3).指三宿恋

佛教有出家人不三宿桑下,以免妄生依恋之说,见《四十二章经》。佛教语。《后汉书·襄楷传》:“浮屠不三宿桑下,不欲久生恩爱,精之至也。” 李贤 注:“言浮屠之人寄桑下者,不经三宿便即移去,示无爱恋之心也。”后因以“三宿恋”指对世俗的爱恋之情。
苏轼 《别黄州》诗:“桑下岂无三宿恋,樽前聊与一身归。”
金 元好问 《望崧少》诗之一:“结习尚馀三宿恋,残年多负半生闲。”
姚鼐 《答孙补山中丞见怀》诗之二:“我欲更除三宿恋,就公新治乞《坛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