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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강(11/4)

solpee 2015. 11. 4. 19:03

 

제14강(11/4)

 

1. 字學

☞. 看盡人間興廢事, 不曾富貴不曾窮 - 陸游 一壺歌

인간사 흥망을 살펴보노라면 처음부터 부귀가 따로 있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出自]:陆游《一壶歌》

[原文]:
(一)
长安市上醉春风,乱插繁花满帽红。
看尽人间兴废事,不曾富贵不曾穷。
(二)
悠悠日月没根株,常在人间醉一壶。
倾倒欲空还潋滟,不曾教化不曾沽。
(三)
先生醉后即高歌,千古英雄奈我何?
花底一壶天所破,不曾饮尽不曾多。
(四)
自从轩昊到隋唐,几见中原作战场!
三十万年如电掣,不曾记得不曾忘。
(五)
耻从岳牧立尧庭,况见商周战血腥。
携得一壶闲处饮,不曾苦醉不曾醒。

[译文]:
提着酒壶,走在春风扑面的长安街面上,无人理睬。头上插满红色绚烂的繁花,嘴中怡然自得。旁人哪里知晓,这人生之间朝朝暮暮,起起伏伏是再正常不过,最终没有谁富贵也没有谁贫穷,有的只是对生命价值的体验。“小楼一夜听春雨,深巷明朝卖杏花”。

 

☞. 月穿潭底水無痕, 月輪穿沼水無痕

 

喚牛卽牛 呯馬卽馬 - 冶父道川禪師가 읊은 話頭頌이라고 金剛經吾家解에 실려 있다.

 

 

(소라고 하니 소요, 말이라고 하니 말이다)

借婆杉子拜婆門
禮數周旋已十分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노파의 적삼을 빌려 노파 문전에 절하니
인사 차릴 건 충분히 다 차렸네
대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 중심을 꿰뚫어도 물살 일지 않네

冶父道川은 송대의 스님이다. 위의 시는 야보 도천 선사가 금강경을 노래한 선시 중 한 편이다.

이에 대한 儒學者和答 시,

水流任急境常靜   물이 급히 흘러가는데 주변은 항상 고요하고

花落雖頻意自閑  꽃이 자주 떨어진다 해도 마음은 언제나 한가롭네.

 

2. 體本

☞. 害國誤民

 

【词目】误国害民
【读音】wù guó hài mín
【释义】给国家人民带来祸害。同“误国殃民。”

【出处】*南宋 度宗 初에 賈似道의 專權을 臨安府의 士人 葉李와 蕭規 等은 上訴하여 害民誤國한다고 攻擊하였다.

臨安府士人葉李.蕭規等, 上書詆似道專權"害民誤國". 似道怒, 以他事罪, 竄遠州.

*清·钱彩《说岳全传》第七十四回:“张俊身为大将,不思报效,专权乱政,误国害民。”

 

3. 書學

*張伯英临池学书, 池水盡墨, 永師登樓不夏, 四十餘年, 張公精熟號爲草聖, 永師拘滯, 終能著名. 以此而言, 非一朝一夕所能盡美, 俗言...'書無不百日工'. 盖悠悠之談也. 宜白首攻之 豈可百日乎!

 

*《论书》,评前代书家,谈学书方法,最后一段提及“书无百日功”这句话,他说:张伯英临池学书,池水尽墨。永师登楼不下,四十余年。张公精熟,号为“草圣”,永师拘滞,终著能名。以此而言, 非一朝一夕所能尽美。俗云“书无百日工”,盖悠悠之谈也,宜白首攻之,岂可百日乎!徐浩与颜真卿.

 

*漢興而有草書, 不知作者姓名. 至章帝時, 齊相杜度號善作篇. 後有崔瑗崔寔亦皆稱工. 杜氏殺字甚安, 而書體微瘦. 崔氏甚得筆勢, 而結字小疏. 弘農張伯英者, 因而轉精甚巧. 凡家之衣帛, 必書而後練之. 臨池學書, 池水盡墨. 下筆必爲楷則, 號忽忽不暇草書. 寸紙不見遺, 至今世尤寶其書, 韋仲將謂之草聖. 伯英弟文舒者次伯英. 又有姜孟穎(名詡)梁孔達(名宣)田彦和及韋仲將之徒, 皆伯英弟子, 有名於世, 然殊不及文舒也. 羅叔景趙元嗣者, 與伯英並時, 見稱於西州, 而矜巧自與, 衆頗惑之. 故伯英自稱上比崔杜不足, 下方羅趙有餘. 河間張超亦有名, 然雖與崔氏同州, 不如伯英之得其法也.

 

   한나라가 흥함에 초서가 있었는데, 작자와 성명을 알지 못했다. 장제(章帝, 76-88) 때에 이르러 제상인 두도가 글을 잘 쓴다고 불렸다. 뒤에 최원과 최식이 있어 또한 모두 공교하다 일컬어졌다. 두도는 글씨를 마무리하는 것은 심히 안정되고 글씨의 형체는 조금 파리했다. 최원은 깊이 필세를 얻었으나 결자가 조금 성글었다.

   홍농 사람인 장지는 이로 말미암아 정미함으로 바꾸어 더욱 공교해졌다. 무릇 집의 옷과 비단에 반드시 글씨를 쓴 뒤에 표백하여 세탁했다. 연못에 임하여 글씨를 공부하여 연못물을 다 검게 했다. 붓을 내림에 반드시 모범이 되기 때문에 “바빠서 초서를 쓸 겨를이 없다.”라고 했다. 작은 종이도 버림을 당하지 않아 지금 세상에 이르러 더욱 그 글씨를 보배롭게 여기니 위탄은 이를 일러 ‘초성’이라 했다. 장지의 동생 장창(張昶)은 장지의 버금이다.

   또한 강후(姜)ㆍ양선(梁宣)ㆍ전언화 및 위탄의 무리가 있었는데, 모두 장지의 제자로 세상에서 유명하였으나 장창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다.

나휘(羅暉)와 조습(趙襲)은 장지와 같은 시대 사람으로 서주에서 칭찬을 받아 공교함을 뻐기고 스스로 자부하였으나 뭇사람들이 자못 이를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장지는 스스로 “위로는 최원과 두도에 비하여 부족하고, 아래로 나휘와 조습과 견주면 남음이 있다.”라고 했다. 하간 사람인 장초 또한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비록 최원과 같은 고을 사람이지만 장지가 그 법을 얻은 것만 같지 못하다.

 

4. 湖巖美術館 의 書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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