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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喬란?(제6강에서 연결)

solpee 2015. 9. 11. 09:41

二喬와 擊將之計

 

華北의 실력자 袁紹를 격파한 曹操는 천하통일의 야욕을 완수하고자 아직 자신에게 복속하지 않고 있는 남방 양자강 유역의 여러 세력을 정벌하고자 백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한다.

曹操가 정벌목표로 하고 있는 형주에 머물던 劉備는 형주의 주류세력이 曹操에게 항복하고 조조가 맹추격을 벌이자 자신의 세력과 따르는 백성들을 이끌고 아직 조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강하지역으로 달아난다.

風前燈火에 놓이기는 江東(양자강 동쪽, 즉 양자강 하류지역)의 孫權 역시 마찬가지였다. 曹操의 백만 토벌대가 코앞까지 진입했음에도 내부는 항복파와 저항파로 나뉘고, 손권은 얼른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曹操의 南下를 저지해야만 각자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게 된 劉備派와 孫權派의 동맹이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江東에 파견된 제갈공명은 항복파와 설전을 벌이기도 하고, 또 孫權을 직접 만나 설득도 해보지만 孫權은 내심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고뇌하는 孫權의 모습을 보다 못한 국태부인(손권의 계모이자 이모)은 ‘밖의 일에 결단을 내리기 어려우면 주유에게 물어보라’고 했던 손권의 형 孫策의 유언을 상기시켜 준다. 孫權은 기뻐하며 周瑜를 부르기로 한다. 이제 孫權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는 周瑜에게 달린 문제가 된다.

이때 파양호에서 水軍을 훈련하고 있던 周瑜는 曹操의 남하소식을 듣고 대책을 논하기 위해 수도로 돌아온다. 주유가 돌아오자마자 항복파와 주전파가 번갈아 가며 주유에게 찾아와 자신들의 입장을 설득하지만 주유는 府中에서 함께 의논해 보자며 즉답을 회피하고 모두 돌려보낸다.

모두가 돌아가자 노숙의 주선으로 孔明을 만나는 周瑜는 자신의 本心을 감추고 孔明을 떠보려하지만 이내 孔明의 激將之計에 걸려들고 만다.

 

曹操의 南下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노숙이 묻자 주유는 ‘曹操는 皇帝의 命을 받고 大軍을 일으킨 데다 軍勢도 强하여 싸우면 패할게 뻔하니 主公께 항복을 권할 것’이라고 한다. 노숙이 격분하여 ‘3대의 起業을 이렇게 망칠 것이냐’고 되묻자, 周瑜는 ‘江東百姓들의 목숨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답한다.

孔明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웃기만 하자 노숙이 ‘왜 웃느냐’고 묻는다. 이에 공명은 노숙이 ‘철없이 고집을 피우는 모습이 우스워서 그렇다’며, ‘군사력과 용병술에서 월등히 우월한 曹操와 싸워봤자 패할 것이 분명’하니, 주유의 말대로 ‘일찍이 항복하여 처자와 부귀를 보존하는 것이 상책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천만뜻밖인 孔明의 말에 노숙이 분개하여 고함을 치지만, 孔明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번거로운 항복의식 없이 단 두 명만 一葉片舟에 실어 曹操에게 보내기만 해도 曹操는 신이 나서 물러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 두 사람이 누구냐’고 周瑜가 묻자 孔明은, ‘그 두 사람은 江東 사람들에게는 나뭇잎 하나요, 좁쌀 하나에 불과 하지만(如大木飄一葉 太倉減一粟) 曹操는 매우 만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周瑜가 궁금하여 거듭 묻자 孔明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제가 융중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曹操가 銅雀臺라는 화려하고 웅장한 누대를 짓고 女色을 즐기며 말하기를 ‘나에게 소원이 둘 있는데, 하나는 四海를 평정하는 것이요, 둘은 江東의 二喬를 얻어 銅雀臺에 두고 만년을 즐기는 것이라’했답니다. 江東의 喬公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큰 딸이 大喬, 작은 딸이 小喬랍니다. 하나같이 그 자태가 물고기를 가라앉게 하고(沈魚) 기러기를 떨어뜨리게 할 정도로(落雁) 아름답다하니, 실은 曹操가 百萬大軍을 일으킨 이유가 그 二喬를 얻기 위함이라지요. 그러니 장군께서는 얼른 喬公을 찾아가 千金이라도 주고 두 딸을 사서 曹操에게 바치시기 바랍니다.”

주유가 묻는다. “조조가 二喬를 얻기 원한다는 증거라도 있소?”

공명이 대답한다. “曹操의 아들 曹植은 천하의 문장가인데 일찍이 曹操가 그에게 賦를 한수 짓도록 했는데 그것이 [銅雀臺賦]랍니다. 그 글에 담긴 뜻이 바로 二喬를 얻겠다는 것이지요.”

“선생은 그 [銅雀臺賦]를 외우고 있소?”

“문장이 화려하고 절묘하여 항상 기억하고 있지요.”

周瑜가 [銅雀臺賦]를 듣기를 청하자 孔明이 낭랑한 목소리로 외기 시작한다.

 

“영명한 님을 따라 노닒이여, 누대에 올라 마냥 즐김이라.... 한쌍의 누대 좌우에 세웠음이여, 玉龍과 金鳳이로다. 二喬를 東南方에서 거느림이여, 아침 저녘으로 함께 즐기리로다.”

 

공명이 외우는 [銅雀臺賦]를 듣던 周瑜가 갑자기 크게 노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북쪽을 가리키며 고함을 지른다. “늙은 역적 놈이 나를 이렇게까지 모욕하는구나!”

孔明이 급히 일어나 周瑜의 소매를 붙들며 말한다.

“옛날 흉노가 자주 국경을 쳐들어 와 漢나라 황제는 공주를 내주면서까지 화친을 맺었소. 장군께서는 한낱 여염집 두 딸을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아끼십니까?”

그 말에도 周瑜는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선생은 모르는 말씀 마시오. 大喬는 孫策의 부인이고, 小喬는 바로 내 아내란 말이요”

孔明은 짐짓 놀란 듯이 황공한 낯빛을 지어보이며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함부로 말을 했으니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주유가 다시 이를 악물며 말한다. “내 그 늙은 역적 놈과는 절대로 같은 하늘에서 살지 않겠다!”

孔明이 말한다. “장군께서는 부디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시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내 이미 파양호로 떠날 때부터 북쪽을 정벌할 마음을 품었소. 내목에 칼이 들어와도 조조 그 늙은 놈을 죽일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오. 선생은 제게 한 팔의 힘이 되어 曺賊을 토벌하게 도와주시오. 내일 主公을 찾아뵙고 곧 군사를 일으키도록 뜻을 정하겠소.”

 

물론, 孔明은 二喬가 죽은 孫策과 周瑜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銅雀臺賦]에 나오는 이교는 두 개의 다리, 즉 二橋를 말하는 것으로, 두개의 다리가 동서쪽으로 연이어 있다는 의미인데, 孔明은 二橋를 二喬로, 東西를 曹操가 있는 곳에서 봤을 때 二喬가 살고 있는 지방의 위치인 東南으로 의도적으로 바꾸어  주유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孔明의 激將之計는 멋지게 성공하고 강동의 손권파는 본격적으로 曹操와의 一戰을 준비하게 된다.

 

曹操의 南下에 대항하여 劉備派와 孫權派의 연합으로 벌어진 赤壁大戰은 실제보다 과장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하지만, 어째든 확실한 점은 이 전쟁의 패배로 曹操의 천하통일 야욕은 좌절되었으며, 반면에 승자인 孫權派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힘 있게 극복함으로써 권력기반을 강화할 수 있었고, 劉備派에게는 독자적인 역사를 열어 가는데 필요한 물적, 인적,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劉備派의 입장에서는 노력에 비해 성과가 큰데, 형주라는 탄탄한 물적 근거지를 얻었을 뿐 아니라(물론, 형주 소유문제로 손권파와 계속 갈등하게 되고 결국 잃게 되지만) 曹操가 패배로 인한 몸을 추스르는 동안 익주지방 평정에 나설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으며, 봉추방통, 위연, 황충과 같은 뛰어난 지략가와 장수도 합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