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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6일 오전 05:57

solpee 2015. 7. 26. 05:59

靜坐息心

 

朱子의 '半日靜坐 半日讀書'란 말을 사랑한다. 하루의 절반은 고요히 앉아 내면을 기르고 나머지 반은 책을 읽는 데 쓴다. 그에게도 이것은 꿈이었을 것이다.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리고 회의는 끝도 없다. 한 사람을 겨우 보내자 다른 사람이 찾아온다. 이런 나날 속에 내면은 황량하고 피폐해져서 꿈조차 어지럽다.

명나라 湯賓尹의 '讀書譜'를 읽다가 袁黃(1533~1606)이 쓴 '靜坐工夫'란 항목에 절로 눈길이 가서 멎는다.

"靜坐를 하려면 먼저 息心, 즉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한다. 일상 속에서 그때그때 연습해서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내고 버리기 힘든 것을 버린다. 한 가지를 참아내니 딱 그만큼의 受用이 생겨나고, 한 가지를 덜어내자 그것만큼 편하고 즐거워진다. 오래 익혀서 정좌공부가 점차 익숙해지면 저절로 접촉하는 곳마다 유익함이 있다. 하루 중에 틈이 나면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한두 시간 정좌한다. 이를 두고 氣息을 조화롭게 해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말한다."

정좌라 해서 그저 맹탕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으면 마음이 깨어난다. 잠잠하던 생각이 성성하게 살아난다. 적막 속에 각성이 찾아든다. 둘 사이의 긴장이 팽팽하다. 정좌는 사람을 자칫 몽롱하고 멍한 상태로 빠지게 만든다. 그때마다 점검이 필요하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각성[惺]이 고요[寂]와 함께하고 고요가 각성과 따로 놀지 않아야 한다. 각성 없는 고요를 頑空이라 하고 고요를 벗어난 각성은 狂慧라 한다. 대응법을 말하자면 이렇다. 마음이 산란할 때는 고요함으로 다스리고, 몽롱하고 멍할 때는 각성으로 추스른다(惺不離寂, 寂不離惺. 離惺而寂, 是謂頑空, 離寂而惺, 是謂狂慧. 但論對治之法, 散亂時須以寂治之, 昏沉時須以惺治之)."

완공은 깨달음 없이 멍한 것을, 광혜는 분별을 잃어 독선에 빠진 상태를 가리킨다. 가만히 그저 앉아 있는 것이 정좌가 아니다. 훈련과 연습이 없으면 마음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원숭이나 미친 말처럼 날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self dis란 자신의 치부나 과오를 오히려 개그의 소재로 사용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diss ; disrespect(무례,결례)의 줄임말로, 주로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경멸하다의 뜻으로 주로 쓰임.

self diss(dis도 같이 쓰인다) ; 自虐하는 언동을 말한다.

 

陌上桑 - 金三宜堂
길 위의 뽕나무

採桑城南陌 : 성남 뚝 위에서 뽕따는 (소녀)
纖纖映素手 : 가느다란 하얀 손이 빛처럼 아른거리네.
少年飜驚目 : 소년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相看住故久 : 서로 오래 동안 멍하니 바라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