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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원의 삼계

solpee 2015. 7. 1. 06:09

柳宗元의 三戒

 

柳宗元의 三戒는 1.臨江之麋, 2. 黔之驢, 3. 永某氏之鼠로 기술,기능, 재주가 졸열함에도 우쭐대다가 망신을 당한다는 우화다.

《临江之麋》是《三戒》中的第一篇,是柳宗元谪居永州时所写。《三戒》借麋,驴,鼠三种动物的可悲结局,讽刺了社会上的三种人。按作者在"序"中所说,"临江之麇"所讽刺的是"依势以干非其类",就是倚仗他人势力求得与对方要好的那种人。
《三戒》是唐代文学家柳宗元写的一组寓言,包括《临江之麋》、《黔之驴》、《永某氏之鼠》三篇散文。这组寓言是作者贬谪永州时所写。题名“三戒”,可能是取《论语》“君子有三戒”之意。另有词语“三戒”,在佛教、中医和古代文献中分别有不同的含义。

 

 

柳宗元Liu Tsungyuan(773—819),字子厚,山西运城人,世称“柳河东” ,唐代文学家、哲学家和政治家,与韩愈并称为“韩柳”,两人一同倡导了古文运动。刘禹锡与之并称“刘柳”。王维孟浩然韦应物与之并称“王孟韦柳”。唐宋八大家之一。主要作品《捕蛇者说》、《三戒》、“永州八记”等散文,《渔翁》、《江雪》等诗,结为《柳河东集》。祖籍河东(今山西省永济县)。代宗大历八年(773)出生于京都长安(今陕西省西安市)。世称“柳河东”又因曾在柳州任官又称“柳柳州”,与唐代的韩愈、宋代的欧阳修苏洵苏轼苏辙王安石曾巩, 并称 “唐宋八大家” 。一生留诗文作品达600余篇,其文的成就大于诗。
柳宗元画像柳宗元画像[1]
柳宗元出身于官宦家庭,少有才名,早有大志。早年为考进士,文以辞采华丽为工。贞元九年(793)中进士,十四年登博学鸿词科,授集贤殿正字。一度为蓝田尉,后入朝为官,积极参与王叔文集团政治革新,迁礼部员外郎。永贞元年(805)九月,革新失败,贬邵州刺史,十一月柳宗元加贬永州司马(任所在今湖南省永州市零陵区),在此期间,写下了著名的《永州八记》(《始得西山宴游记》《钴鉧潭记》《钴鉧潭西小丘记》《小石潭记》《袁家渴记》《石渠记》《石涧记》《小石城山记》)。 元和十年(815)春回京师,不久再次被贬为柳州刺史,政绩卓著。柳宗元和十四年十一月初八(819年11月28日)卒于柳州任所。交往甚蕃,刘禹锡白居易等都是他的好友。 柳宗元一生留诗文作品达600余篇,其文的成就大于诗。其诗多抒写抑郁悲愤、思乡怀友之情,幽峭峻郁,自成一路。最为世人称道者,是那些清深意远、疏淡峻洁的山水闲适之作。骈文有近百篇,散文论说性强,笔锋犀利,讽刺辛辣。游记写景状物,多所寄托。哲学著作有《天说》《天对》《封建论》等。柳宗元的作品由唐代刘禹锡保存下来,并编成集。有《柳河东集》《柳宗元集》(中华书局1979年版)。

 

 

 

 

一戒: 臨江之麋(임강의 큰 사슴)

 

임강이 사냥을 나가 큰 사슴의 새끼를 얻어 그것을 기르고자 문안으로 들어오는데 무리지은 들이 침을 흘리면서 꼬리를 치켜들고 모두 (쫒아)오자 그 주이 성을 내어 들을 꾸짖어 들을 두렵게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주인은 날마다 사슴 새끼를 안고 들에게 가서 자주 보여주면서 들로 하여금 사슴에게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점차 들로 하여금 장난치게하며 오래도록 하였더니 들이 모두 주인의 뜻과 같이 사슴의 새끼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슴의 새끼가 점차 자라 자기가 사슴임을 잊어버리고 들이 자기의 좋은 벗인 줄 여겨 사슴들과 부딪히고 기대고 하면서 더욱 가깝게 대하여도 들은 주인이 무서워 사슴과 더불어 생활함을 매우 잘 하였지만, 그러나 때때로 입맛을 다셨습니다. (사슴고기가 먹고 싶어서)

 

세월이 흘러 삼년이 되어 사슴이 문밖을 나서니 밖에 들이 도로에 대단히 많이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달려가 들과 더불어 장난하고 뒤엉켜 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밖에 있던 들은 사슴을보고는 달려들어 장난감 다루듯 이리저리 치고 물어 사슴을 죽이고 먹어 길위에 사슴의 피가 낭자하였지만, 사슴은 죽을 때 까지 자신이 왜 죽임을 당했는지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临江之麋》
临江之人畋(tián)得麋(麑(ní),畜之。入门,群犬垂涎,扬尾皆来。其人怒。怛(dá)之。自是日抱就犬,习示之,使勿动 ,稍⑿使与之戏。积久,犬皆如人意。麋麑稍大,忘己之麋也,以为犬良⒀我友,抵触偃仆,益狎。犬畏主人,与之俯仰甚善,然时啖(dan)其舌。 三年,麋出门,见外犬在道甚众,走欲与为戏。外犬见而喜且怒,共杀食之,狼藉道上。麋至死不悟。

 

 

2戒: 黔之驢(검땅의 당나귀)

 

옛날 중국 黔州에는 당나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호기심이 많은 어떤 사람이 당나귀 한 마리를 배로 실어 왔으나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또 무엇에 써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산 아래 풀어 놓아 먹이며 키웠습니다.

어느 날 산속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당나귀를 보고 자기보다 큰 데 놀란 호랑이는 지금까지 당나귀를 본 일이 없었으므로 神獸라 생각하고는 숲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동정을 살폈습니다.

 

얼마 후 호랑이는 주위를 살피며 숲에서 나와 당나귀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그때 당나귀갑자기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이건 분명 나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다' 생각하고 황급히 도망을 쳤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그 우는 소리에도 익숙해지고 무서운 동물은 아닌 듯하여 호랑이당나귀의 주위를 서성거렸으나 당나귀는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용기가 생긴 호랑이당나귀本性을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지분거렸습니다. 그러자 화가난 당나귀호랑이에게 뒷발질을 할 뿐이었습니다.

호랑이당나귀에게 그 밖의 기량이 없음을 알게 되자 좋아하며 당나귀에게 덤벼들어 순식간에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黔无驴,有好事者船载以入。至则无可用,放之山下。虎见之,庞然大物也,以为神,蔽林间窥之。稍出近之,慭慭,莫相知。
他日,驴一鸣,虎大骇,远遁;以为且噬己也,甚恐。然往来视之,觉无异能者;益习其声,又近出前后,终不敢搏。稍近,益狎,荡倚冲冒。驴不胜怒,蹄之。虎因喜,计之曰:“技止此耳!”因跳踉大㘎,断其喉,尽其肉,乃去。
噫!形之庞也类有德,声之宏也类有能。向不出其技,虎虽猛,疑畏,卒不敢取。今若是焉,悲夫!

 

 

 

3戒: 永某氏之鼠(영주 땅에 사는 어떤 이의 쥐)

 

영주 땅에 모씨가 미신적인 금기 어김을 두려워하여 삼가하고 꺼림이 대단히 심하였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해가 子年(쥐띠 )이라 여겨서 는 십이지로 보면 해의 신(子神)이므로 를 사랑하여 집안에는 고양이를 기르지 않고 종(하인)들에게 를 잡지 못하게 하여 창고와 부엌을 모두 가 마음대로 하여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들이 서로 알려주어 모두 모씨의 집으로 와서 배불리 먹어도 재앙이 없었으니, 모씨의 집에는 제대로 된 그릇이 없고 횃대에는 제대로 된 옷이 없으며 식구들이 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들이 먹다 남긴 것이었습니다.

낮이면 들이 줄을 지어 사람과 더불어 나란히 다니고 밤이면 몰래 저희들 끼리 깨물고 싸워 그 소리가 온갖 소리를 내어 가히 잠을 잘 수 없어도 끝내 들의 소란을 진압하지 않았습니다.

 

몇년 에 모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고 후에 다른 사람이 와서 살지만 들의 행동은 예전과 같은지라 후에 온 그 사람이 말하기를 "들은 음습한 족속들이며 나쁜 동물이라 도적질하고 포악함이 더욱 심한데, 또한 어찌하여 이지경에 이르렀는가?"

하고 대여섯마리의 고양이를 빌려와 문을 닫고 기와를 치우고 구멍에 물을 붓고 하인들은 빙 둘러 들을 잡게하니 죽인 들이 언덕과 같았습니다.

 

 

永有某氏者,畏日,拘忌异甚。以为己生岁直子,鼠,子神也,因爱鼠,不畜猫犬,禁僮勿击鼠。仓廪庖厨,悉以恣鼠不问。由是鼠相告,皆来某氏,饱食而无祸。某氏室无完器,椸无完衣,饮食大率鼠之余也。昼累累与人兼行,夜则窃啮斗暴,其声万状,不可以寝,终不厌。
数岁,某氏徙居他州。后人来居,鼠为态如故。其人曰:“是阴类恶物也,盗暴尤甚。且何以至是乎哉?”假五六猫,阖门,撤瓦,灌穴,购僮罗捕之。杀鼠如丘,弃之隐处,臭数月乃已。
呜呼!彼以其饱食无祸为可恒也哉!

 

——柳宗元《三戒》

 

 

知人者智, 自知者明  (老子)

남을 아는 것은 , 자신을 아는 것은 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