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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白風淸

solpee 2014. 7. 20. 13:24

 

환하게 빛나고 바람 시원하게 분다는 으로, 밝은 가을밤 이르는 .

 《月白风清》故事讲述,一座无比豪华的别墅遭遇了一起灭门惨案。半年以后,别墅被一个画家买下。但是画家刚搬进去,就遭遇了各种令人肝胆俱裂的恐怖事件。这座房子究竟是闹鬼的凶宅,还是在无言地诉说着某种不可告人的秘密?大宇与伙伴们勇敢地夜宿别墅,展开了调查。在经历了一系列惊魂事件之后,大宇终于破解了关键的线索,协助警方抓住了真凶。

 

【成语】 月白风清
【拼音】 yuè bái fēng qīng
【近义词】 清风明月,月明如镜、月光如水、月明星稀
【反义词】 月黑风高,日月无光、天昏地暗
【解释】微风清凉,月色皎洁。 形容幽静美好的夜晚。或比喻一个人很美好。

【出处】 宋·苏轼后赤壁赋》:“有客无酒,有酒无肴,月白风清,如此良夜何?”

是夜月白风清,水天共碧,二人正在僧房里,睡至半夜,忽听得江上潮声雷响。 (明·施耐庵水浒全传》第一百十九回)
“这早晚玉绳高,银河浅,恰正是夜阑人静,端的这月白风清。”(元 李文蔚 《燕青博鱼》第三折)
“是夜月白风清,三更已后, 普浄 正在庵中静坐。” (《三国演义》第七七回)
“其时则月白风清,其地则深山昧谷。”( 清 王韬 《淞滨琐话·李延庚》)
“不论是在月白风清还是九级风浪的夜里,他们都全神贯注地盯着宽阔的海域。”(秦牧 《花城·土地》)

 

雪中访友

雪中访友图/溥心畲 纸本水墨109.5cmx 57.5cm中国美术馆藏 溥心畲(1896-1963)名儒,字心畲,别号西山逸士.北京人满族,为清恭亲王之孙。北京法政大学毕业后于青岛威廉帝国研修院修西洋文学史。曾任中国画学研究全评议。抗日战争期间,靠卖书画为生。1949年去台北.曾任教于台北国立师范大学。 溥心畲得传统正脉,受马远、夏圭的影响较深。他在传统山水画法度严谨的基础上灵活变通,创造出新,开创自家凤范。溥心畲的清朝皇室后裔的特殊身份使他悟到荣华富贵之后的平淡才是人生至境,因而他在画中营造的空灵超逸的境界令人叹服。《雪中访友图》茂密的松林生于冈峦之上,路径隐于林壑之中,曲折流淌的溪水将观者的目光引向画面的深处.深山幽僻处两位逸士和一抱琴童子踏雪前住山中访友。全画用笔精细周到.敷色淡雅.突出表现了山中雪后的宁静与秀美,表达了画家对淡泊生活的向往
 

桃花源記  -陶淵明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逢桃花林, 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 便得一山,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捨船從口入.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朗.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其中往來種作, 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髫, 竝怡然自樂.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村中聞有此人, 咸來問訊. 自云, “先世避秦時亂, 率妻子邑人, 來此絶境, 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問, “今是何世?” 乃不知有漢, 無論魏晉. 此人一一爲具言所聞, 皆歎惋.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旣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志之. 及郡下, 詣太守, 說如此. 太守卽遣人隨其往, 尋向所志, 遂迷不復得路. 南陽劉子驥, 高尙士也. 聞之, 欣然規往. 未果, 尋病終. 後遂無問津者. 

<『陶淵明集』 卷6> 

晉나라 太元 연간(A.D 377-397년), 武陵에 고기를 잡는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시내를 따라 가다가 어디쯤인지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배는 어느새 복숭아 꽃이 강 양켠으로 흐드러진 곳을 지나고 있었다. 수백보의 꽤 긴 거리를 그렇게 배는 흘러갔는데, 잡목은 보이지 않고 향기 드높은 꽃들이 선연히 아름답게 피어 있었으며 꽃잎들은 분분히 날리며 떨어지고 있어 어부는 아주 기이하게 여겼다.

앞이 궁금하여 계속 나아가니 숲이 끝나는 곳에 水源이 있었고 그곳에 산이 하나 막아섰다. 거기에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동굴입구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구멍이 아주 좁아 사람 하나 정도 들어갈 만하더니, 몇 십 발자국 나서자 시야가 훤하게 트여왔다.
너른 들판에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름진 전답이며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나 대나무 등속이 눈에 들어왔다. 옛날의 (즉 진시황 이전의) 토지구획 그대로 개와 닭 소리가 한가로이 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가며 경작하고 있었는데 남녀가 입은 옷이 모두 이국풍이었다. 기름도 바르지 않고 장식도 없는 머리를 하고, 한결같이 기쁨과 즐거움에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어부를 보더니 크게 놀라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더니 집으로 초대해 술을 내고 닭을 잡아 음식을 베풀어 주었다. 낯선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돌아 모두들 찾아와 이것저것 물었다. 자기네들은 옛적 선조들이 秦 통일기의 난을 피해 처자와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에 왔는데, 그 이후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바람에 외부와 격절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대체 어느 시대냐고 묻기도 했다. 秦 이후 漢이 선 것도, 漢 이후 魏晉시대가 온 것도 알지 못했다. 어부가 아는 대로 일일이 대꾸해주자 모두들 놀라며 탄식했다. 사람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그를 집으로 초대해 술과 음식을 내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머문 후, 어부는 이제 가봐야 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가운데 누군가가 바깥 세상에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어부는 동굴을 나서서 배에 올라, 방향을 잡아 나가면서 곳곳에 표식을 해 두었다. 고을로 돌아와 태수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더니, 태수는 사람을 보내 오던 길을 되짚어 표식을 더듬어 나가게 했으나 다시 그 길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南陽의 劉子驥는 뜻이 높은 隱者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며 그곳을 찾아가려 했으나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그 후로는 그곳을 다시 찾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