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两小儿辩日

solpee 2014. 7. 7. 08:47

两小儿辩日

                                                 文选自《列子·汤问》

 

孔子东游,见两小儿辩斗,问其故。
一儿曰:“我以日始出时去人近,而日中时远也。”
一儿以日初出远,而日中时近也。
一儿曰:“日初出大如车盖,及日中则如盘盂(yú),此不为远者小而近者大乎?”
一儿曰:“日初出沧(cāng)沧(cāng)凉凉,及其日中如探汤,此不为近者热而远者凉乎?”
孔子不能决也。
两小儿笑曰:“孰(shú)为汝(rǔ)多知(zhì)乎?”(shú wèirǔ duōzh hū)

 

孔子가 동쪽 지역을 여행할 때였다. 두 아이가 말다툼하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더니 한 아이가 말했다.

"나는 해가 막 떠오를 때 사람에게서 가까이 있고, 낮에 하늘 한가운데 있을 때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아이는 해가 막 떠오를 때 멀리 있고, 하늘 한가운데 있을 때 가깝다고 하였다. 먼저 아이가 그 이유를 말했다.

"해가 막 떠오를 때는 크기가 수레덮개만하지만, 낮에 하늘 한가운데 있을 때에는 반만할 뿐이지요. 이는 멀리 있어서 작고 가까이 있어서 크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자 다른 아이도 그 이유를 말했다.
"해가 막 떠오를 때에는 서늘했는데, 하늘 한가운데 있을 때는 화로처럼 뜨겁지요, 이는 가까이 있어서 뜨겁고, 멀리 있어서 서늘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닙니까?"

하지만 공자도 그 다툼을 판결하여 줄 수 없었다. 그러자 두 아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도대체 누가 당신을 똑똑하다고 하였습니까
?"


 

七藤八葛qīténgbāgě

이리저리 얽히고 꼬여 이른바 아수라장속을 말한다.

 

七藤八葛은 다산이 즐겨쓴 표현이다. 등넝쿨이 일곱인데 칡넝쿨은 여덟이다. 이 둘이 겹으로 칭칭 엉켰으니 어찌 풀 수 있겠는가?

뒤죽박죽 손댈 수 없는 葛藤의 상태를 말한다.

 

'樂書孤存'에서는 '꼬리는 머리를 돌아보지 못하고, 왼편은 오른편을 건너보지 못한다. 열 번 고꾸라지고 아홉 번 엎어지며, 일곱이 등넝쿨이면 여덟은 칡넝쿨인데도 근거 없는 말로 꾸미려든다(尾不顧首, 左不顧右, 十顚九踣, 七藤八葛, 以飾其無稽之言)'고 썼다. 칠등팔갈에 百綰千結을 붙여 쓰기도 했다. 백 번 얽어매고 천 번 묶었다는 말이다.

'弊策'에서는 이렇게 논파했다. "사물이 오래되어 폐단이 생기는 것은 이치가 그렇다. 성인으로 성인을 잇게 해도 더하고 덜함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후세의 법이겠는가? 안으로는 온갖 기관의 폐단이 소털처럼 많고, 밖으로 여러 고을의 폐단은 고슴도치 가시 같다. 백 군데에 구멍이 나고 천 곳에 부스럼이 돋아 도무지 막을 수 없는 것은 폐단의 근원이요, 칠등팔갈을 어찌 해 보기 어려운 것은 폐단의 가지이다. 사농공상에 저마다 폐단이 있고, 軍田과 錢穀도 폐단 없는 곳이 없다. 이제 분발해 일으켜서 이목을 일신코자 해도 어디로부터 말미암이겠는가? 中和의 덕을 이루고 임금의 덕을 힘쓰라는 것은 상투적인 말일 뿐이고, 인재를 얻어서 상벌을 밝게 하라는 말은 그저 해보는 소리일 뿐이다(大抵物久而弊, 物之理也. 以聖承聖, 尙有損益, 況於後世之法乎. 內而百司, 其弊如牛毛, 外而諸路, 其弊如猬刺. 百孔千瘡, 莫遏者弊源也, 七藤八葛, 難理者弊條也. 士農工商, 各有其弊, 軍田錢穀, 無不受弊. 今欲奮發興作, 一新耳目, 則其道何由. 致中和勉君德, 無非套語, 得人材明賞罰, 都是例談)."

가파른 산길의 등넝쿨과 칡넝쿨은 이것으로 더위잡아 오르기도 한다. 攀藤附葛이 그것이다. 그런데 저희끼리 얽히고설켜 서로 잡아먹겠다고 으르렁대니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名称】攀藤附葛
【拼音】pān téng fù gě
【解释】攀附着藤葛前进。极言道路艰难。
【出处】元·无名氏《暗度陈仓》第三折:“峨嵋岭下,攀藤揽葛采樵人。”

 

韓愈 過鴻溝

 

龍疲虎困割川原 / 용은 지치고 범도 피곤하여 강과 들을 나누어 가졌다.  

億萬蒼生性命存 / 이로 인해 억만창생의 목숨이 살아 남게 되었네.

誰勸君王回馬首 / 누가 임금에게 권하여 말머리를 돌리게 하고,   

眞成一擲賭乾坤 / 참으로 한 번 던져 하늘과 땅을 걸게 만들었던고

   

 이 글은 한유가 옛날 項羽와 劉邦이 싸우던 鴻溝라는 곳을 지나다

楚 ·漢의 옛 일이 생각나서 지은 글이다.

 

 

秦나라 말기에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는 군웅들의 물고 물리는 싸움으로 발전한 끝에 유방의 漢나라와 항우의 楚나라 양대 세력의 천하 쟁탈전으로 간추려졌다. 처음에는 항우가 우세했으나 韓信, 張良, 陳平 같은 유능한 참모들의 보필을 받은 유방의 善戰 끝에 마침내 가늠의 저울추가 유방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하여 鴻溝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는 조건으로 패권 다툼을 그만두고 각자 도읍으로 철수하기로 했으나, 유방은 장양과 진평의 조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급작스럽게 치는 바람에 항우는 참패하고 垓下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포위되고 말았다.

여기에서 乾坤一擲의 고사가 나오게 되었다.


이때 항우는 范增 같은 유능한 참모까지 잃고 병사들은 지쳤으며 군량까지 떨어져서 지난날의 패기만만한 그가 아니었다. 성 안에 고립된 항우에게 유일한 낙이요 위안은 통칭 虞美人이라고 하는 虞姬라는 존재였다. 그녀의 사랑을 받으며 화풀이 술 한 잔 들이키면 그런대로 잠시나마 시름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겹겹이 둘러싸인 한나라군 진영에서 난데없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四面楚歌의 고사가 나온 장면이다.

항우는 마지막 주연을 열어 비분한 감정을 노래로 읊었고, 우희는 눈물을 흘리면서 화답의 춤을 추었다.

力拔山兮氣蓋世 /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었건만
時不利兮騅不逝 / 시운이 불리하고 추는 나아가지 않는구나
騅不逝兮可奈何 /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虞兮虞兮奈若何 /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을까

 

여기서 말하는 ‘추’란 항우가 자기 몸처럼 여겨 온 준마 烏騅馬를 이른다. 이 노래를 끝으로 우희는 칼로 목을 찔러 자결했고, 항우는 죽을 힘을 다해 결전을 벌여 포위망을 돌파한 끝에 烏江까지 다다랐다가 추격 부대 속에 몸을 던져 장렬한 최후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