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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낸 아버지의 편지

solpee 2014. 5. 19. 11:08

- 삼백스물세 번째 이야기
2014년 5월 19일 (월)
딸에게 보낸 아버지의 편지
  청년층의 취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취업 준비를 위해 졸업을 늦추는 ‘졸업 유예생’이 부쩍 늘었는가 하면, 아예 학업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이른바 ‘공무원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되면서도, 생존을 위해서는 배움에도 점점 실리적이 되어가는 우리네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맹자(孟子)가 말했듯이 사람이 배우는 것은 훗날 그 지식을 쓰기 위해서겠지만, 인간의 모든 행위를 목적 달성을 위한 방편으로만 볼 수는 없다. 특히 배움에 대한 열망은 결과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숭고한 가치를 지닌다.

  편지를 보고 네가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손윗동서들을 받들며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이다. 딸자식을 낳으면 출가시켜 가정을 꾸리게 해 주려는 것이 세상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그러니 네가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네가 잘살고 있어서 기쁘다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내 마음이 기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의 만 가지 일이 모두 효(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편지에서 네가 길쌈은 제쳐 두고 글공부만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모르는 행동이다. 네가 시집가기 전에 아비인 내가 농사일과 학문을 병행하느라고 바빠 경황이 없으면서도 둘 다 하루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던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글을 읽지 않으면 식견이 어둡고 의리를 알지 못해 금수와 다름이 없게 되며, 생업에 힘쓰지 않으면 부모와 자식을 굶주리고 궁핍하게 하여 유랑하는 처지를 면치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역사 이래 문을 닫아걸고 의리를 지키며 굶어 죽는 상황이 되도록 변심하지 않은 자가 몇이나 있었더냐. 필경에는 분의(分義)를 범하고 염치를 잊어 못하는 짓이 없는 데까지 이르며, 지혜와 능력이 고갈되고 형세와 힘이 다하여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달픈 일이다. 내가 이렇게 될까 두려워서 집안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각각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잠시도 편안히 쉬지 못하게 해 왔던 것이다. 이는 남녀와 귀천을 막론하고 각각 타고난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네가 길쌈을 제쳐 두고 있다 하니 이는 자신의 본분을 너무도 모르는 행동이다. 네가 앞으로 글을 가지고 먹고 살려는 것이냐? 너는 주(周)나라 태임(太任)과 태사(太姒)1)의 현명함을 알지 않느냐? 「갈담(葛覃)」2)에 담긴 삶의 태도는 실제로 주나라 8백 년 역사의 기틀이 되었던 것이다.


1) 태임(太任)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어머니, 태사(太姒)는 문왕의 부인이자 무왕(武王)의 어머니이다.

2)『시경(詩經)』의 편명으로, 주나라 후비(后妃)가 몸소 길쌈하고 옷을 빨아 입는 근면하고 검소한 덕을 노래한 것이다.


見汝書, 知汝上奉舅姑, 下侍妯娌, 怡愉歡樂, 此人倫樂事. 女子生而願爲之有家, 父母之心, 人皆有之, 吾安得不喜悅耶? 如此而吾喜, 則不如此時, 吾心喜耶不喜耶? 故人家萬事, 無論出入內外、巨細本末, 不外一孝字也. 見書云“不治紡績, 專攻文墨”, 此則可謂大失次序. 汝在家時, 見吾一邊耕織, 一邊簡策, 遑遑汲汲, 未甞敢一日偏廢而恬嬉怠惰也. 其故何也? 不讀書則識見昏昧, 義理榛塞, 人將禽獸矣; 不治生則將凍餒父母, 空乏子孫, 未免塡壑矣. 不惟此也. 千古杜門守義, 餓死不變心者幾人? 其勢必犯義犯分, 忘廉忘耻, 無所不至, 知盡能索, 勢窮力竭而死, 嗚呼哀矣! 吾爲此懼, 使一家內外、大小、卑尊、老幼, 孜孜勤勤, 各執其業, 各攻其職, 未敢一刻寧息, 蓋男女貴賤, 各有天職, 失其職則死故耳. 聞汝廢紡績, 則失職莫大於此. 汝將以文字喫着乎? 汝知太任、太姒乎? 葛覃實周家八百年之基業也.
 
-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답김씨부(答金氏婦)」, 『화서집(華西集)』

  
  19세기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창시자인 이항로가 시집간 딸에게 보낸 편지다. 유교 사회였던 조선 시대 문인들의 문집(文集)에서 여성에게 보낸 편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데, 이항로의 문집에는 딸에게 준 네 통의 편지가 남아 있다. ‘김실이[金氏婦]’로 지칭된 이 여성은 이항로의 둘째 딸로, 그 남편 김재룡(金在龍)은 이항로의 제자였으며, 김재룡의 부친은 이항로와 절친한 벗이었다.

  이항로의 둘째 딸은 글공부를 하였고, 시집가기 전에 사서(四書)와 『시경(詩經)』 등 웬만한 유학 경전은 다 익혔던 듯하다. 그녀는 시집을 가서도 집안 살림보다 글을 읽는 데 더 열중하였다. 그러자 이항로는 아버지인 자신도 평생 공부 때문에 생계를 도외시한 적이 없다고 애써 강조하며 딸을 나무랐다.

  딸자식을 잘못 가르친 듯해서 사위와 사돈에게 면목이 없고, 사돈댁 식구들이 수군거리며 흉볼 것을 생각하며 당황했을 이항로의 심정이 짐작된다. “글을 가지고 먹고 살려는 것이냐?” 이 말은 그 시대의 친정아버지로서는 당연한 말이었고, 정확한 지적이기도 했다. 이항로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자존도 지켜낼 수 없는 법이라며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기를 당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편지를 받은 이항로의 딸은 제 본분을 지키며 살라는 아버지의 나무람에 십분 수긍이 갔을까? 그보다 앞서 그녀는 여성으로서는 배워봐야 써먹을 데도 없는 공부를 애당초 해서는 안 되었던 것일까? 술을 먹는 것도, 도박을 하는 것도, 부정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그녀가 무척 안쓰럽다.

  누구든지 원하고 노력하는 만큼 배울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외형적으로는 교육의 기회가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지는 듯해도, 개인이 누리는 교육의 질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지만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신용불량자가 되어 버리거나, 생계 때문에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너무도 많다.

  사회가 요구하는 ‘학벌’을 갖추기에도 힘겨운 그들에게 젊은이다운 열정과 패기로 학문에만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거 이항로의 딸은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문적 열정을 비난받았지만,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공부해야 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도 안쓰럽기는 매한가지이다.


  

  
조순희 글쓴이 : 조순희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역서
    - 『홍재전서』, 『국조보감』,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번역에 참여
    - 『국역 기언 5』,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명재유고12』, 한국고전번역원, 2008
    - 『국역 허백당집3ㆍ4』, 한국고전번역원, 2011~2012
    - 『국역 회재집』, 한국고전번역원, 2013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