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보고 네가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손윗동서들을 받들며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이다. 딸자식을 낳으면 출가시켜 가정을 꾸리게 해 주려는 것이 세상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그러니 네가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네가 잘살고 있어서 기쁘다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내 마음이 기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의 만 가지 일이 모두 효(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편지에서 네가 길쌈은 제쳐 두고 글공부만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모르는 행동이다. 네가 시집가기 전에 아비인 내가 농사일과 학문을 병행하느라고 바빠 경황이 없으면서도 둘 다 하루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던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글을 읽지 않으면 식견이 어둡고 의리를 알지 못해 금수와 다름이 없게 되며, 생업에 힘쓰지 않으면 부모와 자식을 굶주리고 궁핍하게 하여 유랑하는 처지를 면치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역사 이래 문을 닫아걸고 의리를 지키며 굶어 죽는 상황이 되도록 변심하지 않은 자가 몇이나 있었더냐. 필경에는 분의(分義)를 범하고 염치를 잊어 못하는 짓이 없는 데까지 이르며, 지혜와 능력이 고갈되고 형세와 힘이 다하여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달픈 일이다. 내가 이렇게 될까 두려워서 집안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각각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잠시도 편안히 쉬지 못하게 해 왔던 것이다. 이는 남녀와 귀천을 막론하고 각각 타고난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네가 길쌈을 제쳐 두고 있다 하니 이는 자신의 본분을 너무도 모르는 행동이다. 네가 앞으로 글을 가지고 먹고 살려는 것이냐? 너는 주(周)나라 태임(太任)과 태사(太姒)1)의 현명함을 알지 않느냐? 「갈담(葛覃)」2)에 담긴 삶의 태도는 실제로 주나라 8백 년 역사의 기틀이 되었던 것이다.
1) 태임(太任)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어머니, 태사(太姒)는 문왕의 부인이자 무왕(武王)의 어머니이다.
2)『시경(詩經)』의 편명으로, 주나라 후비(后妃)가 몸소 길쌈하고 옷을 빨아 입는 근면하고 검소한 덕을 노래한 것이다. 見汝書, 知汝上奉舅姑, 下侍妯娌, 怡愉歡樂, 此人倫樂事. 女子生而願爲之有家, 父母之心, 人皆有之, 吾安得不喜悅耶? 如此而吾喜, 則不如此時, 吾心喜耶不喜耶? 故人家萬事, 無論出入內外、巨細本末, 不外一孝字也. 見書云“不治紡績, 專攻文墨”, 此則可謂大失次序. 汝在家時, 見吾一邊耕織, 一邊簡策, 遑遑汲汲, 未甞敢一日偏廢而恬嬉怠惰也. 其故何也? 不讀書則識見昏昧, 義理榛塞, 人將禽獸矣; 不治生則將凍餒父母, 空乏子孫, 未免塡壑矣. 不惟此也. 千古杜門守義, 餓死不變心者幾人? 其勢必犯義犯分, 忘廉忘耻, 無所不至, 知盡能索, 勢窮力竭而死, 嗚呼哀矣! 吾爲此懼, 使一家內外、大小、卑尊、老幼, 孜孜勤勤, 各執其業, 各攻其職, 未敢一刻寧息, 蓋男女貴賤, 各有天職, 失其職則死故耳. 聞汝廢紡績, 則失職莫大於此. 汝將以文字喫着乎? 汝知太任、太姒乎? 葛覃實周家八百年之基業也. -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답김씨부(答金氏婦)」, 『화서집(華西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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