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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追王法謾虛名

solpee 2014. 4. 30. 16:55

 

◉ 近觀柳子厚,劉夢得以學書相贈答諸詩. 戱笑中猶有相勸勉之意. 令白頭翁不禁操觚弄墨之興. 各取其末一絶. 次韻奉呈彦遇.
筆追王法謾虛名.

習氣還同不樂京.

歸寫道經非我事.

臨池忘老作眞行.

 

王羲之雅好服食養性. 不樂在京. 故云.
白首攻書恨未成.

客來攜卷摠循名.

唯君筆力堪追古.

莫惜加工振美聲.        [출전: 退溪先生文集卷之五續內集]

 

 

앞 답변에서 첫 부분을 "유자후를 가까이서 보고 유몽득이 배운 글로 서로 주고받은 여러 시"라고 했는데 이것은 첫 구절을 제목으로 보고 잘 못 해석한 결과입니다. 실은 긴 구절이 모두 제목입니다.

 

 

近觀柳子厚,劉夢得以學書相贈答諸詩。戲笑中猶有相勸勉之意。令白頭翁不禁操觚弄墨之興。各取其末一絶。次韻奉呈彦遇。

"최근 류자후(柳宗元, 773~819)와 류몽득(劉禹錫, 772~842)이 서체(書體)를 배우는 일로 인해 서로 주고받은 여러 수의 시를 보았다. 희롱하고 웃는 가운데 서로 권면하는 뜻이 있어 머리 흰 늙은이가 붓을 잡고 먹을 가지고 노는 흥을 이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각기 그 마지막의 한 구절을 취하여 운자를 따서 시를 지어 언우(金富弼, 1516~1577)에게 바친다."

 

筆追王法謾虛名。왕희지 필체를 추구하는 것은 허울 좋은 이름뿐이지만

習氣還同不樂京。그래도 버릇과 기질은 똑같아 서울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歸寫道經非我事。"도덕경"을 쓰고 돌아가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臨池忘老作眞行。못 앞에서 늙음을 잊고 진행(眞行)을 열심히 연습한다네.

 

王羲之雅好服食養性。不樂在京。故云。

왕희지는 원래 복식(服食)과 양성(養性)을 좋아했고, 서울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白首攻書恨未成。흰 머리로 글씨공부 하지만 제대로 이루지 못해 한스럽고

客來攜卷摠循名。손님들 두루마리를 들고 오지만 모두 이름만 좇는 것이네.

唯君筆力堪追古。오직 그대의 필력(筆力)이 옛사람을 따라갈 만하니

莫惜加工振美聲。아낌없이 더 노력해서 아름다운 명성 떨치시구려.

 

                                                           [해석: 류주환]

 

☞.走獐落兎

노루를 쫓다가 토끼를 놓침. 즉 뜻 밖의 손해를 본다는 말.

반대로 노루를 쫓다가 토끼를 얻는다로 해석할 수도 있음.

 

☞.栗谷先生指出“五日存心。谓学者欲身之修,必须内正其心,不为物诱,然后天君泰然,百邪退伏,方进实德。故学者先务当静坐存心。寂然之中不散乱,不昏昧,以立大本。

 

☞.子孫的名 : 1代:子, 2代:孫, 3代:曾孫, 4代:高(玄)孫, 5代:來孫, 6代;昆孫, 7代:仍孫, 8대: 雲孫 .

 

☞.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 污濁濊土


금강경에 일체의 형체 있는 모든 것은
꿈같고 환상같고 물거품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은 것이니

이를 잘 관찰하여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이를 더럽고 탁하며 흐릿한 땅이라

 

☞. 说曹操, 曹操就到 [ shuō Cáocāo, Cáocāo jiù dào ]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

  

☞. 誰咎誰怨

【풀이】:"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남을 원망하거나 탓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

【사용】:제가 불민한 탓으로 이런 일을 당하였으니 수원수구할 여지가 있겠읍니까?

19세기 유씨 부인이 부러진 바늘을 아쉬워하며 쓴 '조침문'(弔針文)의 한 대목에 "오호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수원수구(誰怨誰咎)하리오…."

 

※. 백인유아(伯仁由我):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죽은 사람에 대해 자신이 일정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것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다. 어떤 사건에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출전: 진서)
= 유아지탄

 

【成语】伯仁由我而死
【拼音】bó rén yóu wǒ ér sǐ
【释义】伯仁:晋周顗的字。表示对别人的死亡负有某种责任。

 

【原文出处】吾虽不杀伯仁,伯仁由我而死。 ——出自《晋书·周顗传》

司空导帅其从弟中领军邃、左卫将军廙、侍中侃、彬及诸宗族二十馀人,每旦诣台待罪。周顗将入,导呼之曰:“伯仁,以百口累卿!”顗直入不顾。既见帝,言导忠诚,申救甚至;帝纳其言。顗喜饮酒,至醉而出,导犹在门,又呼之。顗不与言,顾左右曰:“今年杀诸贼奴,取金印如斗大,系肘后。”既出,又上表明导无罪,言甚切至。导不之知,甚恨之。(司空即为王导的官职,其后记载均为王氏家族的官职与人名)
帝召周顗于广室,谓之曰:“近日大事,二宫无恙,诸人平安,大将军固副所望邪?”顗曰:“二宫自如明诏,臣等尚未可知。”护军长史郝嘏等劝顗避敦,顗曰:“吾备位大臣,朝廷丧败,宁可复草间求活,外投胡、越邪!敦参军吕猗,尝为台郎,性奸谄,戴渊为尚书,恶之。猗说敦曰:“周顗、戴渊,皆有高名,足以惑众,近者之言,曾无怍色,公不除之,恐必有再举之忧。”敦素忌二人之才,心颇然之,从容问王导曰:“周、戴南北之望,当登三司无疑也。”导不答。又曰:“若不三司,止应令仆邪?”又不答。敦曰:“若不尔,正当诛尔!”又不答。丙子,敦遣部将陈郡邓岳收顗及渊。(由此看出伯仁之死,亦有小人进谗陷害,自身有恃才放旷,但实为耿直之士,由言可见.)
顗被收,路经太庙,大言曰:“贼臣王敦,倾覆社稷,枉杀忠臣。神祇有灵,当速杀之!”收人以戟伤其口,血流至踵,容止自若,观者皆为流涕。并戴渊杀之于石头南门之外。(这是伯仁死前的描写.)
王导后料检中书故事,乃见顗救己之表,执之流涕曰:“吾虽不杀伯仁,伯仁由我而死,幽冥之中,负此良友!”
——出自《资治通鉴》·卷第九十二 

 

yuàn jiù
怨咎
埋怨,责备。《左传·昭公八年》:“小人之言,僭而无徵,故怨咎及之。”《三国志·吴志·张昭传》:“领丞相事烦,而此公性刚,所言不从,怨咎将兴,非所以益之也。” 唐 戴叔伦 《同兖州张秀才过王侍御参谋宅赋十韵》:“十年官不进,歛迹无怨咎。” 宋 陈善 《扪虱新话·东坡文字好嫚骂》:“﹝ 东坡 ﹞又尝自言:‘性不慎语言,与人无亲疎,辄输写肝胆,有所不尽如茹物不下,必吐尽而已,而世或记疏,以为怨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