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枝茂香凝

solpee 2014. 4. 11. 17:05

 

1.同自然之妙有 非於運之能成

 

2. 積土成山,風雨興焉;積水成淵,蛟龍生焉;

積善成德,而神明自得,聖心備焉。

故不積跬步,無以致千里;不積小流,無以成江海。

 

【出典《 荀子》 勸學篇 第一

 

 《勸學》

 君子曰 學 不可以已 靑 取之於藍 而靑於藍 冰水爲之 而寒於水.

 木直中繩 輮以爲輪 其曲中規 雖有槁暴 不復挺者 輮使之然也. 故

  木受繩則直 金就礪則利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 則知明而行無過矣.

 

군자가 이같이 말했다.

“학문은 그치지 않아야 한다. 청색(靑色)은 남색(藍色)에서 취하나 남색보다 더 푸르다. 얼음은 물이 얼어 되는 것이나 물보다 더 차다.

나무가 곧아 먹줄과 일직선이 될지라도 구부려 수레바퀴를 만들어 그 구부러진 것이 동그라미와 맞으면 비록 마르더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것은 수레바퀴가 그러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아지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진다.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세 번씩 자신의 몸을 살피면 지식은 밝아지고 행동하는데 허물이 없게 된다.

 

故不登高山,不知天之高也;不臨深谿,不知地之厚也;不聞先王之遺言,不知學問之大也。干越夷貊之子,生而同聲,長而異俗,敎使之然也。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것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계곡에 이르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것을 알지 못하고, 옛 군왕의 유언(遺言)을 듣지 못하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간(干: 오나라에 있던 나라로 오나라를 지칭)과 월(越), 이(夷: 동쪽의 이적), 맥(貊: 북쪽의 이적)의 자식들도 태어났을 때는 같은 소리를 내지만 자랄수록 풍습이 달라지는 것은 가르침이 다르기 때문이다.

 

《詩》曰:「嗟爾君子,無恒安息。靖共爾位,好是正直。神之聽之,介爾景福。」神莫大於化道,福莫長於無禍

「시경(詩經)」「소아(小雅)?소명(小明)」에서 이같이 말했다.

“아아, 그대 군자들이여, 항상 안식(安息: 편히 쉼)하려고만 하지 말라. 그대의 직위를 삼가 잘 다스리고 정직한 자를 좋아하라. 신명이 들으면 그대에게 경복(景福: 큰 복)을 내리리라.”

 

 吾嘗終日而思矣,不如須臾之所學也。吾嘗跂而望矣,不如登高之博見也。

登高而招,臂非加長也,而見者遠, 順風而呼,聲非加疾也,而聞者彰。

假輿馬者,非利足也,而致千里, 假舟楫者,非能水也,而絶江河。

君子生非異也,善假於物也。

 

나는 일찍이 하루 종일 생각만 해 본 일이 있었으나 수유지학(須臾之學: 잠깐 동안 공부함)만도 못했다.

나는 일찍이 기망(跂望: 발돋움을 하여 바라봄)한 적이 있었으나 등고박견(登高博見: 높이 올라가 널리 바라봄)만 못했다.

높이 올라가 손짓을 하면 팔이 더 길어지는 것은 아니나 멀리서도 보이고,

바람방향을 따라 소리치면 소리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니나 분명히 들리고,

여마(輿馬: 수레와 말)를 타면 발이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니나 천 리를 갈 수 있고,

주집(舟楫: 배와 노)을 이용하면 물에 익숙지 않더라도 강하(江河)를 절(絶: 가로질러 건너감)할 수 있다.

이는 군자가 나면서부터 남과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南方有鳥焉,名曰蒙鳩,以羽爲巢,而編之以髮,繫之葦苕,風至苕折,卵破子死。巢非不完也,所繫者然也。

西方有木焉,名曰射干,莖長四寸,生於高山之上,而臨百仞之淵,木莖非能長也,所立者然也。

蓬生麻中,不扶而直;白沙在涅,與之俱黑。蘭槐之根是爲芷,其漸之滫,君子不近,庶人不服。其質非不美也,所漸者然也。

 

남방에 새가 있으니 그 이름을 몽구(蒙鳩: 뱁새)라고 했다. 자기 깃으로 둥지를 만들고 머리털로 이어 위초(葦苕: 갈대이삭)에 매 놓는다. 바람이 불어와 이삭이 꺾이면 그 속의 알이 깨지고 새끼도 죽는다. 이는 둥지가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곳에 매 놓았기 때문이다.

서쪽에 나무가 있으니 그 이름을 야간(射干: 烏扇으로도 불리는 서쪽 고산식물)이라고 했다. 줄기의 길이는 4촌(寸: 치)이지만 고산의 위에 자라고 있어 백인지연(百仞之淵: 백 길이 되는 심연)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나무의 줄기가 길기 때문이 아니라 고산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쑥대가 삼대밭 속에서 자라면 부축해 주지 않아도 곧다. (흰모래가 개흙 속에 있으면 모두 함께 검어진다) 난괴(蘭槐: 향초의 일종)의 뿌리는 바로 지(芷: 향료)가 된다. 그것을 수(滫: 뜨물)에 담가 두면 군자도 가까이 하지 않고, 서인(庶人)도 그것을 몸에 차지 않는다. 이는 그 바탕이 아름답지 않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그런 곳에 담가 두었기 때문이다.

 

故君子居必擇鄕,遊必就士,所以防邪僻而近中正也

그래서 군자는 머물 때 반드시 택향(擇鄕: 고을을 가림)하고, 노닐 때는 반드시 취사(就士: 선비들과 어울림)하는 것이다. 이는 사벽(邪僻)을 막고, 중정(中正)에 가까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物類之起,必有所始。榮辱之來,必象其德。肉腐出蟲,魚枯生蠹。怠慢忘身,禍災乃作强自取柱,柔自取束。邪穢在身,怨之所構。施薪若一,火就燥也,平地若一,水就溼也。草木疇生,禽獸群焉,物各從其類也。

 

사물의 기원은 반드시 시초가 있다. 영욕(榮辱)이 오는 것은 반드시 그 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고, 생선이 마르면 좀벌레가 생긴다. 태만하여 자신을 망각하면 재앙이 닥친다. 강한 것은 잘려서 기둥감이 되고, 약한 것은 베어져 다발로 묶이게 된다(강한 것은 스스로 떠받치고 서지만 유약한 것은 스스로 묶이게 된다-劉師培 荀子補釋). 사예(邪穢: 간사함과 더러움)가 몸에 있으면 원망이 따르게 된다.

땔나무를 펼쳐 하나 같이 해도 불은 건조한 곳부터 붙기 시작하고, 땅을 고르게 해 하나 같이 해도 물은 축축한 곳부터 적실 것이다.

초목(草木)은 주생(疇生: 밀집해 자람)하고, 금수(禽獸)는 군생(群生: 무리지어 살아감)한다. 사물은 각기 그 종류를 따르기 마련이다.

 

是故質的張,而弓矢至焉;林木茂,而斧斤至焉,樹成蔭而衆鳥息焉。醯酸而蜹聚焉。故言有招禍也,行有招辱也,君子愼其所立乎

 

그래서 질적(質的: 표적과 둥근 과녁)을 펼치면 궁시(弓矢: 활과 화살)가 이르고, 임목(林木: 숲)이 무성하면 부근(斧斤: 도끼)이 다가오는 것이다.

나무가 그늘을 이루면 중조(衆鳥: 새떼)가 휴식하고, 혜산(醯酸: 식초)이 시어지면 예(蜹: 바구미)가 모여든다.

그래서 말은 화를 부르고, 행동은 욕을 부르는 까닭에 군자는 그의 처지에 따라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하는 것이다.

 

積土成山,風雨興焉,積水成淵,蛟龍生焉, 積善成德,神明自得,聖心備焉。

故不積蹞步,無以致千里,不積小流,無以成江海騏驥一躍,不能十步, 駑馬十駕,則亦及之, 功在不舍。鍥而舍之,朽木不折, 锲而不舍,金石可鏤。

 

흙이 쌓여 산이 되면 풍우(風雨)가 인다. 물이 모여 못이 되면 교룡(蛟龍)이 살게 된다. 선(善)이 쌓여 덕(德)을 이루면 절로 신명(神明)을 얻게 되고, 성심(聖心)이 갖춰진다. 그래서 규보(蹞步: 반 걸음)가 쌓이지 않으면 천리를 갈 수 없고, 소류(小流)가 쌓이지 않으면 강해(江海)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기기(騏驥: 준마의 일종)도 한 번 뛰어 10보(十步)를 갈 수 없고, 노마(駑馬: 둔한 말)도 10가(十駕: 열배의 시간과 힘을 들여 수레를 끈다는 뜻으로 준마가 한번 끄는 것보다 더 멀리 간다는 뜻임)할 수 있다.

공이 이룩되는 것은 불사(不舍: 멈추지 않음)에 있다. 계(锲: 칼로 끊음)하다 중단하면 후목(朽木: 썩은 나무)도 자를 수 없고, 중단하지 않으면 금석(金石)일지라도 가히 루(鏤: 금속에 새겨 넣음)할 수 있다.

 

 

螾無爪牙之利,筋骨之强,上食埃土,下飮黃泉,用心一也。蟹八跪而二螯,非虵蟺之穴,無可寄託者,用心躁也。是故無冥冥之志者,無昭昭之明;無惛惛之事者,無赫赫之功。行衢道者不至,事兩君者不容。目不能兩視而明,耳不能兩聽而聰。螣蛇無足而飛,梧鼠五技而窮。

《詩》曰:「尸鳩在桑,其子七兮。淑人君子,其儀一兮。其儀一兮,心如結兮。」故君子結於一也。

 

(: 곧 蚓으로 지렁이)은 조아(爪牙: 발톱고 이빨)의 날카로움과 근골(筋骨)의 힘이 없으나 위로는 애토(埃土: 티끌과 흙)를 먹고, 아래로는 황천(黃泉: 땅 속의 물)을 마신다. 이는 용심(用心: 마음을 씀)을 하나같이 하기 때문이다.

해(蟹: 게)는 8궤2오(八跪二螯: 8개의 발과 2개의 집게)를 갖고 있지만 사선(虵蟺: 鱓으로 뱀장어류의 물고기)의 굴이 아니면 가히 기탁(寄託)할 곳이 없는 것은 용심이 산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명지지(冥冥之志: 한결 같은 뜻)가 없는 자는 소소지명(昭昭之明: 밝은 깨우침)이 없고, 혼혼지사(昏昏之事: 묵묵히 정성을 다하는 일)가 없는 자는 혁혁지공(赫赫之功: 뛰어난 공)이 없는 것이다.

구도(衢道: 사방으로 통하는 갈림길)에서 헤매는 자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두 군주를 섬기는 자는 누구에게도 용납되지 못한다. 눈은 두 가지를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보지 않기에 밝고, 귀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듣지 않기에 밝은 것이다.

등사(螣蛇: 구름과 안개를 일으키는 용의 일종)는 발이 없어도 하늘을 날지만 오서(梧鼠: 鼫鼠로 날다람쥐)는 다섯 가지 재주를 갖고도 곤궁하다.

「시경」「조풍(曹風),시구(尸鳩)」에서 이같이 말했다.

“시구(尸鳩: 뻐꾸기)가 뽕나무에 있으니 그 새끼가 7마리라네. 숙인군자(淑人君子: 훌륭한 군자)여, 그 거동이 한결같네. 그 거동이 한결같으니 마음이 단단한 듯하네.”

 

그래서 군자의 마음은 하나로 묶은 듯 단단해야만 하는 것이다.  

 

昔者瓠巴鼓瑟,而流魚出聽,伯牙鼓琴,而六馬仰秣。故聲無小而不聞,行無隱而不形。玉在山而草木潤,淵生珠而崖不枯。爲善不積邪,安有不聞者乎!

 

옛날 호파(瓠巴: 「열자」에 금슬을 잘 탄 인물)가 슬(瑟)을 타면 물속의 물고기도 고개를 들고 나와 이를 들었고, 백아(伯牙)가 금(琴)을 타면 천자의 수레를 끄는 6필의 말이 앙말(仰秣: 꼴을 먹으면서 쳐다봄)했다.

그러니 소리는 아무리 작을지라도 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행동은 아무리 숨겨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옥이 산에 있으면 초목이 윤택해지고, 못에 진주가 나면 못가의 언덕이 마르지 않는다. 선을 행하고 사특(邪慝)을 쌓지 않으면 어찌 명성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學惡乎始惡乎終? 曰,其數則始乎誦經,終乎讀禮,其義則始乎爲士,終乎爲聖人。眞積力久則入。學至乎沒而後止也。故學數有終,若其義則不可須臾舍也。爲之, 人也,舍之, 禽獸也。故書者、政事之紀也;詩者、中聲之所止也;禮者、法之大分,群1類之綱紀也。故學至乎禮而止矣。夫是之謂道德之極。

禮之敬文也,樂之中和也,詩書之博也,春秋之微也,在天地之間者畢矣。

 

1. 群 : Deleted. 王念孫《讀書雜志》:「元刻無『群』字,元刻是也」。

 

학문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가.

이르기를, ‘그 방법은 송경(誦經: 경문을 외움)에서 시작해 「예(禮)」를 읽는 것으로 끝나고, 그 뜻은 선비가 되는 데서 시작해 성인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고 했다. 적력(積力: 노력을 쌓음)이 오래 되어야 비로소 그런 경지에 들어갈 수 있으니 학문이란 죽은 뒤에나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학문의 방법에는 끝이 있지만 그 뜻은 수유(須臾)라도 버려둘 수 없다. 학문을 하면 사람이 되고 학문을 버리면 짐승이 된다.

그런데 「서(書)」는 정사(政事)를 기록한 것이고, 「시」는 음악에 맞는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고, 「예」는 법의 대분(大分: 크게 나뉘는 근본)이고 여러 일에 관한 강기(綱紀)이다. 그래서 학문은 「예기」에 이르러 그치는 것이다. 무릇 이를 일컬어 도덕지극(道德之極: 도덕의 지극함)이라고 한다.

「예」의 경문(敬文: 공경과 문식)과 「악(樂)」의 중화(中和: 중용의 조화), 「시」,「서」의 광박(廣博), 「춘추(春秋)」의 은미(隱微)가 천지의 사이에 있게 되면 모든 것을 마치는 것이다.

 

 

君子之學也,入乎耳,著乎心,布乎四體,形乎動靜。端而言,蝡而動,一可以爲法則。小人之學也,入乎耳,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曷足以美七尺之軀哉!古之學者, 爲己,今之學者, 爲人。君子之學也,以美其身;小人之學也,以委禽犢。故不問而告, 謂之傲問一而告二, 謂之囋傲、非也,囋、非也;君子如嚮矣。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나타나 사지에 펴져 동정(動靜)으로 나타난다. 단언(端言: 喘과 같은 뜻으로 소근소근 말한다는 뜻이나 楊倞은 단정히 말함으로 해석)과 윤동(蝡動: 꿈틀거림)이 모두 법칙이 될 만하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온다. 구이지간(口耳之間)은 4치에 불과하니 어찌 7척(尺)의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옛 학자들은 자신을 위해 학문을 했고, 지금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학문을 한다.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이고, 소인이 학문을 하는 것은 금독(禽犢: 상견례 때 갖고 가는 염소와 기러기, 꿩, 오리 등의 폐백으로 남에게 내놓아 이용함을 의미)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묻지도 않았는데 얘기하는 것을 오(傲), 하나를 물었는데 두 가지를 얘기하는 것을 찬(囋)이라고 한다. ‘오’도 그르고 ‘찬’도 그르다. 군자는 소리가 울리듯 일에 따라 적절히 행동한다.

 

 

學莫便乎近其人。禮樂法而不說(=脫) ,詩書故而不切,春秋約而不速。方其人之習君子之說,則尊以遍矣,周於世矣。故曰, 學莫便乎近其人。

학문하는 방법으로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보다 편한 것이 없다.

「예」ㆍ「악」은 법도를 보여주면서 불탈(不說: 빠뜨림이 없다는 뜻으로 說은 脫과 같음)하고, 「시」ㆍ「서」는 옛날을 기록해 놓았으면서 부체(不切: 淺近하지 않음)하고, 「춘추」는 간약(簡約)하면서 불속(不速: 繁數하지 않음)하다.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따라 군자의 말을 익히면 두루 존엄해져 세상에 널리 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학문은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보다 더 편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學之經, 莫速乎好其人,隆禮次之。上不能好其人,下不能隆禮,安特將學雜識志,順詩書而已耳。則末世窮年,不免委陋儒而已。將原先王,本仁義,則禮正其經緯蹊徑也。若挈裘領,詘五指而頓之,順者不可勝數也。不道禮憲,以詩書爲之,譬之猶以指測河也,以戈舂黍也,以錐餐壺也,不可以得之矣。故隆禮,雖未明,法士也;不隆禮,雖察辯,散儒也。

 

학문의 방법은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빠른 길이 없다. 융례(隆禮: 예를 높임)는 그 다음이다.

위로는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융례’를 행하지 못하면 다만 잡지지(雜識志: 잡된 기록서)나 공부하고 「시」ㆍ「서」의 글귀만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리 하면 곧 말세궁년(末世窮年: 세상이 다하고 해가 다함)이 올지라도 누유(陋儒: 비루한 선비)를 면치 못할 것이다.

장차 선왕을 원형으로 하여 인의(仁義)를 근본으로 삼고자 하면 곧 예(禮)가 그 경위혜경(經緯蹊徑: ‘경위’는 씨줄과 날줄로 큰 법도, ‘혜경’은 작은 길)을 바르게 해줄 것이다. 이는 곧 설구령(挈裘領: 갖옷의 옷깃을 들어 올림)할 때 오지(五指)를 굽혀 들어 올리는 이치와 같으니 그 순조로움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예헌(禮憲: 예의 법도)을 말하지 않고 「시」ㆍ「서」의 글귀를 좇아 행하는 것은 마치 이지측하(以指測河: 손가락으로 황하를 잼)와 이과용서(以戈舂黍: 창으로 기장을 빻음), 이추손호(以錐飡壺: 송곳으로 병속의 음식을 먹음)와 같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융례’를 행하면 비록 미영(未明: 통달치 못함)일지라도 법사(法士: 법도 있는 선비)가 되고, ‘융례’를 행하지 못하면 비록 찰변(察辯: 사리에 밝고 말을 잘함)일지라도 산유(散儒: 허튼 선비)가 될 뿐이다.

 

 

問楛者,勿告也;告楛者,勿問也, 說楛者,勿聽也。有爭氣者,勿與辯也。

故必由其道至,然後接之, 非其道則避之。故禮恭,而後可與言道之方, 辭順,而後可與言道之理, 色從而後可與言道之致。故未可與言而言,謂之傲;可與言而不言,謂之隱;不觀氣色而言,謂之瞽。故君子不傲、不隱、不瞽,謹順其身。《詩》曰:「匪交匪舒,天子所予。」此之謂也。

 

문고자(問楛者: 비루한 것을 묻는 자로 ‘楛’는 ‘固’와 통함, 楊倞은 ‘苦’의 뜻으로 풀이)에게는 대답하지 않고, 고고자(告?者: 비루하게 대답하는 자)에게는 묻지 말고, 설고자(說楛者: 비루한 것을 말하는 자)에게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쟁기(爭氣: 다투려는 기운)가 있는 자와는 더불어 논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그 도(道)로 좇아온 연후에 접촉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를 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가 공순한 뒤에 가히 더불어 도의 방법을 말하고, 언사(言辭)가 순한 뒤에 가히 더불어 도의 이치를 말하고, 색종(色從: 낯빛이 부드러움)한 뒤에 가히 도의 극치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불어 말해서는 안 될 때 말하는 것을 ‘오(傲)’, 가히 더불어 말할 수 있을 때 말하지 않는 것을 ‘은(隱)’, 기색을 살피지 않고 말하는 것을 ‘고(?)’라고 한다.

그래서 군자는 불오(不傲)ㆍ불은(不隱)ㆍ불고(不?)를 행하면서 삼가 순리를 좇아 행동하는 것이다.

「시경」「소아,채숙(采菽)」에서 이같이 말했다.

“비교비서(匪交匪舒: 저 사귐이 소홀치 않다는 뜻으로 「시경」에는 ‘비’가 ‘彼’로 되어 있음)하니, 천자가 상을 내렸네.”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百發失一,不足謂善射, 千里蹞步不至,不足謂善御, 倫類不通,仁義不一,不足謂善學。學也者,固學一之也。一出焉,一入焉,涂巷之人也, 其善者少,不善者多,桀紂盜跖也, 全之盡之,然後學者也。

 

백 발을 쏘아 한 발이 실패해도 족히 선사(善射: 뛰어난 궁사)라 할 수 없고,

천리를 가는데 규보(蹞步: 반걸음)를 이르지 못해도 선어(善御: 뛰어난 마부)라고 할 수 없고, 윤류(倫類: 여러 윤리)에 통하지 못하고 인의(仁義)가 한결같지 못하면 선학(善學: 뛰어난 학문)이라고 할 수 없다. 학문은 본래 배운 것이 한결 같아야 한다. 일출일입(一出一入: 여기서는 한 번 잘하고 한 번 못함) 하는 것은 도항지인(涂巷之人: 길거리 사람)이다.

잘하는 것은 적고 잘못하는 것이 많은 자는 걸(桀: 폭군으로 하나라의 마지막 군주)ㆍ주(紂: 폭군으로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ㆍ도척(盜跖: 노나라의 전설적인 도적)과 같은 자이다.

배움을 온전히 하여 다한 연후에 학자라고 할 수 있다.

 

 

君子知夫不全不粹之不足以爲美也,故誦數以貫之,思索以通之,爲其人以處之,除其害者以持養之。使目非是無欲見也,使耳非是無欲聞也,使口非是無欲言也,使心非是無欲慮也。及至其致好之也,目好之五色,耳好之五聲,口好之五味,心利之有天下。是故權利不能傾也,群?不能移也,天下不能蕩也。

生乎由是,死乎由是,夫是之謂德操。

德操然後能定,能定然後能應。能定能應,夫是之謂成人。天見其明,地見其光,君子貴其全也。

 

군자는 온전치 못하고 순수치 못하면 족히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송수이관(誦數以貫: 경서를 외워 꿰뚫음, ‘수’는 ‘術’과 통함)과 사색이통(思索以通: 사색하여 통달함)을 행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처신하는 것이다. 그 해로움을 제거하여 지양(持養: 자신을 건사하고 기름)하려는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을 눈으로는 보려하지 않고, 귀로는 듣지 않으려 하고, 입으로는 말하려 하지 않고, 마음으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해야 한다.

학문을 지극히 좋아하는 경지에 이르면 눈이 오색(五色: 靑,黃,赤,白,黑), 귀가 오성(五聲: 宮,商,角,徵,羽), 입이 오미(五味: 辛,酸,鹹,苦,甘)를 즐기는 것보다 더 이를 좋아하게 되고, 마음은 천하를 차지하는 것보다 이를 더 이롭게 여긴다.

그래서 권리(權利: 권력과 이익)로도 능히 그를 기울어뜨릴 수 없고, 군중(群衆)도 능히 그의 마음을 이(移: 변하게 함)할 수 없고, 천하도 능히 그를 탕(蕩: 움직임)할 수 없는 것이다.

삶도 이것에서 비롯되고, 죽음도 이것에서 비롯된다. 무릇 이를 일러 덕조(德操: 덕행의 절조)라고 한다.

‘덕조’가 있은 연후에 능히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된 연후에 능히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릇 이를 일러 ‘성인(成人: 완성된 사람)’이라고 한다.

하늘이 그 명(明: 광명)을 드러내고, 땅이 그 광(光: 광대함으로 ‘광’은 ‘廣’과 통함)을 드러내듯 군자는 그 온전한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3.學者先務當靜坐存 心寂然之中不散亂 不昏昧以立大本

 

枝茂香凝

 

三秀草程雲換彩
万年枝茂露香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