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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潮八分小篆歌

solpee 2014. 3. 13. 19:05

이조의 팔분과 소전을 노래함

(李潮八分小篆歌)

두보(杜甫)

蒼頡鳥迹旣茫昧 창힐의 문자 창조는 아득한 옛날의 설이고

字體變化如浮雲 자체의 변화는 구름같이 변화무쌍하네.

陳倉石鼓又已訛 진창의 석고문 또한 변화하여

大小二篆生八分 대전에서 소전으로 또 팔분이 생겨났네.

秦有李斯漢蔡邕 진에는 이사가, 한에는 채옹이 유명하고

中間作者寂不聞 중간의 역대 서예가는 알 수가 없네.

嶧山之碑野火焚 이사의 역산 각석 들불에 탔고

棗木傳刻肥失眞 대추나무에 새긴 글씨 참모습 잃었네.

苦縣光和尙骨立 고현비 광화비 골력을 뛰어나듯이

書貴瘦硬方通神 서예는 수경해야 신묘하네.

惜哉李蔡不復得 이사와 채옹 다시없어 안타깝지만

吾甥李潮下筆親 내 생질 이조의 서예 그들과 가깝네.

尙書韓擇木 상서 한택목과

騎曹蔡有鄰 기조 채유린이 있어

開元以來數八分 개원 이래 팔분서로 이름을 날리더니

潮也奄有二子成三人이조가 그 둘과 합하여 셋이 되었네.

况潮小篆逼秦相 이조의 소전은 이사에 가까워

快劍長戟森相向 예리하고 긴 검과 갈래창처럼 정제되었네.

八分一字直百金 팔분서 한 자에 백금의 가치 있어

蛟龍盤拏肉屈强 교룡같이 획 구불구불 굳세네.

吳郡張顚夸草書 오군의 장욱이 초서를 자랑하나

草書非古空雄壯 초서는 고아하지 않아 웅장함이 부족하네.

豈如吾甥不流宕 어찌 내 생질 서예 가지런함과 같으리?

丞相中郞丈人行 이사와 채옹이 이조의 스승인데.

巴東逢李潮 파동에서 이조 만났는데

逾月求我歌 달이 넘도록 내 시를 구하네.

我今衰老才力薄 내 이제 여위고 늙어 재주와 힘없으니

潮乎潮乎奈汝何 이조야 내 너를 어찌할꼬?

 

1) 창힐(蒼頡): 창힐(倉頡) 혹은 황힐(皇頡)이라고도 한다. 성이 후강(侯岡)씨이고 일찍이 황제(黃帝)의 우사(右史)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조적(鳥迹): 허신(許愼)《설문해자(說文解字)·서(序)》에 “황제의 사관 창힐은 새와 짐승 발자국을 보고 文理가 서로 달리 구별할 수 있음을 알고서 처음으로 서계(문자)를 만들었다.(黃帝之史倉頡, 見鳥獸蹄迒之迹, 知分理之可相異也, 初造書栔.)”라고 하였다.

망매(茫昧): 모호하며 분명하지가 않다.

2) 부운(浮雲): 글자체가 변화무상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3) 진창석고(陳倉石鼓): 진창(陳倉)에서 출토된 석고. 석고(石鼓)는 돌을 다듬어 북 모양을 만들고 둘레에 문자를 새긴 기물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보물로 모두 10개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제왕이 사냥하고 잔치하는 등의 일을 칭송하는 기록이기 때문에 “엽갈(獵碣)”이라고도 한다. 석고는 섬서성(陝西省) 옹현(雍縣) 남쪽 20리 삼치원(三畤原)에서 출토되었으므로 진창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4) 대소이전(大小二篆): 사주(史籒)의 대전(大篆)과 이사(李斯)의 소전(小篆)을 말한다.(주석에 없음)

팔분(八分): 팔분서(八分書), 곧 예서(隸書)이다.

5) 적불문(寂不聞): 적(寂)은《두보집》에는 끊을 절(絶)자로 되어있다.

6) 역산지비(嶧山之碑):《역산각석(嶧山刻石)》이다. 진시황 28년(기원전 219년)에 진시황이 동쪽으로 순행하며 역산에 올랐고 승상(丞相)인 이사(李斯)등이 그의 공덕을 칭송하는 글을 돌에 새겼는데 이 석각은 이사가 쓴 것이라 전해진다.《봉연문견기(封演聞見記)》에 근거하면 이 석각은 후에 위(魏) 태무제(太武帝)때 무너뜨렸고, 읍인들이 불로 태워버렸다고 한다.

7) 조목전각(棗木傳刻): 대추나무는 매우 단단하여 옛 사람들은 비첩을 새기는데 주로 사용하였다. 여기서는《역산각석》의 대추나무 번각본을 가리킨다. 당(唐)의 두기(竇曁)·두몽(竇蒙)의《술서부주(述書賦注)》에 “이사는 상채 사람으로 진나라의 승상을 지내며 인생을 마쳤다. 소전의《역산비(嶧山碑)》를 쓴 후 명성을 얻게 되었다. 비(碑)는 이미 없어졌으나 본토박이들이 나무에다 새겨 그것을 대신하였는데 이사의 석비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李斯, 上蔡人, 終秦丞相. 作小篆書《嶧山碑》,后具名銜. 碑旣毁失, 土人刻木代之, 與斯石上本差稀)”라는 기록이 있다.

8) 고현(苦縣):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녹읍현(鹿邑縣). 여기서는 고현의《노자비(老子碑)》를 가리킨다.

광화(光和):《번의비(樊毅碑)》를 가리킨다. 채옹(蔡邕)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비석이 한(漢)의 영제(靈帝) 광화(光和) 연간에 세워졌기 때문에 광화는 시대를 가리킨다. 송(宋)의《반자진시화(潘子眞詩話)》에 “《북악비(北岳碑)》는 후한(後漢) 광화2년에 세웠다. 고현에 있는 노자의 사당에도 한(漢)의 비석이 있는데 그 글자의 새김은 매우 굳세었다. 두보의 시에서 ‘고현의 노자비와 광화의 번의비는 골기를 숭상하였으니 서체는 여윈듯하면서도 굳셈을 추구하여 신묘함과 통하네.’라고 하였는데 고현과 광화는 비석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北岳碑》, 後漢光和二年立. 苦縣老子廟亦漢碑, 其字刻極勁. 杜詩所謂 ‘苦縣光和尙骨立, 書貴瘦硬方通神.’ 苦縣·光和謂地碑也.)”

골립(骨立): 사람이 몹시 수척하여 뼈만 남음을 말한다. 이것은 서예의 필획이 마르면서도 굳셈을 숭상하는 것을 가리킨다.

9) 수경(瘦硬): 필획이 여윈듯하면서도 강하고 곧으며 힘이 있는 것을 말한다.

10) 이채(李蔡): 이사(李斯)와 채옹(蔡邕).

11) 이조(李潮): 성당(盛唐)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능했던 서예가. 송(宋) 조명성(趙明誠)의《금석록(金石錄)·당이조미륵상비(唐李潮彌勒像碑)》에 “이조의 글씨는 처음에는 극히 적어서 오직 이 비석과《팽원요묘지》뿐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구했다. 그 필법 또한 빼어난 것이 아니어서 한택목(韓擇木)이나 채유린(蔡有鄰)과 비교할 수 없다.(潮書初絶少, 惟此碑與《彭元曜墓志》爾, 余得之. 其筆法亦不絶工, 非韓蔡比也.)”라고 하였다. 일설에 이조는 당대 전서의 대가인 이양빙(李陽冰)이라고 한다.

12) 한택목(韓擇木): 당대(唐代)의 유명한 서예가로서 예서에 능하였다. 한택목은 일찍이 공부상서(工部尙書)를 맡았는데 이는 당대의 대문학가인 한유(韓愈)의 작은 아버지이다.

13) 채유린(蔡有鄰): 당대의 서예가로서 예서에 능하였다. 당 현종(玄宗) 개원(開元)·천보(天寶) 연간에 주로 활동하였다.

14) 수(數): 헤아리다의 뜻으로 쓰였다.

15) 엄유(奄有): 함께 있다. 이조가 한택목·채유린과 함께 당시에 유명한 서예가라는 것을 가리킨다.

16) 진상(秦相): 진나라의 승상 이사를 말한다.

17) 쾌검장극삼상향(快劍長戟森相向): 서체의 빠르기와 날카로움이 칼과 창같이 잘 정제되었다는 뜻이다. 이조의 붓글씨 필획이 굳세고 예리하여 비범한 것을 형용한다. 당나라 장언원(張彦遠)의《서법요록(書法要錄)》에서는 “위중장(韋仲將)의 서체는 용을 길들인 것 같고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은 것 같으며, 칼을 빼들고 쇠뇌를 당겨놓은 것 같다고 한다. 본조의 구양순(歐陽詢)의 서체는 행서에 더욱 뛰어나 삼연하기가 무기고의 창과 갈래창(矛戟)같다.”라고 하였다.

18) 일자치백금(一字直百金): 百이 千으로 된 판본도 있다. 直는 値와 같은 뜻이다.《서경잡기(西京雜記)》에는 “회남왕 유안(劉安)이《회남자(淮南子)》를 짓자 양웅(揚雄)은 매 글자에 출입이 있다 하여 한 자에 백금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는 말이 있고,《사기(史記)·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에 “여불위는 식객을 시켜 그 들은 바를 저술하여 논집을 내고 그것을《여씨춘추(呂氏春秋)》라 불렀다. 이것을 함양의 시문(市門)에 진열하여 놓고 천금을 그 위에 달아 놓은 뒤에 제후의 유사(游士)와 빈객들을 맞아들여 ‘단 한 글자라도 더 보태거나 빼버리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고 하였다.”는 말이 있다. 정막(程邈)이 이사의 글씨를 보고 “이는 한 자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此一字直千金)”고 했다 한다.

19) 교룡반나(蛟龍盤拏): 반나는 필획이 굽이돌아 끌어당기는 상태를 말한다. 교룡반나는 필적이 기괴하고 굳세어 용이 서리어 끌어당기는 듯하다는 뜻이다.

굴강(屈强): 고집이 세다. 강직하고 순종하지 않는 모양.

20) 오군장전(吳郡張顚): 장전(張顚)은 오군(吳郡)사람인 장욱(張旭)을 가리키는데 술에 취하면 머리에 먹물을 묻혀 글씨를 썼으므로 천하에서는 그를 장전(張顚)이라 불렀다.

21) 웅장(雄壯): 위풍과 기세가 강대하다. 초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22) 유탕(流宕): 방탕하다. 장욱이 당시에 웅장하고 방탕한 서체인 초서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조의 필체는 옛날 이사나 채옹의 경지에 들어간 것을 칭찬하여 한 말이다.

23) 승상중랑(丞相中郞): 이사와 채옹을 가리킨다.

장인항(丈人行): 높은 항렬이다. 이사·채옹은 이조의 스승임을 이르는 말이다.

24) 파동(巴東): 현(縣) 이름으로, 후한 때 파군(巴郡: 지금의 사천성 동부)을 셋으로 나누어 삼파(三巴)라 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로 호북성(湖北省)에 속한다. 파수(巴水)의 동쪽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

25) 유월(逾月): 한 달을 넘었다. 한동안 함께 산 것을 가리킨다.

26) 내여하(奈汝何): 너의 요청을 어떻게 들어줄까. 겸양어.

 

☞.我今無田食破硯平生

唯以筆爲來自古吾

例困邑天公此意眞誰會

 

☞.文則數言乃成其意

書則一字已見其心

 

☞.風神骨氣者居上

姸美功用者居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