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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0일 오후 08:03

solpee 2014. 2. 20. 20:04

李白 將進酒 장진주

君不見 /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黃河之水天上來 /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부터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廻 / 바삐 흘러 바다로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을
又不見 /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高堂明鏡悲白髮 / 고당의 거울에 비친 백발의 슬픔을
朝如靑絲暮如雪 / 아침에 검던 머리가 저녁에 희어졌다네
人生得意須盡歡 / 인생이란 기쁨이 있을 때 마음껏 즐겨야지
莫使金樽空對月 / 금잔에 헛되이 달빛만 채우지 말지니라
天生我材必有用 / 하늘이 준 재능은 반드시 쓰여질 날 있을 터니
千金散盡還復來 / 재물은 다 흩어져 없어져도 다시 돌아오는 것을
烹羊宰牛且爲樂 / 양을 삶고 소는 저미며 즐겁게 놀아보세
會須一飮三百杯 / 모름지기 술을 마시려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岑夫子,丹丘生 / 잠부자여, 그리고 단구생이여
將進酒,君莫停 / 술을 마시게나, 잔을 쉬지 말게나
與君歌一曲 / 그대를 위해 노래 한 곡조 부르리니
請君爲我側耳聽 / 원하건대 아모쪼록 내 노래를 들어주시게나
鍾鼎玉帛不足貴 / 보배니 부귀가 무엇이 귀할 것인가!
但願長醉不願醒 / 그저 마냥 취해서 깨고 싶지 않을 뿐이라네
古來賢達皆寂莫 / 옛부터 현자 달인은 모두 쓸쓸하기만 했으니
惟有飮者留其名 / 다만, 마시는 자만이 이름을 남기리라
陳王昔日宴平樂 / 그 옛날 진왕은 평락전에 연회를 베풀고
斗酒十千恣歡謔 / 한 말 술 수천금에 사서 호탕하게 즐지기 않았던가
主人何爲言少錢 / 주인인 내가 어찌 돈이 적다고 말하겠나
且須沽酒對君酌 / 당장 좋은 술을 사와서 그대들께 권하리라
五花馬,千金裘 / 귀한 오색 말과 천금의 모피 옷을
呼兒將出換美酒 / 아이를 시켜 좋은 술과 바꾸어오게 하여
與爾同銷萬古愁 / 그대들과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녹이도록 하겠노라

 

《将进酒》(qiāng jìn jiǔ ) 

 李白

 

君不见黄河之水天上来,奔流到海不复回。

 

插图

君不见,高堂明镜悲白发,朝如青丝暮成雪。

人生得意须尽欢,莫使金樽(zūn)空对月。

天生我材必有用,千金散尽还(huán)复来。

烹羊宰牛且为乐,会须一饮三百杯。

岑(cén)夫子,丹丘生,将进酒,杯莫停。

与君歌一曲,请君为我侧耳听。

钟鼓馔(zhuàn)玉不足贵,但愿长醉不复醒。

古来圣贤皆寂寞,惟有饮者留其名。

陈王昔时宴平乐,斗酒十千恣欢谑。

主人何为言少钱,径须沽取对君酌。

五花马,千金裘(qiú),

呼儿将出换美酒,与尔同销万古愁。

【将进酒】:将,(音qiāng),愿也;进酒,饮酒;将进酒,意即,请饮酒,等同于今言“干杯”。

【注】:在人教版课本中有一异处“与君歌一曲,请君为我倾耳听。”

 

[근당의고전]淡泊明志(담박명지)

마음이 해맑으니 뜻도 밝다


중국 초나라 제갈량이 그 자식에게 남긴 말이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며, 일찍이 우리나라 학자들도 이 말을 학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마치 전통처럼 내려왔다.

제갈량은 ‘군자의 행동은 마음을 고요히 하여 몸을 닦고 알뜰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그 덕을 쌓아야 한다(靜以修 身儉以養德). 마음이 넉넉하고 담백하지 않으면 뜻이 밝을 수가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 무릇 배움은 요란하지 않고 반드시 평온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며, 재능은 모름지기 배움에서만 길러진다. 배우지 않는다면 재능을 넓힐 수가 없고, 뜻이 없다면 학문을 이룰 수가 없다. 거만하거나 나태하면 정미롭고 치밀한 이치에 접근할 수 없고, 조급하거나 버둥대면 성품을 잘 다스릴 수가 없다. 세월은 말 달리듯하고, 의지는 차츰 미약해진다. 설사 뜻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차츰 쇠락하는 것이거늘, 막다른 곳에 가서야 한탄하고 궁색함을 안다고한들, 이미 흘러간 세월을 돌이킬 수가 있겠는가’라는 유명한 글을 남겨 동양 정신문화 순화와 학문고취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곧 ‘마음을 비워야만 세상 이치를 깨칠 수가 있고, 심성이 맑고 편안해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澹泊明志,寧靜致遠  
【詞目】 澹泊明志(也稱:淡泊明志),寧靜致遠
【發音】 dàn bó míng zhì, níng jìng zhì yuǎn
【釋義】 澹泊:不追求名利;寧靜:心情平靜沉著。不追求名利,生活簡樸以表現自己高尙的情趣;心情平穩沉著,專心致志,才可有所作為。
此句最早出自西漢初年劉安的《淮南子:主術訓》,諸葛亮的《誡子書》也有引用。
《淮南子:主術訓》片段
人主之居也,如日月之明也。天下之所同側目而視,側耳而聽,延頸舉踵而
望也。是故非澹薄無以明德,非寧靜無以致遠,非寬大無以兼覆,非慈厚無以懷
眾,非平正無以制斷。
《誡子書》片段
夫君子之行,靜以修身,儉以養德。非淡泊無以明志,非寧靜無以致遠。夫學須靜也,才須學也,非學無以廣才,非志無以成學。淫慢則不能勵精,險躁則不能治性。年與時馳,意與日去,遂成枯落,多不接世,悲守窮廬,將復何及!
示例 至於寬閑之野,寂寞之濱,每自寓其天懷之樂,而~,未嘗不處處流露。(淸·無名氏《杜詩言志》卷三)


 

諸葛亮誡子書云(제갈량계자서운)  

 夫君子之行(부군자지행)

靜以修身(정이수신),  儉以養德(검이양덕)

非澹泊無以明志(비담박무이명지)

寧靜無以致遠(비영정무이치원)

 

제갈량이 자식에게 훈계하는 글에서 이르기를

군자의 조행(操行)이란  고요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

으로써 덕을 기르는 것이다.

마음에 욕심이 없어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이룰 수 없다.

 

                                                       

 

經天緯地補天浴日

진린(陳璘. 자는 조작, 호는 용애)은 중국의 대성으로 광동지방에서 대대로 진현유와 진현관을 배출한 명문의 후손으로 1597년(선조 30) 왜적이 정유재란을 일으켜 조선이 위태롭게 되자 명나라에서 다시 원군을 보내어 왜적을 격퇴했는데 이 때 진린이 어왜도총관 전군도독부 도독으로서 수병 5천을 거느리고 그해 12월 20일 강진 고금도에 도착, 이순신(李舜臣)과 더불어 전공을 세웠다.
이듬해 7월 16일 한산도로 진을 옮겨 전공 세워 무명을 떨쳤고, 이듬해 귀국하여 광동백(廣東伯)에 봉해졌으며, 1602년 세상을 뜨자 태자소보에 추증하고 시호를 충강(忠康)이라 내렸다.

참전 초기의 진린은 충무공의 공을 가로채거나 적장의 퇴로를 열어주는 짓을 서슴치 않았다.
진린은 사람들에게 충무공을 “이야(李爺)는 하늘이 내린 장군”이라고 말했다. 이 때의 야(爺)는 윗어르신을 의미한다. 진린은 명나라에 보낸 보고서에서 “이순신은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능과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이 있다”고 극찬했다. 또한 충무공에게 내린 팔사품을 받게끔 한 인물이다.(팔사품八賜品: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신종(神宗) 황제에게서 받은 선물인 명조(明朝) 팔사품(八賜品·)이 보물 제440호. 1966년 2월 4일 지정)
임란 당시의 명나라의 진린 장군에 대해 우선 알 필요가 있다. 진린 장군의 후손은 말년 한국인이 되었다. 그의 손자 영소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를 지내다가 명나라가 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난징에서 배를 타고 한반도로 와서 남해의 장승포에 표착하였다가 조부인 진린이 공을 세웠던 강진 고금도로 옮겨 살았다.
그후 다시 해남현 내해리로 이거하여 정착하였으므로 광동 진씨의 뿌리가 되었다.
팔사품은 도독인·호두령패·귀도·참도·독전기·홍소령기·남소령기·곡나팔 등 여덟 가지 군대용 의장물로 구성돼 있다. 도독인을 제외한 나머지 유물은 각 2개씩이어서 전체 유물의 수는 총 15점이고 충무 충렬사에 보관에 보관되어 있다. 팔사품을 그린 그림은 남해향토역사관에 병풍으로 보관되어 있다. 
 경천위지는 ‘천하를 잘 다스린다’는 뜻이다. ‘하늘을 깁고 해를 목욕시킨다’는 뜻의 보천욕일은 설명이 좀 필요하다. 우선 보천욕일은 ‘어마어마한 공적’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중국 신화에서 비롯됐다.
 ‘보천’은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의 <남명훈(覽冥訓)>에 나온다. 옛날에 물을 다스리는 신인 공공(共工)과 불의 신 축융(祝融)이 싸워서 공공이 패하자 화가 나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인 불주산(不周山)을 무너뜨렸다. 그래서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갈라지며 홍수와 큰 불이 났다. 우주를 창조한 여신 여와는 강에서 ‘오색 빛깔의 돌을 골라 불로 녹여서 이지러진 하늘을 보수하고(煉五色石以補蒼天)’ 홍수를 막아 재앙을 다스렸다.
 『회남자(淮南子)』는 전한(前漢)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전 21권이다.
유안이 전국의 빈객과 방술가(方術家)를 모아서 편찬한 것으로, 『한서』 〈회남왕전(淮南王傳)〉에는 〈내서(內書)〉 21편, 〈외서(外書)〉 다수, 〈중편(中篇)〉 8권을 제작했다고 했는데 현재는 이 중 〈내서〉 21권만이 전하고 있다. 처음에 원도편(原道編)이라는 형이상학이 있으며, 그 뒤에 천문·지리·시령(時令) 등 자연과학에 가까운 것도 포함하였으며, 일반 정치학에서 병학(兵學), 개인의 처세훈(處世訓)까지 열기하고, 마지막으로 요략(要略)으로 총정리한 1편을 붙여서 방대한 내용을 통일하였다.

‘욕일’은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남경(大荒南經)’에는 나온다. 태양의 신 희화(羲和)에게는 10개의 태양인 10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동쪽 바다 밖 탕곡의 큰 나무인 부상(扶桑)에 살았는데 10개의 태양은 하루씩 번갈아가며 하늘에서 감시했다. 희화는 그날의 일을 맡은 아들인 태양을 늘 수레에 태워 바래다 주었는데 매일 아침마다 수레에 오르기 전에 ‘태양들을 데리고 감연에서 깨끗하게 목욕했다(方日浴于甘淵)’고 전해진다.

 

"经天纬地之才,补天浴日之功。"
<明朝水军提督,陈璘>


 

我最惧怕的人是李舜臣、
最恨的也是李舜臣、
最喜欢的还是李舜臣、
最钦佩崇尚的仍是李舜臣、
最想亲手杀死的同样还是李舜臣、
最想一同品茶的更是李舜臣。
<壬辰卫国战争参战倭军将帅胁坂安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