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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武牧羊

solpee 2013. 12. 8. 17:58

 

蘇武牧羊

蘇武치다,看羊도 같은 뜻이다.곧 忠節意味한다.

 

 우리의 廣開土大王 쯤에 該當되는 中國의 天子가 漢武帝다.

東西南 三方向으로 版圖를 크게 넓혀 大漢帝國의 國力을 絶頂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唯獨 北方의 匈奴와는 잘 사귀지 못해 衝突이 잦았다.

騎馬民族이었던 탓이다.

 紀元前 百年. 蘇武는 武帝의 命을 받들어 隨行員 百餘名을 이끌고 匈奴族의 本 居地로 들러갔다.

親善을 圖謀하기 爲한 所謂 講和使節 이었던 것이다.

任務를 無事히 마치고 歸還하려던 次 그만 일이 터졌다.

前에 匈奴에 投降했던 將軍 衛律의 部下 虞常이 衛律을 죽이려다 失敗한 것이다. 억울하게 連累된 蘇武는 自決을 試圖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下獄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匈奴의 酋長 單于는 함께 갔던 使臣들을 하나씩 죽이면서 갖은 回愈와 脅迫을 加해왔다. 하지만 蘇武는 斷乎했다.

 蘇武가 屈하지 않고 버티자 單于는 땅을 파고 가두었다.

 때는 마침 嚴冬雪寒이라 飢寒이 뼈에 사무쳤다.

열흘이 지나 門을 열어 보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목이 타면 눈을 녹여 마셨고 배가 고프면 담요의 털을 뜯어먹었다.

그러면서도 節槪를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單于는 그가 神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번에는 숫羊 몇 마리와 함께 至今의 바이칼 湖水 部近으로 쫓아버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이놈들이 새끼를 낳으면 집으로 보내주마"

 졸지에 羊치기가 된 蘇武는 그곳에서 酷毒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祖國 漢나라에 對한 忠貞과 天子에 對한 節槪만은 조금도 흐트르지지 않았다. 그러기를 十九年, 마침내 兩國의 友好關係가 되살아나 祖國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동안 갖고 갔던  使節을 愛之重之 保管하여 다 닳아 없어질 定度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蘇武牧羊(蘇武가 羊을 치다)은 勿論 "羊을 돌본다"는 뜻의 看羊도 함께 忠節의 象徵이 되었다.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丁酉再亂 때 日本에 捕虜로 잡혀가 끝내 節義를 굽히지 않다가 三年만에 生還했던 睡隱 姜沆(1567~1618) 先生이 그다.

弟子들이 그의 文集을 看羊錄이라 이름 붙였는데 蘇武의 忠節에 比擬한 것이라 하겠다. 

☞.  西漢時蘇武(字子卿)與李陵同在朝廷上擔任侍中。蘇武出使匈奴的第二年,李陵投降匈奴,做了右校王。他聽說蘇武的事蹟後,心裏十分羞愧,不敢去見蘇武。

十幾年後,匈奴單於壺衍鞮派李陵到北海去看蘇武。李陵見到蘇武,非常高興。他為蘇武擺下酒宴,還安排樂隊助興。兩人邊吃邊聊,喝到興頭兒上,李陵對蘇武說:“單於聽說我與子卿交情很深,特意派我來看子卿。當然,他是要子卿歸降。子卿反正也不能再回漢朝,何必在這荒無人煙的地方白白受苦。子卿的信義節操,又有誰知道呢?子卿的兩個兄弟畏罪自殺。我來的時候,太夫人已經去世,又聽說嫂夫人改嫁。家中剩下的,只有子卿的兩個妹妹、兩個女兒和一個兒子。如今是生是死,不得而知。唉!人生如朝露,何必自苦如此呢!起初,我也曾痛不欲生,總覺的對不起漢朝。朝廷殺了我全家,逼的我無路可走,只好留在這裏。皇上年事已高,喜怒無常,大臣們無緣無故就被滿門抄斬,人人朝不保夕,子卿還要為誰效命呢?”

蘇武回答說:“我父子並無寸功,全靠皇上栽培,才得以身居高位。我即使肝腦塗地,也要報答皇上的大恩。要是能死在漢朝,就算斧鉞加身、湯鍋烹煮,我也心甘情願。做臣子的為朝廷死,沒有甚麼可遺憾的。大王不要再說了!”

李陵見蘇武情緒激動,便收住了話頭。兩個人一連幾天都在一起喝酒。這一天,幾杯酒下肚,李陵忍不住又勸蘇武說:“子卿能不能再聽聽我的話?”

蘇武放下酒杯,正色道:“我是死過幾次的人,大王一定要逼我投降的話,就讓我死在大王面前!”

李陵見蘇武如此堅決,不由得長嘆一聲,說:“唉!子卿真是個義士!我李陵,還有衛律,算甚麼東西!”

說著,他已經淚流滿面。

李陵走後,心裏一直掛念蘇武,還派人送去幾十頭牛、羊。後來,李陵得到漢武帝去世的消息,又親自到北海通知蘇武。蘇武連著幾個月,每天早晚都要面向南方放聲痛哭,有時哭的吐血不止,死去活來。

選自《資治通鑑》

 

汉의 班固는 孔子称"志士仁人,有杀身以成仁,无求生以害仁","使于四方,不辱爵命",苏武有之矣。

그리고 李白은 蘇武라는 詩로 이렇게 읊었다. 

 

蘇武在匈奴   소무가 흉노국에 있으면서 
十年持漢節   10여 년간 한나라의 신표를 지녔네
白雁上林飛   흰 기러기 상림원 위를 나를 때
空傳一書札   공중에서 편지 하나 전하였다오
牧羊邊地苦   숫양을 치면서 변방에서 괴로왔고
落日歸心絶   해 지면 고국에 돌아 갈 희망이 없어졌네
渴飮月窟水   목마르면 깊은 샘의 물을 마시고
飢餐天上雪   굶주리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雪)을 먹었네
東還沙塞遠   동쪽으로 가자니 사막이 아득히 멀고
北愴河梁別   북쪽 河水다리에서 슬픈 이별이라
泣把李陵衣   이능의 옷깃을 잡고 슬피우니
相看淚(泪)成血   서로 흘린 눈물 피눈물이 되네

 

(唐)温庭筠의 《苏武庙》

 

苏武魂销汉使前/한 나라 사신 앞에 넋을 잃은  소무여

古祠高树两茫然/옛 사당 고목 또한 말이 없구나

云边雁断胡天月/기러기 끊어진  이역 하늘에 달 떠오면

陇上羊归塞草烟/연기피는  언덕위로 양떼 몰아왔으리

回日楼台非甲帐/돌아오던 날 어전은 간데 없고

去时冠剑是丁年/떠나던 날 칼을 찼던 청년은  어디 갔나

茂陵不见封侯印/무릉에 묻힌 선왕은  봉후인 보지 못하니

空向秋波哭逝川/한갓 강물 바라보며 흘러간 세월 우노라


元 张養浩의《蘇武》

 
爲臣惟命敢辭難,

 

脱遇亦自安。
試看子卿持節處,
雪花如席不知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