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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面目見之

solpee 2013. 11. 25. 06:10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癸亥月(十月大) 23 乙未日 月曜日 小雪(10.20.24:48)節 初候 虹藏不見(홍장불견: 무지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候입니다. 日出은 07:22, 日入은 17:16, 月出은 00:00, 月入은 12:25 입니다. 小雪은 小春 또는 小陽春이라고도 합니다.

 

[근당의 고전] 何面目見之(하면목견지)

무슨 명목으로 사람들을 볼 것인가

 

사람이 세상에 낯을 들고 사는 것이 부끄러움을 표현한 말이다. 군자는 비록 궁하다 해도 亡國之勢(망국지세)에 처하지는 않으며 비록 가난해도 亂君之祿(난군지록)은 받지 않는다. 이 말은 ‘형세가 기울었다고 해서 아첨하거나 비굴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난세에 높임을 받고 폭군에 동조하는 것을 군자는 수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史記(사기)에 項羽(항우)장사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 劉邦(유방)과 항우가 밀고 밀리는 싸움에서 1천명에 가까운 항우의 군대가 전멸해 20여명만이 항우를 따르고 있었다. 이때 진퇴양난에 빠진 항우가 부하들에게 “나는 군대를 일으켜 단 한 번도 패한 일이 없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이토록 괴로워하는 것은 하늘이 나를 멸망시키는 것이지 결코 내가 싸움에 약하거나 비겁한 것 때문은 아니다. 지금 그 증거를 보여 주겠다”라고 크게 소리 지르며 한나라 유방의 군대 속으로 돌진했으나 이미 기울어진 대세로 싸워보지 못하고 도망을 쳐 강가에 이르러 31세의 젊은 나이에 자결했다.

자결 직전에 따르는 병졸 하나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면목이 없음을 한탄한 내용인데 실패에 실패만 거듭하고 고향에 돌아갈 면목이 없을 때를 우리는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바로 無面渡江(무면도강)이라고.

 

无颜见江东父老

【注音】wú yán jiàn jiāng dōng fù lǎo

 

  【出处】项王笑曰:‘且籍与江东子弟八千人渡江而西,今无一人还,纵江东父老怜而王我,我何面目见之?’ 西汉·司马迁《史记·项羽本纪》

  【解释】江东:借指家乡。指因自己的失败而感到羞愧,再也没脸见家乡父老。

【成语故事】楚汉相争时期,项羽率领8000江东子弟组成的部队攻打秦军,他们越战越勇,势力也越来越大。由于项羽刚愎自用,听不进部下的意见,一意孤行,被刘邦的汉军围困在垓下乌江边,四面楚歌,江东子弟死伤无数,项羽感觉没脸见江东父老就拔剑自刎


☞.심재(1722~1784)의 '송천필담(松泉筆譚)'에 "사물은 크게 성대한 것을 꺼리고(物忌太盛), 귀신은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을 싫어한다(神厭至美)."

 

정인매리 (鄭人買履)

정현(鄭縣)에 사는 복자(卜子)가 아내에게 바지 한 벌을 새로 짓게 했다. "새 바지를 어찌 지을까요?" "지금 입고 있는 헌 바지와 꼭 같게 만들어 주구려." 그녀는 새 옷감을 일부러 헐게 만들어 낡은 바지로 만들어 주었다.

어른이 먼저 마셔야 젊은이가 따라서 마시는 것은 술자리의 예의다. 노나라 젊은이가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셨다. 어른이 술을 들이켜다 말고 속이 불편했는지 토했다. 예의 바른 젊은이가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따라 토했다. 송나라 젊은이도 배우기를 즐거워했다. 어른들이 술잔을 남김없이 비우는 것을 보고는 제 주량도 가늠하지 않고 단숨에 들이켰다가 쭉 뻗어 버렸다. 배우려는 열의는 가상했지만 배울 것을 못 배웠다.

'서경(書經)'에서 "묶고 또 맨다(紳之束之)"라 한 대목을 읽고, 송나라 사람이 허리띠를 묶은 위에 하나를 덧대어 맸다. "여보 그게 웬 꼴이오?" "서경에 묶고 또 매라 한 말도 모른단 말이오? 나야 그대로 따를밖에."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열심히 한다는 게 일을 외려 그르친다.

정나라 사람이 신을 사러 장에 갔다. 그는 먼저 발 치수를 쟀다. 막상 장에 갈 때는 치수 적어둔 종이를 깜빡 잊고 집에 둔 채 나왔다. 그가 신발 장수에게 말했다. "여보게! 내가 발 치수 적어둔 종이를 깜빡 두고 왔네. 내 얼른 가서 가져옴세." 그가 바삐 집으로 돌아가 종이를 가지고 시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발 장수는 이미 가게 문을 닫은 뒤였다. 곁에서 보던 이가 물었다. "어째서 직접 신어보질 않았소?" "자로 잰 치수는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정인매리(鄭人買履), 즉 정나라 사람이 신발 사는 이야기다.

'한비자(韓非子)'의 외저설(外儲說)에 나오는 일화들이다. 곧이곧대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똑바로 하는 것이 긴요하다. 직접 신어 볼 생각은 없고 맨날 치수 적은 종이만 찾다 보면 백날 가도 신은 못 산다. 백성을 위한다는 선량들이 나랏일 하는 꼴이 맨날 이 모양이다. 맨발로 겨울나게 생겼다.


郑人买履 zhèng rén mǎi lǚ

 

郑人买履,既是一个成语,又是一个典故,更是一寓言,说的是郑国人因过于相信“尺度”,造成买不到鞋子的故事。通过对话揭示郑人固执迂腐的心理,增强了寓言讽刺的意味。

 

【作者介绍】韩非子生于周赧王三十五年(约公元前281年),卒于秦王政十四年(公元前233年),韩非为韩国公子(即国君之子),汉族,战国末期韩国人(今河南省新郑)。师从荀子,是中国古代著名的哲学家、思想家,政论家和散文家,法家的代表人物之一,后世称“韩子”或“韩非子”,中国古代著名法家思想的代表人物。《韩非子》呈现韩非极为重视唯物主义功利主义思想,积极倡导君主专制主义理论。在《史记》记载:秦王见《孤愤》、《五蠹》之书,曰:“嗟乎,寡人得见此人与之游,死不恨矣!”可知当时秦始皇的重视。《韩非子》也是间接补遗史书对中国先秦时期史料不足的参考来源之一,著作中许多当代民间传说寓言故事也成为成语典故的出处。目的为专制君主提供富国强兵的霸道思想。
中文名: 韩非;别名: 韩非子;国籍: 中国;民族: 汉族;出生地: 河南省新郑;出生日期: 公元前281年;逝世日期: 公元前233年;职业: 思想家、哲学家、政论家;信仰: 唯物主义与功利主义思想;主要成就: 法家思想的集大成者,君主专制主义理;代表作品: 《孤愤》、《说难》;所处时代: 战国;学派: 法家思想。

【原文】郑人有欲买履者,先自度其足,而置之其坐,至之市而忘操之。已得履,乃曰:“吾忘持度。”反归取之。及反,市罢,遂不得履。人曰:“何不试之以足? ”曰:“宁信度,无自信也。”

【译文】有个想要买鞋子的郑国人,先自己量好脚的尺度,并把量好的尺码放在自己的座位上,等到了集市,却忘了带量好的尺码。(他)已经拿到鞋子,(才想起自己忘了带尺码)就对卖鞋的人说:“我忘记带量好的尺码了。”就返回家去取量好的尺码。等到他返回集市的时候,集市已经散了,最终没买到鞋。 有人问他说:“为什么不用你的脚试一试鞋的大小呢?”他说:“我宁可相信量好的尺码,也不相信自己的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