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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立無援 gū lì wú yuán

solpee 2013. 9. 12. 05:36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辛酉月(八月大)  8일 辛巳 木曜日  白露(8.3.20:16)節 仲候 玄鳥歸(현조귀: 재비 돌아간다.)候입니다. 日出은 06:11, 日入은 18:45, 月出은 12:56, 月入은 23:11입니다. 낮의 길이 12시간 33분 47초.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孤立無援 gū lì wú yuán

‘외롭게 홀로 남은 데다 안팎으로 돕는 이가 없다’.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이는 안팎으로부터 비판받게 마련이다. 따돌림도 당한다. ‘좌전(左傳)’에 소개돼 있는 춘추시대 위후(衛候)의 독선과 포악함은 대표적이다. 위후가 연회를 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성자(聲子)가 버선을 신고 있었다. 위후는 역정이 났다. (그 당시는 임금 앞에서 버선을 신지 않는 게 예의였다). 성자는 “공무 중 발을 다쳐서 그렇다”고 해명했으나, 위후는 “그 발을 잘라 버릴 것이다”라고 노기를 띠었다.

이에 측근들마저 등을 돌리고 반란을 도모했다. 위후는 하는 수 없이 진(秦)나라로 몸을 피하려 했다. 신하 권미(拳彌)가 말했다. “진나라와 제나라는 우리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이에 위후는 “그럼 노(魯)로 갈까?” “노나라도 안 됩니다. 월(越)이 좋을 듯합니다.”

갈 곳이 없는 위후는 월나라로 향했다. 권미가 제안했다. “제가 먼저 가서 월의 형편을 살피겠습니다. 반란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보물들은 먼저 보내는 게 안전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뒤 권미는 보물을 실은 수레를 몰고 위나라로 돌아와 버렸다. 위후는 왕위도, 재물도 다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일제 태평양전쟁 기간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미지급 임금통장 수만개가 일본에서 발견됐다. 징용 피해자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임금 일정분을 우체국에 강제 저축시키고는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강제노역장’에서 기본 인권마저 보장하지 않은 채 짐승처럼 부려먹고 임금마저 떼어먹은 일본 지도층의 양심 실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예견해서일까. ‘맹자’는 “금수에게 또 꾸짖을 게 뭐 있겠는가(於禽獸又何難言)”라고 지적하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이 무례를 보이는 사람이나 집단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말했다. 일본은 경제력에 걸맞은 윤리지수를 높여야 한다. 과거 악행을 진솔하게 반성하고 성심껏 배상하는 독일을 본받길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위후처럼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 내 양심세력으로부터도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질 수밖에 없다.


 

【词目】孤立无援
【拼音】gū lì wú yuán
【解释】孤立:没有得到同情和援助。指单独行事,得不到外力援助。
【出处】南朝·宋·范晔《后汉书·班超传》:“焉耆以中国大丧,遂功没都护陈睦。超孤立无援,而龟兹姑墨数发兵攻疏勒。” 明·冯梦龙《东周列国志》第五回:“庄公既碍姜氏之面,又度公孙滑孤立无援,不能有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