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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鷄野雉(가계야치)

solpee 2013. 7. 29. 05:20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己未月(六月大)  22일 丙申 月曜日  大暑(6.16.00:56)節 中候 土潤溽暑(토윤욕서: 땅은 습하고 기후는 무덥다)候입니다. 日出은 05:33, 日入은 19:43, 月出은 23:29, 月入은 12:30 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근당의고전]家鷄野雉(가계야치)

집안의 닭보다 들판의 꿩을 더 좋아한다.

 

貴鵠賤鷄(귀곡천계)나 遠貴近賤(원귀근천)으로도 유사하게 쓰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나쁜 양심을 가지고 있고 비인간적 행동인가를 묘사한 말이기도 하다. 흔하지는 않지만 돈이 많이 생기거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왔을 때 일어나기 쉬운 일이다. 재산이 불어나게 되면 쓸데없는 생각과 욕망이 발동하게 된다. 그래서 고전에서도 飽暖思淫慾(포난사음욕)이라 하여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음탕에 빠진다 하지 않았던가.

송나라 文豪(문호) 蘇東坡(소동파)의 누나는 당나라 때 명필 柳公權(유공권)의 후손 집안에 출가했다. 어느 날 조카들이 소동파에게 글을 써줄 것을 요청하자 한 폭을 써주었는데 글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의 집안에 그렇게 유명한 선조가 있는데 그런 분의 글이 있으면 그런 분의 글을 익히고 부지런히 따르면 그만이지 왜 또 나에게 글을 써달라고 하는가’라고 했다. 厭家鷄 愛野雉(염가계 애야치)인 것이다.

즉 ‘집안에서 기르는 닭은 싫어하고 들에 사는 꿩을 좋아한다’는 말로써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가벼이 여기고 타인의 물건을 부러워한다는 의미이다. 때로는 자신의 본처를 버리고 밖에서 만난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도 된다. 부유할 때는 망각하고 어려워졌을 때 생각나는 글이 있다. 바로 家貧思賢妻(가빈사현처)다.


☞.解釋: 雉:野鸡。原意是晋庚翼把自己的书法喻为家鸡,把王羲之的书法喻为野鸡,以示贱近与贵远。亦比喻风格迥异的书法绘画等.

 

☞.出處: 晋·何法盛《晋中兴书》第七卷:“在荆州与都下书云:‘小儿辈贱厌家鸡,爱野雉,皆进逸少书,须吾还,当比之。’”

 

☞.故事: 东晋武将庾翼与王羲之一样都能写一手好书法,他看到自己的儿子与侄子不学他的书法改学王羲之的书法,心中十分不满,说儿子与侄儿不爱家鸡爱野鸡,要与王羲之比高低。后来他见了王羲之的一幅书法作品后就心服口服了.

[정민의 세설신어] 체수유병(滯穗遺秉)

 

정조는 특이한 임금이었다. 경연(經筵)에서 신하의 강의를 듣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강의를 했다. '시경'을 강의할 때 전후로 내준 숙제만 800문항이 넘었다. 큰 학자라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많았다. 신하들은 끊임없는 임금의 숙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 강의에서 단연 이채를 발한 학생은 정약용이었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척척 대답해서 제출했다. 정조가 다산의 답안지에 어필(御筆)로 내린 평가가 이랬다. "백가의 말을 두루 인증해 출처가 끝이 없다. 평소의 온축이 깊고 넓지 않고는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다산의 작업 비결은 생활화된 메모의 습관에서 나왔다. 옛글을 읽다가 한 구절이라도 '시경'을 인용하거나 논한 내용이 나오면 무조건 기록해 두었다. 별도의 공책에 '시경' 편차에 따라 정리해 두었다. 오래 계속하자 작품마다 이 책 저 책의 언급 내용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임금의 800개가 넘는 질문이 대부분 이 범위 안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숙제가 나오면 그때부터 관련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하나를 겨우 찾고 나서 그다음 것은 또 처음부터 찾아야 했다. 한 사람은 서랍 속에 차곡차곡 넣어놓고 필요할 때 꺼내 썼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때마다 물건을 찾아 동네 가게를 온통 헤매고 다녔다. 속도와 효율 면에서 당할 사람이 없었다.

다산은 이때의 문답을 정리해 '시경강의보(詩經講義補)'를 짓고, 미처 못 쓴 나머지 메모로는 '풍아유병(風雅遺秉)'이란 책을 엮었다. 유병(遺秉)은 추수 끝난 논바닥에 남은 벼이삭이다. 나락 줍기의 뜻이다. '논어고금주'도 이런 메모 작업의 결과였다. 다산은 둘째 형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람들이 사서(四書) 분야에는 남은 이삭이 없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직접 살펴보니 도처에 체수유병(滯穗遺秉)이더라고 했다. 체수는 낙수(落穗)와 같은 의미다. 여기저기 떨군 벼이삭과 남은 나락이 너무 많아 이루 다 수습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들은 남이 안 쓴 주제는 어려워 못 쓰겠고, 쓰고 싶은 것은 이미 다 써 할 말이 없다고 푸념한다. 추수 끝난 빈 들판에 떨어진 나락이 무수한 줄을 몰라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