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戊午(五月小) 2일 月曜日 丁未 芒種(4.27.21:23)節 中候 鴡始鳴(저시명:왜가리 울기 시작함)候입니다.
[근당의고전]愛及屋烏(애급옥오)
사랑이 지붕위의 까마귀에까지 미친다
劉向(유향)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에 이 내용이 있는데 ‘낚시로 유명한 전략가 강태공은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의 집 지붕 위에 있는 까마귀까지도 사랑하며(愛其人者 兼愛及屋上之烏), 사람을 미워하면 그 집종들까지도 미워한다(憎其人者 憎其儲庶)’라는 말을 했다.
시인 두보도 그의 詩에서 ‘장인 댁 지붕위에 까마귀, 사람이 좋으니 까마귀도 좋구나(丈人屋上烏 人好烏亦好)’며 읊었다.
옛글에 너무 지나치게 아끼는 것이나 엄청나게 간직하려는 것은 분에 넘치게 애걸하는 것과 같다. 명성을 애걸하면 할수록 추해지고, 재물을 탐하면 탐할수록 더러워지며, 이득만 노리면 노릴수록 사납게 되고 만다.
그래서 살아서 명성을 누리는 것은 의심스러운 것이고 죽어서 얻은 명성은 영원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명성을 심애(甚愛)하지도 얻으려 애쓰지도 마라. 생쥐가 꿀단지 있는 곳을 알면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사랑이건 재물이건 지나치거나 너무 치우치지 말 일이다.
【词目】:爱屋及乌
【出处】:《尚书大传·大战》:“爱人者,兼其屋上之乌。”
历史传说
其它记载
애급옥오(愛及屋烏)
[意義]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 지붕의 까마귀까지 사랑한다는 뜻이다.
[出典]설원(說苑)
설원은 한(漢)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유향(劉向: 기원전77?-6)의 저술이다.
군신(君臣)의 도리를 중심으로 선진(先秦)에서 한대(漢代)에 이르는 사실(史實)들을 잡다하게 모아 유가(儒家)의 정치 사상과 관점을 밝히고자 하였다. 2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향은 자(字)가 자정(子政)으로 패현(沛縣; 지금의 강소성 패현)사람이다. 중국 목록학(目錄學)의 시조로 알려져 있으며, 신서(新序), 열녀전(烈女傳)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解義]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 주왕(紂王)은 사치스럽고 욕심이 많으며, 포학무도한 군주였다. 당시 서부 제후들의 우두머리였던 서백후(西伯侯) 희창(姬昌)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으로 즉위하기 전에, 걸왕의 행위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대하였다는 이유때문에 구금되어 갖은 고초를 겪고 석방되었다.
희창은 자신의 지역인 기산(岐山)으로 돌아와 상나라를 멸하겠다고 결심하였지만,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희창이 죽자, 그의 아들 희발(姬發)이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곧 주나라 무왕(武王)이었다. 희발은 부친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강상(姜尙,강태공)을 군사(軍師)로 임명하고, 다른 두 동생들의 도움으로 각 제후들을 규합하여, 걸왕 정벌을 정식으로 선포하였다.
주 무왕은 대군을 이끌고 맹진(盟津; 지금의 하남성 맹현 남쪽의 황하 유역)에서 황하를 건너 동북쪽으로 진군하여, 곧장 상나라의 도읍인 조가(朝歌; 지금의 하남성 기현 동북쪽)를 압박해 들어갔다.
상왕은 이미 인심을 잃을 터라, 군인들도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모두 도망하거나 투항하였으며, 일부는 조정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상 왕조의 멸망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때, 상 왕조의 권신(權臣)이나 귀족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주 무왕은 강태공(姜太公)을 불러 그의 자문을 구하였다.
강태공은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의 집 지붕 위에 있는 까마귀까지도 사랑하며(臣聞愛其人者, 兼愛及屋上之鳥), 사람을 미워하면 그의 집 종들까지도 미워한다고 합니다. 적대적인 사람들은 모조리 제거하였으면 하는데, 왕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주 무왕은 강태공의 말에 깨달은 바가 있어, 상나라의 백성들에 대하여 그들을 위로하는 정책을 펼쳤다.
☞ 海納百川有容乃大(해납백천유용내대)
壁立千仞無慾卽剛(벽립천인무욕즉강)
바다는 모든 하천을 받아들이며, 이런 포용력 때문에 바다를 크다 하는 것이다. 바위가 천 길 우뚝 선 것처럼 욕심이 없어야 강해진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태산불양토양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음으로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그 깊이를 얻을 수 있었다"
[출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