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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及屋烏

solpee 2013. 6. 10. 06:02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戊午(五月小) 2일 月曜日 丁未 芒種(4.27.21:23)節 中候 鴡始鳴(저시명:왜가리 울기 시작함)候입니다.

 

[근당의고전]愛及屋烏(애급옥오)

사랑이 지붕위의 까마귀에까지 미친다

 

劉向(유향)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에 이 내용이 있는데 ‘낚시로 유명한 전략가 강태공은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의 집 지붕 위에 있는 까마귀까지도 사랑하며(愛其人者 兼愛及屋上之烏), 사람을 미워하면 그 집종들까지도 미워한다(憎其人者 憎其儲庶)’라는 말을 했다.

시인 두보도 그의 詩에서 ‘장인 댁 지붕위에 까마귀, 사람이 좋으니 까마귀도 좋구나(丈人屋上烏 人好烏亦好)’며 읊었다.

옛글에 너무 지나치게 아끼는 것이나 엄청나게 간직하려는 것은 분에 넘치게 애걸하는 것과 같다. 명성을 애걸하면 할수록 추해지고, 재물을 탐하면 탐할수록 더러워지며, 이득만 노리면 노릴수록 사납게 되고 만다.

그래서 살아서 명성을 누리는 것은 의심스러운 것이고 죽어서 얻은 명성은 영원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명성을 심애(甚愛)하지도 얻으려 애쓰지도 마라. 생쥐가 꿀단지 있는 곳을 알면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사랑이건 재물이건 지나치거나 너무 치우치지 말 일이다.


【词目】:爱屋及乌

【读音】:ài wū jí wū

 

【释义】:因为爱一处房子,也爱那房顶上的乌鸦。比喻爱一个人而连带地关爱与他(她)有关系的人或物。说明一个人对另一个人(或事物)的关爱到了一种盲目热衷的程度。及,达到。乌,乌鸦。

【出处】:《尚书大传·大战》:“爱人者,兼其屋上之乌。” 

 

历史传说

传说,殷商末代的商纣王是个穷奢极欲、残暴无道的昏君(参看《助纣为虐》)。“西伯”(西部诸侯之长)姬昌,即后来的周文王,因为反对纣王曾被囚禁,想了很多办法才得以出狱。当时,周的都城在岐山(今陕西省岐山县),周文王回到岐山后,下决心要推翻商朝的统治。他首先聘得军事家姜尚(即姜太公)为军师,积极练兵备战,又兼并了邻近的几个诸侯小国,势力逐渐强大起来。接着,又将都城东迁至丰邑(今陕西省户县附近),准备向东进军。可是,迁都不久周文王逝世了。
周文王的儿子姬发继位,即周武王。姜太公继续担任军师。武王的同母弟姬旦(即周公),异母弟姬奭[shì ](即召公)是武王的两个得力助手。同时,武王还得到了其他几个诸侯的拥护。于是,武王正式宣布出兵伐纣。大军在孟津(今河南孟县之南的一个黄河渡口)渡过黄河,向东北挺进,直逼商朝的朝歌(今河南淇县东北)。因为商纣王已失尽人心,军队也多不愿为他送命,于是逃的逃、降的降,起义的起义,朝歌很快就被攻克。纣王自杀,商朝就此灭亡。以后的八百年,便成了周的天下,称为周朝。[5]
当周武王攻克朝歌之初,对于怎样处置商朝遗留下来的权臣贵族、官宦将士,能不能使局面稳定下来,武王心里还没有谱,因此有些担忧。为此,他曾同姜太公等商议。汉朝人刘向编撰的《说苑·贵法》里有这样一段文字记载:“武王克殷,召太公而问曰:‘将奈其士众何?’太公对曰:‘臣闻爱其人者,兼爱屋上之乌;憎其人者,恶其余胥。咸刘厥敌,使靡有余,何如?’” 大意是说:周武王打败了殷商,召见姜太公,问道:“该怎样对待他们的人员呢?”太公答道:“我听说,如果喜爱那个人,就连带喜爱他屋上的乌鸦;如果憎恨那个人,就连带夺来他的仆从家吏。全部杀尽敌对分子,让他们一个也不留,您看怎样?”
原文中所谓“余胥”,是指地位最低下的小吏,奴隶主贵族的管家之类。(余,末等的意思;胥;胥吏。)
汉朝人伏胜编撰的《尚书大传·大战》里也有类似的记载:  “纣死,武王惶惶若天下之未定。召太公而问曰:‘入殷奈何:’太公曰:‘臣闻之也;爱人者,兼其屋上之乌;不爱人者,及其胥余。’”
这段记载,与《说苑》所载内容相仿。不过“余胥”一词写作“胥余”,两者的含意也不一样。“胥余”已不属胥史等级,而是胥吏以外,比“余胥”更加低下的奴隶或刑徒了。例如商纣王时的“太师”箕子,因对纣王不满,被囚禁而装疯,甘当奴隶,所以《庄子》称他为“胥余”。

 

其它记载

此外,《韩诗外传》、《六韬逸文》也都有关于周武王和姜太公上述那段谈话的记载,内容基本相同。由于这个传说,就产生了“爱屋及乌”这句成语。[6]
汉朝人伏胜编撰的《尚书大传·大战》里也有类似的记载: “纣死,武王惶惶若天下之未定。召太公而问曰:‘入殷奈何:’太公曰:‘臣闻之也;爱人者,兼其屋上之乌;不爱人者,及其胥余。’”
我国最古的一部诗歌集《诗经》的《小雅》部分,题为《正月》的一首诗里,就有“瞻乌爰止,于谁之家”。可见古人多厌恶乌鸦,而绝少有人爱它的。所谓“爱屋及乌”,是说:由于爱那个人,因而连他家屋上的大家都不以为不祥的乌鸦,不觉得讨厌了。这句成语,一向被人们用作推爱的比喻。因为深爱某人,从而连带喜爱他的亲属朋友等人或其他东西,就叫做“爱屋及乌”,或称这样的推爱为“屋乌之爱”。
唐代诗人杜甫在《奉赠射洪李四丈》(射洪,地名,在今四川;李四丈即李明甫)的诗中,开头两句是:“丈人屋上乌,人好乌亦好”。
宋朝人周敦颐的《濂溪诗》中有:“怒移水中蟹,爱及屋上乌”。
宋朝人陈师道的《简李伯益》诗中也有“时清视我门前雀,人好看君屋上乌。”都是用的“爱屋及乌”这个成语典故。

 

 

애급옥오(愛及屋烏)

[意義]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 지붕의 까마귀까지 사랑한다는 뜻이다.

[出典]설원(說苑)

설원은 한(漢)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유향(劉向: 기원전77?-6)의 저술이다.
군신(君臣)의 도리를 중심으로 선진(先秦)에서 한대(漢代)에 이르는 사실(史實)들을 잡다하게 모아 유가(儒家)의 정치 사상과 관점을 밝히고자 하였다. 2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향은 자(字)가 자정(子政)으로 패현(沛縣; 지금의 강소성 패현)사람이다. 중국 목록학(目錄學)의 시조로 알려져 있으며, 신서(新序), 열녀전(烈女傳)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解義]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 주왕(紂王)은 사치스럽고 욕심이 많으며, 포학무도한 군주였다. 당시 서부 제후들의 우두머리였던 서백후(西伯侯) 희창(姬昌)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으로 즉위하기 전에, 걸왕의 행위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대하였다는 이유때문에 구금되어 갖은 고초를 겪고 석방되었다.

희창은 자신의 지역인 기산(岐山)으로 돌아와 상나라를 멸하겠다고 결심하였지만,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희창이 죽자, 그의 아들 희발(姬發)이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곧 주나라 무왕(武王)이었다. 희발은 부친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강상(姜尙,강태공)을 군사(軍師)로 임명하고, 다른 두 동생들의 도움으로 각 제후들을 규합하여, 걸왕 정벌을 정식으로 선포하였다.

주 무왕은 대군을 이끌고 맹진(盟津; 지금의 하남성 맹현 남쪽의 황하 유역)에서 황하를 건너 동북쪽으로 진군하여, 곧장 상나라의 도읍인 조가(朝歌; 지금의 하남성 기현 동북쪽)를 압박해 들어갔다.

상왕은 이미 인심을 잃을 터라, 군인들도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모두 도망하거나 투항하였으며, 일부는 조정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상 왕조의 멸망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때, 상 왕조의 권신(權臣)이나 귀족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주 무왕은 강태공(姜太公)을 불러 그의 자문을 구하였다.

강태공은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의 집 지붕 위에 있는 까마귀까지도 사랑하며(臣聞愛其人者, 兼愛及屋上之鳥), 사람을 미워하면 그의 집 종들까지도 미워한다고 합니다. 적대적인 사람들은 모조리 제거하였으면 하는데, 왕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주 무왕은 강태공의 말에 깨달은 바가 있어, 상나라의 백성들에 대하여 그들을 위로하는 정책을 펼쳤다.

☞ 海納百川有容乃大(해납백천유용내대)

壁立千仞無慾卽剛(벽립천인무욕즉강)

 바다는 모든 하천을 받아들이며, 이런 포용력 때문에 바다를 크다 하는 것이다.  바위가 천 길 우뚝 선 것처럼 욕심이 없어야 강해진다.

 

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태산불양토양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음으로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그 깊이를 얻을 수 있었다"

                [출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