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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필진도후(題筆陣圖後)

solpee 2013. 5. 28. 04:49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丁巳(四月) 19일 火曜日 甲午 小滿(4.12.06:09)節 中候 靡草死(미초사:냉이 잎이 시든다)候입니다.

 

제필진도후(題筆陣圖後)

                                                                                                                    왕희지(王羲之)

 

  夫紙者陣也,筆者刀鞘也,墨者鍪甲也,水硯者城池也,心意者將軍也,本領者副將也,結構者謀略也,揚筆者吉凶也,出入者號令也,屈折者殺戮也。夫欲書者,先幹研墨,凝神靜思,預想字形大小、偃仰、平直、振動,令筋脈相連,意在筆前,然後作字。若平直相似,狀如算子,上下方整,前後平直,便不是書,但得其點畫耳。昔宋翼常作此書,翼是鍾繇弟子,繇乃叱之。翼三年不敢見繇,即潛心改跡。每作一波,常三過折筆;每作一點,常隱鋒而為之;每作一橫畫,如列陣之排云;每作一戈,如百鈞之駑發;每作一點,如高峰墜石;每作一勾(鉤), 屈折如鋼鉤;每作一牽,如萬歲枯藤;每作一放縱,如足行之趣驟。翼先來書惡,晉太康中有人於許下破鍾繇墓,遂得《筆勢論》,翼讀之,依此法學書,名遂大振。欲真書及行書,皆依此法。 書法縱橫藝術論壇9t/FW1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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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若欲學草書,又有別法。須緩前急後,字體形勢,狀如龍蛇,相鉤連不斷,仍須棱側起伏,用筆亦不得使齊平大小一等。每作一字須有點處,且作餘字總竟,然後安點,其點須空中遙擲筆作之。其草書,亦複須篆勢、八分、古隸相雜,亦不得急,令墨不入紙。若急作,意思淺薄,而筆即直過。惟有章草及章程、行狎等,不用此勢,但用擊石波而已。其擊石波者,缺波也。又八分更有一波謂之隼尾波,即鍾公《太山銘》及《魏文帝受禪碑》中已有此體。    夫書先須引八分、章草入隸字中,發人意氣,若直取俗字,則不能先發。予少學衛夫人書,將謂大能;及渡江北遊名山,見李斯、曹喜等書,又之許下,見鍾繇、梁鵠書,又之洛下,見蔡邕《石經》三體書,又於從兄洽處,見張昶《華嶽碑》,始知學衛夫人書,徒費年月耳。遂改本師,仍於眾碑學習焉。時年五十有三,恐風燭奄及,聊遺於子孫耳。可藏之石室,勿傳非其人也

 

   대저 종이는 진이고, 붓은 칼과 긴 창이고, 먹은 투구와 갑옷이고, 물과 벼루는 성지이고, 마음과 뜻은 장군이고, 본령은 부장이고, 결구는 모략이고, 붓을 일으키는 것은 길함과 흉함이고, 드나드는 것은 호령이고, 굽고 꺾는 것은 살육이다. 대저 글씨를 쓰려고 하면 먼저 먹을 갈면서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조용히 하며 미리 자형의 크고 작음, 눕고 우러름, 평평하고 곧음, 떨치고 움직이는 것을 생각하여 근맥이 서로 연결하도록 하는 뜻이 붓 앞에 있은 연후에 글씨를 써야 한다. 만약 평평하고 곧음이 서로 같아 형상이 마치 주판알 같이 위아래가 방정하고 앞뒤가 가지런하고 평평하면, 이는 글씨가 아니고 단지 그 점과 획을 얻을 따름이다.

   옛날 송익이 늘 이런 글씨를 쓰자 그의 스승인 종요가 이를 꾸짖었다. 송익은 3년 동안 감히 종요를 뵙지 못하고, 곧 마음을 가라앉혀 글씨를 고쳤다. 매번 하나의 파(波)를 할 때 항상 세 번 꺾은 필획이 지나가게 하고, 매번 하나의 점도 항상 필봉을 숨겨서 하고, 매번 하나의 가로획을 그을 때 마치 진을 벌림이 구름을 밀치는 것 같이 하고, 매번 하나의 과(戈)를 할 때 마치 3천근의 쇠뇌를 발하는 것 같이 하고, 매번 하나의 점을 찍을 때 마치 높은 봉우리에서 돌이 떨어지는 것 같이 하고, 갈고리는 구부리고 꺾음이 마치 강철 갈고리 같이 하고, 매번 하나의 당김은 마치 오래된 마른 등나무처럼 하고, 매번 하나의 방종함은 마치 발걸음이 빨리 달리는 것처럼 했다. 송익은 원래 글씨를 못 썼는데, 진나라 태강(太康, 280-289) 연간에 어떤 사람이 허하에서 종요의 무덤을 파서 드디어 『필세론』을 얻었다. 송익은 이를 읽고 이 법에 의하여 글씨를 배워 마침내 이름을 크게 떨쳤다. 진서와 행서를 쓰려고 하면 모두 이 법을 의지해야 한다.

   만약 초서를 배우려면 또한 다른 법이 있다. 모름지기 앞은 천천히 하고 뒤는 급하게 하며 글자체의 형세는 형상이 마치 용과 뱀처럼 서로 갈고리로 연결하여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모름지기 모서리ㆍ치우침ㆍ일어남ㆍ엎어짐의 용필 또한 가지런하고 평평하며 크고 작음이 하나같이 같도록 해서는 안 된다. 매번 한 글자를 씀에 모름지기 점이 있는 곳 또한 나머지 글자의 모든 경지를 만든 연후에 점을 안치해야 하는데, 그 점은 모름지기 공중에서 흔들어 내치는 필치로 만들어야 한다. 그 초서 또한 다시 모름지기 전서의 형세?팔분?고예가 서로 섞이도록 해야 하고, 또한 급하지 않고 먹이 종이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급하게 쓰면, 뜻과 생각이 천박해지고 붓은 곧 곧게 지나간다. 오직 장초와 장정서, 그리고 행압서 등은 이러한 형세를 운용하지 않지만 단지 ‘격석파(擊石波)’를 운용할 따름이다. ‘격석파’라는 것은 ‘缺波(결파)’이다. 또한 팔분은 다시 하나의 파가 있으니, 이를 ‘준미파(?尾波)’라고 일컫는다. 즉 종요의 <태산명(泰山銘)> 및 <위문제수선비(魏文帝受禪碑)> 중에 이미 이러한 서체가 있다.

   대저 글씨는 먼저 모름지기 팔분과 장초를 끌어다 예서에 집어넣어 사람의 뜻과 기운을 격발해야지 만약 직접 속자를 취하면 먼저 발할 수 없다. 내가 어려서 위부인의 글씨를 배울 때 장차 크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일컬었다. 양자강을 건너 명산을 유람하면서 이사와 조희 등의 글씨를 보았고, 또 허하에 가서 종요와 양곡의 글씨를 보았다. 또 낙양에 가서 채옹의 <석경삼체>를 보았고, 또 사촌형인 왕흡이 사는 곳에서 장창의 <화악비>를 보고는 비로소 위부인에게 배운 글씨가 한갓 세월만 허비했다는 것을 알았다. 드디어 본래 스승을 개변하여 이에 많은 비를 학습했다. 당시 나이 53세,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 가려질까 두려워 애오라지 가르침을 자손에게 남길 따름이다. 가히 이를 석실에 간직할 수 있지, 그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

 

☞. 颺: 바람에 날릴 양. 鍪: 투구 무. 矟: 창 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