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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而不實

solpee 2013. 5. 27. 05:27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丁巳(四月) 18일 月曜日 癸巳 小滿(4.12.06:09)節 中候 靡草死(미초사:냉이 잎이 시든다)候입니다.

 

[정민의 세설신어] 수이불실(秀而不實)

모를 심어 싹이 웃자라면 이윽고 이삭 대가 올라와 눈을 내고 꽃을 피운다. 그 이삭이 양분을 받아 알곡으로 채워져 고개를 수그릴 때 추수의 보람을 거둔다. 처음 올라오는 이삭 대 중에는 아예 싹의 모가지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대를 올려도 끝이 노랗게 되어 종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은 농부의 손길에 솎아져서 뽑히고 만다. 싹의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이삭 대의 이삭 패는 자리가 싹수(穗)다. 싸가지는 있어야 하고, 싹수가 노래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논어 '자한(子罕)'에서 이렇게 말했다. "싹만 트고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있고, 꽃은 피었어도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이 있다."(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 묘이불수(苗而不秀)는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다. 수이불실(秀而不實)은 싹수가 노랗다는 뜻이다. 싹이 파릇해 기대했는데, 대를 올려 꽃을 못 피우거나, 꽃 핀 것을 보고 알곡을 바랐지만 결실 없는 쭉정이가 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결과는 같다.

모판에서 옮겨져 모심기를 할 때는 모두가 푸릇한 청춘이었다. 들판의 꿈은 푸르고 농부의 기대도 컸다. 애초에 싸가지가 없어 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만고만한 중에 싹수가 쭉쭉 올라오면 눈길을 끌지만 웃자라 양분을 제대로 못 받고 병충해를 입고 나면 그저 뽑히고 만다. 탐스러운 결실을 기대했는데 참 애석하다.

한나라 때 양웅(揚雄)의 아들 자오(子烏)는 나이 아홉에 어렵기로 소문난 아버지의 책 '태현경(太玄經)' 저술 작업을 곁에서 도왔다. 두보의 아들 종무(宗武)도 시를 잘 써서 완병조(阮兵曹)가 칭찬한 글이 남아 있다. 중추(中樞) 벼슬을 지낸 곽희태(郭希泰)는 다섯 살에 '이소경(離騷經)'을 다섯 번 읽고 다 외웠다는 전설적인 천재다. 권민(權愍)은 그 난해한 '우공(禹貢)'을 배운 즉시 책을 덮고 다 암송했다. 하지만 이들은 후세에 아무 전하는 것이 없다.

천재가 꾸준한 노력을 못 이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 맞는 얘기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되 네 끝은 창대하리라. 이것은 성경의 말씀이다. 시작만 잔뜩 요란하다가 용두사미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더 많다. 재주를 못 이겨 제풀에 고꾸라진다. 꾸준함이 재주를 이긴다. 노력 앞에 장사가 없다.

 

 

봄날도 환한 봄날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간다
우주의 넓이가 문득,
궁금했던 모양이다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다 돌아온다
그런데, 왜 돌아오나
아마 다시 재나 보다

―이종문(1954~ )


	 /유재일
/유재일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모습을 본다. 다른 곳도 아닌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호연지기(浩然之氣)'에서 따왔을 호연정에서조차 꼭 몸만큼만 재며 나아가는 꼼꼼쟁이 자벌레. 호연지기와는 거리가 먼 묘한 대조다. 하지만 몸을 말았다 펴는 고만큼씩만 전진하는 모습은 똑 구도자의 오체투지다.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똑같은 자세로 나아가는 수도자의 일생이 아닌가.

그런데 그 자벌레가 봄날 호연정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신다. 아니 건너다가 다시 돌아오신다. '아마 다시 재나 보다'. 죽비를 딱 내려치는 한 줄의 맛. 다시 재려고 돌아오다니! 시쳇말로 빵 터뜨려주는 일품이다. 웃음 속에 눙쳐 넣은 깨달음 같은 한 방으로 불이라도 켠 듯 봄이 더 환해진다. 호연정 대청마루에 시원하게 눕고 싶은, 봄날도 참 환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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