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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당의고전]能言鸚鵡(능언앵무)

solpee 2013. 5. 16. 06:04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丁巳(四月) 7일 木曜日 壬午 立夏(3.26.17:18)節 末候 王瓜生(왕과생:쥐 참외 나온다)候입니다.

 
[근당의고전]能言鸚鵡(능언앵무)

yīng wǔ néng yán말은 잘하나 실제 학문이 없는 사람을 이른다

 

 말을 할 줄 아는 앵무새라는 뜻으로, 말만 잘하고 학식이나 행실은 따르지 못한 것을 말함이니 곧 禮(예)를 모르고 사람답지 못함을 금수보다 못하다고 하는 비유에도 쓰인다.

禮記(예기)에 ‘앵무새는 말을 할 줄 알지만(鸚鵡能言) 새에 지나지 않으며(不離飛鳥) 성성(猩猩:상상의 동물로 원숭이와 비슷하다 가장 사람과 가깝고 소리는 어린애의 울음소리와 같으며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고 또 술을 좋아한다)은 말을 할 줄 알지만 금수에 지나지 않는다(不離禽獸).

이제 사람으로서 예가 없다면 (今人而無禮) 비록 말을 할 줄 알지만(雖能言) 또한 금수와 같은 마음이 아니겠는가(不亦禽獸之心乎). 저 금수에게는 예가 없다(夫唯禽獸無禮).

그런 까닭에 아비와 아들이 암컷을 함께 취하고 있는 것이다(故父子聚 ).

그런 까닭에 성인이 일어나서(是故聖人作) 禮를 만들어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쳐(爲禮以敎人) 사람으로 하여금 예가 있게 하였고(使人以有禮) 그것이 사람과 짐승과 다르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한다(知自別於禽獸)’라는 말이 적혀 있다.
释义】鹦鹉也能学人说话。比喻谨防走漏消息

【出处】《淮南子·说山训》:“鹦鹉能言,而不可使长。是何则?得其所言,而不得其所以言。”
【示例】宋·柳永《玉楼春》词:“乌龙未睡定惊猜,鹦鹉能言防漏泄。”



평수상봉 [萍水相逢:píng shuǐ xiāng féng]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다가 만난다는 뜻으로, 여행 중에 우연히 사람을 만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래: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의 감강(贛江) 기슭에 높이 솟은 등왕각(縢王閣)은 천년 전의 웅장한 모습을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당(唐)나라 고조(高祖)의 아들 원영(元嬰)이 홍주자사(洪州刺使)로 있을 때 세워진 이 누각은 원영의 봉호(封號)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원영이 이곳을 떠나자 등왕각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고 새들이 둥지를 틀고 서식하면서 점점 황폐해졌다.

 

당나라 고종 함형(咸亨) 2년에 염백서(閻伯嶼)라는 인물이 홍주도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염백서는 낡고 허름해진 등왕각을 중수(重修)하고 9월9일 중양절을 맞아 낙성을 축하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등왕각에는 초대받은 왕장군(王將軍), 맹학사(孟學士)를 비롯해 천리 먼곳의 하객들까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당시 연회에서는 시에 뛰어난 문사를 청하여 서문(序文)을 남기는 것이 관례였는데 염백서는 이를 기회 삼아 문사였던 사위 오자장(吳子章)의 재주를 자랑할 심산이었다.

연회가 시작되자 하객들은 관직과 나이순에 따라 차례로 착석했다. 염백서는 사람을 시켜 문방사보인 종이, 붓, 먹, 벼루 등를 내오게 했다. 그리고는 좌중의 하객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 공들께서 자리를 빛내주시니 길이 남을 성연일세. 부디 마음껏 운필하시어 새롭게 태어날 등왕각에 훌륭한 서문을 남겨주시구려."

문방사보는 관직순에 따라 차례로 전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염백서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문구사보는 가장 연소하고 관직이 낮은 왕발(王勃)의 손에 돌아왔다. 왕발은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이를 받아 자기 앞에 내려놓았다.

연회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도독염공이 베푼 성대한 잔치에서 주인의 흥을 깨고자 작정한 것 아니오?"

왕발은 아랑곳 하지 않고 붓을 들어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어린 자가 감히 나에게 대적하다니!" 화가 잔뜩 난 염백서는 서동(書童)에게 그의 문장을 전해달라 명하고는 도포자락을 날리며 자리를 떴다.

 

"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鶩齊飛)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

저 하늘 노을은 짝 잃은 기러기와 나란히 하고,

가을 물빛은 높은 하늘과 같은 색이로구나"

 

왕발의 화려한 문필에 사람들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고의 걸작이요. 천재난봉(千載難逢)인 자로다" 하객들은 저마다 극찬하였다.

이를 전해 듣고 자리에 돌아온 염백서는 그제서야 왕발에게 경의를 표하고 깍듯이 대했다.

왕발의 "등왕각서(滕王閣序)"는 오늘날까지도 명문장으로 회자되고있다.

왕발은 훗날 초당(初唐) 4걸(四傑)이라 불리며 중국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 시인으로 그 명성을 날렸으나 미천한 신분 탓에 정치에서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여 늘 불만이 가득했으며 그 슬픔을 글에 담아내곤 했다.

 

"關山難越(관산난월)하니 誰悲失路之人(수비실로지인)고

萍水相逢(평수상봉)하니 盡是他鄕之客(진시타향지객)이라"

"관산고개 넘기 어렵다는데 그 누가 길 잃은 자를 애처로이 여길고

부평초와 물이 만나듯 모두가 우연히 만난 타향의 길손들이네."

 

평수상봉은 서로 잘 알지 못하던 사람들끼리 물에 떠다니는 부평초같이 우연히 만남을 비겨 이르는 말이다.


王勃,字子安,唐初著名的文学家。少年时便很有才学,6岁时就能写文章,而且写得又快又好;14岁时,已能即席赋诗。王勃与杨炯、卢照邻、骆宾王以文辞齐名,合称“初唐四杰”。王勃15岁应举及第,曾经担任参军(将军府的重要幕僚),后因罪免官。公元676年,王勃去交趾(在今越南境内)探望做县令的父亲。途经洪都(今江西南昌)时,都督阎伯屿因重修的滕王阁落成,定于九月九日重阳节在那里宴请文人雅士和宾客朋友。阎伯屿的女婿吴子章很有文才,阎伯屿叫吴子章事先写好一篇序文,以便到时当众炫耀。王勃是当时有名文士,也在被请之列。宴会上,阎伯屿故作姿态,请来宾为滕王阁作序。大家事先都无准备,所以都托辞不作。请到王勃时,王勃却并不推辞,当场挥毫疾书,一气呵成,写就了著名的《滕王阁序》,各宾客看了一致称好。阎伯屿读后也深为钦佩,认为这篇序文比自己女婿写的要高明得多,也就不再让吴子章出场著文了。《滕王阁序》构思精绝,文气通顺畅达,而又纵横交错。序文在铺叙盛会胜景的同时,也流露出王勃壮志难酬的感慨:“关山难越,谁悲失路之人?萍水相逢,尽是他乡之客。”表达了王勃生不逢时,慨叹自已命运不佳的心情。不久,王勃离开洪都,前往交趾。不幸的是在渡海时遇难,时年27岁

貨無常主

 돈에는 정해진 주인이 따로 없다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비록 남의 말을 모는 마부(執鞭之士·집편지사)의 직업이라도 가리지 않고 하겠다는 공자(孔子)의 돈에 대한 다부진 각오가 ‘논어(論語)’에 나온다. 돈을 버는 일이 경시돼서는 안 되고 돈을 버는 과정에서 직업의 귀천을 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유교는 돈에 대한 경멸과 가난에 대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정당한 방법(義)을 통하지 않고 돈을 버는 불로소득이 문제이지 돈을 버는 것은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또 가난 자체가 즐겁거나 존경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 공자는 사회가 도덕적으로 안정돼 있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면 돈을 못 버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가난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고 천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邦有道 貧且賤焉 恥也·방유도 빈차천언 치야).’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이 말 속에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반영돼 있다.

젊은이들이 일명 3D 업종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직업에 차등을 두고 오로지 편하고 쉬운 일에 몰려들고 있으며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것이 더욱 고상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기업과 안정된 공무원직은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중소기업과 현장 직업은 사람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직업에 대한 차별과 양극화는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며 나아가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사마천 ‘사기’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보면 돈을 버는 데는 직업의 귀천이 없고 돈은 정해진 주인이 없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발휘하면 돈이 몰려들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직업을 가리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부무경업(富無經業)! ‘부자(富)가 되기 위해서 일정한(經) 직업(業)은 없다(無)는 뜻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에 직업의 귀천이나 정해진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절약하고(纖嗇) 노력해(筋力) 부자가 되는 것이 돈을 버는 정도(正道)지만 때로는 모험을 하며 돈을 벌기도 하고(奇勝),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행상(行賈)을 하기도 하고, 화장품을 팔아 천금을 모으기도 하고(販脂), 음료를 만들어 팔거나(賣漿), 하찮은 기술인 칼을 갈아서 돈을 벌기도 하고((사,새,선,세,쇄,최)削), 말을 고치는 수의사 직업(馬醫)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 화식열전에 나오는 재벌이 된 사람들의 직업들이다. 심지어는 남의 무덤을 도굴하거나(掘塚), 게임이나 도박 같은 직업(博희)을 통해 재벌이 된 사람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결론적으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되려면 직업의 귀천과 일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 돈에 대한 가치관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데는 정해진 직업이 없다(富無經業). 돈도 정해진 주인이 없다(貨無常主·화무상주).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돈이 물밀듯이 몰려들 것이고(能者輻湊·능자폭주), 이런저런 직업을 따지는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가진 돈마저 와해되고 말 것이다(不肖者瓦解·불초자와해). 천금을 벌어 부자가 된 사람은 한 도읍을 소유한 임금에 비교할 수 있고(千金之家比一都之君·천금지가비일도지군), 수만금을 번 부자는 나라를 소유한 왕과 같은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巨萬者乃與王者同樂·거만자내여왕자동락). 그러니 이렇게 돈을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무관의 제왕이 아니겠는가(豈所謂素封者邪非也·개소위소봉자사비야). 소봉(素封)은 비록 봉지(封地)를 받은 귀족이 아닌 일반인(素)에 지나지 않지만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을 일컫는 말이다. 돈을 버는 것은 존경받을 일이며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