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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6일 오전 06:34

solpee 2013. 4. 16. 06:35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丙辰(三月) 7일 火曜日 壬子 淸明(4.5.00:02)節 末候 虹始見(홍시견:무지개가 보이기 시작한다)候입니다. 小寒에서 穀雨까지 부는 妬花風(투화풍;꽃샘바람) 중에서 柳花風(유화풍: 버들꽃 바람)이 부는 候이기도 합니다.

 

불필친교(不必親校)

최고지도자가 모든 일을 직접 챙겨선 안 된다

 

  사람이 모든 일에 완벽할 수는 없다. 지도자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기도 하다. 너무 잘해 보려고 만사를 다 간섭한다면 쉽게 지치고 후유증만 커질 수 있다. 삼국지의 한 대목. 제갈공명이 직접 장부를 조사한 일이 있다(親校簿書). 하급직인 주부 양과(楊顆)가 정색을 하고 건의했다. “통치에는 체통이 있습니다. 상하관계라도 고유권한을 침범해선 안 됩니다. 사내종은 밭 갈고 계집종은 밥 짓고, 닭은 새벽을 알리고 개는 도둑을 지키는 이치입니다. 이 모든 일을 주인 혼자서 할 수 없는 노릇이듯 어찌 지체 높으신 군사께서 이리 하십니까?” 공명이 부하에게 예를 갖춰 물러나왔다.


한문제(漢文帝)가 좌승상 진평(陳平)에게 형사사건의 건수와 연간 조세수입의 규모에 대해 물엇다. 그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형사사건은 정위(廷慰)의 담당이고, 세금은 치속내사(治粟內史)가 잘 압니다." 황제가 불쾌했다. "그럼 승상은 무슨 일을 하는가?" "승상은 천자를 보좌하고 조화를 살피며, 사방을 어루만지고, 관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을 합니다. 반대로 하면 천하가 어지러워집니다." 황제가 승복했다.

 

 한선제(漢宣帝) 때 승상 병길(丙吉)이 외출을 했다. 길에서 패싸움이 벌어져 여럿이 죽고 다쳤다. 병길은 본 체도 않고 지나쳤다. 조금 더 가니 소가 수레를 끄는 데 숨이 차서 혀를 내밀고 헐떡거렸다. 병길이 수레를 멈추고, 소가 몇 리나 왔는지를 물었다. 좌우에서 투덜거렸다. "좀 전 사람이 죽는 것은 본 체도 않으시더니 소가 숨을 헐떡이는 것은 어찌 물으십니까?" "패싸움은 경조윤(京兆尹)이 법으로 처리하면 그뿐, 승상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봄이라 아직 덥지 않는데, 소가 저리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니 날씨가 절기를 벗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이 상할까 염려해 그랬다. 재상은 음양의 조화를 근심할 뿐 길에서 일어난 일은 묻지 않는다." 관리들이 탄복했다.


자녀 일에 지나칠 정도로 간섭하는 부모, 말단 직원 업무까지 결재하려는 사장, 장관을 실무자처럼 대하는 국가최고지도자 등은 서로 민망한 일이다. 불필친교(不必親校), ‘최고지도자가 모든 일을 직접 챙겨선 안 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이 공자를 환대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는 도리를 물었다. 공자의 답은 오늘에도 교훈을 주고 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각자가 자신의 분수와 명분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정명(正名)사상이다.

윗사람은 믿고 일을 맡기되 결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면 된다. 그리고 걸맞은 예우를 하는 것이다. 신상필벌이다. 한비자는 ‘임금이 신하들을 제어하는 힘은 상과 벌(導制君臣因賞罰)’임을 전제, “명분이 합당하고 사실이 일치하면 은혜를 베풀고(當名合實惠慈恩), 사리에 어긋나며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땐 벌을 내려야 한다(逆事違言該命卒)”고 제시한다.

 

☞.《原典》诸葛亮得知吴军已退,怅然良久,竟至晕倒,从(從)此遂卧床不起。时为蜀汉建兴十二年(公元234年)八月。
    孔明之病,完全是忧(憂)劳所致。十余年来,诸葛亮集军政大权于一身,太过自信,对谁都不放心,夙兴夜寐,事必躬亲,终于积(積)劳成疾。
    甚至,他还不辞辛苦亲自核对有关部门的账(帳)本。主薄杨颗曾劝(勸)道:“为治有体,上下不可相侵。譬如一个家庭,主人令奴仆负责耕种(種),令婢女负责做饭,所养(養)的鸡(鷄)管着早晨打鸣,狗负责监视有无盗贼,马的任务是充当交通工具。这(這)样(樣)一来,家中百事俱兴,主人所求皆足,可以高枕无忧。如果主人什么事也去干,为了些小事劳累不堪,结果却什么也做不好。这难道是其智力不如奴婢鸡狗吗?他是不会当家作主啊。所以,古人称坐而论道者为‘三公’,作而行之者为‘士大夫’。当年丙吉(西汉宣帝时的丞相。一日,丙吉出行,见路上有人斗殴,死伤者横在道中,丙吉对此置之不理。再往前走,发现有人赶牛,丙吉便派人去问牛喘气是否很粗。随从不解,问他何以不问斗殴者死人多少而关心牛喘气,丙吉说,处理打架斗殴之事自有负责治安的官员管,做宰相的应关心气候是否正常、阴阳是否协调。如果牛喘气粗,说明天气转热,不利农时。)不问横道死人而忧牛喘;陈平(汉高祖的开国功臣,惠帝、文帝时任丞相)不知道府库中的钱粮数目,说此等事他不需要知道,自有主管此事的官员。他们都是达于位份之体的人。您治理国家,竟亲自核对簿书,汗流浃背,不是太辛苦了吗?”
    诸葛亮听了杨颗的劝告,虽也认为言之有理,但还是事必躬亲。他认为,刘备死前,将国事托付于他,他只有兢兢业业,尽心尽力,鞠躬尽瘁,死而后已,才能报答刘备对他的知遇之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