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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首叢脞 股肱惰墮

solpee 2013. 3. 24. 17:39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乙卯(2) 十三日 日曜日 己丑 春分(20:02)節 初候 玄鳥至(현조지:제비가 온다)候 끝날입니다. 小寒에서 穀雨까지 부는 妬花風(투화풍;꽃샘바람) 중에서 海棠風(해당풍;해당화 바람)이 부는 候이기도 합니다.



오늘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장인내외분,동서도 뵙고 왔습니다.

 

元首叢脞 股肱惰墮

군자가 세세하게 모두 챙기면 신하는 게을러 황폐하게 된다.

 

尤菴 송시열이 孝宗 임금에게 올린 「기축봉사」중에서....

 

臣按。昔諸葛亮自治簿書。楊顒諫曰。坐而論道謂之宰相。起而行之謂之有司。故陳平不知錢穀。丙吉不問鬪死。亮謝之。夫宰相猶然。況人主乎。臣竊聞。四方詞訟大小文書。多經睿財云。如此則君勞臣逸。其舛甚矣。精神日弊。志氣日耗。小察大遺。綱廢目擧。上之聽斷愈勤。而其眩愈甚。下之蒙蔽愈巧。而爲害愈深。豈若精選公卿輔弼之人。委任責成。而一人提綱挈領。自無不摠也哉。頃年。修葺大內。所謂相臣褰衣攘袂。出入衆工之間。以董其役。四方傳笑。是皆置相不以賢而自任卑。人君下行其事。朱子所謂遞低一等者也。孔子稱舜之無爲而治者。是乃命九官。咨十二牧之效也。乞留聖念。


신이 살펴보건대, 옛날 諸葛亮이 친히 장부와 문서를 처리하자, 부하 楊顒이 간언하기를, “앉아서 이치를 살피는 자를 ‘재상’이라고 하고, 일어서서 그것을 행하는 자를 ‘有司’라고 합니다. 그래서 陳平은 錢穀에 관한 내용을 몰랐었고, 丙吉은 싸우다 죽은 것에 대해 묻지 않았던 것입니다.”라고 하니, 제갈량이 사과하였습니다. 재상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임금이겠습니까.
  신이 삼가 들으니, 사방에서 올라오는 송사와 크고 작은 문서가 대부분 성상의 재가를 거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임금은 수고롭고 신하는 편안하게 될 것이니, 그 어긋남이 심합니다.
  정신이 날로 피폐해지고 志氣가 날로 손상되어, 작은 것은 살피면서 큰일은 빠뜨리고, 大綱은 폐하면서 細目은 거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상께서 聽斷을 부지런히 하면 할수록 현혹됨은 더욱 심해지고, 아랫사람이 기만하기를 교묘하게 하면 할수록 그 해악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公卿이나 輔弼이 될 만한 사람을 정밀하게 선발한 다음 직책을 맡겨 책임지게 하고, 임금은 큰 줄기만을 잡음으로써 저절로 모든 것이 통솔되게 하는 것만 하겠습니까.
  지난해 大內를 수리할 때, 이른바 재상이라는 자가 직접 옷을 말아 올리고 소매를 걷은 채 뭇 장인들 사이를 오가면서 그 역사를 감독한 일이 있었는데, 사방에서 전해가며 비웃었습니다. 이는 모두 어진 이를 재상에 두지 않아, 그 재상이 스스로 비천한 일을 맡아서 하고 임금이 격을 낮추어 그 일을 한 것이니, 朱子가 이른바 “한 등급을 떨어뜨렸다.”는 경우입니다. 공자가 舜임금의 無爲之治를 칭송한 것은 바로 아홉 명의 관원을 임명하고 열두 牧의 수령에게 자문을 구한 효과 때문이었습니다. 성상께서는 부디 유념하소서.

 

우암(尤菴) 송시열이 갓 즉위한 효종(孝宗) 임금에게 올린 「기축봉사」 중의 한 단락이다. 봉사는 밀봉한 상소에 해당하는 것으로, 임금에게 기밀이 담긴 건의를 올릴 때 쓰는 형식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우암의 이 글은 주로 효종 당시 시도되었던 북벌(北伐)과 관련된 사료로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경영자의 자세와 관련하여 눈여겨 볼만한 내용도 들어있다.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책사로, 창업의 일등공신이었던 진평(陳平)이 훗날 좌승상(左丞相)이 되었을 때였다. 하루는 고조가 그에게 한 해 동안의 전곡(錢穀)의 수입과 지출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는데,


“그 일은 따로 담당하는 유사가 있습니다.”

라고 하고는, 구체적인 숫자를 모르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로부터 100여 년 뒤 무제(武帝) 때, 정승인 병길(丙吉)이 길을 가다가 소가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고는 수행하던 부하를 시켜 이유를 물어보게 했다. 부하가 의아해하며,

“아까는 길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시더니, 소가 헐떡이는 것은 어째서 관심을 두십니까?”

하고 묻자,

“사람이 죽은 것이야 담당하는 관리가 처리할 일이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재상(宰相)인 나의 직분은 음양(陰陽)을 조화시키는 것인데, 한여름도 아닌 철에 소가 헐떡이는 것은 혹시 음양이 조화를 잃은 것이 아닌가 하여 물어본 것이다.”

라고 하였다.

  유교문화권에서 재상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사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전통적인 리더십보다는, 자잘한 일까지 직접 꼼꼼하게 챙기고 다방면으로 능력을 보여주는 리더십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물론 일에 전혀 무관심하고 무능한 것보다는 낫겠지만, 다양화되고 전문화된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어쭙잖게 모든 일에 간섭하다가는 자칫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정신의 과도한 분산과 기력의 저하로 말미암아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부하들까지도 의욕을 잃거나, 나태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교문화권 제왕학(帝王學)의 대표적 고전인 『서경(書經)』에는,

“머리인 임금이 자잘한 일까지 직접 챙기면 팔다리인 신하가 게을러져서 만사가 엉망이 될 것이다.[元首叢脞哉 股肱惰哉 萬事墮哉]”

라고 하였고, 씨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전 미국 대통령은,

“가장 훌륭한 리더는 유능한 인재들을 발탁하여 자신의 주변에 둘 수 있는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이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일을 수행할 때 전혀 간섭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자기 절제력이 충분히 갖추어진 사람이다.”

라고 하였으니, 위임을 통한 효율성 제고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의 인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치를 안다고 해서 다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치를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당시로써는 고령이라고 할 수 있는 54세의 몸으로 원정 부대의 대소사를 직접 처리하다가 부하의 충고를 받았던 제갈량의 경우에서도 그런 사례를 볼 수 있다. 우암이 인용한 양옹(楊顒)의 간언에는 다음 내용이 더 들어있다.

“다스림에는 일정한 규범이 있는 법이니, 상하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노비들이 할 일을 주인이 직접 맡아서 처리한다면 심신이 지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그런 일에 대한 지식이 노비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천하의 지략가라는 제갈공명(諸葛孔明)조차도 그러한 우를 범했던 것을 보면, 윗사람이 되어서 잠자코 보고만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가보다.

 

 

允德圖義

 

윤의 덕이『書經』에서 가장 온전하면서도 크게 드러났으니 ‘惟明克允’이라 하였고, ‘允恭克讓’이라 하였으며,『左傳』에서는 ‘允堂則歸’라 하였고, 또『家語』에서는 ‘允德圖義’라 하였다.

 

 柳下惠是我国春秋时期(前722~前481)的一位著名历史人物,比他稍晚的至圣孔子(前551~前479)和亚圣孟子(约前385~前304)皆对其推崇备至。孔子称赞柳下惠“孝恭慈仁,允德图义,约货去怨,轻财不匮”(《孔子家语?贤君》),是“言中伦、行中虑”的高尚“逸民”。(《论语?微子》)孟子称柳下惠是可为“百世之师”的“圣人”:“闻柳下惠之风者,薄夫敦,鄙夫宽,奋乎百世之上,百世之下闻者莫不兴起也。”(《孟子?尽心下》)孟子又将柳下惠与伯夷、伊尹、孔子并称为四大圣人,而“柳下惠,圣之和者也。”(《孟子?万章下》)此即“和圣”这一至上尊号之由来.

就是德行好,品德高尚,懂得礼义

 

如履薄冰

                           詩經 / 小雅 . 小旻


 

不敢暴虎와 不敢馮河를 人知其一이오 莫知其他ㅣ로다 戰戰兢兢하야 如臨深淵하며 如履薄冰호라
감히 범을 맨손으로 잡지 못하는 것과 감히 하수를 걸어서 건너지 못하는 것을, 사람이 그 하나를 알고 그 다른 것을 알지 못함이로다.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조심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한 것과 같으며 얇은 얼음을 밟는 것과 같이 하라.

○賦也ㅣ라 徒搏曰暴이라 徒涉曰馮이니 如馮几然也ㅣ라 戰戰은 恐也ㅣ오 兢兢은 戒也ㅣ라 如臨深淵은 恐墜也ㅣ오 如履薄冰은 恐陷也ㅣ라 ○衆人之慮ㅣ 不能及遠하야 暴虎馮河之患은 近而易見하니 則知避之어니와 喪國亡家之禍는 隱於無形하니 則不知以爲憂也ㅣ라 故로 曰戰戰兢兢하야 如臨深淵하며 如履薄冰이라하니 懼及其禍之詞也ㅣ라

○부라. 한갓 맨손으로 잡는 것을 폭이라 하니라. 한갓 걸어서 건너는 것을 빙이라 하니 평상에 의지한 것과 같음이라

(곧 물에 의지하여 건너는 것을 말함이니 빙하는 물에 빠진다는 뜻). 전전은 두려움이고, 긍긍은 경계함이라. 여림심연은 떨어질까를 두려워함이고, 여리박빙은 빠질까를 두려워함이라.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멀리 미치지 못하여 범을 맨손

으로 때려잡고 하수를 걸어서 건너는 근심은 가까워서 보기에 쉬우니 피할 줄을 알거니와, 나라를 잃고 집안이 망하는

화는 형체가 없는 데에 숨어 있으니 근심이 됨을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전전긍긍하여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한 것 같이 하며 살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라 하니 그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는 말이라.


‘단추를 채우면서’

                           천양희(1942∼)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