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虚則欹,中則正,滿則覆

solpee 2013. 2. 28. 05:54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甲寅月(1) 19日 木曜日 乙丑 雨水(21:01)節 末候 草木萌動(초목맹동:초목이 싹트기 시작한다)候입니다. 小寒에서 穀雨까지 부는 妬花風(투화풍;꽃샘바람) 중에서 李花風(이화풍;자두〈오얏〉나무꽃 바람)이 부는 候이기도 합니다.

 

과즉필쟁의(寡則必爭矣)-황종택의新온고지신

 

재물을 모으는 데에도 법도가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다. 경주 최부잣집의 일화는 오늘에도 큰 교훈으로 전해진다. 1900년대 초반까지 12대에 걸쳐 만석꾼을 유지하며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희사 등 값있게 재물을 쓴 정신의 바탕은 공익에 기반한 공존공영이다. 예컨대 ‘흉년에 값싸게 땅을 사지 마라’,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사방 십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을 꼽을 수 있다. 사회환원을 통한 적선지가(積善之家)의 덕을 쌓았음이다.

무릇 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부자들은 많은 재산이 있어 생활에 어려움을 모르겠지만, 서민들은 다르다. 하루하루의 삶이 버겁고, 노후 걱정은 태산처럼 무겁다. 상대적 박탈감은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정당하게 재물을 모은 이들마저 애먼 오해를 받기도 한다. 사회 갈등의 심화를 부른다. 순자가 “부족하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난다(寡則必爭矣)”고 말한 것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집이 가난해서 살림이 곤궁해지면 부부, 부자, 형제 간에도 마찰을 빚을 수 있는 소지가 커진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임금 등 상류층의) 푸줏간에는 고기가 넘치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 반면 들판에 백성들의 굶어 죽은 시체가 있음을 전제, “이는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한 바와 같다(此率獸而食人也)”고 경책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상위, 하위 각 20%의 양계층 간 소득은 2003년 5배에서 지난해엔 약 6배로 ‘빈익빈 부익부’가 9년 전보다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꼭짓점을 찍었던 소득 양극화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모습이다. 순자는 ‘꽉 찬 것은 덜어내고 빈 것은 채워야 한다(損滿充虛)’며 “가득 차면 엎어지고 비면 기우나 적당히 채우면 바로 서니, 공이 많고 덕이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滿福虛欹中正立 多功大德資謙揖)”고 아프게 충고했다. 공존은 상생의 씨앗이다.

 

☞.原文: 孔子觀於鲁桓公之廟,有欹器焉。孔子問於守廟者曰:“此爲何器?”守廟者曰:“此盖爲宥坐之器。”孔子曰:“吾聞宥坐之器者,虚則欹,中則正,滿則覆。”孔子顧謂弟子曰:“注水焉!”弟子挹水而注之。中而正,滿而覆,虚而欹。孔子喟然而嘆曰:“吁(籲)!惡有滿而不覆者哉!”子路曰:“敢問持滿有道乎?”孔子曰:“聰明聖(圣)知,守之以愚;功被天下,守之以讓(让);勇力撫(抚)世,守之以怯;富有四海,守之以謙(谦)。此所謂(谓)挹而損(损)之之道也。”

 

如是我聞 座右銘

 

"座"는 자리, 좌석으로 새긴다. '广(엄 호)'는 지붕 처마를 본떴으며, '宀(집 면)'과 같이 사는 집을 표시한다, "坐"는 두 사람이 맨바닥에 마주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본떴으며 뜻과 함께 독음도 표시한다.

"座右"는 바로 자리의 오른쪽을 말한다. 옛람들은 흔히 애지중지하는 글이나 그림 등을 이곳에 두었다.

"銘"은 器皿(기명) 새긴 글을 말한다. 스스로 잡도리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공덕을 기리기도 하였다.

예컨대 《禮記,大學》:"《湯之盤銘》曰:'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새기다,아로새기다, 명심하다로 풀이하기도 한다. 예컨대:《三國志, 吳志, 周訪傳》: "銘心立報, 永矣無貳." 나중에는 문채 이름이 되었다.

예컨데:明徐師曾《文體明辦序說》:"考諸夏商鼎彛卣(술통 유)盤匜 (주전자 이)之屬, 莫不有銘....然要其體不過有二: 一曰 警戒 二曰 祝頌."

淸 金農《冬心齋硯銘.自序》:"文章之體不一, 而銘爲最古." 銘은 金과 名으로 이루워졌다. 金은 여기서청동이나 순동으로 만든 鐘鼎 등을 표시하고, 銘은 여기서 가르다, 가름하다,분명하다 등을 표시한다. 그리고 독음도 표시한다.예컨대: 漢 劉熙《釋名.釋言語》:"名, 明也,名實(事)使分明也."名은 口와 夕으로 이루어졌다. 밤에는 보이지 않으므로 자기 이름을 스스로 불러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알게 함을 표시한다.

 

東漢의 崔瑗에게 《座右銘》이 있었으며, 《文選》에 실려있다.

唐 呂延濟《〈座右銘〉題注》:"瑗兄璋爲人所殺, 瑗遂手, 刃其仇, 亡命, 蒙赦而出,作此銘以自戒,嘗置座右,故曰座右銘也." 唐 白居易《 〈續座右銘〉序》:"崔子玉 《座右銘》,余竊慕之,雖行未能盡, 常書屋壁, 然其間似有未盡者, 因續爲座右銘云.

崔瑗(77~142)은 涿郡 安平(오늘의 河北省)사람이며, 字는 子玉, 崔絪의 둘째 아들이다.

賈逵(30~101)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천문, 역법, 京房《易傳》에 밝았다. 벼슬은 濟北 相에 이르렀다. 病死하였으며 66세였다. 글을 잘 짓고 붓글씨를 잘 썼는 데특히 장초에 뛰어났다.

《筍子》에 《宥坐》의 구실은 오늘날의 座右銘과 비슷하다. 唐 楊倞《筍子.宥坐》注에 "宥如右同, 言人君可置於坐右以爲戒也. 《說苑》作 '右坐'. "라 하여 宥坐之器는 옛적 임금이 자리의 오른쪽에 두고 스스로를 다잡는 器物이었다. 宥坐器, 宥器, 宥 (잔 치)라고도 불렀으며,바로 欹器이다. 欹는 여기서 기울다, 비스듬하다, 삐딱하다로 새기며 "攲"로 갈음할 수 있다. 그러므로 欹器는 툭하면 기울어지고 똑바로 놓기가 힘든 그릇이다. 이 그릇은 무게 중심이 중간에 있어 물을 적게 부우면 기울어지고, 알맞게 부우면 바르게 서고, 가득 부우면 엎어진다. 옛사람은늘 자리의 오른쪽에 두고 자만과 교만을 경계하였다.

 

崔子玉의 座右銘

 

無道人之短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마라

無說己之長   자기의 자랑을 하지 마라 

施人愼勿念   남에게 베푼 것을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世譽不足慕   세상의 명예에 연연하지 마라.

唯仁爲紀綱   오직 어짊으로 기강을 삼아라.

隱心而後動   마음을 다잡은 후에야 행동하라.

無使名過失   명분에 얽혀 과실을 범하지 마라.

守愚聖所藏   어리석음을 지키고 성현의 마음을 간직하라.

在涅貴不淄   진흙 속에 박혀도 물들지 마라 

暧暧內含光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잃지마라.

柔弱生之道   부드럽고 약함이 삶의 길이다.

老氏誡剛强   나이든 이는 단단하고 힘셈을 경계하라.

行行鄙夫志   느긋하게 행동함이 범인의 길이다.

悠悠故難量   유유함으로는 양을 헤아리기 어렵다.

愼言節飮食   마은 신중하게 하고 음식은 절제하라.

知足勝不祥   만족함을 알고 상서롭지 못한 것을 극복하라.

行之苟有恒   행동함에 있어서 항상 떳떳하고

久久自芬芳   오래도록 스스로 향기롭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