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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1일 오전 05:10

solpee 2013. 2. 21. 05:12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甲寅月(1) 12日 木曜日 戊午 雨水(21:01)節 初候 獺祭魚(달제어;수달이 잡은 물고기를 진설하는 후)候입니다. 小寒에서 穀雨까지 부는 妬花風(꽃샘바람) 중에서 菜花風(채화풍;유채꽃 바람)이 부는 候이기도 합니다.


 

<연강첩장 (烟江疊嶂)>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연강첩장 (烟江疊嶂)’이란 안개 낀 큰 강과 重疊한 산봉우리를 말한다.

중국 북송 때 왕진경이 그린 <연강첩장도烟江疊嶂圖들> 보고 이에 대해

소동파가 찬으로 쓴 시가 고문진보에 전한다.

<사언고시(四言古詩)>

 

 

 

 

朝餐赬霞 夕吸墜露 조찬정하 석흡타로

아침에 붉은 노을 먹고 저녁엔 떨어진 이슬 마시네

 靑鶴翩翩 息我庭樹

푸른 학이 훨훨 날아 나의 정원 나무에 내려 앉네.

 杜琴不理 風其淸 두금불리 풍패기청

거문고 타지 않아도 풍류는 더없이 맑다오.

 靜觀調息 然無聲 정관조식 격연무성

조용히 바라보며 호흡을 고르니 고요하여 소리가 없네.

 抱樸含眞 與道爲隣 포박함진 여도위린

소박하고 참됨을 안고 도와 이웃하리.

 九轉之熟 萬歲長靑 구전지숙 만세장청

아홉 번 익힌 탄약 먹으며 만세토록 길이 청춘을 누리세.

 

茶山病客 다산병객

다산이 사언체(四言體) 고시(古詩)를 초서로 쓴 6곡 병풍이다.

종이에 비하여 작은 붓, 혹은 붓끝을 이용하여 활달하게 썼다.

여백 속에서 세세한 운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정관(靜觀) 두 글자를 파격으로 썼다.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쓴 ‘정운(停雲)’과 ‘권농(勸農)‘에 나오는

 ’翩翩飛鳥 息我庭柯‘ ‘傲然自足 抱朴含眞“이라는 구절을 따오기도 했다.

다산은 추사보다 24세 위이다. 그는 외국으로 사신을 가지 않았지만

강진에 유배되어 18년 동안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김정희가 다산에게 답한 사찰이 ‘완당전집’ 권4에 실려 있다


雪梅(설매) 

                                                           노매파(盧梅坡,生沒年 未詳,南宋)


有梅無雪不精神(유매무설불정신) 매화 있고 눈이 없으니 얼 빠진 것 같고 

有雪無詩俗了人(유설무시속료인) 눈이 있는데 시 없으니 얼이 빠진 것 같네 

日暮詩成天又雪(일모시성천우설) 해 질 무렵 시를 짓고 마침 눈이 내려
與梅倂作十分春(여매병작십분춘) 매화 어우러진 봄 기운 한껏 살아나네.

 

梅雪争春未肯降(매설쟁춘미긍항)매화와 눈이 타퉈지려 하지 않으니 
騷人擱筆費評章(소인각필비평장)시인들도 다투다가 붓을 내려 놓았네 
梅须遜雪三分白(매수손설삼분백)매화의 흰빛은 눈에 못미치고 
雪却輸梅一段香(설각수매일단향)
눈은 향기에서 매화에게 밀린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시선 이백(詩仙 李白), 시성 두보(詩聖 杜甫)와 함께 시불(詩佛)로 불리며 당나라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왕유(王維)의 ‘송별(送別)’은 친구와의 애틋한 이별의 정서를 잘 묘사하고 있다. “말에서 내려 이별주 따르면서 ‘어디로 가려나?’ 하고 그대에게 물었네. 그대가 하는 말 ‘뜻을 펴지 못해 종남산에 은거하러 가려네다만 가노니 더 이상은 묻지 말게 그 곳엔 흰 구름만 겹겹 쌓일 뿐’이라고 하네(下馬飮君酒 問君何所之 君言不得意 歸臥南山但去莫復問 白雲無盡時 ).”

고려의 대표적 문인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 또한 이별시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비 갠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쪽포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를 부르네. 대동강 물은 언제 마를 것인가,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태어지는구나(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졸업’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비록 정든 친구 등과의 헤어짐은 아쉽지만 내일을 준비하는 데 마음을 다잡길 바란다. 만남은 헤어짐을,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정하고 있다(會者定離 去者必返)고 한다. 더 훌륭한 모습으로 재회하기 위해선 이후의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노력이 요청된다. 설원(說苑)은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자는 능히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고 무엇이든 얻고자 하는 자는 능히 얻지 못하는 것이 없다(無不爲者 無一能成也 無不欲者 無一能得也)”고 가르치고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