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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菊

solpee 2012. 9. 27. 06:15

黃菊(황국) - 최익현(崔益鉉)

노란 국화

 

 

佳色兼淸馥(가색겸청복) : 빛깔도 좋지만 향기 더욱 좋아

端宜處士培(단의처사배) : 그야말로 처사가 기르는 것이지.

羞同桃李節(수동도리절) : 봄꽃과 같이 피길 부끄러워하여

遲向九秋開(지향구추개) : 늦게야 구월 가을철에 피네.

 

 

崔益鉉(최익현 1833(순조 33)∼1906. 조선 말기의 애국지사.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 경기도 포천 출신

 

 

 

 

 

偶吟

                                                     宋翰弼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 “어젯밤 내린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누나, 가련하다 한갓 봄날의 일, 비바람 속에서 왔다가 또 가는 구나”

 

 

雨後惜落花/비온 뒤 떨어진 꽃 안타까워

 

白白紅紅數朶花 /백백홍옹수타화/희디 희고 붉디 붉은 꽃가지 휘드러져

春歸粧點老人家/춘귀장점노인가/가는 봄 촌로 집 잎으로 단장했네 

狂風急雨無情思/광풍급우무정사/회오리치는 비바람 무정하기도 할사 

一半朝來減却華/아침 나절 화려한 꽃빛 시드러졌네 

 

☞.宋翰弼: 생몰년 미상. 조선시대 중기의 학자·문장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계응(季鷹), 호는 운곡(雲谷).
사련(祀連)의 4남1녀 중 막내아들로, 익필(翼弼)의 동생이다. 그의 아버지 사련이 안당(安瑭)의 서매(庶妹)인 감정(甘丁)의 아들이었으므로 법의 규정대로 얼손(孼孫)에 해당되어 신분상의 제약을 크게 받다가 아버지대부터 양민 노릇을 하였다.
그의 형 익필은 이이(李珥)를 시종 옹호하였는데, 소장사류들은 이이가 동서분쟁에 중립적 태도를 취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신진사류를 옹호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으로 익필을 심의겸(沈義謙)의 당(黨)으로 지칭하고, 이이에 대한 함원(含怨)을 東人들이 익필에게 전가하여 1589년(선조 22)에 일족을 노예로 환천(還賤)시켰다. 그리하여 일족이 유리분산되는 비극을 당하였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 길이 없지만, 그는 형 익필과 함께 선조 때의 성리학자·문장가로 이름이 있었다.
이이는 성리(性理)의 학을 토론할만한 사람은 익필형제뿐이라고 하였다. 박인로(朴仁老)·김지백(金知白)·최대겸(崔大謙)·박신립(朴信立)·조호인(曺好仁)·박준민(朴俊民)·김상문(金尙文) 등과 교유하였다.
시 32수와 잡저가 익필의 《구봉집 龜峯集》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