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寧爲鷄口勿爲牛後

solpee 2012. 8. 6. 07:55

寧爲鷄口勿爲牛後(영위계구물위우후)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

                                                         근당의 고전

 

닭은 작아도 그 입은 먹이를 먹지만 소는 커도 그 꽁무니는 똥을 누므로 큰 집단이나 사람의 뒤에서 일을 보는 것보단 작은 단체일지라도 그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즉, 작은 곳에서나마 자유롭게 주인행세를 할지언정 큰 편에 붙어 남의 지배를 받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임제록(臨濟錄)에 보면 임제선사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말을 했다. 가는 곳마다 참 주인이 되고, 우리가 서 있는 곳 모두가 참 진리라는 말이다.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곳이 다 참돼 어떤 경계가 다가온다 해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삶에 주체성이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 일과 자리가 모두 진실한 진리의 삶이고 어떤 일에 주체적 역할을 할 때는 그것이야말로 온전한 내 일이고 온전한 나의 삶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상황과 처지에 이끌려 다니면서 자신을 잊어버리지 말고 주체적 역할을 하라는 강조인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잊지 않고 기억해 둬야 될 내용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임제선사의 글 중에는 어디에 가건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다. 그러므로 현재의 위치가 아닌 다른 자리,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를 바라고 꿈꾸지 말라. 지금 있는 이 자리를 행복해 하라.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 맞춰 행복을 누리라.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매달려 언제나 배고픈 아귀(餓鬼)가 되지 말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맞춰 만족하고 부유롭다 생각하라. 내가 가지지 않는 것을 가지려하는 것, 이것이 불행의 시초가 된다.

 

無似竊鈇(무사절부)

《도끼를 훔칠 사람 같지 않았다

 

사람이 품었던 의심을 풀게 되면 모든 망상이 다 사라진다는 의미로, 의심암귀(疑心暗鬼)와 상대되는 말이다. 잘못된 선입견으로 판단을 그르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열자(列子) 설부(說符) 편에 나온다.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리고는 그 이웃집 아들을 의심했다. 그의 걸음걸이를 보아도 도끼를 훔친 것 같고, 낯빛도 도끼를 훔친 사람 같고, 말씨도 도끼를 훔친 사람 같았다. 동작과 태도가 도끼를 훔친 사람 같았다. 얼마 지나서 골짜기를 파다 그 도끼를 찾았다. 다음 날 다시 그 이웃집 아들을 보니 동작과 태도가 도끼를 훔친 사람 같지 않았다(人有亡鈇者, 意其之子. 視其行步, 竊鈇也 顔色, 竊鈇也 言語, 竊鈇也 動作態度, 無爲而不竊鈇也. 俄而D其谷而得其부, 他日復見其人之子, 動作態度, 無似竊부者).”

사람은 어떤 일에 집착하게 되면 곧 편견을 가지고 모든 일이나 사람을 대하게 된다. 인간의 편견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피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행동은 같지만 평가가 이처럼 다른 것은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위력을 갖고 있는지 알려준다. 비슷한 사례는 한비자라는 책의 세난(說難) 편에도 나온다.



송나라에 한 부자가 있었는데 비가 내려 담장이 무너졌다. 아들이 말했다. “담장을 세우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 것입니다.” 이웃의 부로(父老)도 똑같은 말을 했다. 저녁이 되어 정말로 재물을 많이 잃었다. 그러자 집안사람들은 그 아들에 대해선 매우 지혜롭다고 여겼으나, 이웃의 노인에 대해선 도둑이 아닌지 의심했다(宋有富人, 天雨牆壞. 其子曰, 不築, 必將有盜. 其鄰人之父亦云. 暮而果大亡其財. 其家甚智其子, 而疑鄰人之父).

말로 표현되는 처세의 문제는 특히 군주를 상대하는 유세의 경우 더욱 더 극명한 결과로 도출되기 마련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의 말이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판단은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평소에 상대에게 어떤 신뢰를 쌓아두느냐가 관건이 되는 법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