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泡水와 繪事後素

solpee 2012. 5. 28. 06:22

泡水란?

☞.泡水: pàoshuǐ . 종이나 헝겊에 어떤 액체를 바름.옛날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천이나 나무 바위 등에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이런 바탕을 아교,풀 등을 칠하여 면에 먹이 번지지 않게 하는 행위 등을 말 함. 孔子는 論語 八佾篇에서 繪事後素라 하여 그림을 그릴 때는 바탕을 갖춘 후에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때의 素가 바로 泡水를 한 바탕으로 봐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丹靑에서의 泡水

 

①접착재로 단청할 부분을 칠하는 것.

②단청마무리 후 들기름 및 아크릴에말죤을 칠하는 것.

 

☞.阿膠泡水: 흰 종이에 아교를 끓인 물을 바름, 이렇게 하면 종이가 보풀이 일지 않으며 빳빳하고 투명해진다.

 

☞.膠化泡水한 종이: 순지는 종이가 섬유질은 많으나 얇아서 먹이 잘 번지는 종이다. 그 종이에 아교를 칠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옛날 분들은 순지를 쓰지 않았다. 순지는 전에 중국에서 주로 수입해 사용했으나 요즘은 국내 생산도 한다. 국산으로 가장 좋은 종이는 단연 장지. 조선 후기에 장지가 너무나 비싸서 일반 화가들은 분당지를 대신 썼고 그나마 가난한 화가들은 洋紙라고 하는 값싼 종이에 민화를 그렸는데, 양지는 요즘 말로 신문지보다 못한 종이였다.

아교를 칠하는 순서는

맨 처음에는 종이가 생종이이므로 아교 농도를 좀 묽게 하여 넙적붓으로 전체를 칠하고, 마른 후 다시 반복해서 칠하는데 그림을 그릴 종류에 따라 횟수를 달리 한다.

또 비단이나 종이 종류에 따라 횟수가 달라진다.

나중에 그림을 그릴 때도 아교 농도가 다르다. 처음 칠하는 색에는 아교를 좀더 짙게, 나중으로 갈수록 농도를 점점 엷게 태워야 한다.

 

繪事後素: huìshìhòu 绘事后素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뜻.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繪事後素"는 그림은 먼저 바탕을 손질한 후에 채색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은 뒤에 文飾을 더해야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子夏는 孔子의 재자로 孔門十哲의 한 사람이며, 詩와 禮에 통달하였는데.특히 예의 객관적 형식을 존중하는 것이 특색이다.


자하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교묘한 웃음에 보조개여,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여,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하셨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이 있은 후이다[繪事後素]."

이에 자하가 "禮는 나중입니까?"하고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나를 일으키는 자는 그대로다. 비로소 함께 詩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했다.

여기에서 공자의 말은 '그림에서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禮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仁한 마음이 중요하므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라야 의미가 있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공자는 자하에게 유교에서 말하는 仁義禮智信의 5가지 기본 덕목인 五常 중 가장 으뜸되는 덕목은 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子夏問曰 "巧笑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  豫者商也 始可與言詩己矣"
자하가 묻는 『시경』의 앞 두 구절은 衛風 <碩人篇>에 수록되어 있다. 뒤의 한 구절은 지금의 시경에는 망실되어 없지만 아마 당시에는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는 衛의 莊公에게로 시집오는 齊나라 東宮妹의 미모를 노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붉은 입술에 살짝 보조개를 지으며 웃음짓는 모습하며, 고운 눈매에 초롱초롱한 눈망울, 거기다가 눈부시게 흰 얼굴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시다. 자하가 이 시의 내용을 몰랐을 리가 없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스승께 묻는다. 이 물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 저 유명한 '繪事後素'다. 추측컨데 공자가 전하고자 한 뜻은 '미인은 타고난 바탕 곧 살결이 희고 고와야 한다. 연지 찍고 분칠하여 꾸미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라는 정도였을 것이다. 즉 인공적인 요소인 '繪'보다는 자연적인 요소인 '素'가 소중하다는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자하는 한술 더 떠서 공자의 이 말을 비약적으로 해석한다. '繪'를 '禮'로 대치해서 받아들인다. 직접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素'는 '인품의 바탕'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즉 선생님께서 평소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禮라는 것도 사실은 먼저 사람의 바탕이 바르게 선 뒤의 일이겠군요 라고 말하고 있다. 형식보다는 본질이 앞선다는 형이상학적 담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하의 기발한 해석에 공자는 놀란다. 너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 주는구나. 그 정도면 앞으로 너와 더불어 오묘한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하고 칭찬하는 것이다.

이후 繪事後素는 공자의 畵論으로 널리 거론되고 있다. 그림을 그리려면 우선 바탕이 마련되어야 한다. 바탕이 고르지 않고는 그려진 그림의 형상이 선명히 드러날 리가 없다. 그러니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바탕을 우선 고르게 또는 매끄럽게 다듬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하여 繪畵를 後素라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자가 애초에 사용했던 이 말은 그림의 일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형식과 본질의 관계를 그림을 빌어 상징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 말은 예술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자하처럼 禮儀의 문제로까지 확대 해석할 수도 있으리라.

시를 쓰는 일도 먼저 그 마음을 '素'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 詩情을 문자로 표현해 내는 措辭的인 행위에 앞서 마음을 맑게 다듬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맑고 잔잔한 물결 위에 그림자가 선명히 비치듯이 청정한 마음의 바탕을 지닌 뒤라야 격조 높은 시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마음을 맑고 깨끗이 가진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마음을 맑게 하는 일이 畵幅을 맑게 칠하는 것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이는 棄慾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욕심 떨치기가 어찌 그리 쉬운 일인가. 수도자적인 수행이 따르지 않고서는 기대할 수 없으리라. 좋은 시인 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조사적 기교의 어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맑은 마음의 기틀을 얻기가 용이치 않은 데 있다.

그림의 경우에 있어서도 '素'를 단순히 화폭의 물리적인 바탕만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화가의 마음의 상태를 이르는 상징적인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청정한 마음을 가진 후라야 사물을 靜觀할 수 있고 그렇게 되었을 때 물상의 본체를 붙잡아 氣韻生動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 어찌 그림이나 시의 일만 그렇겠는가. 농사하는 일도 씨를 뿌리기에 앞서 그 터전이 잘 손질되어 있어야 하고, 집을 세울 때도 먼저 그 바탕이 잘 다져져야 하지 않던가. 세상의 만사가 다 순서가 있어서 그 앞과 뒤의 일을 잘 밟아서 하지 않으면 도로에 그치고 만다. 그러니 後素는 繪事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huì. 繪.그림 회, 그릴 회.

형성. 糸+會. '會'는 '모으다'의 뜻. 五彩의 실을 모아 繡를 놓다의 뜻에서, '그림'의 뜻을 나타냄.

: 소, 생사로 짠 흰명주 소, 무지(紊) 소, 본바탕 소, 정성 소, 평상 소, 본디 소, 한갓 소, 채식 소, 미리할 소, 향할 소, 넓을 소, 성 소.

형성. 糸+昔의 古字(ㅆ이 아래 위로 밑에 日). '昔'은 '初'와 통하여, '처음'의 뜻. 누에고치에서 갓 자아낸 원래의 하얀 실이란 뜻에서, 본디, 본바탕, 희다의 뜻을 나타냄. '昔'의 자형 윗 부분이 'ㅆ두개'부분에서 다시 '主'로 모양이 바뀌어, '素'로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