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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章取義/진수무향

solpee 2012. 3. 14. 15:05

 

斷章取義duàn zhāng qǔ yì

 

[(斷: 끊을 단. 章: 글 장. 取: 취할 취. 義: 옳을 의]


문장(文章)의 일부를 끊어서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자기 입장에 맞도록 사용함을 뜻.


[출전] 춘추좌전(春秋左傳)


[내용] 

기원전 548년, 제(齊)나라의 대부 최저(崔저)와 경봉(慶封)은 공모하여 제나라 장공(莊公)을 죽이고, 장공의 이복동생인 저구(杵臼)를 왕으로 세웠으니, 바로 제나라 경공(景公)이었다. 경공은 최저를 우상(右相)에, 경봉은 좌상(左相)에 앉혔다.


본시 장공에게는 노포계(盧蒲癸)와 왕하(王何)라는 두 명의 충신이 있었는데, 그들은 장공이 변을 당하자 다른 나라로 피신하였다. 노포계는 피신하기 전에 동생 노포별(盧蒲별)을 불러 당부하였다.


"내가 도망한 후, 너는 최저와 경봉의 신임을 얻도록 노력하여라. 적당한 때가 되면 나를 불러 함께 장공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말이다."

노포계가 떠난 후, 동생 노포별은 경봉의 가신(家臣)이 되었다. 그는 경봉이 비록 좌상이긴 하였지만 실권이 없음을 알고, 그에게 계략을 알려 최저의 아들들을 제거하고, 최저도 목을 매어 자살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이후, 대권(大權)은 사실상 경봉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경봉은 노포별에게 늘 감사하고, 그를 총애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경봉은 거의 모든 일을 아들 경사(慶舍)에게 맡긴 채 처첩(妻妾)들과 놀음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경봉은 값나가는 재물이나 처첩들을 노포별의 집에다 옮겨 놓고, 여자를 바꾸어 가며 즐기니, 노포별의 집은 경봉을 찾는 이들로 붐벼 마치 조정을 노포별의 집으로 옮긴 것 같았다.


경봉은, 나라에 죄를 짓고 다른 나라로 도망한 자들을 귀국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노포별은 형 노포계에게 알려 그를 귀국하게 하였다. 노포계는 귀국하여 경봉의 아들 경사의 부하가 되어 총애를 받고, 후에는 그의 사위가 되었다.


노포계의 아내 경강(慶姜)은 남편의 행동을 이상하여 무슨 연고인지를 물었다. 노포계는 경(慶)씨 일가를 멸하여 장고의 복수를 하겠다고 했다. 경강은 남편의 말을 듣더니 대의멸친(大義滅親)하며 남편의 거사(擧事)를 돕겠다고 약속하였다.


경강은 하겠다면 하는 여자였다. 노포계와 경강은 경봉이 사냥을 나가는 날을 택하여, 아버지에게 제나라 경공과 함께 태묘(太廟)에 제사를 드리러 가자고 권하여, 노포계 등이 손을 쓰기에 편하도록 하였다.


제례(祭禮)가 진행되자, 노포계와 왕하가 갑자기 나타나 경사를 찔렀는데, 경사는 죽기 전에 술병을 들어 왕하를 쳐죽였다. 노포계는 병사들을 이끌고 경씨 잔당들을 제거하였다. 경봉은 소식을 전해 듣고 황급히 사냥에서 돌아와 성을 공격하려 했으나, 역부족인 것을 알고 노(魯)나라로 도망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이 노포계에게 말하였다.


"경씨와 노씨는 모두 강(姜)씨의 후예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경강을 아내로 삼았소?"


그러자 노포계는 말했다.

"경사가 종씨를 피하지 않고 딸을 나에게 시집보냈는데, 내 어찌 피할 수 있겠소? 사람들이 시(詩)를 읊을 때 필요한 구절만 부르고 하니, 나도 필요한 것만 취하는 것뿐이지(賦詩斷章, 余取所求焉), 종씨 따위는 알 바 없소."

 

眞水無香

眞水無香과 도덕경 45장, 그리고 추사의 板殿

 


 

상대적 비교를 거부하는 절대적 초월의 경지는

眞水無香이란 문구 속에도 오롯이 깃들어있다.

'물 중에서도 참으로 깨끗하고 맑은 물은 일체의 잡스러운 내음을 풍기지 않는다.'

'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 眞水無香은 

참된 근본은 아무 맛이 없고, 참된 빛은 반짝이지 않는다는
眞原無味, 眞光不輝와 대구를 이루는 구절로
인격이 고매한 성인일수록 겉으론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소박한 것의 소중함과 평범 속의 비범을 깨우쳐 주는  

眞水無香은 <노자 도덕경> 45장의 문구와도 의미가 상통한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지러진 것 같다. 그래서 사용하더라도 해지지 않는다.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퍼내더라도 다함이 없다.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靜勝燥, 寒勝熱,  淸靜爲天下正.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는 더위를 이기는 법이다.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름이다. 

 

이 장의 핵심개념은  大이다. 大는 최고의 개념으로 최고 수준, 최고 형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成,盈,直,巧,辯의 최고 형태는 그것의 반대물로 전화하고 있다.

곧, 缺,沖,屈,拙,訥이 그것이다.  이것은 질적 전환에 대한 담론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논리를 통해 상투적이고 획일적인 형식을 뛰어넘어

노자는 사물에 대한 열린 관점을 제시한다.

이것은 인위를 배격하고 무위를 주장하는 노자의 당연한 논리로,

大의 기준, 즉 최고의 기준은 궁극적으로 '자연'임을 외치고 있다. 

자연스러움이 최고의 형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45장의 문구 중 특히 大巧若拙에 대해선

당신께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며 그의 명저,<강의>에 이렇게 적어 두셨다.

 

아마 서예에서만큼 拙이 높이 평가되는 분야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는 巧가 아니라 拙입니다.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 3일 전에 쓴 봉은사의 현판 '板殿'이란 글씨는

그 서툴고 어수룩한 필체로 하여 최고의 경지로 치는 것이지요.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는 還童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일체의 교와 형식을 뛰어넘는 것이지요. 法까지도 미련 없이 버리는 경지입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봉은사의 현판, 板殿과 강남 한복판의 도심 속 사찰, 봉은사 경내>
 

대원각의 기생 眞香, 子夜와 길상사의 보살 吉祥華, 金英韓


 

더불어, 眞水無香은 한 여인의 숭고한 기부와 애틋한 사랑을 연상시킨다. 

眞水無香, 그 글귀에서 한자씩 따와 眞香이라는 예명으로

맹활약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妓生, 金英韓님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대원각의 주인으로

죽기 전 1,000억대가 넘을 성북동 북악산 자락의 요정 ‘대원각’ 을 

아무런 조건없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여 지금의 ‘길상사’ 를 있게 한 장본인이다.

죽은 후, 화장해서 첫눈 오는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는 그녀의 유언대로
한 줌의 재가 된 그녀의 유해는 한겨울 눈이 하얗게 쌓인 길상사 마당에 뿌려졌다.

 

 

             
<길상사 정경과 길상사 내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느낌의 관세음보살상, 佛母>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김 길상화 보살의 시주로 개창된 이 사찰은

  1995년 6월 13일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되었으며 1997년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꾸었다.

  佛母는 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맡을 만큼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님의 작품이다.

 

질펀한 인간사가 펼쳐졌던 밀실정치의 산실을 경건한 도량으로 변모시킨 그녀는

한국 현대시사의 전설적 시인, 백석과의 눈물겹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