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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古

solpee 2011. 12. 27. 21:50

臨古

 

해서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글자의 모양에 관한 문제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법첩과 같이 쓸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이런 분들께 나는 ‘왜 똑같이 쓰려 하시는 데요’라고 반문하곤 한다.

서예를 배우면서 기본운필을 익힌 다음에 법첩을 모방하는 것이 처음 단계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알고 보면 그것도 외형적 모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외형적 모방을 통하여 내면의 깊이를 이해하고 그 내면의 깊이를 통해서 자기실현의 접점을 찾아가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그런데 서예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물론 대부분의 선생조차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때문에 답답한 서실에서는 한 가지 서체로 몇 년간 공부하거나 외형 모방에 치우쳐 본질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임서의 방법을 역설 했는데 그 의경이 참으로 적절하게 생각 되어 그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은 단지 해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서체 임서에 적용되는 말이다.

이 글은 중국 청나라 시대 王澍라는 사람이 쓴 글로 그의 저서「淳化秘閣帖考正」末尾에 있는 문장이다. 執筆, 運筆, 結字, 用墨, 臨古, 篆書, 隸書, 楷書, 行書, 草書, 榜書, 論古, 열 두장으로 나뉜 것 중 임고 부분의 일부이다. 기회가 되면 나머지 부분도 읽어 보시기 바란다.

自運在服古, 臨古須有我, 兩者合之則雙美, 離之則兩傷
자운은 복고에 있고 임고에는 모름지기 내가 있어야 한다. 양자(자운과 복고)가 합해지 면 둘 다 아름답고 분리되면 둘 다 상한다.

자운은 스스로 운용하는 것이니 자기 창작을 의미한다. 복고라는 말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가 아니고 입을 복자이니 옷을 입듯이 고전을 입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운 복고는 창작을 함에는 고전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임고는 고전을 임서한다는 말이니 ‘臨古須有我’는 임서를 함에 있어서는 모름지기 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자면 고전을 임서하는데 맹목적 모방이 아니라 자기 미의식으로 취사선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두 가지가 맞아 떨어지면 창작도 임서도 다 아름답지만 이 두 가지가 분리되어 창작에 고전의 바탕이 없고 임서에 내가 없다면 모두 잘못된 것 이라는 뜻이다.

臨古須是無我 一有我 只是己意 必不能與 古人相消息.
고전을 임서함에는 모름지기 내가 없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내가 있으면 다만 이것은 자기의 뜻인지라 반드시 옛 사람과 서로 뜻을 나눌 수 없다.

맨 첫 구절에서는 고전을 임서함에는 모름지기 내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놓고 두 번째 구에 와서 갑자기 내가 없어야 한다니 말이 안 되는 궤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잘 생각하면 깊은 묘미가 있다.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내 의지나 시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만 너무 그것을 중요시하다보면 작품성에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없고 선인들의 의중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그런 내가 없어야 된다는 말이다. 처음일수록 고전을 해석함에는 자기 생각으로 해석하지 말고 선인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어내려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말이다.

習古人書 必先專精一家 至於信手觸筆 無所不似 然後 兼收?蓄 淹貫衆有 然非淹貫衆有亦決不能子成一家
고인의 서를 익힘에 반드시 먼저 일가에 오로지 정진해야 한다. 손에 맡겨 마음대로 붓을 대어도 닮지 아니한 바가 없는 경지에 이른 연후에 두루 익히고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몸에 배지 않으면 결코 스스로 일가를 이룰 수 없다.

고인의 글씨를 본받아 익힐 때는 반드시 한사람의 글씨를 오로지 익혀야 한다. 그래서 ‘信手觸筆’ (손을 믿고 맡겨 마음대로 붓을 댐)하여도 잘못된 것 없이 고인의 글씨와 의념이 모두 통한 연후에야 여러 사람의 글씨를 섭렵하여 익히고 그 글씨들이 나의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淹貫’이라는 말은 종이에 물이 스미듯이 내 몸에 배는 것이다. 그러니 ‘淹貫衆有’는 여러 사람의 서법과 미감이 내게 배게 한다는 뜻이다. 두루 익혀 몸에 배지 않으면 결코 스스로 일가를 이룰 수 없다.

若專此一家 到得似來 只爲此家所蓋 枉費一生氣力
만약에 한 사람의 법첩만 오로지 익혀 마침내 그것과 닮음에 이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면 단지 그 한사람에 가리워져 일생의 기력만 헛되이 낭비하게 된다.

만약 한사람이나 하나의 법첩만 오로지 익힌다면 마침내 그것과 닮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지만 결국은 오로지 그것 밖에 모르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갖지 못하고 모방하다가 일생의 기력을 헛되이 낭비하게 된다.

窮其源流 究其變化 然後作字有本 不理其本 但取 半路?? 不濟事
그 원류와 변화를 궁구한 연후에 글씨를 창작하면 근본이 있게 되지만 그 근본을 다스리지 않고 다만 가는 도중에 필요한 것만 빼서 쓰며 (요령으로) 작품을 한다면 (대가의) 경지로 건너 갈 수 없다.

窮은 깊이 연구하는 것이고 究는 널리 연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글씨의 근원을 깊이 연구하고 그 변화를 널리 연구한 연후에 창작을 하면 근본이 있는 (복고가 된) 글씨가 될 수 있지만 그 근본을 다스리지 않고 다만 임서 도중에 얄팍한 기술만 가려 뽑아 요령으로 작품을 한다면 결코 대가가 될 수 없다.
半路(반로)는 글씨를 공부하는 도중 이라는 말이며, ?(섬)은 손끝으로 집어내고 ?(차)는 나누어 가르는 것이니 자의적 해석으로 필요한 것만 뽑아서 가진다는 뜻이다.
濟는 건너다는 뜻으로 완성의 의미이다. 이것은 書者로서 대가의 경지에 이름을 의미한다. 그러니 얄팍하게 덜 익은 자기 기준으로 필요한 것만 골라 쓴다면 결코 대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臨古須 透一步 飜一局 乃適得 其正 古人言智 過其師 方名得髓, 此最解人語
임고는 모름지기 한걸음 나아가 완전히 뒤집을 줄 알아야만 그 바른 경지를 정확히 얻었다 할 수 있다. 고인이 말하기를 지혜가 그 스승을 능가해야 비로소 골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최고의 이치를 아는 사람의 말이다.

고전을 임서함에는 모름지기 완전히 터득하여 고인을 바탕으로 그보다 한 걸을 더 나아가서 새로운 경지를 열기까지 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침내 골수를 얻어 그 스승을 능가하는 경지에 들어 갈 수 있다. 이 말은 최고의 경지를 깨달은 사람의 말이다.

지금까지 인용한 것 이외에도 임서에 대한 부분이 자세히 더 나와 있으니 잘 읽어보시면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글을 읽는 데에도 마음을 비우고 순수한 마음으로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자칫 자의적 해석을 하게 되면 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榜 書 要 訣 (방서를 쓸때에 주의 할 점)

 

一. 疎可走馬/트인곳은 말이 달릴만하게 넓게

     密無透風/빽빽한 곳은 바람이 안통할 듯 

 

二. 惑從取姸/곱고 예쁜 모양에 현혹되지 말고

     荒出放意/뜻이 가는데로 힘 있게 표현

 

三. 筆法有源/필법에는 근원이 있어야하고

     劃劃相安/획과 획은 서로 편안해야 한다.

 

四. 欲巧反拙/재주를 부릴려고 하면 도리어 옹졸해지고

     以簡遠硏/대범하므로써 다듬는 것을 멀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