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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談

solpee 2011. 12. 1. 18:05

感慕如在圖

감모여재도

집안에 사당이 없거나 외지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그림으로 사당이 그려져 있어 사당도라고도 한다. '감모여재'란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 모습이 실재 나타남을 의미하며 제문이나 축문에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감모여재도는 휴대하기 쉽도록 족자 형태로 만들었으며, 제사 때 지방을 붙였다 뗄 수 있도록 사당 중앙의 위패 자리를 비워 놓았다. 이 감모여재도는 윗부분에 두 그루의 소나무, 가운데에 사당과 위패를 붙일 공간을 그리고 아랫부분에는 좌우 양쪽에 모란꽃 화분이 그려져 있다. (글자료:경기도박물관)

 

사당도라고도 하며 집안에 조상의 사당을 갖지 못한 사람이 제사 때 그 앞에 상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여러 점이 남아 있는데 일반적으로 화면의 중앙에 낡은 기와집 사당과 빈 위패자리가 있고, 제사상 위에는 석류·불수감(佛手柑)·유자·가지·포도 등의 과일과 연꽃·모란 등이 그려져 있다. 소나무·화조도·어락도 등으로 사당 주위를 장식한 예도 있다.

                                                                     -백과사전-

 

우리 조상들의 선조숭배사상은 삼한시대로 부터 시작되었으나 주로 당대봉사였으며 16세기 중엽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이후를 기점으로 발전하여 19세기에 이르러 4대봉사로 그 꽃을 피웠다 할 수 있다.

특히 객지에서 근무할 수 밖에 없는 사대부 또는 양민,상인들과 사당이 없는 양민들은 感慕如在圖에 지방만 써서 부모님 계신방향에 걸고 제사를 오렸으니 그 정성이 갸륵하다 하겠다.

감모여재도엔 제사상까지 가득하게 차려진 그림도 있으니 조상님들의 지혜가 참으로 가상하다 하겠다.

최근 콘도에서나 해외에서도 제사를 올린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19세기에 활발하게 사용되던 感慕如在圖 한장이면 제사상이나 사당이 없이도  충분히 조상을 모실 수 있으니 경비도 절약될 뿐만아니라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제사를 모실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 하겠다.

임란 중 이순신 장군께서도 아마 이 그림 한장으로 제사를 올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곧 설날도 다가오는 데 너무 집에서만 모시는 차례에 경직되어 살아왔다면 감모여재도를 모신 제사도 활발하게 사용한 조상들에게서 지혜를 얻을 일이다.

 

开门见山

kai1 men2 jian4 shan1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가다. 곧바로 말하다

 

九不离十

 

ba1 jiu3 bu4 li2 shi2

대체로. 거의. 십중팔구.

 

 

 悬(懸)崖勒马

 xuan2 ya2 le4 ma3

낭떠러지에 이르러 말고삐를 잡아채다

위험에 직면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다

 

(아래는 드라마 대사에서 본 내용입니다. )

뭔가 생각하게 하는 듯.......

 

是我的,怎(즘)么(麽)的都是我的。

不是我的,怎么的都不是我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