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정은 浙江 紹興 蘭渚山 밑에 있는 연못가의 작은 정자이다.
이곳은 중국에서 書聖이라고 불리는 書法大家 王羲之의 사당이 있고
왕휘지가 한때 친구들과 詩會를 하였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며
왕휘지의 명작 <蘭亭集序>가 만들어진 그 蘭亭을 말함이다.
왕휘지 48세에 이곳 소흥쪽에 우군장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는 업무 외 여가시간에 친구들을 불러모아 산수를 즐겼다고 하며
이 蘭亭은 그가 항상 즐겨 노닐던 곳이다.
‘蘭亭’이라는 이름은
옛날 월왕 구천이 이곳에 난을 많이 심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며,
서법의 귀함을 난에 비유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난정을 감상하려고 소흥 시내에서 약 20분간 차를 타고
달렸더니 커다란 주차장이 나온다.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니 ‘蘭亭古蹟’이라는 편액을 붙인 대문이
나타나는데 문을 통해 시인묵객이 사랑하는 푸른 대나무 숲이 보인다.
(대문을 통해 보이는 죽림)
그런데 이 ‘鵞池’ 碑의 글씨 ‘鵞池’에 관련한 이야기가 하나 있으니~
왕휘지는 거위를 대단히 사랑하여 거위를 키우기도 하고
거위 ‘鵞’자를 자주 쓰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어느 날 왕휘지가 거위 ‘鵞’자를 쓴 후 ‘池’자를 쓰려고 하니
성지가 도착하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8세의 아들 王獻之가 ‘池’자를 써 넣어 ‘鵞池’라는 글이 완성되었는데
글씨가 深厚하고 풍격이 왕희지 글씨와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하며,
두 부자가 합벽하여 쓴 글이라 하여 ‘父子碑’라고도 불린다.
(전설 따라 삼천리다~ ㅎㅎㅎ)
(아지)
‘鵞池’를 조금 더 지나가면 ‘蘭亭’ 碑亭이 나온다.
이 비의 ‘난정’이라는 글씨는 강희황제가 쓴 것이다.
(곡수유상의 시내)
‘어비정’에서 내려다 보면 ‘太’자비가 보인다.
이 비에는 오로지 ‘太’자가 쓰여있는데 사연이 이러하다.
왕휘지의 아들 왕헌지가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아버지로부터 서예를
배워 일찍이 주위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아 약간 교만한 마음이 있었다.
어느 날 몇 자의 글을 써서 아버지에게 자랑을 하려고 가져갔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중 ‘大’자에 점을 하나 찍어 ‘太’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을 들고 다시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글을 보였더니
“많은 글자가 있지만 ‘太’자 가운데 점이 제일 잘 썼구나.” 하니
왕헌지가 듣고 부끄러워 하며~
마음을 비우고 글씨 연습에 정진을 하니 후세에 남을 대 서법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ㅎㅎㅎ 왕휘지 부인이 왕휘지 정도의 수준은 되었던 모양이다~)
왕휘지의 전설이 ‘蘭亭’에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을 보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태자비)
후기1 : 왕휘지는 東晉사람으로서 의 산동 명문집안 출신이다.
처음에 女書法家 ‘韋夫人’으로부터 正書를 배웠고,
후에 東漢書法家 張芝의 草書를 배웠는데~
새로운 行草書를 만들어 내었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필세가 “飄若浮雲, 矯若惊龍” 하고 “天馬行空, 流行自然과 같다”
또는 "龍跳天門,虎臥鳳閣"이라 하였다
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풀이를 하자면~
“표표하기는 뜬 구름 같고 힘차기는 놀란 용과 같은데
천마가 하늘을 나는 것 같으며 흐름이 자연스럽다” 라는 것이다.
용이 천문을 뛰어 넘고 범이 봉황각에 누운 것 같다
소흥(紹興)‘산음도’(山陰道) 난정(蘭亭)의 ‘아지’(鵝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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