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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字-포은

solpee 2011. 4. 12. 19:57

 

寫字

                                                                                 圃隱 

心專姸好飜成惑/심전연호번성혹/마음이 姸好를 오로지하면 도리어 의혹이 생기고

氣欲縱橫更入邪/기욕종횡갱입사/氣가 종횡으로 내달리고자 하면 다시 邪에 들어간다.

不落兩邊傳妙訣/불락양변전묘결/두 곳에 집착하지 않고 神妙한 비결을 전수한다면

毫端寫出活龍蛇/호단사출활용사/붓끝에 살아 움직이는 龍의 모습을 묘사하리라

 

포항시 오천읍에는 포은 정몽주선생의 탄생지로 시호를 그대로 따서

이름한 文忠리란 마을이 있으며 서예관련[寫字]라는 詩가 포은집에 전하고 있다.

 

*石鼎煎茶/돌 솥에 차 끊임

報國無效老書生/나라에 공이 없는 서생이

喫茶成癖無世情/차 마시는 버릇으로 세상은 몰라

幽齋獨臥風雪夜/눈 내리는 밤 조용한 서재에 누워

愛聽石鼎松風聲/돌솥에 차끓는 소리를 즐겨 듣는다.

 

*讀易/周易을 읽다

石鼎湯初昢/돌솥에 찻물 끊기 시작하니

風爐火發紅/풍로의 불이 붉어지고

坎離天地用/감괘와 이괘는 천지의 쓰임이니

卽此意無窮/바로이 뜻이 무궁이로다.

 

*.昢;불;해 뜨는 모양. 새벽.시작.

 

*.상여를 멜 때 부르는 輓歌는 자살자의 영혼을 위로해 만들어졌다. 『史記』 『田儋열전』에 따르면 田橫은 漢 고조 劉邦이 중원을 차지하자 海島로 도피했다. 유방의 회유를 받고 洛陽 30리 지점 尸鄕까지 나왔지만 ‘유방을 섬길 수 없다’면서 자살했다. 사람들이 ‘薤露歌와 蒿里歌’를 지어 전횡의 혼을 위로한 것이 만가의 시작이다.

 晉나라 崔豹의 『古今註』는 해로가를 “풀잎 위의 이슬은 쉽게 마르지만/마른 이슬은 내일 아침이면 다시 생기는데/사람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돌아오나(薤上朝露何易晞/露晞明朝還復滋/人死一去何時歸)”라고 전한다. ‘호리(무덤 속)가’는 “무덤 속은 누구의 집 자린가/혼백을 거둘 땐 똑똑하고 어리석음 따지지 않네/귀신은 어찌 그리 재촉이 심한가/인명은 잠시도 머물지 못하네(蒿裏誰家地/聚斂魂魄無賢愚/鬼伯一何相催促/人命不得少踟躕)”라는 노래다.

 『고금주』는 원래 한 노래였는데 漢 무제 때 歌客 李延年이 둘로 나누어 해로가는 왕족들의 장사 때, 호리가는 사대부와 庶人들의 장사 때 불렀는데, 세상에서 이를 만가라고 칭했다고 적고 있다. 『禮記』 『檀弓』편은 畏死·厭死·溺死는 조문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後漢 때의 학자 鄭玄 등의 주석에 따르면 외사는 죄가 두려워서 죽은 자살이고, 염사는 壓死인데 바위나 남의 담 밑에 서지 않아야 할 군자가 잘못 처신하다 죽었기 때문이다. 효자는 배 타고 멀리 가지 않아야 하기에 익사도 조문하지 않는다.

 형식은 자살이지만 내용은 타살도 있다. 정조 때 편찬된 『審理錄』에는 豊德 사는 과부 김씨가 겁탈당할 뻔하자 수치와 분노로 17일 동안 곡기를 끊고 죽은 사건이 나온다. 정조는 “칼로 찌르고 발로 찬 것과는 다르지만 貞女를 욕보여 죽게 했으니 살인과 마찬가지”라면서 범인을 사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