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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색

solpee 2010. 12. 29. 10:08

墨色調節法

 

水墨畵에서 붓으로 線을 긋는 방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먹의 濃淡을 내는 것이다. 선을 긋는 연습이 어느 정도 되면 붓에 먹을 묻혀 선을 긋는 것과는 정 반대로 측필을 사용하여 붓봉에 여러 가지의 먹색이 나오도록 연습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짙은 먹은 앞을 나타내고 흐린 먹은 뒤를 암시한다. 먹은 단순한 검정색이 아니라 물과 섞어 쓰면 화려한 색깔 못지 않게 그 오묘하고 깊은 맛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먹은 재료가 자연식물, 온갖 색을 태워서 만드는 만큼 먹 속에는 모든 색을 함축하고 있다.

먹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색이 다르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먹색은 중간, 흐린 먹이 투명하고 깊은 느낌을 준다. 예로부터 먹을 다루는 방법에는 점을 찍어 표현하는 點法과 종이나 천에 물들이는 法(선염법), 주름을 나타내는 皴法(준법), 붓으로 문지르는 擦法이 있고 그밖에 潑墨法, 破墨法, 積墨法,復破法,漬墨法 等이 있다.


먹색은 여섯 가지 색을 함축하고 있는데 黑, 白, 乾, 濕, 濃, 淡이다. 黑, 白은 그림이 그려진 모든 먹색과 사물의 크기를 그려지지 않은, 즉 여백을 말하며, 乾, 濕은 먹물이 번진 데와 메마른 느낌을 말하고, 濃, 淡은 먹색의 짙고 흐림을 말한다.

이 여섯 가지는 수묵화를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요령이고 방법이지만 좋은 그림 속에는 반드시 여섯 가지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이 여섯 가지 색은 西洋畵의 三元色과는 차원이 다르며 水墨화의 조형원리인 동시에 철학이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예로부터 먹을 황금처럼 아껴 쓰라는 말이 전하듯이 수묵화를 그리는 데 지나치게 짙은 먹을 쓰는 것보다는 중간 정도 흐린 먹을 많이 쓰고, 결정적인 곳에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먹색은 淡墨에 생명이 있는 만큼 좋은 먹으로 짙게 갈아 맑은 물을 섞어야 깊고 윤기가 나는 먹색을 얻을 수 있다.

水墨畵에서 먹의 濃淡 사용은 서양화의 기법이 흐리게 시작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짙은 먹으로 시작하여 흐리게 끝을 맺는다.

먹은 물과 종이의 흡수력을 이용하는 "一劃", 즉 한 번 그은 것은 처음이자 그림의 완성인 만큼 단숨에 그려야 생기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積墨法이나 의 예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붓에 먹을 묻히는 방법이 짙으면서 흐려지기 때문에 앞에 있는 것을 차츰 흐리게 그린다.

좋은 먹색을 만드는 데는 좋은 먹과 좋은 벼루 그리고 사람이 먹을 성급하게 갈지 말고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갈아야 좋은 먹물을 만들 수 있다. 예로부터 게으른 자가 먹을 잘 간다고 했듯이 오래 갈면 갈수록 먹은 윤기가 있고 짙어진다.

먹은 재료가 나무나 기름을 태워서 만든 그을음, 즉 탄소입자와 아교가 합쳐 만드는 만큼 좋은 먹을 구해서 오래 사용하는 것이 좋다.

먹색은 변화가 있어야 되는 만큼 먹을 짙게 갈고 깨끗한 접시라야 좋은 먹색을 만들 수 있다. 먼저 붓봉이 긴 붓을 맑은 물에 씻은 다음 물통의 가장자리에서 앞으로 지그재그 식으로 붓을 돌리면서 고르게 먹색을 만든다. 이때 물의 양을 조절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붓을 수직으로 세워 물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무난하고 일단 먹색이 고르게 됐다 싶으면 접시의 가장자리에 붓을 훑어 다시 물기를 빼고 붓봉이 흩어지고 쓰러진 것을 똑바르게 정돈한다. 일단 다른 종이에 약간 붓을 눌러보아 물기가 적당한가를 확인하고 그림 그리기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재차 다시 먹색을 만들고자 할 때는 다시 붓을 씻어 처음 사용한 접시를 처음과는 정반대로 앞에서 위로 붓을 지그재그로 올려가면서 먹색을 만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먹색은 짙은 것에서 흐리게 하기 때문에 다시 먹색을 만들면 처음 먹색과 같아지기 때문에 이것을 피하기 위해 한번 만든 먹으로 그림을 대체로 완성한다. 이 방법은 초보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방법이나 水墨畵의 먹색은 생명과 같음을 상기해 볼 때 가능하면 한 번 찍어 만든 먹색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접시는 가능한 한 크고 흰색으로 된 사기그릇이 먹색의 변화를 잘 나타내어 준다. 연습을 할 때는 여러 번 먹색을 만들어야 하므로 일일이 접시를 씻는 것보다는 젖은 걸레로 접시를 닦아서 쓰는 것이 편리하다.

淡墨만을 쓰고자 할 때는 접시에 물을 떨어뜨린 다음 먹을 섞어 골고루 휘저어 사용한다.

線을 연습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 조절한 먹색으로 여러 개의 면을 만들어 먹물이 번지는 효과와 거칠고 메마르고 짙고 흐린 느낌이 나게 붓에 물기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칠해 나간다. 먹색의 변화는 붓의 물과 먹의 양이 결정지어 주지만, 붓의 속도, 즉 筆力에 의해 많이 달라진다. 먹색이 흐리든, 짙든 속도를 일정하게 연습해야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붓은 側筆로 사용하는 만큼 선을 그을 때와 마찬가지로 붓끝에 힘을 주어 누르듯이 붓을 종이에 댄다.

먹색은 먹의 질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지만 종이에 따라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여러 종이를 사용해 보고 자기 마음에 맞는 종이와 먹을 택해서 그린다. 경우에 따라서 먹에 아교 물을 약간 섞어 쓰기도 하는데, 초보자인 경우에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교를 섞어 쓰면 먹이 잘 번지고 우연의 효과는 있지만 먹색이 가벼워 보인다.

먹은 벼루에 갈아 이틀정도까지는 쓸 수 있으나 이틀이 지나면 아교가 썩어 냄새가 나므로 쓸 만큼만 갈아 쓰고 오래된 먹은 깨끗이 물로 씻어 버린다. 가장 윤기 있는 먹색을 내려면 그때그때 갈아 쓰고 남은 먹은 못 쓰는 종이나 물로 닦아내어 다음 그림 그릴 때 편하게 한다.

 

☞.墨種;宿墨,乾墨,渴墨,枯墨,操墨,濕墨,熟墨 ,朱墨,靑墨,油煙墨,洋煙墨,松煙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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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의 시인 張籍은 당시 청두의 융성한 술 시장 풍경을 자신의 시 ‘成都曲’에 잘 그려 놓고 있다.

금강에 푸른 물안개 자옥한데(錦江近西烟水綠)
비 내린 산등성이엔 여지가 익어가네.(新雨山頭枝熟)
만리교 옆에는 술집도 많은데(萬里橋邊多酒家)
한량들은 오늘 밤 또 뉘 집에서 묵을까 한다네.(游人愛向誰家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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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字香書卷氣論, 김정희

 

김정희는 난초를 치는데는 ''반드시 옛 사람의 좋은 작품을 많이 보아야 한다'' 고 지적했다. 김정희는 스스로 옛 사람들의 작품을 새기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거니와 그처럼 많이 보는 가운데 작가마다의 개성을 헤아렸다.

"원나라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고묵(枯墨)으로써 손을 대어 점차 먹을 덫칠하여 나갔다. 아직 다 끝내지 않은 듯한 나무나 못생긴 산은 모두 타고난 기틀로부터 얻은 것이니 황공망(黃公望)은 황공망의 준법이 있고, 예찬(倪瓚)은 예찬의 준법이 있어서 사람의 힘으로 본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정희는 그같은 개성을 타고난 기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하여 본뜰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를테면 난초를 잘 쳤던 중국사람 정섭(鄭燮)의 경우 ''인품이 고고특절하였기 때문에 화품 역시 그와 같았으며 그같은 점은 범인은 따라잡을 수 없다'' 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영 따라잡을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먼저 김정희는 뛰어난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 ''사람의 재주란 각각 하늘에서 받은 것이라 처음에는 지역에 따른 차이가 없다. 다만 눈 밝은 사람이 열어 이끌어 줌이 없을 뿐이다'' 라고 썼던 것이다. 다음으로 김정희는 그 길을 ''소양''을 길러야 한다고 보았다.

"서화는 가슴 속에 깊은 소양을 배양하고 난 후에 집중하여 낙필(落筆)하면 문자향과 서권기가 피어나 유가(儒家)에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과 다름 없는 세계에 이를 수 있다."

김정희는 작가가 학문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연구를 거듭하여 사물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가슴 속에 소양을 키워야 함을 그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김정희가 창작의 핵심을 ''솜씨''가 아니라 ''뜻''에 두고 있음12 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희는 숱하게 많이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솜씨를 기르기 위한 고단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단한 수련은 단순히 ''모양을 비슷하게 하거나, 그리는 법식에 따르는 식'' 의 ''화공들의 화법'' 이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어떤 규정을 되풀이 하는 고전주의 또는 닮게만 그리는 자연주의 비판이다.

김정희는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를 ''신기(神氣)'' 또는 유가에서 말하는 사물의 이치로부터 얻는 ''깨달음'' , 선가의 ''선지(禪旨)의 오묘한 것'' 따위로 내세웠다. 그것을 김정희는 ''그 나머지 일분''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구천구백 구십 구분에까지 이를 수 있다 하여도 그 나머지 일분은 가장 원만하게 이루기 힘드니, 구천 구백 구십 구분은 거의 모두 가능하나 이 일분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역시 사람의 힘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와 관련하여 김정희는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난그림에 대해 "이하응은 난을 치는 것에 깊이 들어가 있는데 대개 그 타고난 기틀이 맑고 신묘(神妙)하여 그 묘처에 가까이 가 있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일분의 공력일 뿐이다." 라고 썼다. 결국 김정희는 회화가 개인의 인격을 표현하는 것으로 작가가 지닌 학문, 사상의 그릇이라고 본 것이며, 신묘의 세계에 이르는 길은 학문의 도야, 기법의 수련을 거쳐 ''그 나머지 일분''을 깨우침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엄격한 형식을 지키는 고전주의와 대상을 묘사하는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를 반대한 김정희의 창작방법론은 체험과 타고난 천성에 기반하는 성령론(性靈論)과 학업 및 수련에 기반하는 격조론(格調論)을 펼침으로써 대상에 묶임 없는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창작방법론에서 김정희는 난초 그림이 가장 어렵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산수, 매죽(梅竹), 화훼(花卉), 금어(禽魚)는 옛날부터 잘 하는 사람이 많았다'' 고 썼다. 그리고 중국사람 주학년(朱鶴年)의 그림을 예로 들어 ''산 그리는 것을 위하여''란 시를 썼다.

"반두곤점(礬頭辊點)이라 몇 첩의 산 그려내니, 누각 앞 팔목 밑이 푸르러 아롱아롱, 운연(雲烟)의 공양(供養)이라 무량수를 누리리니, 만리 밖 사람을 청안(靑眼)으로 바라보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신, 감정의 감응을 표현해야 함을 노래한 것이다. 김정희는 인간정신의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하는 매개로서 그림을 본 것이다. 김정희는 누군가의 매화그림에 대해 다음처럼 썼다.

"꽃 보려면 그림으로 그려서 보아야 해. 그림은 오래가도 꽃은 수이 시들거든, 더더구나 매화는 본바탕이 경박하여, 바람과 눈 어울리면 아울러 휘날리네. 이 그림은 수명이 오백 세가 갈 만하니, 이 매화 보노라면 응당 다시 신선되리. 그대는 못보았나, 시 속의 향이 바로 그림 속의 향일진대, 꽃 그려도 향 그리기 어렵다 말을 마소."

자연의 등가물로 예술을 헤아렸던 김정희는 그림에 향기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그림으로 그 향기를 모두 표현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림에 시를 써넣어 보완, 그 향기를 담으려 했던 것으로, 제시의 기능과 가치를 논했던 것이다.

나아가 김정희는 구체적인 기법론을 펼쳤다. 먼저 김정희는 먹과 색채를 나누어 놓되 일방적인 편견을 지니지 않았다. 품격의 높낮이를 논하면서 ''그 뜻''만 안다면, ''비록 청록이나 니금 어느 색채를 쓴다해도 좋다'' 고 설파했던 것이다. 또한 난초그림 기법에 이르러 ''삼전(三轉)의 묘법''을 주장했다.

"난을 치는 데는 반드시 세번 궁글리는 것으로 묘법을 삼아야 하는데, 이제 네가 그린 것을 보니 붓을 한 번 쭉 뽑고 끝내 버렸구나. 꼭 삼전하는 것을 힘써 익혔으면 좋겠다."

그리고 강이오(姜彛五)의 매화그림을 논하면서 어떻게 그리는 것인가를 밝혀두었다.

"여과아천(女戈牙川) 글자 각 모양 제대로 나타나, 굳세고 부드럽고, 묽고, 진한 것이 어찌 그리도 알맞으냐. 가지 하나가 담을 넘어 온 것이 가장 재미스러워, 솔 언니 대 동생 찾을 것이 무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