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옹(蔡邕)의 서예 미학 사상
宋 明 信 (美學博士, 厦門大學 美術學係 副敎授)
서예사를 보면 중국 문자의 서사는 오랜 변천 과정을 거친 후 동한 말에 이르러 특별한 전환을 하게 하게 된다. 이 전환을 간단히 소개하면 첫 째, 과거의 서사는 실용 서사와 심미적 서사에 대한 구분이 모호했으나, 동한에 이르러 실용 서사 계통과 심미 서사 계통 사이에 분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둘 째, 이 시대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서예가가 처음 출현하며, 세 째, 이 시대에 전문 서예 이론이 처음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미적 추구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러 나타난 당연한 결과로서 본격적인 중국 서예사는 이 때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를 빛낸 대표적 서가로 두도(杜度), 최원(崔瑗), 장지(張芝), 채옹(132~192) 등이 있는데 우리는 이들을 서예사의 제 1 세대 인물이라고 부른다. 중국 최초로 서예를 논한 글은 최원(78~143)의 『초서세(草書勢)』이지만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이론적 색채가 분명한 서학 사상은 채옹의 서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채옹의 서론은 현재 『필부(筆賦)』, 『필론(筆論)』, 『전세(篆勢)』, 『구세(九勢)』의 네 편이 전해 오는데 형이하학적인 기교는 물론이고 서 예술의 형이상학적인 본질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도 심도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후대의 서론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중 『필론』과『구세』는 다른 두 편에 비해 서 예술의 본질적 특성을 한층 깊이 있게 드러내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필론』과「『구세』를 중심으로 채옹의 미학 사상을 검토하기로 한다.
먼저『필론』의 전문을 본다.
서(書)는 내면의 정감을 토로하는 활동이다. 서작에 들어가기 전 가슴 속에 있는 각종 번거로운 생각들을 내려놓고 마음이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게 해야 한다. 만약 여러 일로 인해 마음이 초조하다면 저 유명한 중산의 토기 털 붓이 있다 해도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서작시엔 먼저 조용히 앉아 생각을 가라앉혀 기분이 적당한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옆 사람과 이야기 한다든지 호흡이 고르지 못해도 안 된다. 마치 임금을 대하듯 정신을 집중한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할 때 중요한 한 가지는 마음속에 먼저 획의 형상을 그린 다음 운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획은 앉아 있는 듯, 서 있는 듯 하며 또 어떤 획은 나는 듯, 뛰는 듯, 가는 듯, 오는 듯, 눕는 듯, 일어나는 듯한 형상을 가진다. 또 어떤 획은 근심하는 듯, 즐거워하는 듯 하며, 벌레가 나뭇잎을 파먹은 듯, 예리한 칼, 긴 창과 같은 획이 있고, 강한 활, 날카로운 화살 또는 물이 졸졸 흐르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느낌의 획도 있으며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는 듯하고 일월이 비취는 듯한 느낌의 획도 있다. 이처럼 자연의 형상을 종횡으로 필획 속에 담아내야 서예 작품이라 할 수 있다.
(书者,散也。欲书先散懷抱,任情恣性,然後书之。若迫于事,虽中山兔豪,不能佳也。夫书,先默坐静思,随意所适,言不出口,氣不盈息,沉密神彩,,如对至尊,则無不善矣. 为书之體,须入其形。若坐若行,若飞若动,若往若来,若卧若起,若愁若喜,若虫食木葉,若利剑长戈,若强弓硬矢,若水火。若雲雾,若日月。纵横有可象者,方得谓之书矣.)(『필론(筆論)』)
문장의 전반부는 서가의 마음과 창작의 관계 곧 “의(意)”에 대한 것이고, 후반부는 서 예술의 외적 형태 곧 “상(象)”에 대한 것이다. 전반부에서 핵심이 되는 글자는 “산(散)”이다. “书者,散也.(서는 내면의 사상과 감정을 토로하는 예술이다.)” 중국에서 서론은 출현하자마자 서 예술의 본질적 특성을 이렇게 단 한 글자로 규정했다. 이는 현대 예술의 관점에서도 손색이 없는 이론으로 우리는 채옹의 천재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로 이 구절에 대해 두 가지의 해석이 존재했다. 첫 째, “산(散)” 자를 “느슨하다”는 뜻의 형용사로 보아 창작에 들어가기 앞서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본 경우이고 둘 째, “발산하다”는 뜻의 동사로 보아 서예가 작가 내면의 각종 사상과 정서를 토로해내는 활동이라고 보는 경우이다. 현 중국의 적지 않은 서예 이론서가 전자의 해석을 따르고 있지만 후자가 원의에 더 부합된다고 생각되어 본문에서는 후자의 해석을 따르기로 한다.
채옹의 이 정의는 180 여 년 앞서 태어난 서한 양웅(揚雄, B.C 53~A.D 18)의 “서는 마음의 그림이다 (書, 心畵也.)” 사상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웅의 시대에는 “서(書)” 자에 “서예”라는 뜻이 생겨나기 전이어서 양웅이 말한 “심화(心畵)”는 서예가 아니라 문장이 그 사람 마음속의 사상과 감정을 형상적으로 반영해낸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고대 서예는 문장을 쓰는 것이었고 서예와 문장 간의 뗄 수 없는 관계로 인해 “심화(心畵)”설은 자연스럽게 “서예가 내면의 정신 세계”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옛날 양웅이 서는 마음의 그림이라 하였으니 이로 보건대 서예는 심학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사람과 일치하지 않으면 남보다 좋은 글씨를 쓰고자 열심히 노력해도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예는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揚子以書心畵, 故書也者, 心學也. 心不若人而欲書之過人, 其勤而無所宜矣. 寫字者, 寫志也.) (유희재(劉熙載),『書槪』)
채옹의 “서자, 산야. (书者,散也.)”는 비록 양웅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지만 서 예술의 본질 속성을 양웅에 비해 한층 생동적이고 심도 있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필론』의 후반부는 서예의 외적 형태에 대해 논한 것이다. “마음속에 먼저 획의 형상을 상상한 다음 운필에 들어간다.(为书之體,须入其形) ”는 점획의 형세에 생명감을 불어넣어 자연계 각종 사물의 표정을 느낄 수 있게 하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몇 가지 예를 든 다음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자연의 표정을 종횡으로 필획 속에 담아내야 서예 작품이라 할 수 있다. (纵横有可象者,方得谓之书矣.)”
이 말은 중국 서예사상 최초로 서 예술과 자연의 관계를 언급한 것으로 『구세』 첫머리 “서는 자연에서 비롯되었다. (书肇于自然)” 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자는 자연에서 근원했으므로 한자를 서사하는 서예 형태미의 근원 또한 우주 자연이 된다. 따라서 서예는 자연미를 반영해 내야하며 점획의 형세에 각종 자연 사물의 형태를 생동감 있게 담아내야 참된 서예라 할 수 있는 것이다.허신(許愼)은 문자학적인 관점에서 한자의 서사에 대해 “서자, 여야.(書者, 如也.)”(“如”는 자연 형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라 했는데 채옹이 이를 서론에 적용, “서조우자연(书肇于自然)”을 말한 이래 서예와 자연과의 관계를 밝힌 이 사상은 중국 전통 서예에서 형태미를 주도하는 사상이 된다.
채옹의 다른 한 편 논문 『필부』에서는 이를 “우주 음양 운동의 법을 드러낸다.(書乾坤之陰陽)”로 약간 바꾸어 말했다. 이는 형이하학적인 기법과 외적 형태가 형이상학적인 우주의 근본 규율, 음양 변화의 법칙인 도(道)로 나아갈 수 있음을 밝힌 것으로 이 사상은 후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곧 채옹 이후로 많은 서예가들은 서예의 비밀은 우주의 근본 법칙인 “도(道)”, 즉 음양 운동의 규율을 파악하는데 있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문자가 비록 자기 고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서예의 창작으로 들어가면 결구나 용필, 용묵 등에 인위적으로 고정된 법이 있지는 않다. 자연 음양 운동의 법칙과 리듬이 만물에 나타나는 형세를 파악, 인간 내면의 본심에 도달하고 변화에 통하는 까닭에 인위적인 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학서자는 마음으로 지극한 도를 깨달아야 서예술 또한 무위자연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字雖有質, 迹本無爲, 稟陰陽而動靜, 體萬物以成形, 達性通變, 其常不主……學者心悟於至道, 則書契於無爲.)” (우세남(虞世南),『筆髓論』)
“(서예술의 미는) 기교에만 있지 않고 자연 음양 변화의 묘를 터득함에 있다. 同自然之妙有, 非力运所能成” (손과정(孫過庭),『书谱』)
“저 초목들도 생명의 기운이 있어 부지런히 자라나는데, 하물며 새와 짐승, 특히 사람은 더 말해 무엇하리요? 맹수와 하늘의 새들 모두 자신들만의 독특한 자태를 갖고 있으니 서예는 이러한 자연의 형세를 본받을진저! (草木各务生氣, 不自埋没, 况禽兽乎? 况人伦乎? 猛兽鸷鸟,神采各異,书道法此!)(장회관(張懷瓘),『书议』)”
이 말들은 모두 “서”와 “도” 두 개념을 결합시킨 것으로서, 서예술은 곧 “도”의 표현이라고 본 것이다. 이 밖에 송의 주장문(朱長文)은 당 장욱(張旭)의 초서를 평론할 때 서예를 단순히 하나의 기예로 보는 견해에 다음처럼 반대하였다. “아! 서의 지극한 경계는 대자연의 도에 참여하는 것이니 어찌 한갖 기예로만 논할 수 있겠는가? (呜呼! 书之至者, 妙与道参, 技艺云乎哉!)”(『续书断·神品』)
이처럼 채옹이 『구세』와 『필부』에서 “서조우자연书肇于自然”, “서건곤지음양 书乾坤之阴阳”이라 하여 서예를 자연 음양의 도와 연계시켜 말한 이래 중국 역대 서론은 서예를 논함에 “도”로부터 시작하지 않은 것을 찾기가 어렵다. 후세의 서론을 보면 예외 없이 서예의 미는 자연 음양 운동의 변화와 그 조화로부터 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용필에 대한 것이건 결구에 대한 것이건 하나같이 음양, 강유(剛柔), 동정(動靜), 방원(方圓), 질서(疾徐)……등 대립 요소의 통일을 서예미의 근본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바로 음양의 운동 법칙이 서 예술에 반영된 것이다.
다음으로 『구세』의 전문을 소개한다.
서는 자연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이 확립되자 음양이 나왔고 음양이 나오자 음양 법칙을 반영하는 서의 형세가 출현했다. 획의 기필과 수필은 마땅히 장봉(藏鋒)을 사용하여 힘이 획 안에 머물게 할 것이며, 힘이 있게 운필하면 점획이 미인의 피부처럼 생기 있고 아름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른 바 오는 필세(筆勢)를 막을 수 없고 가는 필세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며, 오직 운필이 유연한 가운데 예상치 못한 미가 나오는 것이다. 글자의 결구를 구성할 때에는 상부와 하부가 마치 주고받는 것처럼 필세가 서로 호응하게 한다.
전필(轉筆): 획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하여 골절된 듯한 느낌을 주지 않도록 한다.
장봉(藏鋒): 획을 시작할 때 왼 쪽으로 가는 획은 먼저 오른 쪽으로 붓을 댄다.
획을 끝낼 때도 역시 온 방향으로 붓을 돌려 거둔다.
장두(藏頭): 장봉으로 역입해 들어가 붓 끝이 항상 획의 중심에 있도록 한다.
호미(護尾): 획을 다 그어 필세가 끝나면 힘 있게 회봉(回鋒)으로 붓을 거둔다.
질세(疾勢): 짧은 삐침과 파임 및 적획(趯劃,⼅)에 출현한다.
삽세(澁勢): 저항을 극복하면서 긴장감 있게 앞으로 밀어나가는 운필에서 나온다.
략필(掠筆): 느슨하게 그어나가던 긴 삐침을 긴장감 있게 수습함으로써 골기와 필세를 살릴 때 사용한다.
횡린(橫鱗): 가로 획과 세로 획을 긋는 필법이다. (주: “린(鱗)은 물고기의 비늘. 획을 그을 때 미끄러지듯이 단조롭게 긋지 말고 물고기의 비늘이 층층이 겹쳐 있는 것처럼 긴장감 있게 변화를 주라는 뜻이다.”)
이상을 구세라 이름한다. 이를 터득한다면 스승의 가르침이 없더라도 고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오직 필묵의 공부를 깊이 쌓을 때 서의 묘경(妙境)이 열릴 것이다.
入木三分
宋ㆍ李昉等撰『太平廣記ㆍ王羲之』: “진제 때, 북쪽 교외에서 제를 지내고 축문의 널빤지를 바꿔 장인이 이를 깎으려 하니 필치가 나무에 3푼이나 들어갔다[晋帝時, 祭北郊更祝板, 工人削之, 筆入木三分].”
淸ㆍ周星蓮『臨池管見』: “대개 장봉과 중봉의 필법은 마치 장인이 사물을 뚫는 것과 같다. 손을 내리기 시작해 사면으로 펼쳐 움직여야 나무에 3푼이나 들어가게 할 수 있다[蓋藏鋒, 中鋒之法, 如匠人鑽物然, 下手之始, 四面展動, 乃可入木三分
飮 時 / 차 마시는 때
許次紓의 茶疏중에서
心手閒適. 心地와 수족이 한적할 때.
披咏疲倦. 읽다가 피로하고 권태로울 때.
意緖棼亂. 의사가 얽혀 어지러울 때.
聽歌拍曲. 노래를 들으며 장단 맞출 때.
歌罷曲終. 가무 끝내고 악곡을 마칠 때.
杜門避事. 문 닫고 일에서 벗어날 때.
鼓琴看畫. 琴瑟을 타고 그림을 볼 때.
夜深共語. 밤 깊도록 함께 대화할 때.
明窗淨几. 밝은 창 옆 깨끗한 책상에서.
洞房阿閣. 골방이나 阿娜한 누각에서.
賓主款狎. 주객이 다정하게 만났을 때.
佳客小姬. 좋은 손님과 小姬와 함께 할 때.
訪友初歸. 벗을 방문하고 막 돌아왔을 때.
風日晴和. 바람이 자고 날씨가 화창할 때.
輕陰微雨. 흐리거나 가랑비 올 때.
小橋畫舫. 작은 다리 아래 꽃배를 띄울 때.
茂林修竹. 무성한 숲이나 대밭에서.
課花責鳥. 나무 꽃을 손질하고 새소리 들릴 때.
荷亭避暑. 연못가 정자에서 피서할 때.
小院焚香. 작은 사원에서 분향했을 때.
酒闌人散. 술자리 끝나고 손들 흩어졌을 때.
兒輩齋館. 아이들 서재나 객사에서.
淸幽寺觀. 맑고 그윽한 사원 道院에서.
名泉怪石. 名泉이나 괴석 곁에서.
* 款狎/다정하게 터놓고 사귐
荈賦
晉 杜毓
靈山惟嶽 奇産所鍾/영산이라 큰산 기이한 풀이 자라는 곳
厥生/거기서 자라는
荈草彌谷 被岡承豊/차 숲이 온산을 두루 덮었네
壤之滋潤 受甘靈亡霄降/부드러운 소강땅은 신령하게도 붉게 빛나고
月惟初秋 農功少休/농사일 잠깐 쉬고 첫가을 거둘 때
結偶同旅 是采是求/짝을 지어 차를 따네
水則岷方之注 挹彼淸流물은 민방산 청류를 떠다
器澤陶揀 出瓷東隅/그릇은 동우에서 나는 질그릇으로 하고
酌之以匏 取式公劉/따르기는 바가지로 유공의 방식을 취한다
惟玆初成 沫沈華浮/오직 첫물은 거품을 많이 뜨고
煥如積雪 曄若春敷/눈처럼 빛나고 봄번지듯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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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藝基礎理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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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기초실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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