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用筆之法-秋史

solpee 2010. 10. 27. 19:11

入木三分


【용어설명】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동진의 서예가인 왕희지가 널빤지에 제문을 썼는데 장인이 글자를 새길 때 글자의 자취가 널빤지에 3푼이나 침투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글씨가 침착하 힘이 있 굳세웅건형용한 것이다.


【원문인용】

宋ㆍ李昉等撰太平記ㆍ王羲之: “진제 때, 북쪽 교외에 제를 지내축문의 널빤지를 바꿔 장인이 이를 깎으려 하니 필치가 나무에 3푼이나 들어갔다[晋帝時, 祭北郊更祝板, 工人削之, 筆入木三分].”

淸ㆍ周星蓮『臨池管見』: “대개 장봉과 중봉의 필법은 마치 장인이 사물을 뚫는 것과 같다. 손을 내리기 시작해 사면으로 펼쳐 움직여야 나무에 3푼이나 들어가게 할 수 있다[蓋藏鋒, 中鋒之法, 如匠人物然, 下手之始, 四面展動, 乃可入木三分].”

入木之境이라고도 함.

玩堂集 卷八 雜識 中 用筆之法

 

用筆之法。五指疏布四面。置筆食指中節之端。挽而向內。以大指螺紋處抑而向外。中指鉤其陽。名指小指距其陰。則指實掌虛。轉運便捷。轉運之法。食指之骨必橫逼。使筆勢向左。大指之骨必外皷。使筆勢向右。然後萬毫齊力。筆鋒乃中。若緊握不運。則力惟在筆。不至於毫。永叔所謂使指運而腕不至。東坡所謂虛而寬者也。橫逼之機。在名301_151d指甲肉之際。外皷之妙。在中指剛柔之間。又曰。以無名指爪肉之際。揭筆令向上。
側不曰點而曰側者。有側注而爲點之勢。至如宀之上點。亦不可謂之側。非若波捺撇拂之互稱。
伸毫是古今書家所未聞之說。筆鋒常在筆畫之內。一畫之中。變起伏於鋒杪。一點之中。殊衂挫於毫芒。此是鍾,索以來眞訣。古今所不易。印印相傳者。近日東人所云伸毫一法。卽向壁虛造。全沒着落者。至若撇之末筆。將何以處之。是說不去者也。後學皆爲此謨。轉入鬼窟耳。
法可以人人傳(서법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지만)。

 

精神興會(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과 흥취가 일어남은)。

則人人所自致(사람 마다 스스로 일어남이라)。

無精神者(쓰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書法雖可觀(비록 서법이 볼만 하나)。

不能耐久索翫(찾고 즐김은 오래가지 아니하나니)。無興會者(흥취가 없는 자는)。

字體雖佳(비록 글씨가 아름다우나)。

僅稱字匠(오히려 글쟁이라 칭한다)。

氣勢在胷中(소위 文字香書卷氣가 흉중에 있더라도)。

流露於字裏行間(글자 속이나 행간에서 노출되며)。或雄壯或紆徐(혹 웅장하고 혹 서서히 구비흘러)。

不可阻遏(막힘이 없다)。

若僅在點畫上論氣勢(만약에 서권기문자향이 없다면 기세가 겨우 점획 위에 있어)。

尙隔一層(오히려 막혀버린다)。
301_152a朴君蕙百問書於余。叩其得書源流。余云余自少有意於書。廿四歲入燕。見諸名碩。聞其緖論。撥鐙爲立頭第一義。指法筆法墨法。至於分行布白戈波點畫之法。與東人所習大異。漢魏以下。金石文字。爲累千種。欲溯鍾索以上。必多見北碑。始知其祖系源流之所自。至於樂毅論。自唐時已無眞本。黃庭經爲六朝人書。遺敎經爲唐經生書。東方朔讚,曹娥碑等書。全無來歷。閣帖爲王著所摹翻。尤爲紕繆。已爲當時如米元章,黃伯思,董廣川所一一駁正。中國之有識者。自樂毅黃庭等書。至於閣帖。皆羞道之。大槪樂毅黃庭等書。若係眞本之可據。有唐之歐褚虞薛顔柳孫楊徐李諸人所書。一無與黃庭樂毅相似。其不從樂毅黃庭入門可證。但與諸北碑。如印印泥。且方勁古拙。無圓熟模稜者。近日我東所稱書家所謂晉體。蜀體皆不知有此。卽取中國所已棄之笆籬外者。視之如神物。奉之如圭臬。欲以腐鼠嚇301_152b鳳寧不可笑。蕙百云以此秋史所論觀之。前日所習聞於鄭李諸人者。皆南轅北轍也。余曰。此非鄭李諸人之過。鄭李諸人。皆有天分。僻處窮廬。未見古人善本。又不取正於有道大方之家。俱是甕牖繩樞。見聞無多。其爲學之苦心。有不可遏截。依俙求影。怳惚摸響。以爲天上玉京瓊樓金闕。必應如此如此。不能目見足到。何以證實於瓊樓金闕耶。昔東坡贊羅漢伏虎之句。有云一念之差。墮此髬髵。導師悲憫。爲汝嚬歎。以爾猛烈。復性不難。諸君皆於一念之差。未免墮趣。然其猛烈者。亦復性不難。特未遇導師之悲憫。仍與大笑。究其實。實非鄭李之過。是不可責備耳。至於圓嶠筆訣。㝡不可爲訓者。爲伸毫法。尤是乖盩。積非勝是。欲盡空歐,褚諸人而上接鍾,王。是不由門逕。直躡堂奧。其可得乎。趙子固云學晉。不由唐人。多見其不知量也。入道於楷有三。化度九成廟堂三碑耳。子固之時。豈無樂毅黃庭。以此三301_152c碑爲言耶。此所以樂毅黃庭。有識之所不道耳。黃庭尙有六朝人所書眞本。人皆見之。若欲臨此。直不過偶一戱墨試之而已。是豈可以爲立法正宗也。且黃庭眞本筆勢。飄飄輕揚。與近日所行墨刻。不特大異而已。如氷炭薰蕕之不相合。是何以謂之晉體。家尸戶祝也。
顔平原書。純以神行。卽從褚法來。與褚無一毫相近處。黃山谷是晉人神髓。人或以無右軍戈波。有微詞。皆不知其變處而妄論之也。如近日劉石庵。自坡書入。直到山陰門庭。今以坡書形相。苟責石庵。然乎否乎。隷古亦如此。漢碑有虛和拙朴凶險可畏之相。以近人淺量小見。尙不能作。文衡山董香光一畫。何以作東京一波。又何以作西京一橫也。今漢碑現存。廑四十種。又有殘金零塼之可得摹追者。與蜀川相通。曲阜濟寧之外。恠畸不可狀。如公羊之非常可恠者。非習於左氏者所可窺測。是以疑之甚。或束閤。此雖一小道。其難如是。無以301_152d易言耳。
甞見李圓嶠論斥山谷書。不有餘。卽不過掇拾晁美叔之言。不知美叔此說。已爲山谷所勘破也。槩論之。東人無處不妄自尊大。如圓嶠直欲超越唐宋六朝。徑闖山陰棐几。是不知屋外有靑天耳。圓嶠十駕不及石峰安平。石峰安平。又十駕不及董玄宰。玄宰又當十駕不及於東坡山谷。顧何以妄論山谷也。圓嶠書。何甞有山谷一波折之法耶。若云圓嶠不知波折。人必大駭。而實不知波折之五停古法耳。

"竹影掃階塵不動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고 있지만 먼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對句로

 

"月穿潭底水無痕

 달이 연못 속에 비추지만 물에는 흔적이 없다"

 

즉 달빛은 깊은 연못의 밑바닥까지 비추고 있으나

물에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채근담》에는 유교의 입장에서

"吾儒云 水流任急境常靜,花落雖頻意自間,人常持此意 以應事接物,身心何等自在"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팔공산송림사 벽봉성덕양선사 영세불망 공덕비(八公山松林寺 碧峰性德兩禪師 永世不忘 功德碑)

 

松林寺 大雄殿의 柱聯은 智度論 中에서.

 

             天上天下無如佛/천상 천하 어느 곳에도 부처님 같으신 분 없나니

             十方世界亦無比/시방 세계에도 비교할 이 없네

             世間所有我盡見/세상에 있는 것 내가 다 보아도

             一切無有如佛者/부처님같이 귀하신 분 없네

 

冥府殿의 柱聯

 

     掌上明珠一顆寒 /손바닥 위 한 개의 밝고 영롱한 구슬

     自然隨色辨來端 /자연스럽게 색깔 따라 다가온 것 구별하네

     幾回提起親分付 /몇 차례나 친절히 전해 주었건만

     暗室兒孫向外看 /어두운 방의 아이들은 밖을 향해 찾고 있네

 

禪說堂의 柱聯

 

     竹影掃階塵不動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그대로이고 

     月輪穿沼水無痕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 흔적이 남지 않네

     智慧存於明者心 /지혜는 밝은 사람 마음에 있는데,마치

     如淸水在於深井 / 맑은 물이 깊은 샘에 있는 것과 같다네.

     三日修心千載寶 / 단 삼 일이라도 마음 닦으면 천 년이나 가는 보배요

     百季貪物一朝塵 /백 년을 탐한 재물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티끌과 같네

 

 

 石陽正 仲燮의 여덟 폭 墨竹에 제하다.

 

                                     簡易 崔岦

 新竹

큰 대는 아직도 꽃 턱잎을 달고 있고 / 大竹猶苞錦
작은 대는 벌써 玉笋이 삐죽 / 小竹已抽玉
구름 뚫고 나갈 즈음 짐짓 멈칫거리나니 / 拂雲故在遲
담장에 내민 푸르름들 眼中에나 있으리요 / 肯數出墻綠

綿竹

몇 년 동안 대나무를 꽤나 길러 보았는데 / 年來頗養竹
멋들어진 놈일수록 살기 더욱 힘들더군 / 美者尤難活
그대여 면죽이라 가볍게 보지 마소 / 綿竹君莫輕
한겨울 찬바람도 죽이지를 못하리니 / 歲寒不能殺

嫩竹

사람은
아도를 점 찍기가 쉽지 않고 / 畫人阿堵難
대나무는 잎사귀를 그리기가 어려운 법 / 畫竹葉難似
그대의 집 한 폭의 여린 대 잎사귀 / 君家一幅嫩
畫工의 눈들을 말끔히 씻어 주겠구려 / 一洗凡畫史

露竹

이슬방울 보아도 보이지 않더니만 / 露滴看不見
휘어진 대를 보니 이슬이 무거운 모양이군 / 竹垂覺露壓
숨어서 사는 이가 한 방울씩 털어내어 / 幽人遽拂拭
仙人의 술법을 시험해 보시려나 / 欲試丹鉛法

風竹

평소에
차군과 어울리며 지내는 터 / 平居此君在
이번에는 벗님이 찾아왔다 일러 주네 / 復道故人來
문 닫고 눈 감고서 서로 마주 보노라면 / 閉戶冥相對
그대 앉은 맑은 자리 이끼가 돋아나겠구만 / 淸塵生古苔

雨竹

그동안 하얗게 분을 발라 치장하고 / 向來筠粉態
너의 집 맑은 기풍 오히려 오염시키더니 / 猶汚乃家淸

한 차례의 빗줄기 너를 玉成시키는 듯 / 一雨應玉汝
이제부턴 삐쩍 마른 홀쭉이가 되겠구나 / 從敎太瘦生

枯竹

움 터서 성장하여 클 대로 다 큰 뒤에 / 擢笋進成榦
이제는 대 가지도 병이 들려 하는구나 / 及玆梢欲病
그대여 위 무공을 생각해 볼지어다 / 君看衛武公
나이 아흔에도 자신을 경계하였으니 / 九十猶箴儆

雪竹

사람들은 꽃나무를 그리기를 즐기는데 / 人愛寫花木
그대는 유독 이 물건을 아끼오그려 / 君獨愛此物
이 물건 자체가 본시 써늘하니만큼 / 此物元自寒
바윗돌 위 눈발 속에 서 있는 게 적격일세 / 配之石上雪

☞.阿堵: 六朝 시대의 口語로 ‘이것’이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눈동자를 가리킨다. 晉나라 顧愷之가 사람을 그리고 나서도 몇 년 동안 눈동자를 찍지 않자, 그 이유를 물으니, “四體를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은 묘한 경지와 관계가 없다. 그림에 정신을 불어넣어 전해 주는 것은, 바로 이것 속에 있기 때문이다.[正在阿堵中]”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92 顧愷之列傳》
☞.仙人의 …… 보시려나 : 漢武帝가 신선술에 미혹된 나머지 承露盤에 甘露를 받아 마셔 壽命을 늘려 보려고 했던 고사가 있다. 《漢書 卷25上 郊祀志 上》
☞.此君: 대나무의 별칭이다. 東晉 王徽之가 텅 빈 집에 기거하면서 문득 대나무를 심으라고 하자, 그 이유를 물으니, 그가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나는 이 자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가 없다.[何可一日無此君邪]”고 말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이번에는 …… 일러 주네 : 대숲에 마치 친구처럼 바람이 찾아와 주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杜牧의 시에 “무더운 여름날 혹독한 관리도 물러가고, 맑은 바람 속에 벗님이 찾아왔네.[大熱去酷吏 淸風來故人]”라는 名句가 전한다. 《樊川詩集 卷4 早秋》
☞.그동안 …… 오염시키더니 : 대나무 껍질에 흰 가루가 묻어나는 것을 筠粉이라고 하는데, 참고로 白居易의 〈畫竹歌〉에 “아리따워라 균분의 자태를 잃지 않고, 삽상해라 풍연의 정취를 얻었고녀.[嬋娟不失粉態 蕭颯盡得風煙情]”라는 구절이 나온다. 《白樂天詩集 卷12》 또 “새로 솟은 대나무에 기대어 읊노라니, 흰 가루가 刺史님 의관을 더럽히네.[閒吟倚新竹 筠粉汚朱衣]”라는 표현이 있다. 《白樂天詩集 卷2 晩興》
☞.너를 玉成시키는 듯 : 인격이 바람직하게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宋나라 張載의 〈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장차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 함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는 말이 나온다.
☞.나이 …… 경계하였으니 : 춘추 시대 衛나라 武公이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라 사람들에게 자신을 일깨워 주도록 좋은 말을 해 달라고[箴儆于國] 분부하였다 한다. 《國語 楚語 上》 《시경》 衛風 淇奧의 시도 위 무공을 칭송한 노래라고 전해 오는데, 그 첫머리에 “저 기수 물굽이를 굽어다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아름답게 문채나는 우리 님이여, 깎고 다듬고 쪼고 간 듯하네.[瞻彼淇奧 綠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는 구절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