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武夷九曲- 朱喜

solpee 2010. 7. 25. 15:27

山無水不秀/산은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않고 

水無山不淸/물은 산이 없으면 맑지 못하 

曲曲山回轉/골짜기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

峯峯水抱流/봉우리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돈다

武夷九曲

 

                            朱喜(1130~1200)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상유선령/무이산 위 높은 곳에 신선이 살고 있는데

山下寒流曲曲淸 /산하한류곡곡청/산 아래 차가운 물줄기 굽이굽이 맑더라

欲識箇中奇絶處 /욕식개중기절처/그 가운데에 빼어난 경치 알고자 하면

櫂歌閑聽兩三聲 /도가한청양삼성/노젓는 소리를 한가하게 두세 곡 들어보세


一曲溪邊上釣船/일곡계변상조선/첫째 구비 산여을 낚시 배에 오를 적

慢亭峰影蘸晴川/만정봉영잠청천/만정봉 어린경치 물속에 영롱하다

虹橋一斷無消息/홍교일단무소식/홍교가 끊긴 뒤에 소식이 감감 터니

萬壑千巖鎖暮煙/만학천암쇄모연/만학고 천암엔 안개만 자욱하구나


 

二曲亭亭玉女峰/이곡정정옥녀봉/둘째 구비 옥녀봉 저다지 정정한데

揷花臨水爲誰容/삽화임수위수용/뉘보라 꽃들은 물위에 드리웠던가

道人不復陽臺夢/도인불복양대몽/도사는 꿈속에서 낭만을 버렸으니

興入前山翠幾重/흥인전산취기중/흥겹도다. 폭른산 몇 겹을 들어갈고?

 

三曲君看架壑船/삼곡군간가학선/셋째극비 그대는 보았는가. 가학 선을

不知停棹幾何年/부지정도기하년/뱃놀이 못하지 그 몇 해 이런가

桑田海水今如許/상전해수금여허/상전이 벽해 될 걸 이재서야 알만하니

泡洙風燈敢自燐/포수풍등감자린/부질없는 내 심사 가엽기 그지없다


四曲東西兩石巖/사곡동서양석암/넷째 구비 동서로 미주선 두 바위에

巖花垂露碧藍參/암화수로벽람참/암화에 이슬 맺혀 영롱히 드리웠구나

金鷄叫罷無人見/금계규파무인견/사람 못 보아도 금계는 알겠지

月滿空山水滿潭/월만공산수만담/물찬 못과 공산은 달빛만 가득 하도다

 

五曲山高雲氣深/오곡산고운기심/다섯 극비 산 높고 그름 짙은데

長時煙雨暗平林/장시연우암평림/종일토록 평림은 연무로 자욱하네

林中有客無人識/임중유객무인식/임중의 나그네를 그 누가 알랴만

款內聲中萬古心/관내성중만고심/어여차 뱃노래에 영원을 되새긴다

 

六曲蒼屛堯碧灣/육곡창병요벽만/여섯 구비 창변을 흐르는 여울 가에

茅茨從日掩紫闕/모자종일엄자궐/진종일 다하도록 바깥세상 모를 적

客來倚櫂巖花落/객래의도암화락/객이 와저 노 저으니 바위엔 꽂이 지고

猿鳥不驚春意閑/원조불경춘의한/원숭이와 새소리에 봄날은 저문다

 

七曲移船上碧灘/칠곡이선상벽탄/일곱 구비 배 옮겨 푸른 여울 오를 제

隱屛仙掌更回看/은병선장경회간/은병과 선장이 아쉬워 돌아본다

却坮昨夜峰頭雨/각대작야봉두우/대를 부술 듯 봉두에 밤비는 내려

瀑得飛泉幾度寒/폭득비천기도한/쏟아지는 물줄기 이토록 차울가

 

八曲風煙勢欲開/팔곡풍연세욕개/여덟 구비 쌓인 안개 바람에 걷히고

鼓樓巖下水榮廻/고루암하수영회/고루암 아래는 물길이 구비 친다

眞言此地無佳景/진언차지무가경/이보다 좋은 경치 어디 또 있을까

自是遊人不上來/자시유인부상래/사람이면 저마다 여기서 놀 수 있으랴

 

九曲將窮眼豁然/구곡장궁안활연/아홉 구비 마지막 시야가 트이니

桑麻雨露靄平川/상마우로애평천/들판의 상마는 아지랑이에 쌓였도다

漁郞更貢批源路/어랑경공비원로/어부들은 도원경을 수없이 찾았지만

除是人間別有川/제시인간별유천/이와는 별천지를 본적이 없었노라

 

短卓長蓑九曲灘/단탁장쇠구곡탄/도롱이를 허리에 차고 아홉 구비 여울에서

晩來閑弄釣魚竿/만래개롱조어간/저물도록 고기 낚기를 즐길 때

幾回欲過前灣去/기회욕과전만거/욕심을 못 버리고 물 구비 지나는데

却怕斜風特地寒/각파사풍특지한/아서라 스치는 바람 차갑기만 하구나

 

☞.武夷九曲은 중국의 福建省에 있는 武夷山의 아홉 구비 계곡의 경치가 매우 좋아 일찍이 송나라 朱喜가 九曲歌를 지은 데서 나온 말이다.

朱喜 (1130~1200) 남송의 유교 사상가로서 처음에는 노장사상과 불교에 흥미를 가졌으나 24세에 李延平에게 유교를 배워 그 후 죽을 때까지 북송 이후의 특히 정이천의 이기설을 계승하여 育象山이나, 공리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소위 주자학을 완성하였다.

高麗와 朝鮮의 학자들을 주자학에 빠뜨려 종국적으로 망국에 길을 가게한 원흉이다

 

逝者如斯-斯는 不舍晝夜다.

 

 

공자 왈 “가는 것이 물과 같구나”

자주 등장하는 ‘물 이야기’…해석도 엇갈려

 

“중단 없는 공부 강조”

“만물의 무상함 탄식”

 


 

逝者如斯’.

이 문구는 지난해 말 <교수신문>이 해마다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 후보에 올랐던 구절이다. 2500여 년 전 공자의 말이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는 점이 놀랍지만 바로 그런 것이 고전의 힘이다.

 

<논어> ‘子罕’편에 나오는 그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선생님이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도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아마도 제자들과 함께 물가에 서 있다가 한 말이겠지만, 앞뒤 연결 없이 이 문장 하나만 있으니 어느 곳에 있는 냇물인지, 어떤 모양으로 흐르는 것을 보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인지 등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공자는 물을 꽤나 좋아한 모양이다. 그래서 <맹자> ‘李婁’ 하편에는 맹자와 그 제자 서자 사이에 오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서자가 물었다. “공자께서 자주 물을 칭송하시어 ‘물이여! 물이여!’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물을 가지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인지요?”

 

맹자가 답하였다. “근원이 좋은 물은 뭉클뭉클 솟아서 밤낮으로 쉬지 아니하므로 앞에 있는 구덩이를 다 채운 뒤에 나아가 사방 바다에 이르나니, 학문에 근본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기 때문에 물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다. 진실로 근본이 없으면 7~8월 빗물이 몰려들어 도랑을 가득 채우더라도 그 물이 다 마르는 것은 잠깐일 뿐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부끄러워하는 법이다.”

 

하지만 맹자의 해석처럼 공자가 정말 공부를 물 흐름에 비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막스 베버는 <논어>를 읽으면 인디언 추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영화를 봐도 인디언 추장의 대사는 뜬금없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만큼 말에 함축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에 인용한 공자의 말도 많은 함축이 있으며, 더구나 앞뒤 맥락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어쩌면 30여 년 동안 천하를 돌아다니며 무려 72명의 임금을 만나 자신의 뜻을 실현해 보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한 스스로의 고단한 삶을 돌아보며 탄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 문장을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만물의 무상함을 탄식했다는 뜻으로 ‘川上之嘆’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쉼 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고 자연의 영속성을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공자는 칠십이 넘어섰을 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知天命)”고 말했다. 여기서 ‘천명을 알았다’는 자신이 아무리 돌아다녀도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없는 것이 運命임을 알았다는 뜻도 되고, 그럼에도 사회 개혁을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使命임을 알았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공자가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라고 한 참뜻은 무엇일까? 자신의 고단한 삶을 한탄한 것일까, 아니면 그렇더라도 자연의 흐름처럼 쉼 없이 애써야 한다는 것일까?

 

송나라 때 성리학을 일으킨 정이와 주희는 이 구절에 “물이 쉼 없이 흐르는 것처럼 해가 지면 달이 뜨고, 추위가 지나면 더위가 오듯 잠깐의 멈춤도 없이 바뀌는 것이 자연의 운행 법칙”이라면서, “공부하는 사람도 이처럼 잠깐의 중단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주희는 오십네 살이 되던 1183년 푸젠성 충안현 武夷山에 武夷精舍를 세운다. 우이산은 푸젠성 최고의 명산으로 36개의 봉우리와 99개의 암석, 그리고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가 8㎞에 걸쳐 아홉 굽이를 돌아 나가는 절경이다.

 

주희는 그 가운데 다섯 번째 골짜기에 우이정사를 세우고 제자들을 길렀으며, 굽이굽이 아홉 계곡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武夷九曲歌’를 지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 계곡에 있는 嚮聲岩에 본인이 직접 쓴 ‘逝者如斯’ 네 글자를 새겨 넣었다.

 

가끔씩 제자들과 배를 타고 계곡을 유람할 때마다 올려다보고 마음을 다잡았을 법하다. 아마도 이 사자성어는 바위에 새긴 것이라기보다 두 차례에 걸쳐 10년 동안 미미한 벼슬자리에만 있다가 자연으로 돌아온 주희 자신의 마음에 새긴 것이리라.  

 

좋은 글귀는 문인들도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당송 팔대가의 대표격인 소동파가 제갈량·조조·유비·손권이 어우러져 자웅을 겨루던 적벽 아래에서 노닐다가 지은 그 유명한 ‘赤壁賦’에서도 ‘서자여사’ 네 글자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내가 말하였다. 그대 또한 저 물과 달을 알고 있소? 가는 것이 이 물과 같아서 아주 가 버리는 것이 아니요, 차고 이지러지는 것은 저 달과 같아서 끝내 없어지지도 늘어나지도 않는 것이오. 변한다는 점에서 보면 세상 만물이 한순간도 변하지 않을 수 없고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만물과 나는 모두 끝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소?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흐르는 냇물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냇가에 앉아 발 담글 생각을 하거나 뛰어들어 고기도 잡고 멱도 감으려 들겠지만 예전 지식인들은 그 안에 자신들의 생각을 담았다.

 

문인화에는 올곧게 살고 싶은 자신들의 생각을 보여 주려고 곧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그렸고, 공자가 “만 번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고 했던 ‘萬折必東’의 정신으로 외세에 맞서기도 했다. 다음 번에 흐르는 물을 만나면 우리는 그 속에 어떤 생각을 담아 볼까?

 

김교빈<호서대학교 문화기획학과 교수>

 

김교빈 교수는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 한국철학사상연구회장·인문콘텐츠학회장·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호서대 문화기획학과 교수,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동양철학 에세이> <한국철학 에세이>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 역서로 <중국 고대철학의 세계> <중국 의학과 철학> <기의 철학> 등이 있다.

 

어떻게 해야 정치에 종사하는가……  

 

자장(子張)이 공자께, 어떻게 하여야 정치(政治)에 종사할 수 있게 되겠습니까?하고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섯 가지 미덕(美德)을 존중하고 네 가지 악덕(惡德)을 물리친다면 정치에 종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장(子張)이, 무엇이 다섯 가지 미덕(美德)입니까? 하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군자(君子)는 은혜스러우면서 낭비하지는 않고, 힘드는 일을 시키면서도 원망을 사지는 않고, 원하기는 하나 탐내지는 않고, 태연하나 교만하지도 않고, 위엄이 있으나 사납지는 않다.고 말씀하셨다.

 

자장(子張)이, 무엇이 은혜스러우나 낭비하지는 않는 것입니까? 하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국민에게 이익 되는 것에 따라서 그들을 이롭게 하여 주면, 이 또한 은혜스러우면서 낭비하지는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힘드는 일을 시킬 만한 사람을 택해서 힘드는 일을 시킨다면 또 누가 원망하겠느냐?

인자함을 원해서 인자함을 얻는다면 또 어찌 탐내겠느냐? 군자(君子)는 사람이 많건 적건 크건 작건 감히 소홀하게 다루는 일이 없으니, 이 또한 태연하나 교만하지는 않은 것이 아니냐?

군자(君子)는 자기의 의관을 바로 착용하고 자기 보는 것을 위엄 있게 하여 엄연한 것이, 남이 바라보면 그를 두려워하게 되니 이 또한 위엄이 있으나 사납지는 않은 것이 아니냐? 

 

자장(子張)이, 무엇이 네 가지 악덕(惡德)입니까? 하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르치지 않고서 죽이는 것을 잔학(殘虐)하다고 한다.

미리 경계해 놓지 않고서 일의 완성을 재촉하는 것을 난폭하다고 한다.

소홀하게 명령해 놓고 시기를 꼭 대도록 기대하는 것을 괴롭히는 짓이라고 한다.

고루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데 있어 내고 들이는 것을 인색하게 하는 것을 유사(有司)라고 한다. 

 

 

子張問於孔子曰 : [何如斯可以從政矣?] 子曰 : [尊五美, 屛四惡, 斯可以從政矣.] 子張曰 : [何謂五美?] 子曰 : [君子惠而不費, 勞而不怨, 欲而不貪, 泰而不驕, 威而不猛.] 

費, 芳味反. 

子張曰 : [何謂惠而不費?] 子曰 : [因民之所利而利之, 斯不亦惠而不費乎? 擇可勞而勞之, 又誰怨? 欲仁而得仁, 又焉貪? 君子無衆寡, 無小大, 無敢慢, 斯不亦泰而不驕乎? 君子正其衣冠, 尊其瞻視, 儼然人望而畏之, 斯不亦威而不猛乎?] 

焉, 於虔反. 

子張曰 : [何謂四惡?] 子曰 : [不敎而殺謂之虐; 不戒視成謂之暴; 慢令致期謂之賊; 猶之與人也, 出納之吝, 謂之有司.

出, 去聲. 

○ 虐, 謂殘酷不仁. 暴, 謂卒遽無漸. 致期, 刻期也. 賊者, 切害之意. 緩於前而急於後, 以誤其民, 而必刑之, 是賊害之也. 猶之, 猶言均之也. 均之以物與人, 而於其出納之際, 乃或吝而不果. 則是有司之事, 而非爲政之體. 所與雖多, 人亦不懷其惠矣. 項羽使人, 有功當封, 刻印 , 忍弗能予, 卒以取敗, 亦其驗也. 

○ 尹氏曰 : [告問政者多矣, 未有如此之備者也. 故記之以繼帝王之治, 則夫子之爲政可知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