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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神寫照

solpee 2010. 5. 9. 12:58

傳神寫照

 

   傳神寫照란, 대상의 외형의 사실적인 재현 뿐만아니라, 자연 풍물이나 인물의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말해서, 그리고자 하는 대상 속에 숨겨진 정신과 본질적인 특성을 그려낸다는 뜻이다.

 

   중국 東晋의 顧愷之(344~406)는 이 傳神을 회화 창작과 비평을 하는데 있어 으뜸가는 기준으로 삼았다. 傳神 - 정신을 전한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표현한다는 말이다.

 

초상화의 개념 및 성격

초상화란 특정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특정 인물을 그려내는 회화로서, 크게 보아 인물화의 일부분에 속한다. 초상화란 단어는 근래에 만들어진 용어로서, 옛 문헌 기록이나 贊文을 보면 초상화를 일컬어 眞 · 影 · 像· 眞影 · 影子· 眞容· 影像· 畵像· 影幀· 影帖子 등으로 지칭해 왔다.
‘상’으로 대표될 수 있는 위의 여러 가지 용어는 자연 배경 없이 인물만을 주제로 그린 그림에 사용하는 말이다. 반면에, ‘圖’는 풍경과 동식물을 그린 그림에 사용하는 말이다. 그래서 인물 중심이기는 하지만 생활 상태 속의 모습을 그린 것은 ‘도’라고 한다. 예컨대, 달마가 갈대 잎을 꺾어 타고 강물을 건너가는 모습을 그린 〈달마도강도〉나, 노자가 관문을 배경으로 소를 타고 가는 모습을 그린 〈노자출관도〉 같은 그림은 ‘도’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인물만을 주제로 그리는 ‘상’은 다른 어떤 畵目보다 그리기 어렵다고 한다. 인물 잘 그리기로 유명한 東晉의 화가 顧愷之도,

“대체로 사람을 그리는 일이 가장 어렵다.”

고 실토한 적도 있고, 또 韓非子는

“사람은 대낮에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닮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귀신은 일정한 모습이 없는 것으로서 대낮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쉽다고 한다”

고 하였고, 《후한서》에서는,

“화가는 犬馬를 그리는 것을 기피하고 귀신을 그리기를 좋아한다. 實事이기 때문에 그리기에 어렵고, 또한 허위로써는 그 모습을 완전하게 포착하지 못한다.”

고 한 바 있다. 그만큼 초상화는 산수화나 화조화와 달리 대상 인물의 정신을 터득해 내는 骨法化라는 과정이 필요한 까닭에 그리기 어려운 것이다.

   
♣.작품 분석

〈자화상〉은 종이 바탕에 옅은 채색을 가하여 그렸다. 크기는 세로 38.5cm, 가로 20.5cm이며,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해남의 윤씨 종가에 소장되어 있다.


윤두서는

“터럭 한 올이라도 같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다”
  (一毫不似便是他人)

라는 정통 초상화론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안면의 윤곽선수염의 필선에 畵力을 집중시켰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고, 그 뒤에는 선비다운 기개가 충만 되어 있다. 고개지가 인체 중에 사람의 정신이 깃들이어 있는 곳이 눈이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윤두서상〉은 사진 카메라의 눈만 가지고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인간의 심정과 내재적인 정신을 외모와 함께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화상〉의 화면 구도는 매우 간소하다. 보통의 초상화가 全身을 그리거나 상반신을 그리고 있는데 반해, 여기서는 얼굴만 강조하여 그렸다. 어깨나 목, 또는 웃옷의 묘사 같은 것은 물론 없으며, 배경은 그냥 여백인 채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간소하고 화면에 빈 곳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화면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빈 곳이 그 배후를 충분한 직관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경우에는 그 빈 곳은 결코 오래 빈 곳으로 남아 있지 않고 곧 직관에 의하여 채워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화면의 빈 곳은 빈 곳이 아니라 무한한 생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자화상〉은 초상화의 묘처인 骨法化를 성공적으로 달성해 낸 초상화라 할 수 있다.

 

미인도

한시의 내용-자신의 七言詩
책상다리 한 여인의 가슴속에 감추어진
春意를 능숙한 붓끝으로 '傳身'하였다.
*傳神寫照
寫照란 작가가 관조한 형상을 묘사하는 것을 말하며,
傳神은 그 대상속에 숨겨져 있는 정신을 그려내는 것으로
형상을 통하여 정신을 전해 내는 것을 말한다.
즉,초상화를 그릴 때는 형태를 닮게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뛰어 넘어 그 사람이 지닌 고매한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쌍검대무 

종이에 담채, 28.2 x 35.6, 간송 미술관, 국보 135호

세력있는 귀족이 장악원의 악공들과 가무에 능한 기생을 불러다가 즐기는 장면이다.

악공과 기생의 수효로 보아 이 놀이가 보통규머가 아닌데,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오직 주인대강과

그의 자제낭관인 듯하니 일가의 세도가 어지간한 모양이다.

화면구성에 있어서 일체의 배경을 거부하고 검무하는 광경만 전면에 가득 채운 대담성을 보였으나

주제 표현에 조금도 군색함이 나타나지 않으니, 이는 인물의 포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 한다.

시각의 초점이 되는 검무 기생들은 의상에서 청홍의 강렬한 대조를 보이면서 화면을 압도하는데,

주인을 비롯한 관객들과 악공들이이를 중심으로 포열함으로써 화면의 비중은 평형을 이룬다.

검무 기생의 날렵한 동작에서 오는 율동감은 관객들의 도취된 몸짓과 악공들의 신바람 나는 연주에 혼연 일치를

보여 아연 활기를 띤다.

이렇게 옮겨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화가의 예리한 안목이라도 그리 쉽지 않을 일이다.

인물들이 하나 같이 국도로 세련된 차림을 보이는 것도 그의 주변을 보는 듯하여 흥미롭다.

 

단오풍정 

조선후기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그림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으로 단오절에

창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를 뛰는 등의 세시풍속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오풍정. 단오도라고 한다고 한다.

그림 중심 상단에는 강렬한 색체로 그네 뛰는 여인을 묘사하여 화면의 초점을 이루었고

오른쪽 위에서 사각으로 흘러내리는 개울과 둔덕등 거의 빈품 없는 구도는 신윤복의 그림중에서도 백미이다.

큰 타래머리의 여인들과 개울가에서 목욕하는 반라의 여인들,

그리고 바위틈으로 숨어서 넘겨다 보는 승려의 모습등을 대담하게 그렸다.

김홍도의 그림이 전반적으로 모노톤인 반면에 신윤복의 그림은 색을 많이 사용했고 배경을 꽉차게 그렸다.

이처럼 혜원 신윤복의 그림은 강렬한 색들을 거침없이 사용하였다.

연소답청 

나들이, 혜원전신첩 종이에 옅은 색, 28.2x35.6cm, 간송, 국보 135호

분홍 진달래꽃이 피어있는 봄날...

젊은이들의 옷차림은 가벼운 소창의(창옷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집에서나

외출할 때 도포, 대창의 등 겉옷의 아래 받쳐 입었고 서민들은 겉옷으로 입었단다. 사대부들은

명주나 비단으로, 서민들의 백색,흑색,청색,옥색 등의 목면 등으로 지은 소창의를 입었으나 조선

말기에는 두루마기와 함께 양반도 입어 격이 높아졌다. 소매가 좁고 무(겨드랑이에서 아랫단까지

따로 천으로 댄것)가 없다.)이고 앞자락을 뒤로 돌려 묶었다.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맨 왼쪽의 갓을 듯 사람은, 젊은이들의 시종인 듯한데 얼굴표정이 영 이상하다. 왜그럴까 생각하다가

아.. 맨 오른쪽의 젊은이와 옷을 바꿔입은듯 하다. 봄날의 나들이가 흥이 났는지

모자까지 바꾸어 쓰고 말잡이 노릇을 하고있다.

요즘세상처럼 돈으로 권력을 산 젊은인가...?

사진으로 봤을땐 그렇게 따뜻한 봄날은 아닌것 같지만 조금 일찍 나들이를 나왔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