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持敬

solpee 2010. 4. 12. 06:58

持敬 

敬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란
곧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動과 靜을 일관하고
안(마음)과 밖(행동)을 합치시키고
드러난 것(顯)과 숨겨진 것(微)을
한 가지 되게 하는 도리이다

 

大道無門
舌頭無骨
到處春色

柳綠花紅

  

 

常以輕富貴 守貧踐爲心

늘 부귀를 경시하고 빈천을 지킴을 마음으로 삼는다

不能透得名利關 能言眞如鸚鵡也 (謝上蔡의 어록)

명예와 이익의 관건을 꿰뚫지 못하고 말만 잘하는 것은 진실로 앵무새와 같다

雖在千萬人中 常知有己也 (許衡의 어록)

천만인 속에 있어도 거기에 늘 자신이 있음을 안다

-南冥 曺植의 學記類編 中에서-

"魯齋許氏曰 凡事一一省察 不要逐物去了 雖在千萬人中 常知有己 此持敬大略"

 

柳綠花紅 -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森羅萬象은
眼橫 鼻直; 눈은 가로로 코는 세로로

明歷歷 露堂堂하게
그 眞面目을 드러내고 있다.

山은 山대로, 물은 물로 ..........



放下着 


"버리라" 짐을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擔取하여 가라"

아무것도 없는 것을 가지고 가라.
가지고 간다는 의식까지도 버려라.


山花開似錦 澗水湛如藍 

- 산에는 꽃피어 비단 같고 澗水는 고여서 쪽빛 같구나.


꽃이 피고 간수가 흐르는 그 移行過程 속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堅固法身의 진리가 있다.

우리는 오늘 현재 여기 있을 뿐이다 


"無常迅速 時不待人"
-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風來疎竹 風過而竹 不有聲

- 대나무에 바람이 불면 바스락거리나,
바람이 지나면 아무 소리 없고


雁度寒潭 雁去而潭 不留影

- 기러기가 깊은 연못위로 날아가도,
가고 나면 아무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다.


故 君子 事來而心如現 事去而心隨空

- 고로 군자는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움직이나,
일이 끝나면 그 일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비운다

 

八面出鋒

 

世人多目禿穎爲藏鋒 非也! 歷觀唐宋碑刻無不芒鏑利 未有以禿穎爲工者. 所謂藏鋒卽是中鋒 正謂鋒藏中耳. -王澍《論書剩語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뭉뚝한 것을 보고서 장봉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당송(唐宋)의 비각(碑刻)을 차례로 보면 뾰족하고 예리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뭉뚝한 것을 공교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장봉이라는 것은 곧 중봉으로 바로 필봉이 필획속에 감추어짐을 이르는 것일 따름이다.


所謂中鋒者謂運鋒在筆之中 平側偃仰 惟意所使及其旣定也 端若引繩 如此則筆鋒不倚上下 不偏左右 乃能八面出鋒 筆至八面出鋒 斯無往不當矣. -王澍《論書剩語

이른바 중봉이라는 것은 운용하는 필봉이 필획의 속에 있는 것이다. 평측언앙을 함에 오직 의도하여 운용하는 것이 그 이미 정해진 곳으로 이르는 것이다. 글자의 필획이 단정하여 끌려나오는 필획과 같으니, 이와 같으면 필봉이 상하로 기울어지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며 팔면으로 출봉할 수가 있게 된다. 붓이 팔면으로 출봉하게 되면 이것은 운행하여 마땅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中鋒에 관한 諸說


왕세정(1526-1590)은 “정봉이나 편봉이란 말이 고본에는 없었으나 근래에 축윤명(1460- 1526)을 공격하기 위하여 이를 말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중봉론이 심각하게 논의되었던 것은 명말에서 청에 이르는 시기였으니, 이로 미루어 보면 중봉이나 편봉 등에 대하여 그전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봉설의 연원은 채옹(133-192, 一作132-192)의 「구세」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세」에서 “藏頭는 원필로 종이에 대어 필심을 항상 점획의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후에 이세민(597-649)은 「필법결」에서 이르기를 “대저 腕이 수직이면 봉鋒이 바르고 봉이 바르면 사면의 세가 온전해진다”라 하였다. 이 두 가지 설은 후세 중봉관의 근원이 되었다. 사실 중봉설의 전신은 正鋒說이다. 정봉이란 말은 강기(1155- 1235, 一作1163-1203)의 「속서보」에서 “안진경(708-784, 一作709-785)과 유공권(778-865)에 이르러 비로소 정봉을 사용했으며, 정봉에는 표일한 기운이 없다”라고 한 것이 처음이다. 唐代의 풍방은 「서결」에서 “古人이 전서․팔분․해서․행서․초서를 썼지만, 용필은 다르지 않았고 반드시 정봉을 위주로 했으며 간간히 측봉을 사용하여 고운 자태를 취했다”라고 했다. 여기서 정봉과 대립적인 것이 측봉과 편봉이다. 이로부터 많은 이들이 중봉에 대하여 말했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중봉에 대한 역대의 이론은 대체로 다음 세 종류의 中鋒觀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 중봉관은, 필첨이 시작에서 끝까지 점획의 중간에 있어야 비로소 중봉․정봉이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편봉․측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송대의 진유陳槱는 “李陽氷은 홀로 그 묘함이 뛰어나서 항상 眞跡을 보면 그 자획이 시작하고 멈추는 곳에 모두 약간의 鋒芒이 드러났다. 햇빛에 이를 비춰보면 중심에 있는 한 줄의 선에 먹이 배로 짙었으며 그 용필은 힘이 있고 곧게 내려 치우치지 않았으므로 봉은 항상 필획의 가운데에 있었다(惟陽氷獨擅其妙 常見眞跡 其字畫起止處 皆微露鋒鍔 映日觀之 中心一縷之墨倍濃 蓋其用筆有力且直下不欹 故鋒常在畫中)”16)고 했고, 서현의 전서에 대하여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있다.

 

이는 필봉이 항상 필획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주봉과 부호에서 연출되는 작용에 의해 중앙과 양변의 먹색이 달라짐으로 해서 입체감을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또한 양변은 보드랍고 중실하며 控制效果와 力感이 있음으로 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필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봉을 완전하게 운용하려면 전서를 제외한 다른 서체에서는 가능하지가 않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학설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중봉관은, 예․해․행․초서의 下筆과 轉折處에서 필봉을 정중앙으로 유지할 수없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중봉용필은 마땅히 행필할 때에 부단히 필봉을 조정하여 측봉으로부터 중봉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세」의 “필심을 항상 점획의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令筆心常在點畫中行)”는 말에서 ‘令’의 의미를 부각시킨 것이다. 필첨을 항상 중심으로 유지할 수가 없기에 끊임없는 제어를 통해 필봉을 점획의 중심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봉과 정봉은 개념을 달리한다.

 

세번째 중봉관은, 구양수(1007-1072)로부터 시작하였으며, 소동파는 「동파제발」에서 “그 운필은 전후좌우로 기울어지고 치우침을 면할 수가 없으나, 그 안정됨은 상하로 줄을 끄는 것과 같다. 이것을 筆正이라 한다”고 기록하였다. 상술한 두 번째의 중봉관과 모양이 비슷한 곳은 중봉용필이 정봉이나 측봉으로부터 상호보완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요, 서로 다른 점은 단지 點畫關節處에서 필봉을 상하로 줄을 끄는 것과 같이 해서 정봉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청대의 왕주(1668-1743)는 “중봉은 필획의 가운데에서 봉을 움직이는 것이니 平側偃仰을 뜻에 따라 구사하는 것이다.

 

필봉이 이미 안정되면 단정하기가 마치 줄을 끄는 것과 같으니[端若引繩], 이러면 필봉이 위나 아래로 치우치지 않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아 팔면으로 출봉하게 된다. 붓을 팔면으로 출봉하게 되면 마땅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왕주가 여기서 말한 ‘端若引繩’이란 글자의 필획이 단정하기가 뽑아놓은 묵선과 같이 곧은 것을 가리킨다. 端은 단정한 것이고 引은 뽑아내는 것이다. 용필에서 비록 중봉이 위주가 되는데, 필필정봉이 되면 변화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변화를 추구하려면 마땅히 정용․측용․중용․편용․역용․순용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필할 때에는 필봉이 마땅히 획의 가운데로 돌아와야 하고 점획의 안으로 감춰져야 팔면으로 출봉할 수가 있을 것이다.

 

왕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봉의 핵심은 換筆에 있다. 환필을 할 수 있으면 행필에 중봉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환필의 換은 곧 채옹의 「구세」에 있는 ‘令’을 구체화한 것이다. 八面出鋒은 곧 이세민의 「필법결」의 四面勢全이며, 본질상으로 말하자면 중봉관 또한 「구세」와 「필법결」의 본의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첫 번째의 중봉관을 논하지 않는다면, 곧 중봉은 측봉과 편봉의 대립면이 아니며, 또한 정봉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또한 필필중봉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확실하게 용필의 핵심임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정확한 중봉관은 필봉의 정측의 사용을 폐하지 않고, 換筆로 수단을 삼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정봉과 측봉은 相濟相成하며 그로써 수준높은 선질의 점획을 서사할 수가 있다

 

運筆

 

1.錐劃沙-송곳으로 모래에 획을 긋는 것과 같이 붓 끝을 종이 위에 수직으로 세워 붓끝이 筆의 가운데에 감추어져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2.印印泥-도장을 인주에 수직으로 세워서 찍는 것처럼 붓을 댐이 확고하면서 정확함을 형용한 것이다


3.屋漏痕-빗물이 벽 사이에 스며들어 물방울이 되어 서서히 흐러 내리는데 물방울이 곧바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좌우로 조금 요동하면서 흐르다가 수직으로 떨어져 벽에

다 흔적을 남긴다. 이와 같이 行筆할 때 아무 거침없이 내려 그어서는 안되며 손을 반드시 전후좌우로 멈춰가며 행필하여야만 필획이 원만하고 생동감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4.中鋒-붓이 바로 서고 筆鋒이 정 중앙에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점획 가운데를 지나는 것을 말한다.



5.萬毫齊力-글씨를 쓸 때 붓털이 고르게 힘을 쓰도록 하는 것으로 運筆 기교를 습득 해야만 이룰 수 있다.



6.筆鋒-붓끝의 뾰족한 부분의 투명하거나 혹은 푸른 빛이 나는 부분을 말 하는데 필봉이 길수록 탄력은 더 강하며 먹을 머금는 양도 더 풍부해져서 글씨의 점획의 굵고 가늠이 자유자재로 되고 붓의 流動이 원만하고 윤택해진다.



7.一波三折-붓을 운용하는 방법으로 波는 서법에서 삐치는 것이며 折은 필봉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말은 필법의 변화와 생동감을 형용한 것이다. 만약 가로획을 그을 때 바로 가서 돌아옴이 없고, 세로 획을 쓸 때 한 번에 죽 내리고, 삐침을 하는데 붓을 빨리 지나가 버린 다면 이것은 바로 무미건조하고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 생동감도 없게 된다. 만약 점획을 표현하는데 直하면서 曲勢가 있고, 반드시 운필의 宛,急이 있어야 神彩飛騰하게 된다.


◈서예의 체험 美學的 표현

 

 

과봉이라는 것에대해. 論한다면,

.......................................................................................................

"과봉은 서사할 때에 전체의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는 용필방법이다.

 

平鋪와 상대되는 말이다.

 봉을 모아 안으로 집결하면 붓은 획의 중심으로 움직이고 선조는 전체가 간명하게 모여 勁感과 彈力感을 준다

鋒은 筆中鋒으로 하필한 후에 運筆使轉을 거치는 것으로

 毫鋒을 모아서 盡力으로 운필하는 것이다.

 마른 곳에 이르면 왕왕 양변에 먹이 묻지 않은 부분이 보이고(墨虛)

 

 중간에는 묵흔이 있어(墨實) 사람들에게 일종의 바깥으로 돌출하는 圓柱體의 형상을 준다.

『中國書論辭典』이나「運筆十四勢論」에서는 과봉에 대해 위와 같이 언급을 하고 있다.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니 어느 방향으로든 붓이 움직이더라도 중봉이 될 것이고 운필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며,

필획이 부드러워지고 서로 호응할 것이다.

 붓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필호에는 자연스런 변화가 나타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필획이 나타나게 된다.


과봉은 鋪毫와 상대적인 개념이다.

 포호에는 斜鋪와 平鋪가 있는데 사포는 편봉이나 측봉을 의미하고,

 평포는 중봉을 의미한다. 平鋪에 대하여 『書藝通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붓의 끝이 가지런히 펴져, 그 펴진 길이가 곧 획의 넓이가 되는 방법이다.

鋪라는 것은 鋪毫中鋒으로 행필할 때에 盡力으로 필호를 벌려 필봉을 平鋪하는 것이다. 필봉이 치우치지 않으며 萬毫가 一力이 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필력이 均稱한 데로 이를 수 있고 挺秀明麗한 目的에 이를 수 있다.

 

모든 운필하는 과정중에 鋪 는 상대적이면서도 相生하여 역감이 있는 필획을 만들어 낸다.


중봉용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가 萬毫齊力이다.

 만호제력은 모든 터럭의 끝에 가지런히 힘을 준다는 것으로, 蔣和(1736-1795)가 『書法正宗』에서 한 다음의 말과 같은 것이다.

글자에는 一筆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一法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牽絲使轉을 해도 또한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힘이 筆尖에 주입되면 화평하게 출봉하니, 붓을 잘 놀리는 사람은 정신이 筆頭로 주입되며 槍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힘이 창끝에 있다.

즉 一筆이나 一法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그것은 書法線條美感에서 가장 중요한 元素이며 마땅히 제일로 중시를 해야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힘을 주는 것은 삼가야 하니,

 절제하지 않은 거칠고 뻣뻣한 蠻力은 一顧의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 필호는 유연한데 힘을 鋒端에 이르게 하고 또한 鋒端自體에서 힘을 發하게 하며,

 

 發力을 끊지 않아야하니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다.

 萬毫齊力은 이렇게 선조에 역감이 있도록 하고 中實한 선조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어떤 力度나 어떤 速度와 어떤 濃度로든지 반드시 모필을 펴서 每一根의 모필에 모두 최대의 가능한한 힘을 傳導시킬 수 있도록 한다.

 

 가장 훌륭한 鋒端의 瞬間着力狀態는 四面鋪毫·八面出鋒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가장 훌륭한 萬毫齊力이다.

 다만 功力이 深厚精熟한 때라야 비로소 이 法을 얻을 수가 있다.


종이에 작용하는 筆毫의 힘에는 大小가 있다.

 

厚實勁挺한 역감은 종이에 작용하는 필력의 총량을 크게 하며, 연약하고 무력한 감각을 내는 필선은 필호가 종이에서 주동력을 내지 못했던 것에 근거한다.

 

大凡한 필획은 緊張된 힘으로 종이위에 필선을 긋는 것으로부터 얻어지며, 逆行이나 勒行으로 行筆하면 큰 힘이 표현되고 順鋒順行하면 작은 힘이 표현된다.

 

 

 

(1)疾澁:점획에 대한,미학적인 표현방법의 하나로써,

 질감 있는 점획과 의미 있는 風韻이 함축되어야 하며 그 표현이 비록 순수하고 진실하면서 밖으로 꾸밈이 없고 내재율은 骨을 감추고 筋을 품어야 되고, 含文包質되어 언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무한한 여운을 남기고 千古에 감상되는 명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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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든것은 초기 漢시대에  발췌된  미학적 표현 이다,,
                   
魏,晉 시대에는,骨과 힘을 심미의 표준으로 삼았는데

 그들이 숭상하던 골은 瀟灑하고 飄逸한 풍류의 氣骨을 말한다.

이는,곧.  서예가 風格, 기질, 정신 등을 담은 표현을 주로 구사하였고,

그  시대 서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는 후에 당시대에 들어가면서 상당한 영향력있는 표현으로발전되고 있는데.莊嚴美,尙法의 사상,中和의 美,주체와 정감을 중시하는 미학표현이 완성단게에 이르면서,無意와 無法의  서예 표현까지도 나타내게 된다, 

 

 

당시대의 미학적 표현에 대해.  그시대에 서예가로써 아름을 날리던,

 

장회관은 장엄미학적 표현을 숭상하였고

한유는 서정미학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왕희지 를 숭상하던 서법적인  미학표현을 그대로 따른 이들에 의해 大小,

長短·粗細·疎密,濃淡·肥瘦·輕重·斜正,疾徐  등의 형식미를  이어가는 한편,

 미학적 표현으로 완벽성을 추구하며 확립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