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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象村先生 野言

solpee 2009. 11. 8. 21:18

象村稿卷之四十八 外稿第七 


[野言]1 

田居歲久。已作世外人。適披前修著撰。有會心者。錄爲小帙。間附己意。名以野言。迹其實也。其言宜於野。可與野人言也。

口中不設雌黃。眉端不掛煩惱。可稱煙火神仙。

隨意而栽花竹。適性而養禽魚。此是山林經濟。

子雲玄亭。停橈問字。淵明菊逕。携酒款扉。終覺多事。不如仲蔚逢蒿。袁安高臥。

諸病皆可醫。惟俗不可醫。醫俗者唯有書。

飮酒有眞趣。不在醉。不在不醉。微酡有邵堯夫。酩酊有劉伯倫。

逸客高蹤。幽人妙韻。與會心友談之。亦自神王。

友之疏狂者。足啓庸俗。通達者足破拘攣。博學者足開孤陋。高曠者足振頹墮。鎭靜者足制躁妄。恬淡者足消濃艶。

名心未化。對妻孥亦自矜莊。隱衷釋然。卽夢寐亦成淸楚。

事當快意處能轉。言當快意處能住。不特尤悔自少。且覺趣味無窮。

破綻處。從周旋處見。指摘處。從愛護處見。艱難處。從貪戀處見。

惟讀書。有利而無害。愛溪山。有利而無害。玩花竹風月。有利而無害。端坐靜默。有利而無害。

茶熟香淸。有客到門可喜。鳥啼花落。無人亦自悠然。眞源無味。眞水無香。

雲白山靑。川行石立。花迎鳥歌。谷答樵謳。萬境俱寂。人心自閑。

意盡而言止者。天下之至言也。然言止而意不盡。尤爲至言。

人生一日。或聞一善言。見一善行。行一善事。此日方不虛生。

詩堪適性。過則刻苦。酒取怡情。過則顚佚。

風流得意之事。一過輒生悲涼。淸眞寂寞之鄕。愈久轉增意味。

花太麗者馨不足。花多馨者色不麗。故侈富貴之容者少淸芬之氣。抗幽芳之姿者多莫落之色。君子寧馨百世。不求一時之艶。

爲文而欲一世之皆好之。非至文也。爲人而欲一世之皆好之。非正人也。

山棲是勝事。稍有繫戀則亦市朝。書畫是雅事。稍一貪念則亦商賈。杯酒是樂事。稍一徇人則亦狴牢。好客是達事。稍涉俗流則亦苦海。

才俊人宜學恭謹。聰明人宜學沈厚。

俗語近于市。纖語近于娼。諢語近于優。士夫一涉乎此。損威重。

仁厚刻薄。是修短關。謙抑盈滿。是禍福關。勤儉奢惰。是貧富關。保養縱欲。是人鬼關。

盛名必有重責。大巧必有奇窮。

看中人。要在大處不走作。看豪傑。要在小處不滲漏。濃於聲色生虛怯病。濃於貨利生貪饕病。濃於功業生走作病。濃於名譽生矯激病。濃於學古生畫葫蘆病。

客散門扄。風微日落。酒甕乍開。詩句初成。便是山人得意處。

長廊廣榭。曲水回磴。叢花深竹。野鳥江鷗。瓦罏爇香。玉麈談禪。是爲眞境界。亦爲淡生活。

有可有不可是爲世法。無可無不可是爲出世法。有是有不是是爲世法。無是無不是是爲出世法。

鹿養精。龜養氣。鶴養神。故能壽。

靜處煉氣。動處煉神。

君子不辱人以不堪。不愧人以不知。卽寡怨。

春序將闌。步入林巒。曲逕通幽。松竹交映。野花生香。山禽哢舌。時抱焦桐。坐石上。撫二三雅調。幻身卽是洞中仙畫中人也。

桑林麥壟。高下競秀。雉雊春陽。鳩呼朝雨。卽村居眞景物也。

與衲子坐松林石上。談因果說公案。久之松際月來。踏樹影而歸。

同會心友登山。趺坐。浪談。談倦仰臥巖際。見靑天白雲飛繞半空中。便欣然自適。

霜降木落時。入疏林中。坐樹根上。飄飄黃葉點衣袖。野鳥從樹梢飛來窺人。荒涼之地。乃反淸曠。

閉門閱會心書。開門迎會心客。出門尋會心境。此乃人間三樂。

霜降石出。潭水澄定。懸岩峭壁。古木垂蘿。皆倒影水中。策杖臨之。心境俱淸。

鼓琴偏宜于桐風澗響之間。自然之聲正合類應。

杏花疏雨。楊柳輕風。興到忻然獨往。

得閑多事外。知足少年中。棲遁之情也。種花春掃雪。看籙夜焚香。棲遁之興也。硏田無惡歲。酒谷有長春。棲遁之味也。

良宵宴坐。篝燈煮茗。萬籟俱寂。溪水自韻。衾枕不御。簡編乍親。一樂也。風雨載途。掩關却掃。圖史滿前。隨興抽檢。絶人往還。境幽室寂。二樂也。空山歲晏。密雪微霰。枯條振風。寒禽號野。一室擁爐。茗香酒熟。三樂也。

須一小舟。短帆輕棹。舟中雜置圖書鼎彝酒漿荈脯。風利道便。或訪故人。或訪名刹。且畜一歌娃一笛童一琴奚。與兒小隨意往來煙波間。以弭寥靜。最勝致。顧我國無此境。亦難辦此具爾。

初夏園林。隨意拂苔蘚坐石上。竹陰漏日。桐影扶雲。俄而山雲乍起。微雨生涼。就榻午眠。夢亦得趣。

勑斷家事。擇二三童子自隨。其強幹者以備炊爨。弱者以備洒掃抄寫。子孫能相體者則送供養。賓朋能相念者則通餽問足矣。

荊楚歲時記。小寒三信梅花山茶水仙。大寒三信瑞香蘭花山礬。立春三信迎春櫻桃望春。雨水三信菜花杏花李花。驚蟄三信桃花棣棠薔薇。春分三信海棠梨花木蘭。淸明三信桐花菱花柳花。穀雨三信牡丹荼蘼楝花。

人生唯寒食重九愼不可虛擲。四時之變。無如此節者。

竹几當窓。蒲團坐地。高峯入雲。淸流見底。籬邊種菊。堂後生萱。花妨過塢。柳礙移門。曲逕煙深。路接靑帘。澄江日落。船泊漁村。

凡山具設經籍子史。備藥餌方書。儲佳筆名繭。留淸醪雜蔬。畜古書名畫。製絮枕蘆被。足以遣老。

深山高居。爐香不可缺。退休旣久。佳品乏絶。取老松柏根枝葉實擣之。斫楓肪和之。每焚一丸。亦足助淸苦。

竹榻石枕蒲花褥。隱囊蘆花被紙帳。欹床藤墩蒲石盆。如意竹鉢鍾磬道服。文履道扇拂麈。雲舃竹杖。癭杯韻牌。酒罇詩筒禪燈。皆山居之不可闕者也。

象村稿卷之四十八 外稿第七


[野言]2 

養生之士。先寶其精。精滿則氣壯。氣壯則神王。

薄滋味。所以養氣。去嗔恚。所以養性。

守氣之妙。在乎專精。

心虛則澄。坐定則靜。寡言希聽。存神保命。

內觀其心。心無其心。外觀其形。形無其形。遠觀其物。物無其物。

至陰肅肅。至陽赫赫。肅肅出乎天。赫赫發乎地。兩者交而成和。成和而物生焉。

天下之事。是或化爲非。非或化爲是。恩或化爲讎。讎或化爲恩。是以聖人居常慮變。

水潛故蘊爲五精。火飛故達爲五臭。木茂故華爲五色。金堅故實爲五聲。土和故滋爲五味。

委身寂然。委心洞然。委世混然。委事自然。

順天命順天道。順天時順天理。順天道則能應物。順天命則能應人。順天時則能應變。順天理則能應機。苟如是則常應而常靜。

道本虛。虛無形體。窮於無窮。始於無始。

虛極化神。神變生氣。

形形相授。物物相孕。化化生生。

虛則無礙。靜則無欲。虛極靜篤。觀化知復。

其常不變故能應變。其變不常故能體常。

日往月來。氣之屈伸。暑往寒來。歲之屈伸。古往今來。世之屈伸。

息者消之始。消者息之終。

天地雖大。陰陽雖妙。能役有形氣者。不能役無形氣者。

天下之事。爭之則不足。遜之則有餘。

智之極則知。而智之用。不足以周物。故用之以愚。辨之極則知。而辨之用。不足以盡物。故處之以訥。

聖人無所見。故無不見。無所聞。故無不聞。

善今者可以行古。善末者可以立本。

不可非世是己。不可卑人尊己。自牧之道也。

天不能冬蓮春菊。是以聖人不能造時。地不能洛橘汶貉。是以聖人不能去俗。

少言者。人不忌。

操之以誠。行之以簡。待之以恕。存之以默。

謀之心。斷之理。順之大。

聖人之言。大者金玉。小者菽粟。

言道者如言夢。聽道者如聞夢。言夢者曰如此金玉。如此粟帛。言者不能取而與人。聽者不能受而得之。故回也如愚。

形忘以養氣。忘氣以養神。忘神以養虛。

動靜相摩。所以化火。燥濕相蒸。所以化水。

水火相用之物。用之不得其道則有時乎毀家。飮餠常食之物。食之不得其道則有時乎戕身。

儉于聽可以養虛。儉于視可以養神。儉于言可以養氣。儉于家可以獲福。

君儉則臣知足。臣儉則士知足。士儉則民知足。民儉則天下知足。

至奢者猶不足。至儉者恒有餘。

無一物非天。無一物非命。無一物非神。

聖人不以己治天下。以天下治天下。

天下歸功於聖人。聖人任功於天下。

賢人趨上而不見下。衆人趨下而不見上。

因精有魂。因魂有神。因神有意。因意有魄。

勤於禮者神不外馳。可以集神。勤於智者精不外移。可以攝精。

知亂於未亂。知危於未危。知亡於未亡。知禍於未禍。存於身而不爲身累。行於心而不爲心役。行於世而不爲世移。行於事而不爲事凝者。其庶矣夫。

通變在識時。識時在通理。

淸明在躬。天理昭明。

天之變化。觀易可見。世之時勢。觀象可驗。物之情僞。觀形可辨。

進德修業。莫若正己。己正則人亦正。己正則事亦正。一正己而天下之萬變可應。

氣之消長。時之升降。運之否泰。道之通塞。天易也。卦之吉凶。爻之得失。辭之險易。象之貞悔。聖易也。命之窮達。世之成敗。位之安危。身之進退。心易也。

虛者天之象。靜者地之象。自強不息。天之虛也。厚德載物。地之靜也。

世無不霧之晨而霧不能以晨爲昏。世無不雲之晝而雲不能以晝爲夜。

乾坤開闢之世乎。屯蒙鴻荒之世乎。需養結繩之世乎。訟師阪泉之世乎。畜履書契之世乎。泰其雍熙之世乎。過是而後。否泰相乘。

天下之理。屈之甚者伸必烈。伏之久者飛之決。

象村稿卷之四十九 外稿第八


야언(野言) 1

전원생활을 해 온 세월이 오래 흐르다 보니 이제는 세상 밖의 사람이 다 되었다. 어느 날 예전에 지었던 글들을 펼쳐 보다가 마음속으로 부합되는 것이 있기에, 자그마한 책자로 엮어 그 속에 나의 뜻을 곁들이고 야언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이는 나의 현실 생활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말들은 그저 야어(野語)라고나 해야 맞을 것이니, 야인(野人)을 만나서 한번 이야기해 볼 만한 것들이라고 하겠다.

입 속에 자황(雌黃)을 담지 않고 미간(眉間)에 번뇌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으면, 연화(烟火)의 신선이라고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뜻 가는 대로 꽃이나 대나무를 재배하고 성미에 맞게 새나 물고기를 키우는 것, 이것이 바로 산림(山林)에서 경영하는 생활이라 하겠다.

자운(子雲 한(漢) 나라 양웅(楊雄))의 현정(玄亭)엔 배를 타고 와 기이한 문자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연명(淵明 진(晉) 나라의 도잠(陶潛))의 국화길엔 술병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일들은 아무래도 번잡스럽게만 느껴진다. 쑥대밭 속에 묻혀 살았던 중울(仲蔚 후한(後漢)의 장중울(張仲蔚))이나 태평스럽게 누워 있었던 원안(袁安 후한의 명신)의 처지가 낫지 않겠는가.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으나 속기(俗氣)만은 치유할 수 없다. 속기를 치유하는 것은 오직 책밖에 없다.

술을 마시는 진정한 아취(雅趣)가 있는데, 그것은 취하는 데에도 있지 않고 취하지 않는 데에도 있지 않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사람으로는 소요부(邵堯夫 송(宋) 나라의 소옹(邵雍))를 들 수 있고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으로는 유백륜(劉伯倫 서진(西晉)의 유영(劉伶))을 들 수 있다.

일객(逸客)의 고상한 행적과 유인(幽人)의 절묘한 운치에 대해서 마음에 맞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 또한 신기(神氣)가 저절로 뛰놀게 된다.

현실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도 의기(義氣)가 드높은 친구를 만나면 속물 근성을 떨어버릴 수가 있고, 두루 통달한 친구를 만나면 부분에 치우친 성벽(性癖)을 깨뜨릴 수가 있고, 학문에 박식한 친구를 만나면 고루함을 계몽받을 수 있고, 높이 광달(曠達)한 친구를 만나면 타락한 속기(俗氣)를 떨쳐 버릴 수가 있고, 차분하게 안정된 친구를 만나면 성급하고 경망스런 성격을 제어할 수 있고, 담담하게 유유자적하는 친구를 만나면 화사한 쪽으로 치달리려는 마음을 해소시킬 수가 있다.

명예심을 극복하지 못했을 때에는 처자의 앞에서도 뽐내는 기색이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무의식에까지 침투했던 그 마음이 완전히 풀어지면 잠이 들어도 청초(淸楚)한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일은 마음에 흡족하게 될 때 전환할 줄 알아야 하고, 말은 자기 뜻에 차게 될 때 머물러 둘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허물과 후회가 자연히 적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음미할 것이 무궁무진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선(周旋)하다 보면 파탄(破綻)되는 곳이 눈에 보이고, 애호(愛護)하다 보면 지적할 곳이 나타나고, 욕심에 끌려 연연하다 보면 어려운 곳에 봉착하게 되는 법이다.

독서는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으며, 시내와 산을 사랑하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으며, 꽃ㆍ대나무ㆍ바람ㆍ달을 완상(玩賞)하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으며, 단정히 앉아 고요히 입을 다무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다.

차가 끓고 청향(淸香)이 감도는데 문 앞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기뻐할 일이지만, 새가 울고 꽃이 지는데 찾아 오는 사람 없어도 그 자체로 유연(悠然)할 뿐. 진원(眞源)은 맛이 없고 진수(眞水)는 향취가 없다.

흰 구름 둥실 산은 푸르고, 시냇물은 졸졸 바위는 우뚝. 새들의 노랫소리 꽃이 홀로 반기고, 나뭇꾼의 콧노래 골짜기가 화답하네. 온갖 경계 적요(寂寥)하니, 인심(人心)도 자연 한가하네.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말하고 그치는 것은 천하의 지언(至言)이다. 그러나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다 말하지 않고 그치는 것은 더욱 지언이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착한 말을 한 가지라도 듣거나 착한 행동을 한 가지라도 보거나 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행한다면, 그날이야말로 헛되게 살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시(詩)는 자신의 성향(性向)에 맞게 할 따름이니 이를 벗어나면 각박하고 고달프게만 되고, 술은 정서를 부드럽게 푸는 정도로 그쳐야 할 것이니 이를 지나치면 뒤집혀 질탕(佚蕩)하게 되고 만다.

아무리 만족스럽게 풍류(風流)를 즐겨도 그 시간이 한번 지나고 나면 문득 비애의 감정이 솟구치는데, 적막하면서도 맑고 참된 경지에서 노닐게 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의미(意味)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너무 화려한 꽃은 향기가 부족하고 향기가 진한 꽃은 색깔이 화려하지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귀의 자태를 한껏 뽐내는 자들은 맑게 우러나오는 향기가 부족하고 그윽한 향기를 마음껏 내뿜는 자들은 낙막(落莫)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군자는 차라리 백세(百世)에 향기를 전할지언정 한 시대의 아리따운 모습으로 남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애호하게 할 목적 의식을 갖고 지은 문장은 지극한 문장이 아니고,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게끔 다듬어진 인물이라면 바른 인물이 아니다.

산중 생활이 수승(殊勝)한 것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얽매여 연연하는 마음이 있으면 또한 시조(市朝 사람이 북적대는 시장이나 조정)와 같고, 서화(書畵)가 아취(雅趣) 있는 일이긴 하지만 한 생각이라도 이를 탐(貪)하게 되면 또한 장사꾼과 같게 되고, 한 잔 술 드는 것이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한 생각이라도 남의 흥취에 따라가는 것이 있게 되면 또한 감옥처럼 답답하기 그지없게 되고, 객(客)을 좋아하는 것이 화통(和通)한 일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속된 흐름에 떨어진다면 또한 고해(苦海)라 할 것이다.

재기가 뛰어난 사람은 공근(恭謹)함을 배워야 하고, 총명한 사람은 침후(沈厚)함을 배워야 한다.

속된 말을 하면 장사치에 가깝고 섬세한 말을 하면 창기(娼妓)에 가깝고 농담을 하면 광대에 가깝게 된다. 사대부의 말이 이 중 한 가지에라도 관련이 되면 위중(威重)함을 잃는 것이 된다.

인후하게 하느냐 각박하게 하느냐의 여부가 장(長)과 단(短)의 관건이 되고, 겸손하게 자신을 제어하느냐 교만을 부리느냐의 여부가 화와 복을 초래하는 관건이 되고, 검소하게 하느냐 사치하게 하느냐의 여부가 가난과 부귀를 결정짓는 관건이 되고, 몸을 보호하여 양생(養生)을 하느냐 욕심대로 방자하게 행동하느냐의 여부가 죽음과 삶의 관건이 된다.

이름을 드날리게 되면 반드시 중한 책임이 뒤따르게 되고, 너무 기교를 부리다 보면 반드시 뜻밖의 어려움을 당하게 마련이다.

중인(中人)을 보는 요령은 큰 대목에서 나대지는 않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데에 있고, 호걸을 보는 요령은 작은 대목이라도 빠뜨리지는 않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데에 있다.

성색(聲色)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허겁병(虛怯病)에 걸리고, 화리(貨利)에 빠지다 보면 탐도병(貪饕病)에 걸리고, 공업(功業)만 추구하다 보면 주작병(走作病 마구 치달려 궤도를 이탈하는 폐단을 말함)에 걸리고, 명예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교격병(矯激病 과격하게 일을 처리하는 폐단)에 걸리고, 옛 학문에만 관심을 쏟다 보면 호로(葫蘆)를 그리는 병에 걸린다.

손님은 가고 문은 닫혔는데 바람은 선들 불고 해가 떨어진다. 술동이 잠깐 기울임에 시구가 막 이루어지니, 이것이야말로 산인(山人)이 희열을 맛보는 경계라 하겠다.

긴 행랑 넓은 정자 굽이쳐 흐르는 물에 돌아드는 오솔길, 떨기 진 꽃 울창한 대숲 산새들과 강 갈매기, 질그릇에 향 피우고 설경(雪景) 속에 선(禪)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경계인 동시에 담박한 생활이라고 하겠다.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것, 이것은 세간법(世間法)이고, 할 일도 없고 해서는 안 될 일도 없는 것, 이것이 출세간법(出世間法)이다.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는 것, 이것은 세간법이고,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는 것, 이것은 출세간법이다.

사슴은 정(精)을 기르고 거북이는 기(氣)를 기르고 학은 신(神)을 기른다. 그래서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고요한 곳에서는 기(氣)를 단련하고 움직이는 곳에서는 신(神)을 단련한다.

군자는 사람들이 감당해내지 못한다고 모욕을 가하지 않고, 무식하다고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때문에 원망이 적은 것이다.

봄철도 저물어가는데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오솔길이 아슴프레하게 뚫리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서로 비치는가 하면 들꽃은 향기를 내뿜고 산새는 목소리를 자랑한다. 거문고를 안고 바위 위에 올라 앉아 두서너 곡조를 탄주(彈奏)하니 몸도 두둥실 마치 동천(洞天)의 신선인 듯 그림 속의 사람인 듯하였다.

뽕나무 숲과 일렁이는 보리밭, 위와 아래에서 경치를 뽐내는데, 따스한 봄날 꿩은 서로를 부르고, 비오는 아침 뻐꾸기 소리 들리네. 이것이야말로 농촌 생활의 참다운 경물(景物)이라 할 것이다.

납자(衲子 선승(禪僧))와 소나무 숲 바위 위에 앉아 인과(因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공안(公案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질문. 화두(話頭))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흘러 어느새 소나무 가지 끝에 달이 걸렸기에 나무 그림자를 밟고 돌아왔다.

마음에 맞는 친구와 산에 올라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내키는 대로 이야기하다가 이야기하기도 지쳐 바위 끝에 반듯이 드러 누웠더니,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 날아와 반공중(半空中)을 휘감았는데, 그 모습을 접하면서 문득 흔연해지며 자적(自適)한 경지를 맛보게 된다.

찬 서리 내려 낙엽 질 때 성긴 숲 속에 들어가 나무 등걸 위에 앉으니, 바람에 나부껴 누런 단풍잎 옷소매 위에 떨어지고 산새 나무 끝에서 날아와 나의 모습을 살핀다. 황량한 대지가 청명하고 초연한 경지로 바뀌어지는 순간이었다.

문을 닫고 마음에 맞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맞는 경계를 찾아가는 것, 이 세 가지야말로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찬 서리 내려 바위가 드러났는데 고인 물 잠잠히 맑기만 하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암벽, 담쟁이로 휘감긴 고목, 모두가 물 속에 거꾸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팡이 짚고 이곳에 오니 내 마음과 객관세계 일체로 맑아지누나.

거문고는 오동나무 가지에 바람이 일고 시냇물 소리가 화답하는 곳에서 연주해야 마땅하니, 자연의 음향이야말로 이것과 제대로 응하기 때문이다.

살구꽃에 성긴 비 내리고 버드나무 가지에 바람이 건듯 불 때 흥이 나면 혼자서 흔연히 나서 본다.

일 많은 세상 밖에서 한가로움을 맛보고 세월이 부족해도 족함을 아는 것은 은둔 생활의 정(情)이요, 봄철에 잔설(殘雪)을 치워 꽃씨를 뿌리고 밤에 향을 피우며 도록(圖籙 도참(圖讖))을 보는 것은 은둔 생활의 흥(興)이요, 연전(硏田 문필 생활)은 흉년을 모르고 주곡(酒谷)에 언제나 봄 기운이 감도는 것은 은둔 생활의 맛[味]이다.

어느 쾌적한 밤 편안히 앉아 등불 빛을 은은히 하고 콩을 구워 먹는다. 만물은 적요한데 시냇물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릴 뿐, 이부자리도 펴지 않은 채 책을 잠깐씩 보기도 한다.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다. 사방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문을 닫고 소제한 뒤 책들을 앞에 펼쳐놓고 흥이 나는 대로 뽑아서 검토해 보는데, 왕래하는 사람의 발자욱 소리 끊어져 온 천지 그윽하고 실내 또한 정적 속에 묻힌 상태,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텅 빈 산에 이 해도 저무는데 분가루 흩뿌리듯 소리없이 내리는 눈, 마른 나무가지 바람에 흔들리고 추위에 떠는 산새 들에서 우짖는데, 방 속에 앉아 화로 끼고 차 달이며 술 익히는 것,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짧은 돛에 가벼운 노를 장치한 작은 배 한 척을 마련하여 그 속에 도서(圖書)며 솥이며 술과 음료수며 차[茶]며 마른 포(脯) 등속을 싣고는 바람이 순조롭고 길이 편하면 친구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명찰(名刹)을 탐방하기도 한다. 그리고 노래 잘하는 미인 한 명과 피리 부는 동자 한 명과 거문고 타는 한 사내와 이이를 태우고는 안개 감도는 물결을 헤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왕래하면서 적막하고 고요한 심회를 푼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기막힌 운치라 할 것인데, 다만 우리 나라에는 이렇게 할 만한 경개도 없을 뿐더러 이런 도구를 마련하기도 쉽지가 않다.

초여름 원림(園林) 속에 들어가 뜻 가는 대로 아무 바위나 골라잡아 이끼를 털어내고 그 위에 앉으니, 대나무 그늘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오동나무 그림자가 뭉실 구름 모양을 이룬다. 얼마 뒤에 산속에서 구름이 건듯 일어 가는 비를 흩뿌리니 청량감(淸凉感)이 다시 없다. 탑상(榻床)에 기대어 오수(午睡)에 빠졌는데, 꿈속의 흥취 역시 이때와 같았다.

집안일을 정리한 뒤 동자 2, 3명을 골라 따라오게 한다. 근력이 있는 자는 불때고 밥 짓는 일을 맡기고 힘이 약한 자는 청소나 글 베끼는 일을 맡게 한다. 믿음이 가는 자손이 있으면 공양(供養)하러 보내고 서로 염려해주는 빈붕(賓朋)이 있으면 선물 꾸러미를 보내 문안을 통한다. 이러면 족할 것이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양(梁) 나라 종름(宗檁)의 저서로 초 나라 풍속과 연중 행사를 기록한 책)》에 의하면, 소한(小寒)의 3신(信 소식)은 매화(梅花)ㆍ산다(山茶)ㆍ수선(水仙)이고, 대한(大寒)의 3신은 서향(瑞香)ㆍ난화(蘭花)ㆍ산반(山礬)이고, 입춘(立春)의 3신은 영춘(迎春)ㆍ앵도(櫻桃)ㆍ망춘(望春)이고, 우수(雨水)의 3신은 채화(菜花)ㆍ행화(杏花)ㆍ이화(李花)이고, 경칩(驚蟄)의 3신은 도화(桃花)ㆍ체당(棣棠)ㆍ장미(薔薇)이고, 춘분(春分)의 3신은 해당(海棠)ㆍ이화(梨花)ㆍ목란(木蘭)이고, 청명(淸明)의 3신은 동화(桐花)ㆍ능화(菱花)ㆍ유화(柳花)이고, 곡우(穀雨)의 3신은 모란(牡丹)ㆍ다미(茶蘼)ㆍ연화(楝花)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 한식(寒食)과 중구(重九)만은 삼가서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사시(四時)의 변화 가운데 이들 절기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나무 안석(案席)을 창가로 옮긴 뒤 부들 자리를 땅에 폈다. 높은 봉우리는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시내는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맑기만 하다. 울타리 옆에 국화 심고 집 뒤에는 원추리를 가꾼다. 둑을 높여야 하겠는데 꽃이 다치겠고 문을 옮기자니 버들이 아깝다. 구비진 오솔길 안개에 묻혔는데 그 길을 따라가면 주막이 나타나고, 맑게 갠 강 해가 저무는데 고깃배들 어촌에 정박한다.

산중 생활을 위해서는 여러 경적(經籍)과 제자(諸子)ㆍ사책(史冊)을 갖추어둠은 물론 약재(藥材)와 방서(方書)도 구비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붓과 이름있는 화선지도 여유있게 비치하고 맑은 술과 나물 등속을 저장해두는 한편 고서(古書)와 명화(名畵)도 비축해두면 좋다. 그리고는 버들가지로 베개를 만들고 갈대꽃을 모아 이불을 만들면 노년 생활을 보내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깊이 산중에서 고아(高雅)하게 지내려면 화로에 향 피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벼슬길에서 떠나온 지도 이미 오래되고 보니 품질이 괜찮은 것들이 모두 떨어지고 없다. 그래서 늙은 소나무와 잣나무의 뿌리며 가지며 잎이며 열매를 한데 모아 짓찧은 뒤 단풍나무 진을 찍어 발라 혼합해서 만들어 보았는데, 한 알씩 사를 때마다 또한 청고(淸苦)한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하였다.

죽탑(竹榻)ㆍ석침(石枕)ㆍ포화욕(蒲花褥 갈대꽃을 넣어만든 요)ㆍ은랑(隱囊)ㆍ포화피(蒲花被 갈대꽃 이불)ㆍ지장(紙帳)ㆍ의상(欹床)ㆍ등돈(藤墩 등나무 의자)ㆍ포석분(蒲石盆)ㆍ여의(如意 등 긁는 막대)ㆍ죽발(竹鉢 대나무 바리)ㆍ종(鍾)ㆍ경(磬)ㆍ도복(道服)ㆍ문리(文履)ㆍ도선(道扇)ㆍ불진(佛塵 먼지떨이개로서 일종의 지휘봉으로 쓰이는 불구(拂具))ㆍ운석(雲舄 등산용 신발)ㆍ죽장(竹杖)ㆍ영배(癭杯)ㆍ운패(韻牌)ㆍ주준(酒罇)ㆍ시통(詩筒)ㆍ선등(禪燈) 등은 모두 산중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들이다.


[주D-001]입 속에 …… 있을 것이다. : 《晉書 王衍傳》에 “의리상 타당치 못한 점이 있으면 즉시 고쳐 바로잡았으므로 세상에서 입 속의 자황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자황은 원래 몸을 가볍게 하며 늙지 않게 하는 신선술사(神仙術士)의 약품이었으나, 뒤에 잘못 쓴 글자를 고칠 때 그 위에 발라 사용했으므로, 보통 개찬(改竄)이나 비평의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세상 일에 대한 비평의 의미로 썼는데, 연화(烟火), 즉 익혀먹는 세속의 ‘신선’이라는 의미와 어울리도록 절묘하게 시어(詩語)로 구사하였다.

[주D-002]자운(子雲)의 …… 않겠는가. : 《漢書 卷87 下》에 “양웅은 본래 가난하였고 술을 좋아했는데,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러나 때로는 호사가들이 술과 안주를 싣고 와 배우기도 하였는데, 거록(鉅鹿)과 후파(侯芭)는 늘 그를 따라 생활하면서 태현(太玄)과 법언(法言)을 수학하였다.” 하였다. 도잠은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도 병을 핑계로 만나지 않았는데, 당시 그 지방의 자사(刺史) 왕홍(王弘)이 도잠의 친구인 방통지(龐通之)를 통해 술로 도잠을 유인해 한번 만난 뒤로, 보고 싶을 때마다 임택(林澤) 사이에서 그의 동태를 살피곤 하였으며, 술과 쌀이 떨어지면 채워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晉書 卷94》 장중울에 대해서는 《高士傳 中 張仲蔚傳》에 “늘 빈궁한 생활을 하였는데, 집 주위에는 사람 키를 넘을 정도로 쑥대가 우거졌으며, 문을 닫고 성품 공부만 할 뿐 명예를 탐하지 않았으므로, 당시에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공(劉龔)만은 그를 인정하였다.”라고 하였다. 원안에 대해서는 《後漢書 卷45 袁安傳》의 주석에 소개된 《汝南先賢傳》에 “당시 큰 눈이 와 몇 길이나 쌓였으므로 낙양령이 직접 순시하였는데, 집마다 제설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걸식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원안의 문 앞에만 발자국이 없었으므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운 뒤 들어가 보니 원안이 쓰러져 누워 있었다. 어째서 나오지 않느냐고 물으니, 원안이 말하기를 ‘눈이 많이 와 사람들이 모두 굶어죽는 판에 남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였다. 이에 낙양령이 그를 현인으로 여기고 효렴으로 천거하였다.”라고 하였다.

[주D-003]호로(葫蘆)를 그리는 병 : 주체성이 없이 구태의연하게 남만 모방하는 것을 말함. 《東軒筆錄》에 “한림 도학사는 우습기도 해. 해마다 호로만 그리고 있으니[堪笑翰林陶學士 年年依樣畵葫蘆].”라고 하였음.


야언(野言) 2

양생(養生)하는 선비는 먼저 정(精)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정이 충만해지면 기(氣)가 강장(强壯)되고 기가 강장되면 신(神)이 왕성해진다.

자미(滋味)를 담박하게 하면 기(氣)를 기를 수 있고 분노를 없애면 성(性)을 기를 수 있다.

기(氣)를 간수하는 묘법은 정(精)을 전일하게 하는 데 있다.

마음을 비우면 맑게 비치게 되고, 앉아서 자세를 안정시키면 고요하게 된다. 말도 적게 하고 듣는 것도 적게 하면 신(神)을 간직하고 명(命)을 보존할 수 있다.

안으로 마음을 살피면 마음도 그 마음이라고 할 것이 없고, 밖으로 형체를 살피면 형체도 그 형체라고 할 것이 없고, 영원한 시간의 지평(地平) 위에서 물체를 살피면 물체도 그 물체라고 할 것이 없다.

지음(至陰)은 고요하기 그지없고 지양(至陽)은 활발하게 약동한다. 그지없이 고요한 것은 하늘로부터 나오고 활발하게 약동하는 것은 땅으로부터 나온다. 이 둘이 서로 통하여 조화를 이루는데, 조화를 이루는 그 속에서 만물이 생성된다.

천하의 일을 보건대, 옳은 것이 그른 것으로 변화할 수도 있고 그른 것이 옳은 것으로 변화할 수도 있으며, 은인이 원수로 바뀔 수도 있고 원수가 은인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정상적인 상황에 처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수(水)는 침잠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온축(蘊畜)되어 오행(五行)의 정(精)이 되고, 화(火)는 날리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어디든 통하여 오행의 취(臭)가 되고, 목(木)은 가능성을 발현(發現)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한껏 화려하여 오행의 색(色)이 되고, 금(金)은 견고한 속성이 있기 때문에 알차게 채워 오행의 성(聲)이 되고, 토(土)는 화합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어디든 번져 오행의 미(味)가 된다.

몸은 적연(寂然)한 상태로 놔 두어야 하고, 마음은 통연(洞然)한 상태로 놔 두어야 하고, 세상은 혼연(混然)한 상태로 놔 두어야 하고, 일은 자연적(自然的)인 상태로 놔 두어야 한다.

천명(天命)을 따르고 천도(天道)를 따르고 천시(天時)를 따르고 천리(天理)를 따라야 한다. 천도를 따르면 외물(外物)에 응할 수 있고, 천명을 따르면 인간의 일을 응할 수 있고, 천시를 따르면 변화하는 상황에 응할 수 있고, 천리를 따르면 기미(機微)를 따라 응할 수 있다. 진정 이렇게만 하면 항상 응하면서도 항상 고요해질 수 있을 것이다.

도(道)는 본래 비고 비어 형체가 없는 것이다. 끝없는 곳에서 끝이 나고 시작이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비어 있는 경지가 지극해지면 신(神)으로 변화하는데, 신이 변하면 기(氣)가 나온다.

형체는 형체를 서로 전수하고 물체는 물체를 서로 잉태한다. 이렇게 해서 끝없는 생성(生成)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텅 빈 경지가 되면 거칠 것이 없고 고요한 경지에 이르면 무욕(無欲)의 상태가 된다. 더할나위 없이 텅빈 경지에 이르고 고요한 상태가 독실하게 유지되면, 현상계의 변화를 살펴 생성의 시초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정하여 변하지 않는 일자(一者)가 있기 때문에 온갖 변화에 응할 수가 있는 것이고, 무상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그 일자를 체(體)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한 해가 가고 새 달이 오는 것은 기(氣)의 굴신(屈伸)이고, 더위가 물러가고 추위가 찾아오는 것은 세(歲)의 굴신이고, 옛 시대가 지나고 현세(現世)가 된 것은 세(世)의 굴신이다.

생성은 소멸의 시초이고 소멸은 생성의 시작이다.

천지(天地)의 규모가 아무리 크고 음양(陰陽)의 조화가 아무리 절묘하다 하더라도, 형기(形氣)가 있는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지 형기가 없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가 없는 것이다.

천하의 일이란 서로 소유하려고 다투면 늘 부족한 법이고 양보하면 넉넉하게 되는 법이다.

지혜의 극치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막상 지혜를 활용하려다 보면 모든 외물(外物)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愚)라는 편법을 쓰게 되는 것이고, 변론의 극치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변론의 기술을 활용하려다 보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는 없기 때문에 눌(訥)이라는 방편으로 대하게도 되는 것이다.

성인은 일정한 견해에 집착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고, 일정하게 듣는 것이 없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고대에도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사람이고, 지엽적인 일을 훌륭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근본 역시 확립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을 비난하면서 자기만 옳다고 해서는 안 되고, 남은 깔보면서 자기만 존대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이것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도(道)이다.

하늘의 일이라고 해도 겨울에 연꽃을 피우고 봄에 국화꽃이 나오도록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인도 시대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땅의 일이라고 해도 낙양(洛陽)에 귤이 열리게 할 수는 없고 문수(汶水)에 오소리가 있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인도 체질화된 풍속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말을 적게 하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경계심을 풀고 말을 한다.

참되게 마음을 유지하고, 대범하게 행동하고, 이해하는 자세로 남을 대하고, 침묵으로 자신을 지킨다.

마음 속으로 계획하고, 이치로써 결단하고, 천도(天道)에 순응한다.

성인의 말을 보건대, 금옥(金玉)처럼 보배로 여겨야 할 위대한 것으로부터 작게는 숙속(菽粟)처럼 비근한 것까지 두루 망라되어 있다.

도(道)를 말하는 자는 꿈 이야기를 해 주는 자와 같고, 도를 듣는 자는 꿈 이야기를 듣는 자와 같다. 꿈을 이야기해 주는 자가 아무리 금옥(金玉) 같으니 속백(粟帛) 같으니 하며 이러쿵저러쿵 말해 준다 하더라도, 말하는 자가 그것을 직접 가져다가 사람에게 쥐어 줄 수는 없는 일이고, 듣는 자 역시 그것을 받아 자기의 것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안회(顔回)가 바보 같았던 것이다.

형체를 잊어야 기(氣)가 길러지고, 기를 잊어야 신(神)이 길러지고, 신을 잊어야 허(虛)가 길러진다.

동(動)과 정(靜)이 서로 마찰작용을 일으킨 결과 화(火)로 변화되고, 조(燥)와 습(濕)이 서로 증발작용을 일으킨 결과 수(水)로 변화된다.

물과 불은 항상 쓰는 물건이지만 잘못 쓸 경우에는 집을 망치는 때도 있고, 술과 떡은 늘 먹는 물건이지만 잘못 먹을 경우에는 몸을 해치는 때도 있다.

듣는 것을 절제하면 허(虛)를 기를 수 있고, 보는 것을 절제하면 신(神)을 기를 수 있고, 언어를 절제하면 기(氣)를 기를 수 있고, 가정의 일을 절제하면 복이 오게 할 수 있다.

임금이 절제하면 백관이 여유를 느끼고, 백관이 절제하면 선비가 여유를 느끼고, 선비가 절제하면 백성[民]이 여유를 느끼고, 백성이 절제하면 온 천하 사람들이 여유를 느낄 것이다.

아무리 호화로운 생활을 해도 여전히 결핍감을 느끼게 되는 반면, 지극히 검소한 생활을 하면 항상 여유가 있게 되는 법이다.

어느 한 물건도 하늘의 속성을 지니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한 물건도 운명적인 것 아닌 것이 없고, 어느 한 물건도 신령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성인은 자기 본위로 천하를 다스리지 않고, 천하 사람의 입장에서 천하를 다스린다.

세상에서는 성인에게 공을 돌리지만, 성인은 세상에 공을 일임한다.

현인은 위만 쳐다보며 올라가고 아래는 내려다보지 않는 데 반해, 보통 사람들은 아래로만 지향하면서 위는 바라보지 않는다.

정(靜)이 있기 때문에 혼(魂)이 있고, 혼이 있기 때문에 신(神)이 있고, 신이 있기 때문에 의(意)가 있고, 의가 있기 때문에 백(魄)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예(禮)를 부지런히 닦는 자는 신(神)이 밖으로 치달리지 않기 때문에 신을 모을 수가 있고, 지혜를 부지런히 닦는 자는 정(靜)이 밖의 상황에 이끌리지 않기 때문에 정을 다스릴 수가 있다.

어지럽게 되기 전에 어지러울줄 알아야 하고, 위태롭게 되기 전에 위태로울줄 알아야 하고, 망하게 되기 전에 망할줄 알아야 하고, 화가 닥치기 전에 화가 닥칠줄 알아야 한다.

몸을 보존하면서도 몸 때문에 누(累)가 되지 않도록 하고, 마음에 작정한 대로 행하면서도 그 마음의 부림을 받지 않게끔 하고, 세상에 어울려 살면서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고, 어떤 일을 행하면서도 그 일에 매이지 않게끔 한다면, 거의 되었다고 하겠다.

변화하는 상황을 꿰뚫어 보려면 그 시대에 대한 식견이 있어야 하고, 시대에 대한 식견을 가지려면 이치에 통달해야 한다.

내 몸이 청명(淸明)해지면 천리(天理)가 밝게 드러나 보일 것이다.

하늘의 변화는 역(易)을 보면 알 수 있고,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은 조짐을 살피면 증험할 수 있고, 각 개체의 진위(眞僞) 여부는 모습을 보면 판단할 수 있다.

덕(德)을 진전시키기 위한 수업으로는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자신이 바르게 되면 남도 바르게 되고, 자신이 바르게 되면 일도 바르게 된다. 자신을 바르게 하는 한 가지 일이 이루어지면 천하의 온갖 변화에 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기(氣)의 소장(消長)과 때의 승강(升降)과 운(運)의 비태(否泰)와 도(道)의 통색(通塞)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천역(天易)이고, 괘(卦)의 길흉(吉兇)과 효(爻)의 득실(得失)과 사(辭)의 험이(險易)와 상(象)의 정회(貞悔)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성역(聖易)이고, 명(命)의 궁달(窮達)과 세상에서의 성패(成敗)와 자리의 안위(安危)와 몸의 진퇴(進退)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심역(心易)이다.

비어 있는 것[虛]이 하늘의 상(象)이 되고, 고요한 것[靜]이 대지의 상이 된다.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것은 하늘이 비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후한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는 것은 대지가 고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세상에 단 하루도 안개가 끼지 않는 아침이 없지마는 그 안개가 아침을 어둡게 만들지는 못하고, 이 세상에 단 하루도 구름이 끼지 않는 낮이 없지마는 그 구름이 낮을 밤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개벽(開闢)하는 세상을 상징하고, 둔괘(屯卦)와 몽괘(蒙卦)는 홍황(鴻荒 개벽된 직후의 혼돈스러우면서도 질박한 태고(太古) 시대)의 시대를 상징하고, 수양괘(需養卦)는 결승(結繩)을 만들어 쓰던 시대를 상징하고, 송괘(訟卦)와 사괘(師卦)는 판천(阪泉)의 시대를 상징하고, 축괘(畜卦)와 이괘(履卦)는 서계(書契)를 만들어 쓰던 시대를 상징하고,태괘(泰卦)는 옹희(雍熙 요순(堯舜) 때처럼 태평한 것을 말함)의 시대를 상징한다. 이 이후로는 비(否)와 태(泰)의 요소가 상승작용하는 시대를 상징한다.

세상의 이치로 볼 때, 너무도 굽혀졌던 것이 펴질 때는 그 기세가 맹렬하게 마련이고, 오래도록 엎드려 있던 것은 격렬하게 튀어오르기 마련이다.


[주D-001]아무리 …… 수는 없다 : 그 풍토에 맞게 만물이 변용(變容)되는 것인만큼, 토착화된 풍속을 어느 한 기준에 맞춰 일방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말이다. 《列子 湯問》에 “오소리는 문수를 건너면 죽는다.”라 하였고, 《廣韻》에 “《주례》에 말하기를 ‘귤을 회수 너머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주D-002]안회(顔回)가 …… 것이다 : 《論語 爲政》에 “내가 하루종일 안회를 데리고 이야기를 할 때에도 안회는 바보처럼 있으면서 한마디도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주D-003]수양괘(需養卦)는 …… 상징하고 : 수양괘란 수괘(需卦)를 말하는데, 수괘의 정전(程傳)에 서괘(序卦)를 인용하면서 “아직 어린 생명들은 길러주어야 하기 때문에 몽괘(蒙卦) 다음에 수괘가 위치한 것이다[物受 不可不養也 故學之以需].”라고 하였던 것처럼 수괘 속에 길러준다[養]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에, 상촌이 전체적으로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하여 수양괘라고 한 것이다. 결승과 서계의 시대란 약간 인지(人智)가 발달하면서 문자를 만들어 쓰던 시대로 역시 상고(上古)를 뜻하는데, 《周易 繫辭 下》에 “상고시대에 결승을 만들어 다스렸는데 성인이 그것을 서계(書契)로 바꾸었다.”라고 하였으며,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를 만들고 신농씨(神農氏)가 결승을 만들고 황제(黃帝) 때 창힐(倉頡)이 서계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보인다.《說文 序》 판천은 고대의 전쟁터로서 《史記 五帝紀》에 “황제가 염제의 후손과 판천의 들판에서 싸웠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갈등과 다툼의 요소가 팽배한 것을 의미한다.          출처: 민족문화추진회(http://www.minchu.or.kr/MAN/index.jsp)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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