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掣肘

solpee 2009. 11. 6. 11:37

공자(孔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노(魯)의 애공(哀公)을 섬겨, 단보(亶父)라는 땅을 다스리게 되었다. 복자천은 哀公이 쓸모없는 소인배의 참언에 움직여,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의 정치를 못할까 하여 哀公의 측근 두 사람을 구해 가지고 이들과 같이 단보(亶父)에 부임하였다. 任地에 도착하자 관리들이 모두 인사를 드리러 왔다. 복자천은 데리고 온 두 사람에게 명하여 문서를 쓰도록 하였다.
두 사람이 붓을 들고, 쓰기 시작하자, 복자천이 그 옆에 서서 두 사람의 팔꿈치를 이따금 잡다 당기곤 하는 것이었다. 그래 놓았더니 그 놈의 文書가 잘 써질리 만무하다. 삐뚤 빼뚤 떨면서 쓴 것이라 엉망이었다. 문서를 받은 복자천은 글씨가 되먹지않았다고 두 사람을 질책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두 사람은 화가 버럭나서 복자천에게 삼임의 뜻을 말하였다. 그랬더니 복자천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자네들의 글씨는 전혀 되먹지 않았네. 이래가지고는 써 먹을 수가 없으니 願이라면 돌아가도 좋으네.」
단보(亶父)를 하직하고 돌아간 두 사람은 그 길로 노공(魯公)에게 배알(拜謁)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복(宓) 영감 밑에서는 일하기는커녕 글씨도 쓸 수 없습니다.」
魯公이 괴이쩍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물은 즉,
「宓영감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들에게 글씨를 쓰라고 하시더니, 옆에서 팔꿈치를 밀고, 당기고 하므로 글씨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서도 『자네들의 글씨는 신통치 않아 써먹을 수가 없네』하면서 질책하는 것입니다. 한 자리에 같이 있던 관리들도 모두 웃고 있었습니다. 이래가지고서는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되돌아 온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魯公은 불현 듯 탄식하여 말하였다.
「그건 나의 不明을 복자천(宓子賤)이 간(諫)하기 위한 것이리라. 아마도 나는 복자천으로 하여금 마음 먹은 대로 정치를 내맡기지 못할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것 같다. 이것을 몰랐더라면 큰 과오를 벌할 뻔 하였다.」
이리하여 자기가 신뢰하는 측근을 亶父에 보내어, 복자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하였다.
「이제부터는 亶父 지방은 나의 소유가 아니고, 너의 소유이다. 亶父에서 하고 싶은 일은 너의 마음 내키는대로 하여라. 五年後에 그 보고를 받도록 하자.」
복자천은 삼가 이것을 승낙하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시정(施政)에 힘쓰게 되었다. 그 후 三年이 지나서, 무마기(巫馬旗)라는 자가 누더기 옷으로 농군 행세를 하고 亶父에 가서, 그 德化의 상황을 보았다.
밤에 고기(魚)를 잡는 자가가 있었던 바, 모처럼 그물에 고기를 다시 놓아주는 장면에 부딪쳤다. 이상하게 생각한 무(巫)는 그 어부에게 물었다.
「고기를 잡고 있으면서, 일껏 걸린 고기를 놓아주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복자천 영감께서, 어린 고기를 잡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좋지 못하다고 하시기 때문이지요. 어린 고기가 걸리면 놓아줄 뿐입니다.」라는 대답이었다.
巫는 그 치정(治政)이 잘 된 것에 감탄하였다 한다.
이것은 「孔子家語」와 「呂氏春秋」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는 「呂氏春秋」의 「審應篇」에 따랐다. (「孔子家語」에 서는 亶父는 單父로 되어있다). 철주(掣肘)라 함은 이 이야기에서 본바와 같이 사람의 팔굽을 제약하여, 그 움직임을 속박하는 것, 즉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뜻으로 쓰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