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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荇의 霜月

solpee 2009. 11. 3. 19:45

상월 霜月

           - 이행 李荇 -


晩來微雨洗長天(만래미우세장천)

入夜高風捲暝烟(입야고풍권명연)  

夢覺曉鍾寒徹骨(몽각효종한철골)

素娥靑女鬪嬋娟(소아청녀투선연)

 

고운 서리, 고운 달이 유난히 빛나는 맑은 가을 새벽이다.


비 뿌려 하늘의 티끌을 씻어 헹구고,

소소한 가을바람은 운무(雲霧)를 쓸어낸 투명한가을 새벽,

꿈에서 깨어난 듯 먼 종소리

뼛속까지 스며드는 드는 듯한 새벽의 맑고 찬 기운.

하늘엔 달 땅엔 서리,

소아(素娥)와 청녀(靑女)는 미색(미색)을 겨룬다.


담박(淡泊)하고 명쾌하다.


만래(晩來)-늦은 저녁, 명연(暝烟)-어두컴컴한 연무(煙霧), 몽각(夢覺)-꿈에서 깨어남, 철골(徹骨)-뼈에 사무침.뼈속으로 스며듦, 소아(素娥)-월궁의 선녀 이름. 상아(常娥).달의 딴 이름, 청녀(靑女)-서리의 딴 이름 서리 신의 이름

 

李荇:1478(성종 9)~1534(중종 29).
조선 전기의 문신.
박은과 함께 해동의 강서파(江西派)라고 불렸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창택어수(滄澤漁叟)·청학도인(靑鶴道人). 아버지는 사간 의무(宜茂)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권지승문원부정자를 거쳐 검열·전적을 역임했고, 〈성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다. 1504년 응교로 있을 때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에 유배되었고,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교리에 등용, 대사간·대사성을 거쳐 대사헌·대제학·공조판서·이조판서·우의정 등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펴내는 데 참여했고, 1531년 김안로를 논박하여 좌천된 뒤 이듬해 함종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시는 허균 등에 의해 매우 높게 평가되었다. 당시(唐詩)의 전통에서 벗어나 기발한 착상과 참신한 표현을 강조하는 기교적인 시를 써서 새로운 시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표현의 격조가 높아진 반면 폭넓은 경험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은 없었다. 저서로는 〈용재집〉이 있다. 1537년 신원(伸寃)되었고, 중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定)이고, 뒤에 문헌(文獻)으로 바뀌었다.